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91
신필천하(神筆天下) 91화
뜻밖의 요구에 소담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이 난리를 피우고도 저런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끝내 검을 보고자 하는 그의 마음에 감복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사실 소담화의 검은 사부인 매지향이 직접 선물한 것으로, 천하의 보검이라 할 만했다. 어중이떠중이 검사들은 이런 진품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평생을 검술만 연마한 서운지로서는 그녀의 검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바로 알아본 것이다.
다만 서요평은 매사에 부정적이라 그 검의 가치조차도 부정한 것이고, 서운지는 지나치게 대단한 보검으로 추켜세우는 면이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담화는 조금은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턱을 치켜들고는 큰 은혜라도 베푸는 양 말했다.
“좋아요. 아주 잠깐이라면 보게 해드리죠. 하지만 허튼짓을 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서요평이 또 나섰다.
“에라이! 집어치워라! 그딴 고철 따위 보기 싫다!”
“형님, 그러지 말고 구경이나 좀 해봅시다.”
“흥! 보려면 너나 봐라!”
서운지는 씁쓸하게 웃으며 소담화에게 다가왔다.
“고맙소, 낭자.”
소담화는 검봉을 돌려서 서운지에게 건넸다.
소담화의 검을 잡은 서운지는 이리저리 휙휙 저어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예리한 소리가 매끄럽게 이어지니, 보는 사람들마다 그의 검술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서운지는 검을 들고 이것저것 검초를 펼쳐 보였다. 그 검초들이 모두 군더더기가 없고 변화가 막측하여 관전자들은 모두 탄성을 터뜨렸다.
까다로운 서요평도 동생의 검술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는지 거만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북동쪽에서 새하얀 그림자가 화살처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모두 깜짝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앗!”
백조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은 아리따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더니 곧이어 서운지를 향해 검날을 강하게 내려쳤다.
서운지 역시 어쩔 수 없이 소담화의 검을 들어 낯선 여인의 검을 막아냈다.
깡!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여인을 알아본 소담화가 반가움에 소리쳤다.
“사부님!”
그랬다.
그녀는 바로 소담화의 사부인 십지독녀 매지향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서요평이 화가 나서 달려들었다.
“웬 잡년이냐?”
그 말에 화가 난 매지향이 돌연 몸을 뒤채더니 서요평을 향해 검을 곧게 찔러 들어갔다. 이를 본 서운지가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그 뒤를 향했다.
“안 돼!”
서요평은 몸을 돌개바람처럼 회전시키며 매지향의 검을 쳐냈다. 그 순간 매지향은 오른쪽으로 휘릭 돌아서면서 검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그대로 뻗어 바짝 다가선 서운지의 어깨를 콱 움켜잡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웠던지라 서운지의 검이 닿기도 전에 매지향의 손이 그에게 먼저 닿은 것이다. 게다가 서운지는 매지향을 해칠 생각이 없었기에 그대로 그녀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악!”
서운지가 어깨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소담화의 검이 바닥으로 ‘챙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찰나 매지향이 발끝으로 검의 손잡이를 툭 찍어 차니, 검이 살아 있는 새라도 된 양 하늘로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어서 매지향이 회오리가 휘몰아치듯하늘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검을 낚아챘다.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난 데다 매지향의 행동 하나하나가 몹시 우아해 보였기에 관전자들은 저마다 넋이 빠질 지경이었다.
다만 서요평은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운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우야! 다쳤느냐?”
하지만 서운지는 고통이 심해 대답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매지향은 소담화의 검을 들고 바닥에 내려섰다. 그녀는 사상이괴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흥! 감히 내 제자를 괴롭히다니,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로구나!”
“이익! 누가 누굴 괴롭혔단 말이냐? 우리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서요평이 악을 쓰며 대꾸하자, 매지향이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 그럼 왜 내 제자의 검을 가져갔지?”
“이런 멍청한 년! 그 사부에 그 제자로군! 뭐가 어째?”
서요평은 울화통이 터져 가슴을 탕탕 쳤다.
보다 못한 진양이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매 선배님. 한데 지금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소 낭자가 검을 잠시 보여주겠다고 허락한 것입니다.”
“음? 또 너로군. 내가 네놈에게 일 년의 시간을 주었건만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구나. 그리 죽고 싶단 말이냐?”
“그건…….”
“됐다. 화야, 어찌 된 일이냐? 정말로 네가 검을 자의적으로 보여준 것이냐?”
소담화는 사실 사상이괴에게 좋은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 사상이괴를 사부가 나서서 혼뜨검을 내주니 내심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저들이 처음에 제 허락 없이 검에 손을 댄 건 사실이에요.”
“흥! 역시 그랬군!”
서요평이 기가 차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저, 저 요망한 년을 봤나?”
매지향은 콧방귀를 뀌더니 저벅저벅 걸어왔다.
