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61
“그래도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더 있다 가지 그러냐.”
“다음에 올 때는 오래 있을게요.”
“그려. 가는 길 조심하고.”
나는 할머니 댁에 내려온 지 하루 만에 다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들 안녕! 다음에 또 봐!
-인간들! 다음에는 캠프파이어도 준비해 달라구!
원래 계획대로라면 할머니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그 납치범 집단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내게 한가하게 방학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잡초는 뿌리를 뽑아야 더 이상 자라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제 할머니 옆에는 든든한 동생까지 있으니 걱정도 크게 되지는 않고 말이다.
“자…… 자…… 잘 가…….”
현식이는 언제 할머니와 그렇게 친해진 건지 할머니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래. 할머니 말씀 잘 들어라.”
나는 그런 현식이에게 다가가 그 녀석의 머리가 헝클어질 정도로 쓰다듬어 주었고, 이내 현식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갈게요.”
“그려. 조심히 가고.”
그렇게 나는 할머니 댁을 떠나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원래 예정과는 많이 바뀐 상황이지만 상황에 따라 계획을 변경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할머니 댁은 다음에 다시 와야겠…….
“혀…… 형아…… 잘 가…….”
“어? 그래…….”
치이익—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할머니 뒤에 숨어만 있던 현식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 녀석이 내게 형이라고 부르는 건 상상조차 해 본 적 없기에 나는 약간 벙 찐 얼굴로 그 녀석의 인사에 답했고 그렇게 서울행 기차는 출발했다.
“요즘 따라 묘한 기분을 자주 받네.”
…….
“나쁘진 않다.”
그렇게 나는 현식이와 할머니를 뒤로한 채 서울로 떠났다.
많은 사람이 물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루밖에 안 본 애, 거기다가 암살자인 애를 할머니랑 단둘이 두고 가도 되는 거냐?’
라고.
물론 당신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무섭도록 이성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나도 지금 상황을 100%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10년을 넘게 봐 와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듯이, 하루를 봐도 믿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내 동생 현식이는 하루를 봐도 믿을 수 있는 그런 착한 애였다.
무섭도록 이성적인 나를 그 정도로 감성적이게 만든 사람은 걔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미쳐 가는 건가. 예전의 이기적인 난 도대체 어디 간 거지.”
* * *
…….
“니아이스. 플레임.”
-응!
-인간!
“다 부숴 버려.”
나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은 채 곧바로 멜리자 길드의 비밀 기지로 향했다.
교장 선생님이 전해 주신 의도와는 정반대이긴 하지만.
이 지도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여기 근천데…….”
“기다렸습니다. 타시죠.”
“아이 씨. 깜짝이야.”
교장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간 곳은 한 우거진 숲속이었다.
도저히 건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나무만 가득한 숲속.
그런데 그 숲 입구에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예전에 봤던 정장 사내가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아마 현식이가 나를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기에 이러는 거겠지.
“네. 가죠.”
처음에는 마치 회유당한 것처럼 별 저항 없이 나를 데리러 온 부하들의 리무진에 올라탔다.
내가 올라타자 리무진은 숲속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거진 나무 사이의 비밀 도로로 향했고, 머지않아 숨겨진 비밀 기지 앞에 나를 내려 주었다.
‘진짜 숨겨져 있네.’
나는 리무진에서 내려 멜리자 길드의 비밀 기지 정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로비에서 나를 마중 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멜리자, 아니 이순자였다.
“후훗. 역시 생각이 있으신 분인 줄 알았답니다. 어서 오세요.”
멜리자는 특유의 동태 눈깔로 나를 바라보며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인사에 대한 답은 이미 내가 서울행 기차에 타고 있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도 아닌 내가 정해 둔 인사말.
그건 바로.
“니아이스. 플레임.”
…….
“다 부숴 버려.”
-응!
-오케이!
내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니아이스와 플레임은 내 품 안에서 튀어나와 물대포와 화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르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건물 안.
니아이스와 플레임의 앙증맞은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물줄기와 화염은 순식간에 커다란 건물 내부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고, 멜리자는 깜짝 놀라며 어디론가 다급히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K- 알파 팀! K – 알파 팀!”
멜리자는 물줄기와 화염을 피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다급히 무전을 보냈고,
그녀의 다급한 무전이 있자 건물 구석에서 특수 요원 차림을 한 사내 스무 명 남짓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거…… 총인가.’
철컥.
K – 알파 팀으로 불리는 특수 요원들은 순식간에 멜리자의 앞에 정렬한 뒤 일제히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지이잉–
그러자 순식간에 내 몸을 밝히기 시작한 수십 개의 빨간 레이저 포인트들.
이것들은 당장이라도 내 몸에 수십 개의 총알이 박힐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
“그래. 나도 총 맞으면 죽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눈을 매섭게 뜨며 멜리자를 노려볼 뿐이었고, 멜리자는 그런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내 눈을 피했다.
그리고 잠시 고요한 적막이 흐르더니 이내 멜리자의 신호와 함께 마치 전쟁을 연상시키는 총알 세례가 나를 향해 공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K- 알파 팀. 사살해.”
철컥.
멜리자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요원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총알을 쏟아 냈다.
두두두두두!
수많은 요원의 총구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수십, 수백 개의 총알들.
그러나 나는 총알을 피하거나 어디론가 도망치지 않았다.
“니아이스.”
그저 매서운 눈빛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릴 뿐.
일반적인 총알 따위는 수라장을 겪고 온 현재의 내겐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날려 버려.”
-응!
촤아아아아아!
니아이스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날아오는 총알을 향해 물대포를 뿜어냈다.
