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67)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67화(268/269)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67화
용골(龍骨, keel).
이 용어는 ‘용(龍, dragon)’과는 무관한, 선박의 하단에 선수부터 선미까지 지탱해 주는 부재(部材)를 뜻한다.
배의 중심축으로 척추이자 대들보의 역할을 하며, 용골의 크기가 곧 배의 크기를 결정한다.
배에서 다른 곳은 망가져도 어떻게든 수리를 해서 쓸 수 있지만, 이 용골만큼은 부러지게 된다면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없는 탓에 사실상 그 배의 수명은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배는 용골을 중심으로 차례차례 조립되는 만큼, 용골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배를 완전히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용골을 어떤 소재로 만드는지에 따라 선박의 방어력과 직결된다는 말씀이지요.]이만큼이나 용골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어 대는 그림자 드워프들의 요지는 간단했다.
“그래서 이 엘븐우드를 통째로 용골로 쓰고 싶다는 말이지?”
[예!]수호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드워프들의 눈빛은 이미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엘븐우드가 하나뿐이라면 서로 나눠 쓰겠지만, 수호가 엘븐우드를 더 구해 올 수 있다면 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아까운 원목을 굳이 아깝게 조각낼 이유가 없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용골의 크기가 곧 배의 크기!] [용골의 견고함이 곧 배의 견고함!] [이 귀한 재료를 나눠 쓰는 것보다, 하나를 통째로 용골로 사용한다면 진짜 어마어마한 배가 탄생하고 말 겁니다!]캬!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엘프들의 신목을 용골로 만든 배라니!
심지어 그 용골이 가지를 뻗어 주변 잡초들을 잡아먹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특별한 재주까지 갖추고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소재는 없었다.
그들의 간곡한(?) 요청을 들은 수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그래. 그럼 이 녀석은 일단 에실이 탈 배의 용골로 써.”
[크하하!] [크윽……!]수호의 결정에, 선택받은 드워프와 선택받지 못한 드워프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물론 악마들의 왕이 탈 배가 우선시되는 게 당연하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눈앞에서 당장 이 탐스러운 재료를 뺏겼다는 사실이 배가 아픈 건 당연했다.
[그럼 다음 순서는 저희 뗏목에 주실 수 있으십니까?!] [허튼소리입니다! 뗏목들 중에선 저희 배가 제일 큽니다! 이만한 용골을 감당하기 위해선, 다른 재료 또한 많이 보유하고 있을수록 제작이 빠릅니다!]“그 말도 맞네. 그럼 다음 순서는 제일 큰 뗏목 순서대로 가자.”
[……!]또 한 번 수호의 결정이 떨어지자, 그림자 드워프들은 안달이 났다.
[이, 이럴 시간이 없구나!] [이 게으른 악마들아! 서둘러라! 다음 엘븐우드가 오기 전까지 우리가 가장 많이 재료를 모아 놔야 한다!]수호가 기준을 세워 주자, 갑자기 뗏목들끼리 경쟁이 붙었다.
[배의 완성도에 따라, 이동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차이 난단 말이다!]이 시꺼먼 망망대해에서 세계수를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그 바늘(?)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큰 세계수라 해도, 사후의 바다가 고작 사막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아득하고 막막한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계수를 빨리 찾고 싶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잡초들을 누구보다 많이 모아야만 했다.
[악마들아! 목숨을 걸어라! 우리 배가 세계수를 제일 빨리 찾으면, 너네들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다른 악마들이 도착하기 전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잎사귀를 먹고 강해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드워프들의 설득력 강한 도발에 그동안 수동적으로 노만 젓고 있던 악마들에게도 경쟁심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세계수의 잎사귀를 남들보다 많이 먹을수록, 그만큼 더 강한 악마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서로서로 엇비슷하게 바다 위에 떠도는 잡초들을 주워 모으며 정처 없이 떠돌았다면.
