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2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221화 (완결)(221/221)
221. 평범한 일상 (15)
221. 평범한 일상 (15)
“자랑스러운 한국과고 학생분들,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국과고 교장 이철규가 연설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나는 가장 앞자리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철규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간단했다.
한국 과학 기술의 미래, 노벨상의 의의, 그리고 그걸 받게 된 나의 업적.
그는 내가 한국과고라는 출신을 은근히 강조하며, “너희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라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비록 앞자리에 앉아있었기에 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등 뒤에서 느껴지는 열렬한 시선들만으로도 얼마나 나에대해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분이···”
“우리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난다던데.”
“진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다니. 아직도 안믿겨.”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이따금씩 들렸지만, 딱히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철규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나에 대한 평가도 한마디씩 덧붙여졌다.
“김만덕 박사님은 한국과고 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으며, 특히 R&E에서 고등학생 수준을 뛰어넘은 결과물로 여러 기업의 관심을 받게되었습니다.”
“삼성 이야기하는 거겠지? 안그래도 이번에 삼성에서 한국과고 장학생을 따로 지원한다잖아.”
“응. 과학 인재 양성에 더 앞장서겠다고 하던데. 덕분에 우리가 이득본 거지.”
최성훈이 있는 미래기술육성사업부는 장학부서를 따로 개설했다. 원래는 기업 내 장학을 담당하는 전문 부서가 따로 있지만, 최성훈이 만든 부서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정말 말도 안되는 연구를 해보는 사람들에게 돈을 투자하려고.’
‘그럼 너무 손해 아니겠어요?’
‘손해인지 이익인지는 나중에 봐야 알겠지.’
하물며 고등학생들이 만든 약이 전세계에 팔리고 있는데, 그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최성훈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그 결과로 다른 누군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이번에 장학재단을 좀 만들어볼까?’
안그래도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돈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기에···이 돈을 기왕 쓴다면 좋은 쪽으로 쓰고 싶었다.
다른 기관이나 재단에 기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장학 재단을 만드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테니까. 물론 연구소 사람들이 안다면 ‘소장님. 무슨 분신술이라도 하실 생각이세요?’ 라며 뜯어말리겠지만 말이다.
일단 머릿속에 장학생에 대한 생각을 한쪽에 밀어둔 채, 나는 이철규의 연설에 집중했다. 이제 곧있으면 그의 연설이 끝날 때가 되었으니까.
“자랑스러운 한국인, 자랑스러운 한국과고 졸업생, 자랑스러운 한국 최초의 과학 노벨상 수상자인 김만덕 박사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철규의 장엄한 소개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단상위로 올라갔다.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던가.’
오래 전, 한국과고 강당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그 기세에 눌렸었다.
시골 작은 학교의 강당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다랬고, 그 안에 빼곡히 모인 학생 수에 압도되었기에.
하지만 지금, 나는 이곳마저도 작게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김만덕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운을 떼자, 박수를 치던 학생들이 한껏 설레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다들 내 말을 토씨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노트를 꺼내놓고 받아적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처음 이철규로부터 연설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거절했었다.
‘딱히 이야기할 게 없는걸요.’
‘거기서 어떤 말을 해도 모두가 받아들여줄겁니다. 하물며 노벨상 수상자 아닙니까?’
‘어떤 말이라도···’
여기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 아니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말들이 있을거다. 이렇게 하다가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든가,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든가, 적어도 여러분은 이렇게 사십시오–라며 격려를 하거나.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들여지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새파랗게 어린 내가 여기서 인생을 운운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다. 물론 그렇게 마냥 어린 건 아니긴 하다만.
“여러분.”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
“공부한다고 밥 거르지 마시고요. 뇌에 포도당은 필수거든요.”
학생들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연달아 떴다. 다들 ‘이게···노벨상 수상자 연설?’ 이라고 생각하는게 역력했다.
하지만 원래 진리는 간단한 법이다.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장난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챈 학생들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한국에서 천재들만 모여놨다는 한국과고.
이곳에 오기 위해 이녀석들은 언제부터 공부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참으며 이곳에 왔을까.
그 과정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뎌지고 깎여나갔을까.
“제게 학교가 전쟁터였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나는 뭐든지 혼자 해내려고 애썼다.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하나같이 밀어냈고, 상처주며 쫓아냈다.
모두가 적이었으니까.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하는, 말그대로 살얼음판인 전쟁터.
그렇기에 외로웠고, 괴로웠다.
