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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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노[侵]
행렬은 남쪽으로 6일을 가다 반으로 갈라졌다. 아이들 또한 영문도 모른 채 행군하다 정확히 반이 나뉘어 또다시 남으로 이동했다.
등편은 계속 수레 안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널널하던 수레가 지금은 행군에서 도태된 아이들로 득실거렸다. 그들은 끙끙 앓으며 퍼져있었고 그중 세 명이 죽었다. 한 명은 남자아이였고 둘은 여자아이였다.
아마 이렇게 고된 행군을 버티지 못해 죽는 아이가 다른 수레에도 많을 거라고 등편은 생각했다.
개중에 정신을 차린 몇몇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걱정하며 한탄했지만 등편은 그런 넋두리를 들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추억을 이야기하고 옛날에 안주하며 한탄할 시간은 등편에겐 사치라 생각됐던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항상 깨어 있으면서 탈출할 방도를 모색했지만 6일이 지나자 그마저도 포기해 버렸다.
이미 이 정도로 멀리 와버렸으면 운 좋게 탈출한다 해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확률이 적었기 때문이다.
냉철한 판단을 한 등편은 그 이후부터는 언어를 익히는 데에만 전념했다. 가끔 가다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긴 했으나 아이들과 깊게 사귀지는 않고 명료하게 묻는 말에 짧게 대답만 했다.
4일을 더 남쪽으로 이동한 뒤 행렬은 또 나누어졌다. 이번에는 대열의 3분의 1이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3분의 1은 남쪽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동쪽으로 향했다.
등편이 탄 수레는 동쪽을 향해 삐걱대며 움직였다.
그쯤 되자 등편은 호인들의 말에 익숙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단어는 확실하게 뇌리에 새길 수 있었다.
대다수가 아이들을 다그칠 때 쓰는 단어와 어휘들이었는데 ‘그만 울어라.’, ‘잡아먹어 버린다.’, ‘인간.’, ‘시끄럽다.’, ‘식사해라.’, ‘휴식이다.’, ‘저쪽이다.’ 같은 간단간단한 어휘였다.
그 후 다시 동쪽으로 이동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휴식 시간에 단체로 용변을 보러 가던 중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용기 있는 행동은 단박에 꺾였다. 호인 한 명이 달려가 대여섯은 되는 아이들을 일각도 안 되는 사이에 다 잡아온 것이다.
아이들은 전부 팔이 빠져있거나 부러진 상태로 기절해서 업혀온 아이도 있었고, 아픔에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로 온 아이도 있었다.
호인들은 그 녀석들을 수레에 태우지도 않고 묶어서 행군 대열에 바로 합류시켰다.
등편은 내심 그들이 성공하길 바랐으나 꽤나 빠르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달음질도 호인들의 달음질만은 못 당해내고 잡혀왔기에 이미 결말을 예측하고 있었다.
등편은 휴식 시간에 용변을 보던 도중 우연찮게 다른 수레의 안쪽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 이미지는 뇌리에 틀어박혀 강렬하게 자신을 자극했다. 등편이 본 것은 쌓여있는 인간들의 몸뚱이 파편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수레의 천막 사이로 손과 발들이 토막 나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을 보고 인간의 사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훈제 처리된 고깃덩어리였다.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호인들이 식사로 뜯어먹던 것들이 바로 훈제 처리된 인간의 고기였던 것이다.
그날 등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못했다. 오히려 위액을 남김없이 게워내 몸이 망가졌다.
동물의 시체는 여럿 봐왔고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일도 많았다.
하지만 수도 없이 쌓인 사람의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일뿐더러 저렇게 흉물스럽게 처리되어 있는 모습은 충격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같은 수레의 아이들은 평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형편없는 식사를 잘만 먹어대던 등편이 급작스레 음식을 기피하고 쇠약한 모습을 보이자 의아해하며 걱정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말을 걸고 물어보아도 등편은 아무런 말도 하질 않으니 결국 포기하고 자기네끼리 모였다.
그날 밤 등편은 지금껏 해온 호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미 정신은 황폐해질 정도로 황폐해졌다. 호인들이 인간을 저리 먹을 것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삶의 의미 자체가 깨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등편은 그 엄청난 수의 시체 더미를 보고 자신의 부모님이 살아 계시리라는 작은 희망을 버렸다. 오히려 저 시체의 산에 부모님의 시신이 있으리라는 끔찍한 생각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공포심에 휩쓸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는 혼란스럽고 속은 계속해서 메스꺼움이 이어졌다.
하지만 등편은 생각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각을 거듭해야만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일단 등편은 현재의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대비책을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무의미하게 있는 시간은 죽음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라 느꼈다.
등편은 밤을 새우고서야 마음을 다잡고 진정할 수 있었다.
눈 밑이 퀭하고 눈두덩이 검게 물들었지만 어렵게 등편은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지급되는 밥을 등편은 꾸역꾸역 먹었다. 물도 게워낸 것 이상으로 마셨다.
배가 부르자 한결 나아진 등편은 얽히고설켜 있던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보다 약하다면 잡아먹는 것, 그것은 당연한 논리이고 이치였다.
등편 또한 산속에서 자신보다 약한 생물을 수없이 많이 잡아먹지 않았나.
그 생물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두려운 듯 눈에 눈물이 맺혀도 등편은 거리낌 없이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살과 피로 자신의 목을 축이고 배를 불리었다.
그런 의미에서 등편은 호인들이 인간에게 대하는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호인들은 호랑이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모습도 습성도 그들과 비슷했다.
호랑이와 비교해 본다면 호랑이는 산에 들어온 인간을 간간이 잡아먹는다. 그건 인간이 약해서였다.
반면 인간이 무리 지어 무기를 통해 강함을 과시할 때엔 오히려 호랑이가 인간에 의해 죽었다. 어느 쪽이나 약하면 죽기 마련인 것이다.
등편은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를 산을 통해 배웠기에 호인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호인들에겐 인간이 약한 존재이고, 약한 존재는 먹어도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끓어오르던 사체들에 대한 불쾌감도 조금은 사라졌다.
하지만 등편은 이해하지 못할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호인들을 보아하니 그들의 문화가 있고 그들끼리 대화도 가능한 수준의,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 뛰어난 생명체였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그들과 대화 나눌 생각을 못하는 것인가.
분명 호랑이와 인간은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생물이다. 인간이 뭐라 말하고 손짓해도 못 알아듣는 것이다.
하지만 호인은 훌륭히 알아들어줄 만한 재량이 있는 종족이었다. 충분한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이 호랑이와 호인의 차이임을 알아낸 등편은 호인이 인간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식량으로 취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지 약하기 때문에 잡아먹힐 수 있다는 이론은 등편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먹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이해를 위해 등편은 호인의 언어를 한 단어라도 더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그들의 언어를 배웠던 이유와 같이 죽더라도 왜 자신을 죽이고 먹어야 하는지 한마디라도 물어 따져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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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