지금부터는 먼저 용골을 받아서 배를 완성시키는 쪽이 압도적인 속도로 다른 악마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가, 가자!”
[그래! 그거다!] [서둘러라, 악마들아!]쏴아아아-!
……뭐, 어쨌거나 수호와 에실 입장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동기부여였다.
“그보다 에실. 이것 좀 봐 주겠어?”
“……?”
각자의 욕망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뗏목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호가 에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넸다.
수호가 직접 이렇게 사후의 바다에 방문한 이유는 고작 엘븐우드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주군, 이건…….”
에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수호가 건넨 물건은 다름 아닌 포레스의 눈에 박혀 있던 ‘외신석’이었다.
수호는 하이엘프들과 정령들을 소탕한 뒤, 이 외신석을 직접 만져 본 순간에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어쩐지 그동안 발견했던 별가루와 별조각들과는 기운이 묘하게 다르더라고.”
별가루.
악마들의 광혈독을 이용해 악마 팩토리에서 개발해 낸 마력 증폭제.
그리고 그 별가루를 고도로 정제시킨 보석, 별조각.
지금이야 외신석이라 부르고 있지만, 예전엔 그것들을 단순히 마력 증폭제로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마력의 증폭은 겨우 겉으로 보여지는 결과물일 뿐.
그 속을 까 보면, 원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증폭이 아니라 ‘수신’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신’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외신석의 진정한 목적이었습니다.]한때 외신교의 대사제였던 그리드.
사제였던 아이언.
그들은 이제 그림자 병사가 되어 수호의 편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수호는 그들이 알고 있던 외신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공유받은 상태였다.
[외신석은 일종의 매개체입니다.] [인간의 몸에 외우주의 마력을 주입시키기 위한 매개체죠. 마력을 증폭시킨 것이 아니라, 그냥 외부에서 마력을 주입받은 겁니다.] [그 막대한 마력을 감당 못하고, 그릇이 깨지면 죽는 겁니다.] [초기에 별가루를 과다 복용했던 인간들이 죽었던 이유도 바로 그 이유였지요.]물론 그리드와 아이언이라도 외신교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외신교라는 단체가 철저한 점조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계 각지에서 자연 발생하듯이 제각각 생겨났다.
전도나 포교의 개념이 아니라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도, 협력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바로 ‘외신석’ 덕분이었다.
[외신교는 외신석을 통해 외우주와 ‘교신’을 합니다.] [그러니 인간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특별한 경우라면?
수호의 물음에 그리드는 대답했다.
[외신석의 연구 자료를 공유하는 것. 그때뿐입니다.]외신석의 존재는 외신교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수단이었다.
별가루부터 시작한 연구가 별조각이 되고, 지금의 외신석이 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과 연구가 있어 왔던가.
그 수많은 연구의 결과, 그들이 만들어 낸 외신석의 효율과 순도는 나날이 높아져 갔다.
마력 증폭제로써는 증폭률이 갈수록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연구를 제일 처음에 주도했던 종족이 바로 악마들.
바야흐로 ‘악마 팩토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연구 개발한 자료들을 다른 지역의 외신교도들과 서로 긴밀히 주고받으며, 마침내 ‘수신’을 넘어선 ‘교신’까지 가능한 외신석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일방통행에서 쌍방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마침내 외신석의 연구가 정점을 찍고 만 것입니다.]일방통행에서 쌍방통행.
그것은 곧 혁명이었다.
[그 전까지의 외신교도들이 차원의 틈새를 통해 내려온 외신들의 명령을 수동적으로만 받을 수 있었다면, 그 후부턴 지구에서도 외우주 쪽으로 정보를 보내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걸 외신교에선 ‘기도’, 혹은 ‘제사’라 부릅니다.]외신과 소통하는 자들.
외신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로 완성된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섬기는 신이, 하필이면 이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찾아온 침략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을 그리드와 아이언을 통해 진즉 들어 알고 있었던 수호였기에, 하이엘프들의 눈에 박혀 있던 외신석이 그 전까지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이 외신석은…… 우리 악마들의 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역시.”
