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ster, don't marry that guy RAW novel - Chapter (215)
언니 그놈이랑 결혼하지 마요-214화 (에필로그 2화)(215/215)
에필로그 2화
* * *
나는 반나절 동안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
눈앞에 서류가 잔뜩 있었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으으, 으으으으.”
“가주님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서류를 처리하던 보좌관 유스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향했다.
“천지가 무너져도 그 서류엔 도장을 찍어 주셔야 합니다.”
“……너, 많이 변했다?”
“일 중독 상사의 밑에서 구르면 이렇게 됩니다.”
유스난이 세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답변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나를 응시했다.
“상사의 기분이 복잡해 보이면 무슨 일이냐, 괜찮냐, 이런 말을 해 주는 건 어때?”
“그런 일도 업무에 포함시키란 명을 내리신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만…….”
……애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왜 반년 사이에 로봇이 됐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유스난을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단정하던 미남의 얼굴에 금이 쩌적 갔다. 당황한 표정에 ‘가주님, 설마?’ 하는 시선이 떠올랐다.
나는 씩 웃었다.
“외출하고 올게.”
“자, 잠깐만요, 가, 가주님……!!”
“응. 고마워. 유능한 보좌관님.”
“아악, 가주님!”
나는 손을 흔드는 인사와 함께 눈을 감았다 떴다.
새로 잡히는 시야엔 방 밖 복도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용인들뿐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가장 중요한 처리는 잘해 주겠지. 내가 보좌 하나는 잘 뒀다니까.’
나는 방문 안에서 들리는 유스난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유스난이 저렇게 열심히인 이유는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가주가 되면서 억울하게 내몰렸던 그와 그의 형을 가문에서 완전히 구해 주고 새로운 성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유스난은 예시를 들자면 베로니카 언니 같은 부모를 둔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에 나쁜 부모가 참 많다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유스난을 따돌리며 느꼈던 작은 유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걷는 동안 리페의 말들이 떠올랐다.
“로이 님이요? 으음, 소문을 듣고…… 충격, 받으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무렇지 않으신 것 같기도 하고…….”
내 표정은 더욱 가라앉았다.
“아시잖아요, 그분은…… 가주님이 아니면 도통 알기 힘든 분인걸요.”
지난 반년은 ‘타이탄 블랙윈터’라는 이름이 오욕으로 얼룩지다 차차 잊혀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차차 잊혀진 이름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로이 블랙윈터’였다.
사실 가주의 셋째 아들 로이 블랙윈터를 아는 자는 거의 없었다.
가주가 되고 서류를 뒤져 볼수록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사실이었다.
로이는 정말로 언젠가 블랙윈터에 집어삼켜질 운명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가주가 된 뒤 ‘로이 블랙윈터’라는 이름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블랙윈터 가문에는 자유를 가진 ‘로이’라는 사람밖에 남지 않도록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이는 악마의 힘이 강해진 것은 물론 힘에 더욱 익숙해졌다.
그럴수록 외양에 더욱 티가 나곤 했는데, 어느 날 로이가 직접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지 않게 인식 장애 마법을 걸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
로이는 나 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실제로 스테판이나 베로니카, 라이난테나 루븐, 지금은 시녀장이 된 유리, 지금은 은퇴한 붉은 겨울 1대 수장 칼리두펜과 리페 정도를 제외하면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소문을 들었으니, 로이는 괜찮았을까?
당연히 사실이 아니란 건 알았겠지만.
사람의 기분은 모를 일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로이가 갑자기 경연으로 부인을 뽑는다?
“으으, 뭐야, 왜 가, 갑자기 춥지?”
“헉, 바닥이 얼었어, 조심해!”
“저, 저기 가주님……!”
[가디언이 주인의 감정 변화를 느낍니다. 기온 변화가 일어납니다!]‘와, 그건 그거대로 빡칠 것 같네. 으음…….’
나는 아이스의 말까지 듣고서야 주변을 보았다.
살얼음이 언 풍경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손을 휘젓자 얼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냥 그렇구나. 어처구니없네, 하고 넘길 일이 아니었어.’
마음이 조급할수록 발은 빨리, 더 빠르게 움직인다.
마침내 정원에 다다랐을 때.
가주의 정원, 나를 제외한 단 한 사람만 허락된 공간에는 이곳의 공동 주인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로이.”
