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62
171. 버블(1)
유서준의 예상대로 중국시장의 거품은 점점 심해졌다.
불과 2년 만에 사실상 종합 주가지수가 5배나 폭등했다는 것은 과다한 상승이라 보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이런 상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적당히 이즈음에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도 애초 그의 예상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은 것이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하나의 납치까지 시도했던 박강수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최고점에서 KD 닷컴을 해솔 증권으로 넘겨 처절한 쓴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홍콩에서 넘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그의 예상대로 박강수는 중국 투자가 어려워지자 권대만과 합작하여 HS 닷컴을 설립했다. 중국시장이 폭등세를 보이면 참지 못하고 뛰어들 것으로 예상했었던 그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그다음 흐름도 역시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6월의 조정 이후 중국시장은 다시 상승 시동을 걸었다. 8월까지 상해지수는 끊임없이 올랐다.
그가 예상한 중요한 문제는 지수의 상승이 아닌 두 회사의 상관관계였다.
주식시장이 오를수록 KD 닷컴은 계속 상승을 이어갔다. 반면 후발주자인 HS 닷컴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일단 인지도가 낮은 데다 유사한 인터넷 기업이 이제는 너무 많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가가 제자리를 맴도는 HS 닷컴을 소유한 박강수는 분명히 애를 태울 것이다. 이때 KD 닷컴의 주식을 던져주면 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면 주가가 일 년 반 동안 백배 이상 폭등한 주식을 절대 인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폭발적인 상승이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킬 것이다. 그게 바로 거품이니까.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면 아직 버블이 아니다.
서재에서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뒤적이고 있었다.
오늘 이후의 코스피 주가를 상세히 살폈다.
2007년 8월 말의 종합주가지수는 1873.24. 전년 대비 +31%나 오른 상태였다. 연간 단위로 꽤 많이 오른 해였고 더 중요한 점은 대망의 주가지수 2000 고지에 서서히 다가섰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8월의 조정으로 한숨 돌렸지만, 다시 상승을 시작하면 금방 2000이었다.
현재의 추세로 보아 2000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실제 다이어리에 나타난 수치도 10월에 2000 고지를 돌파한다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과거에도 1000 고지를 돌파한 후 곧바로 하락으로 돌아선 적이 많았다. 2000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2000이나 1950이나 그 숫자가 그 숫자이지만 심리적인 부분에서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역시나 다이어리에 나타난 지수 경향도 비슷했다. 10월에 2000을 넘기고 11월 첫날 2085.33을 찍는다. 그다음부터 곧바로 수직 하락이었다.
현재 유서준이 고민하는 부분은 이 하락이 2000을 돌파한 심리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국내 경기의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세계경기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 해석에 따라 중국 지수에 대한 예측이 달라질 것이다.
11월부터 하락한 주가지수는 내년 1월까지 계속 하락한다. 이후 잠시 행보를 보이다가 2008년 10월 들면서 폭락했다. 최저점인 892.16까지. 고점 대비 무려 -65%의 하락이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런 하락을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민하던 유서준은 이 하락이 국내 문제가 원인일 확률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금 현재의 국내 경기는 모두가 최악이라고 말할 만큼 나쁘다. 항상 경기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지만 지금 현재는 경기의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무슨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단지 대기업이 투자를 멈추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말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뽑힌다. 유서준은 그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임을 다이어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현재 분열된 여당을 보면, 또 여당의 인기를 보면 정권이 바뀔 것은 사실상 명확했다. 내년은 새 대통령이 뽑힌 첫해다. 아직 권력이 살아있을 시기라 국내에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사실상 낮다.
외환위기도 대통령의 임기 말에 발생했다. 권력 누수가 심각하여 레임덕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동안 곪은 문제가 터지는 법이니까.
이런 사실을 기초로 판단했을 때 2008년의 하락이 국내 문제일 확률은 사실상 없었다.
국외 문제라면 중국 역시 동일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늦어도 내년 여름 전까지는 중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11월부터의 하락이 너무 가팔랐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지만 이런 식의 하락이 발생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서준은 국내도 중국도 모두 10월 내로 정리할 것을 결심했다.
그의 예상으로는 10월 말이나 11월이 중국에서도 최고점이 될 확률이 적어도 절반을 넘었다. 만일 최고점이 아니더라도 위험은 낮추는 것이 유리하다.
일단 내일 당장 SJ 증권과 투신에 연락하여 앞으로 한 달 이내 보유한 펀드의 주식을 대부분 정리하라고 지시할 생각이었다.
권대만에게는 KD 인터내셔널의 모든 지분을 정리할 예정이니 적당한 투자자를 물색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유서준이 다이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서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그의 집 서재는 그만의 공간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고민에 몰두할 때는 서하나도 방해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서하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편한 잠옷 차림이었다.
“뭐해?”
“다이어리 보고 있어.”
서하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유서준이 다이어리를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미래를 미리 알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게 의존하다 보면 훗날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걱정거리 있어?”
“아니, 박강수를 해치우려고.”
서하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에게 예전에 있었던 납치 사건의 후유증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가 확인하려 들었다.
유서준은 간략하게 대답했다.
“중국에 투자한 우리 주식을 떠넘길 거야.”