에실의 대답이 결정적이었다.
수호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진 순간.
“어쩐지 이상했어. 생존자들을 구조하면서, 하이엘프들의 마을을 샅샅이 뒤져 봤는데도 악마들의 흔적은 전혀 없었거든.”
심지어 숨겨져 있던 게이트를 세 군데나 발견해서, 그 안을 탈탈 털어 봤는데도 없었다.
그 일대를 다 뒤져 봤는데도 악마 팩토리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외신석은 있는데 악마들은 없다…….”
에실은 외신석을 쥐고 수호의 말을 곱씹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아무래도 이제 그들은, 우리 악마들의 피가 없어도 외신석을 만들 수 있게 됐나 봅니다.”
광혈독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연구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 같았다.
그것도 심지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순도 높은 결실을.
“악마의 피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겠지.”
수호는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에실의 말을 받았다.
“에실, 너는 빨리 세계수를 찾아. 그리고 최대한 빨리 강해져라.”
“예.”
에실은 차기 군주가 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수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은 에실이 아직도 군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였다.
에실은 탐식의 군주.
그렇게 된 이유가 세계수의 잎사귀를 먹었기 때문이라면, 여기서 잎사귀를 더 먹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럼 에실은 ‘지옥의 군세’를 펼쳐서 전 차원에 흩어져 있는 악마들을 전부 집결시킬 수도 있게 될 터.
그 권능 한 방이면, 외신교가 숨겨 둔 모든 악마 팩토리를 단숨에 자신의 앞에 집결시킬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 악마들과 엮여 있던 모든 외신교의 위치와 정보들을 한 방에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서로 파이팅하자고. 너는 여기서 세계수를 찾고, 나는 나대로 세계수에 붙어 있는 니드호그를 해결할 테니.”
수호는 그 말을 남기고 사후의 바다에서 떠났다.
니드호그를 해결하기.
그 머리가 여섯 개나 되는 거대한 뱀을 약하게 만들기 위한 첫발은 결국 실라드가 수호에게 내려 준 부탁과 같았다.
실라드의 후예, 아이스 엘프 시르카를 차기 군주로 만드십시오.
아직 시르카는 태초의 어둠을 담기에는 그릇이 많이 부족합니다.
시르카가 태초의 어둠을 계승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성장을 도와주십시오.
실라드의 퀘스트.
그것은 결국 수많은 정령과 엘븐우드들의 위협에서 시르카의 안전을 책임져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실라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키엑?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시나이까?]베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수악, 아니 천진난만한 베르의 표정을 보며 수호는 마주 웃었다.
아주 환하게.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하지만 깨닫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정말 안타깝게도, 수호는 아직 어리고 약해 빠진 군주의 후예가 성장하는 방법을 딱 한 가지밖에 배우지 못했다.
“굴러야지.”
[키엑?]“명색이 군주의 후예라면, 최소한 개미 애벌레보단 강해져야겠지?”
“……으응?”
저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르카는 매우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수호의 표정에서 차해인의 표정을 본 것이다.
시르카는 차해인을 어머니처럼 따르며 아주 좋아했지만, ‘저 표정’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수호의 저 표정은…… 차해인이 자신들을 훈련시킬 때 짓던 표정과 매우 닮아 있었으니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자.”
“어, 어딜?”
“이 땅에 있는 모든 엘븐우드를 찾아서.”
수호는 곧장 시르카를 끌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른 엘프들의 마을을 찾아 쳐들어갔다.
[‘스킬 : 파멸의 숨결’을 사용합니다.]파멸적인 인사와 함께.
* * *
한편 그 시각.
러시아.
까마득히 높은 빌딩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와인을 마시던 유리 오를로프의 앞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누군가 내 화분을 망가뜨렸다.]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도 오를로프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의 내용에 집중하고 눈을 치켜떴다.
“……뭐? 테라리움이 어떻게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