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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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모봉[峰]
무명이 주변을 둘러보자 장황한 대지가 전방위로 펼쳐졌다. 정오의 해가 높게 솟아올라 수백, 수천 리 떨어진 산등성이 그림자 사이로 노란 햇살을 드리웠다. 높고 푸른 겨울 하늘은 그 어떤 때보다 청아함을 가슴 속 깊이 새겼다.
하얗게 얼어붙은 굽이치는 강들과 생선의 뼈처럼 산은 맥을 대지에 줄기줄기 그리고 있었고 그 끝에 장엄한 바다의 물결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바다의 파도들은 햇살에 계속 반사되어 반짝였다.
이 모든 광경은 한 평생 살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라 칭할 만했다. 허한 정상의 한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무명을 괴롭혔지만, 그는 내쉬는 입김이 얼어붙는 서리가 되어 떨어져 내리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경계를 바라보며 무명은 이 세계가 진정 넓음을 처참하게 실감했다.
무명의 존재는 이 드넓은 세상에 비해 초개와도 같았다. 무명이 정신없이 주변을 감상하면서 관찰에 여념이 없자 이소호칸은 품에서 대나무 잎으로 촘촘히 둘러싼 둥근 물체를 몇 개 꺼내 들었다.
이소호칸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대나무 잎을 들추어내니 벌겋게 익은 고기 경단이 큼지막하게 뭉쳐져 있었다. 그 구수한 냄새에 마진츠와 무명이 주위 경관을 보다 이소호칸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고기 경단이라니 구수하군요.”
마진츠가 이소호칸의 손에 탐스럽게 쥐어진 고기 경단을 보고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너와 함께 백모봉을 등반할 거라고 내가 넌지시 이야기를 해두니 네 어머니가 준비해 주더라. 네 아비가 배고프다 하면 주먹밥이 고작인데 아들이 돌아오니 먹는 밥의 대우가 확 달라지는구나.”
이소호칸은 빙그레 웃으며 경단을 마진츠에게 건넸다. 그는 품에서 하나 더 꺼낸 대나무 잎으로 감싸진 경단을 집어 들어 껍질을 까듯 잎을 들어냈다. 그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향기와 크기에 무명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자, 이건 무명 네 것이다. 많이 주리지 않았느냐?”
이소호칸이 무명에게도 경단을 넘겼다. 무명은 입을 헤벌쭉 벌리며 기뻐하면서 경단을 받아 들었다. 시린 겨울 날씨에도 경단은 식지 않고 대나무 잎을 통해 온기를 손바닥에 전달하며 하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었다.
무명은 당장에 한 움큼 베어 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소호칸이 먼저 먹기를 기다렸다. 마진츠도 자신의 아버지가 경단을 먹기를 기다리며 손에 넘겨진 경단을 입에 가져가지 않았다.
“자, 다들 먹자꾸나.”
이소호칸이 자신의 경단의 대나무 잎을 제거하고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소호칸이 경단을 입으로 털어 넣는 것을 보고 무명과 마진츠도 빠른 속도로 경단을 베어 물었다.
귀한 고기였다. 무명은 씹을 때마다 입안에 흘러나오는 달콤하면서 구수한 고기 육즙의 향연에 감동했다. 이전 홀로 산에서 생활할 때는 자신이 사냥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식단은 극히 단조로워졌다. 쌀밥, 주먹밥, 풀죽, 조금 특별하다 하면 삶은 버섯이 식단의 전부였다. 여기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희박했기에 무명은 하마터면 눈물을 쏟아부을 정도였다.
“각자 한 덩이 더 챙겨왔으니 아껴 먹지 말고 빨리 먹어치워라. 얼른 먹지 않으면 식어버릴 테니 말이다.”
이소호칸이 벌써 그 큰 경단 하나를 다 먹고 말했다. 그는 그러곤 경단 하나를 더 꺼내 들고 마찬가지로 큰 입으로 베어 물었다. 무명은 이소호칸의 말을 듣고 경단을 먹는 데 속도를 붙였다.