툭…… 투두둑…….
니아이스의 거친 물대포는 내게 날아오던 총알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고, 총알들은 엄청난 수압(水壓)에 휩쓸린 채 그대로 바닥에 일제히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순식간에 부서진 대리석 바닥 위에는 널브러진 총알들이 가득했고 멜리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총알들을 바라보며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발포……!”
“플레임.”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들의 총알은 내 계획보다 두 발자국은 늦었으니까.
“태워 버려.”
-알았어!
순식간에 총알을 모두 쓸어버린 니아이스의 물대포가 잦아들자 곧바로 플레임의 거친 화염이 요원들을 향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
“으아아악!”
플레임의 손에서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색의 화염.
이 거친 화염은 미친 듯이 타오르며 순식간에 요원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그리고 잠시 뒤 플레임의 화염이 잦아들 때쯤에 두 발로 서 있는 요원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총 같은 하급 무기로는 내게 생채기 하나 입힐 수 없었다.
“플레임. 죽이진 않았지?”
-그럼! 인간이 안 죽을 정도로만 하라고 그랬잖아!
“잘했어.”
그렇게 요원들이 모두 군고구마 신세가 되자 홀로 남은 멜리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멜리자에게 느린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터벅. 터벅.
“허…… 헌터! 그래! 지금 날 살리는 헌터에겐 보너스 200%! 아니 300%! 승진도 시켜 줄게! 아무나 나와 봐!”
멜리자는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며 다급히 건물 내부에 있는 자신의 길드 소속 헌터들을 불렀지만, 그녀의 부름에 응하는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과 돈을 맞바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개 헌터와 정령사와의 전투?
그냥 죽으라는 거지.
터벅.
터벅.
결국, 길드 헌터들은 아무도 멜리자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내 느린 발걸음은 멜리자 앞에 멈춰 섰다.
“저…… 저…… 그게…….”
내 발걸음이 멜리자 앞에 멈춰 서자 멜리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치 현식이처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전에 나를 보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테이저건을 쏘는 미친년 같은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더 이상 그녀에게선 대형 길드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살쾡이는 되는 줄 알았는데. 새끼 고양이만도 못하네.”
내가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진 멜리자를 내려다보던 그때 갑자기 멜리자는 허둥지둥 무릎을 꿇더니 내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줘. 앞으로 절대 미행 안 붙일게. 그냥 쥐 죽은 듯이 살게. 진짜야. 믿어 줘…….”
대형 길드 장의 위엄 따위는 순식간에 공중분해된 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멜리자.
나는 지금 그녀의 행동을 보며 나지막이 생각했다.
‘아류 장사꾼.’
이라고.
야망은 크지만, 배포는 작고, 당장 눈앞의 상황에 자신의 자존심까지 쉽게 내려놓는 그저 아류 장사꾼.
멜리자.
궁지에 처한 그녀는 더 이상 길드 장이 아닌 그저 아류 장사꾼에 불과했다.
“어이.”
사실 멜리자를 쓰러트린 뒤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걸 물으려고 했었다.
현식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나를 미행한 이유가 뭔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그러나 지금 무릎을 꿇은 멜리자는 내가 생각했던 질문들을 모두 부질없게 만들 정도로 나약했다.
그냥 꺼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만 들 정도였으니까.
열심히 아이템을 모으고 레벨을 올려 전에 나에게 한 방을 먹였던 몬스터와 다시 대면했는데 그 몬스터가 공격 한 방에 무릎을 꿇어 버린 허무한 기분.
이것이 현재 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멜리자 앞에 쭈그려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춘 뒤 차가운 목소리로 마지막 한마디를 뱉었다.
“앞으로 내 눈에 띄면 그땐 죽어. 멜리자. 아니 이순자.”
그걸로 멜리자와의 악연은 막을 내렸다.
혹시 멜리자가 지금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나와 마주친 그녀의 눈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공포에 가득 찬 눈빛.
그녀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가자. 얘들아.”
-응! 호야!
-인간! 가자!
나는 그렇게 처음 나를 위협했던 존재와의 악연을 마무리 지은 뒤 한순간에 폐허가 된 건물을 빠져나왔다.
만약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제삼자가 지금 상황을 봤다면 나를 그저 선량한 길드를 박살 낸 나쁜 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이번 일은 그냥 절대 흐지부지하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암살자가 할머니 댁까지 따라왔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
그리고 전에 말했듯이 잡초는 뿌리까지 뽑아야 더 이상 자라지 않으니까.
“다친 곳은 없지.”
-응! 니아이스는 멀쩡해 호야!
-나도 멀쩡해 인간!
“좋아.”
나는 순식간에 폐허가 된 멜리자 길드의 비밀 기지에서 빠져나와 울창한 숲으로 걸어 나왔다.
안에서 그 난리가 났음에도 울창한 숲은 여전히 평화로운 향기를 풍겼고,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 커다란 나무에 기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뚜르르–
“멜리자 그 인간은 이제 끝이라고 말씀은 드려야겠지. 뭐 혼자 나섰다고 혼은 나겠지만 그래도 말은 해 두는 게…….”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맞다…….”
내가 전화를 건 대상은 담임선생님이었다.
잠시 잊었다.
나도 모르는 새 습관이 되어 버린 건가.
이제 멜리자를 쓰러트려도 왜 혼자 위험하게 그랬냐고 호통치실 담임선생님도 계속 이러면 심장이 아프다며 나를 토닥이실 교장 선생님도 없지.
…….
잠시 잊었네.
그렇게 나는 약간 씁쓸해진 표정과 함께 휴대폰을 닫고 정령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