내 부름에 남자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내가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발그레한 미소를 띤 예쁜 얼굴이었다.
“레이야.”
이곳에는 그 어디에도 없는 꽃이 심어져 있었다.
로이가 직접 가져온 세상에 단 한 곳에만 피어난다는 꽃.
라이슬란이 피어 있기에 이곳은 가주와 가주의 연인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 오면 이 세상에 단둘만 남은 기분이 되곤 했다.
게다가 이곳은 로이가 직접 관리했다.
로이가 악마이기 때문인지, 라이슬란 꽃은 악마의 땅과 인간의 땅 경계가 아님에도 너무나 잘 자랐다.
그렇게 우리의 비밀 공간을 가득 채운 화사한 공간 속,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화사한 꽃을 한 아름 든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 있으니까, 꼭 반년 전에 네게 고백받았던 날 같아.”
나는 작게 말했다.
라이슬란 꽃을 주며 네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던 날.
나는 내 남은 생을 너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있잖아, 로이. 나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사람들은 내게 이토록 어린 나이에 완벽한 가주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완벽해질수록 네 앞에서는 어린 날처럼 어떻게든 네 관심을 끌어야만 하는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나의 약한 모습을, 보잘것없는 모습을 네게만은 편안히 보일 수 있다는 편안함. 네가 있어서 나는 이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안락함을 느껴.
“수도에 돈 이상한 소문 들었어? 그 소문 말인데, 그거…….”
“응 들었어. 그리고…… 내가 수도에 더 많이 퍼트려 달라고 했어.”
“완전 헛소리, ……어?”
“붉은 겨울에 부탁했어. 최대한 퍼트릴 수 있을 만큼 아주 많이 퍼트려 달라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대체 왜?
아니, 그보다 리페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는데?
‘그보다 로이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이란 걸 했다고?’
로이가 나 외에 타인과 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때가 아니지만 조금 감격스럽기도 했다.
로이는 악마의 힘이 강해질수록 인간에게서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럴수록 스스로 고립되어 가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로이의 선택을 존중하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는 걸 하다니.
“지난 반년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 나는 그 사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로이.”
로이가 천천히 고백했다.
악마의 힘이 자신의 안에서 범람할수록 혹시나 내 부친이나 카일처럼 될까 봐 다스리고 또 다스리는 훈련을 했다고.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을 때까지.”
로이는 가끔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내게 약간이라도 피해를 입힌 사람이었단 것도.
평범한 사람은 약간의 해를 입힌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자신에게 주지하고, 또 규범을 새로 배우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를 도와준 것이 스테판과 베로니카였다고.
“이제는 준비가 된 것 같아서……. 마침 이상한 소문을 듣고서 요란스럽게 부풀려 달라고 했어.”
“그 소문이 지금 퍼진 그 소문 말하는 거지? 아니, 앞의 내용은 이해했는데, 소문은 대체 왜?”
“그래야…… 네가 얻은 남편이 더 널리 알려질 테니까.”
“내 남편이 여기서 왜 나와, 어?”
고개를 들자, 로이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날처럼 수줍고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나랑 결혼하자, 레이야. 내가 평생 잘할게.”
나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왜일까. 주책맞게도 눈이 시큰거린 건, 나도 로이도 우리가 더는 평범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일 거다.
“……싫어?”
대마법사가 되며 무수하게 수명이 늘어나 버린 나와 악마가 된 로이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바보야.”
결혼이라니, 너와 약속으로 엮이는 거구나.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당연히 좋지.”
나는 로이가 내미는 꽃을 받다가 로이의 손에 손을 잡혔다.
로이가 손을 뗐을 때, 내 눈동자 색을 닮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웃음이 마구 새어 나왔다.
“왜 웃어, 레이야?”
“너랑 같아. 너도 웃고 있잖아. 행복해서 웃는 거야.”
로이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나는 로이와 이마를 맞대다가 푸흐, 소리 내어 웃었다.
“즐거워 보여.”
“응. 그리고 한편으론 다행인 거 같아. 내게는 언니랑 결혼하지 마요! 하고 나서는 여동생이 없어서 말이야.”
내 농담에 로이가 어떤 소리인지 알아듣고는 활짝 웃었다.
이내 얼굴로 포근한 입술이 다가왔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꽃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봄을 맞이할 약속을 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하자고.
< 언니 그놈이랑 결혼하지 마요 에필로그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