맛있어서 아껴 먹고 싶었지만 그러면 남은 경단이 미지근하게 식어버릴 게 분명했다. 어서 이 경단을 빨리 먹어치우고 다음 경단이 따뜻할 때 먹어두어야 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식게 놔두는 것은 할 수 없었다.
한순간에 이소호칸이 꺼내 든 경단이 셋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삼켜졌다. 셋은 부른 배를 움켜잡고 느긋하게 머리를 모아 누웠다.
“천국이 따로 없구나. 백모봉에서 고기를 씹으며 천하를 내려다보니 여기가 바로 극락이로세.”
이소호칸이 흥얼거리며 말했다. 마진츠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나태해 보였는지 미소 지었다. 평소의 강렬한 모습과는 다르게 느긋하고 늘어진 모습이었다.
“어르신, 제 눈에 보이는 저 바다는 동쪽의 끝을 말하는 것입니까?”
무명이 고개를 돌리며 이소호칸에게 물었다. 이소호칸은 이빨을 드러내며 무명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 바다를 처음 보는 것이렷다? 어떠냐? 처음 본 바다의 광경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장대합니다. 제 평생 그렇게 물이 많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바로 끝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은 저 끝없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까?”
무명의 궁금증이 터져 나오자 걷잡을 수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건, 나도 명확한 정답을 말해 줄 수 없구나.”
이소호칸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동쪽 끝, 서쪽의 끝, 남쪽의 끝에는 바다가 존재한다 들었다. 나도 동쪽과 남쪽 바다에는 가보았지만, 서쪽 바다는 가보지 못했지. 북쪽에는 천두산이라는 이 백모봉보다 수배는 높은 산이 있어 아무도 그 산 너머로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북쪽 바다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세상의 끝에 바다가 있는지, 바다의 끝에 세상이 있는 것인지는 나도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 이 세상은 그토록 넓고도 넓지. 아무도 저 바다를 넘어 그 끝으로 가본 이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말이지…….”
무명은 이소호칸 또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이 넓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무명은 이소호칸이라면 아무리 궁금하고 어려운 질문에도 현명한 대답을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명에게 막힘이 있던 부분은 이소호칸이 모두 풀어주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변함없는 사실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소호칸에게도 모르는 것은 있었다. 만물에 해박하고 현명하지만 그도 완벽하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무명은 이 세상의 넓고 넓음에 경탄과 감탄을 계속해서 금치 못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무궁무진함은 경외스러울 정도였다.
무명은 상체를 들어 올려 널찍한 정상을 둘러보았다. 백모봉 정상에는 나무 수십 그루와 야트막한 돌산들이 몇 개 있을 뿐 대체적으로 널찍했다. 그 크기는 이소호칸의 장원의 공터 정도였다.
나무들은 모두 소나무뿐이어서 겨울인데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햇빛을 받기 위해 솔잎을 잔뜩 세우고 있었다.
정상의 터 모양새는 둥글었지만 부분마다 모가 나고 각져있어 완벽하게 원의 형상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무명이 동쪽이 아닌 다른 쪽도 둘러보고 싶어 이소호칸에게 말했다.
“주변을 좀 둘러보고 와도 괜찮겠습니까?”
무명이 말하자 이소호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도 혼자 돌아다니는 건 조금 위험하지 싶다. 마진츠.”
이소호칸은 곁에서 눈을 감고 겨울바람과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아들을 불렀다. 마진츠는 막 달콤한 잠에 빠지려 했던 듯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아버지.”
“무명이 사방을 더 둘러보고 싶다 하니 네가 같이 가주는 것이 어떻겠냐? 혹 돌풍이라도 불어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같이 가는 것이 좋겠구나.”
이소호칸이 말하자 마진츠는 알겠다고 말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명도 그를 따라 몸을 들었다.
“그럼 잘 구경하고 오너라.”
이소호칸은 무명과 마진츠가 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부른 배가 진득하게 졸음을 몰아왔다. 아무리 그라 할지라도 백모봉 등반은 몸에 상당히 무리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소호칸은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눈을 붙였다.
마진츠는 무명을 데리고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다가 있는 쪽이 동쪽이고, 저 산맥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줄기가 바로 북쪽이다.”