“중국의 버블이 터질 때가 되었나 보지?”
대략적인 계획을 이미 알고 있던 그녀가 물었다.
“내 생각에는. 국내 주식도 앞으로 내릴 거니까 지금부터는 보수적인 투자로 전환하라고 해야겠어.”
최근 몇 년간 주가의 점진적인 상승으로 모두가 하락을 잊고 있었다.
서하나도 유서준의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하락에 대한 대비를 떠올렸다.
“박강수 일이라니까 더는 묻지 않겠지만…….”
“않겠지만?”
“서준 씨도 의외로 뒤끝 많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인내심도 대단하고. 언뜻 보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 같으면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억하는 것 보면.”
“하하.”
유서준은 그녀의 말에 웃었다. 예전에 그녀가 가도건설이나 지점장을 상대했을 때 그가 뒤끝 많다고 놀렸던 기억이 나서였다.
생각해보면 박강수와의 악연은 오래 계속되었지만 그가 먼저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전부 박강수가 걸어온 싸움에 대응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은 다르다. 지난 서하나의 납치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지만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그가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치명적인 공격을. 이왕 공격하겠다면 다리를 물어뜯지 말고 목을 물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치명상을 입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생각이었다.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책꽂이에 꽂아 넣었다. 세 권 중 마지막 다이어리다. 어느새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의 눈에 다이어리 위에 꽂힌 서하나의 화보집이 들어왔다.
그는 화보집 2권을 빼냈다.
서하나가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한마디 했다.
“또 그 화보집 봐?”
“내 애인이 여기에 있거든.”
“나도 좀 봐.”
서하나가 어깨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유서준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만졌다.
“누군지 몰라도 그 애인 참 예쁘네.”
“그렇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서하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화보집을 넘기면서 말했다.
“저 때는 참 순진했어. 사진작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포즈를 다 취했으니까. 지금이라면 못할 것 같아.”
“흐흐, 내가 그걸 노렸으니까.”
서하나가 유서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고 보면 자기는 참 음흉한 것 같아.”
“나 음흉한 것 이제 알았어?”
유서준이 농담조로 말을 받았다.
서하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말했다.
“이상하게 자기 앞에서는 모든 경계심이 다 사라지는 것 있지?”
“부부니까, 그것도 오래된 사이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아니, 처음 볼 때부터 그랬어.”
서하나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도 그래. 그렇게 단둘이서 가면 한 방에서 같이 잘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따라갔단 말이야. 다 큰 처녀가.”
“그때는 이미 결혼할 거로 생각한 상태였잖아?”
“그래도 요즘이랑 다르잖아? 그 시대는 몸을 허락하면 무조건 결혼한다는 게 전제였던 시대니까.”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어찌 보면 그녀와 그는 천생연분인지도 모른다.
“그 전의 일도 그래. 술 마시고 사실상 정신을 잃었던. 자기를 뭘 믿고 그랬는지. 그때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대학 때는 그렇게 따르는 남자가 많았어도 그들에게 틈 한번 보이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렇게 남자랑 단둘이 술을 마신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참, 이상해.”
서하나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곧바로 그의 뺨에 입술을 살짝 부딪쳤다.
“어쨌든 난 자기를 참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
유서준은 행복했다. 그녀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그가 생각할 때 그녀는 그에게 항상 너무 과분한 여자였다.
유서준은 화보집 페이지를 넘겼다.
많은 부분을 드러낸 서하나가 수줍게 포즈를 잡고 있었다.
유서준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제안했다.
“그럼 다음에 예술품 한 번 더 만들게 해줘.”
“비너스?”
서하나가 안색을 붉혔다.
“이것저것. 그중에서도 앵그르의 샘을 만들고 싶어.”
유서준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앵그르의 샘은 어깨 위로 항아리를 든 소녀가 물을 쏟고 있는 명화다. 정면을 향한 나체 여성의 몸에서 풍기는 조화와 균형미가 일품이었다.
서하나는 자신이 옷을 벗고 묘하게 다리를 붙인 채 항아리를 들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건 보티첼리의 비너스보다 더 야했다.
서하나가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으며 키득거렸다.
“거봐, 음흉하다니까. 그러다 정말 예술가 되는 것 아냐? 킥킥.”
“이번엔 다양하게 만들어 볼 생각이야. 들어줄 거지?”
“흐음, 하는 것 봐서. 나 이제 예전과 달라서 몸매 그리 안 예쁜데. 헤헤.”
유서준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에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잡혔다.
일단 박강수를 처리한 선물부터 그녀에게 안겨줄 생각이었다.
박강수를 파산시킨 다음 여유 있게 그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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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일]박강수는 권대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요즘 HS 닷컴의 주가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죠?”
전화기로부터 들려오는 권대만의 음성이 그의 신경을 묘하게 긁었다.
상해지수의 폭등에도 불구하고 HS 닷컴의 주식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손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 나가지도 못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생 기업의 한계였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그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박강수가 뭐라고 한소리 하려는 순간 권대만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SJ 증권에서 KD 닷컴의 주식을 모두 처분하겠다는군요. 혹시 매입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조건은 현재 시가 그대로입니다.”
박강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SJ가 중국에서 빠져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