“길게 말할 것 없다. 잘못을 먼저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상황이 뜻밖으로 흐르자 진양이 그 앞을 얼른 막아섰다. 지금 이대로라면 서운지가 검도 들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서요평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매지향을 막을 수 없으리라.
“매 선배님, 정말 오해가 있을 뿐입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시지요.”
“흥! 네놈이 그사이에 많이 컸구나! 이제는 네놈이 나를 막아선단 말이냐?”
한편 이 과정을 지켜보던 소담화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는 진양에게까지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사부가 진양을 상대로 살검을 펼칠 것이 다분했다.
그때 유설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양 소협의 말이 사실이에요. 소 낭자는 이분들에게 스스로 검을 보여준 것이에요.”
매지향은 유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일전에 노파로 변장을 해서 금룡표국을 찾아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설이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쯤엔 어느 정도 이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제자를 깎아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도 인정해야 하는 꼴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괴팍한 매지향은 절대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흥! 과정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 내 길을 가로막겠다면 네놈에게도 죽음뿐이다!”
“양 소협이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인데 어째서 그에게 검을 겨누나요? 정 못 믿겠다면 소 낭자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되지 않아요?”
유설이 다시 나서서 소리치자, 매지향은 별수 없이 소담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담화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양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마음에 부담을 지고 있었다.
한데 지금 유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편을 들고 나서자 묘한 질투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전 그런 적이 없어요. 저 작자가 제 검을 함부로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던 거예요.”
매지향이 코웃음을 치며 보란 듯이 진양과 유설을 바라보았다.
진양을 비롯한 일행은 어이가 없어 그저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지금껏 말없이 서 있던 흑표가 냉랭하게 말했다
“낯짝도 두껍군.”
그가 검을 뽑아 들며 유설의 앞을 막아섰다.
이렇게 되자 서요평 앞에는 진양이, 그 앞에는 유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표가 서 있는 형국이 되었다.
매지향은 쌀쌀하게 웃음을 흘리더니 순간 바닥을 박차고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빛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바로 야공유성 초식이었다.
그 일초가 어찌나 빠르고 교묘한지 앞을 막아선 흑표가 반수검을 펼치며 달려들었을 때는 이미 매지향이 그를 등지고 서 있었다.
순식간에 흑표를 지나치고 다가선 것이다.
진양은 얼른 유설의 앞을 돌아 나가며 매지향을 향해 수호필을 휘둘렀다. 그는 딱히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가만히 서 있다간 유설이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득불 공격에 나선 것이다.
진양의 수호필이 빛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쒜에엑!
까앙!
이어서 진양이 관성을 그대로 이용해서 수호필을 휘둘러 갔다.
벽력섬광도였다.
벽력섬광도의 특징 중 하나는 연환식으로 펼칠 때 상대가 숨 쉴 틈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도를 휘두를 때의 관성을 그대로 이용해서 약간의 방향만 틀어 몰아붙이는 방식인데, 그야말로 어느 한 지역에 벼락이 연이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쩡!
쩌르르릉! 쩡!
벽력섬광도가 펼쳐질 때마다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싸움이 워낙 격렬하게 펼쳐지니, 다른 사람들은 차마 싸움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진양의 도공은 쾌속하면서도 강맹 일변도였다. 반면 매지향의 검술은 유연하면서도 느긋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서로 상반되는 도공과 검공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어느 한쪽이 유리하거나 불리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지 시간이 갈수록 매지향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매지향의 손가락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매지향이 찔러오는 수호필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면으로 파고들었다.
“헛!”
어찌 보면 매지향이 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양은 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손끝에 조금이라도 스친다면 치명상을 면치 못하리라.
그녀가 검공을 주로 사용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매지향의 별호는 십지독녀였다. 독을 빼고 매지향의 무공을 논할 수는 없었다.
진양이 연이어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서자, 매지향은 기세를 몰아 숨 쉴 틈도 없이 쫓아갔다.
그러던 도중 옆에서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검을 느끼며 그녀가 훌쩍 물러났다.
어느새 나타난 흑표가 그녀의 팔을 노리고 검을 휘둘러 온 것이다. 그녀의 손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흑표의 검이 간발의 차이로 매지향의 소맷자락만 잘라내고 말았다.
매지향은 얼른 뒤로 물러나서는 숨을 골랐다.
그 바람에 진양도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진양이 진심으로 감탄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매 선배님이십니다. 후배,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흥! 네깟 녀석에게 그런 찬사를 받아서 뭐하겠느냐?”
매지향은 냉랭하게 반박했지만 사실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동안 안 본 사이에 진양의 무공이 놀라우리만치 성장한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진양의 무공은 소담화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데 그사이에 진양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저 녀석이 일 년 뒤에는 더 큰 물건이 되어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