마진츠가 두터운 검지를 들어 올리며 동쪽의 바다로부터 북쪽을 지적했다. 북쪽에는 산과 산맥이 얼기설기 복잡하게 꼬여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래로는 낮은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백모봉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산맥과 산맥 사이에는 어김없이 강줄기가 꼬불꼬불 똬리를 틀고 있었으며 강은 나뭇가지의 끝처럼 갈라지고 갈라져 얇게 스며졌다. 산에는 일전에 내렸던 눈들이 녹지 않아 하얗게 채색이 되어있었고,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저 산맥을 넘어서면 북쪽 지파가 나오지. 저 산맥까지는 동쪽 지파, 즉 아버지의 영역이다. 북쪽 지파 범족들은 털이 누래서 황모 지파라고 불리지.”
마진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서쪽이었다.
“이 너른 들판의 땅이 전부 동쪽 지파의 경작지이다.”
마진츠가 자랑스럽게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소호칸이 지내는 대족장 마을은 가장 동쪽에 떨어져 있는 마을일 뿐이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평지는 논과 촌락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었다.
일전 나국에서 자신이 지내던 마을에서 가장 넓은 경작지를 가진 자도 무명의 눈에 보이는 이 경작지 넓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와 같았다.
“아버지는 이 드넓은 대지가 가진 풍요로움을 가장 먼저 눈치채셨지. 아버지께서 대족장을 하기 전에는 이 모든 땅이 그냥 거친 황무지였다. 인간들은 그저 가축의 하나로 길러지고 있었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 땅이 지닌 발전 가능성을 인간들에게 찾으셨다. 인간들은 우리보다 나약하고 약한 종족이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일생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신 것이지. 우리는 사냥으로 먹을 것을 찾았지만 그래선 턱도 없지. 결국 먹고살려면 논과 밭을 경작해야 하지만 우리에겐 경작을 할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어. 그래서 아버지는 그 순간부터 인간의 쓰임새를 단지 먹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이 땅을 개간하는 데 쓰셨다. 지금 백모 지파가 다른 지파에 비해 월등하게 풍요롭고, 오히려 다른 지파에게 양식을 나눠 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너희 인간 덕분이지.”
마진츠에 말에 무명은 슬며시 동의하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넓이였다. 수많은 논과 밭이 땅을 조목조목 장식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너에게 범어를 가르치신다고 서문으로 적어 나에게 보낼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매우 새로웠다. 아버지는 너를 통해 인간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시지. 이 땅을 개간하면서 아버지의 눈은 바뀌었다. 지금까지 가축으로만 생각했던 인간들이 이 대지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그들을 가축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동반자라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네가 그 가운데 있어주길 바라신다. 지금까지는 인간들과의 관계가 매우 극단적이었지만 너를 통해 다른 지파의 인간들도 우리 동쪽 지파처럼 논을 경작하고, 밭을 일구어 우리가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신다. 무명, 네가 아직 어려 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얼마 지나면 너는 그 교두보의 위치에서 이 사태를 보게 될 것이야. 그땐 너의 자리가 참으로 중하다.”
마진츠가 무명의 어깨를 손으로 굳게 잡아 쥐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네가 이 모든 경작지를 네 손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다음 서문으로 말하셨다. 무명, 네가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나는 아버지의 소중한 선물인 네가 아버지 다음 세대의 족장이 될 나의 가장 중요한 일꾼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마진츠는 무명을 다독이며 말했다. 무명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진츠는 무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은 드넓은 구릉과 고원들이 물결치며 자리 잡고 있었다.
마진츠는 무명에게 이 남쪽의 대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이라 말했고 굳은 눈으로 무명을 보았다. 마진츠의 활기 있고 생기로운 눈동자 속에서 무명은 그의 야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소호칸은 이미 이룰 대로 이룬 자였고, 수에르의 경우는 자기 자리에 만족하고 있어 강박하지 않고 그 삶에 여유가 넘쳐흘렀다.
하지만 마진츠의 행동과 말에서는 여유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정점에 군림하겠다는 의지가 투기처럼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를 압도했다.
무명은 마진츠의 강력한 열망에 알게 모르게 몸을 슬며시 떨었다. 그것은 무언의 압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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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