그때의 시절을 떠올린 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쟁터로 만들었던 건 저였습니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애들마저도 다 뿌리쳤었거든요.”
저 멀리 쌍둥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연설을 들을 겸 모처럼 모교를 방문했다는 둘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덕킹이 누굴 뿌리친 적이 있었나…?”
“중학교때 이야기하는 거 아닐까?”
쌍둥이들이 서로 속닥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게 변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총을 쏠 필요가 없었다.
전쟁터가 없어졌다.
같이 의견을 공유하고, 받아들여지고, 또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내 세상을 전부 뒤바꿔버릴 정도로 말이다.
학생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다들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 생활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적군으로 가득한 전쟁터가 아니라요.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생각에 잠겨있던 학생들이 뒤늦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려온 내 어깨를 잡은 채 박민철이 큰 목소리로 웃었다.
“얌마! 기껏 연설하라고 올려보내놨더니, 무슨 유치원생들한테나 할 말을 하고 앉았냐! 친구들이랑 잘 지내라니, 줄기세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잖아!”
“어차피 여기서 줄기세포 이야기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니, 지금 한국과고 학생들 무시하는거냐? 얘네 네가 쓴 논문도 다 읽었을 걸?”
나는 그 말에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그런거에요. 어차피 다 알고 있을텐데 굳이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지! 그래도 직접 듣는거랑 글로 읽는거랑 얼마나 다른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됐어요. 그리고 노벨상보다 아까 말들이 훨씬 더 중요해요.”
“진짜 너란 놈은···별종이다, 별종이야.”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박민철.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연신 웃고 있었다.
“자자, 그럼 동상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행사를 진행하는 목소리에 나는 동상 앞에 섰다. 이철규가 내 옆에 서서 나만 들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연설이 아주 인상깊더군요. 학생들 모두가 울겠습니다.”
“어떤 말이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랬긴 하지만···.”
이철규의 억울한 표정을 나는 애써 무시한 채, 동상 위에 덮여진 천을 집어올렸다. 그러자 그 아래로 나타난 동상은···
“…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철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철규는 시선을 피했다.
“하하핰, 저, 저게 뭐야!”
“만덕킹이 아저씨가 됐어···”
저 멀리 내 연설을 응원하러 온 쌍둥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폭소했다. 그 웃음이 시작이 되어 학생들 사이에도 웃음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진짜 같은 사람 맞아?”
“아니 왜 동상 혼자만 세월을 직격으로 맞았냐고.”
“이래서 잘 먹고 잘 웃으라고 했던거구나···”
한눈에 봐도 지금보다 30년은 더 늙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주 낮게,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교장 선생님. 분명 저랑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셨다고···하지 않으셨나요.”
“큼큼, 아무래도 이런 동상은 좀 권위가 있어야—”
“그럼 지금 제 얼굴은 아무런 권위가 없다는 거군요···”
내가 비어버린 동공으로 이철규를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나는 30년 후의 내 모습으로 보이는 동상을 빤히 바라봤다.
얼굴 군데 군데에 주름이 가득하고 지금과는 조금 달라보이는 모습. 하지만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싫지는 않네요.”
만약 30년 후에도 내가 연구를 하고 있다면, 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아니, 30년이 아닌 40년, 50년이 지나도 계속 연구하고 있을테니까.
분명 그때의 나도 이렇게 웃고 있길.
“자, 그럼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모여주세요~”
사진사의 경쾌한 말과 함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다 모인 탓에 동상을 뒤로 빼곡하게 섰다.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소리를 내며 찍힌 사진 한 장. 그 사진과 함께 한국과학고등학교에서의 연설은 끝이 났다.
*
“저, 저기···! 팬이에요!”
“예?”
연설이 끝나고 모든 일정이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도요! 연설 매일 돌려보고 있어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저는 김만덕 연구원님이 쓰신 논문 다 프린트해서 아침마다 읽어요!”
“아, 아니 그럴 시간에 그냥 다른 공부를—”
학생들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지만, 뒤쪽에도 학생들이 서있는 건 매 한가지였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인터뷰에 나온 사진을 오려 코팅까지 해왔다.
“싸인해주세요!”
그리고 내 사진 위에 싸인을 해야하는 심경이란···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수치였다.
“야. 이런 거 해줄 때는 당당하게 해야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맞아, 만덕킹. 지금을 즐기라니까? 나중에 나한테 와서 머리 조아리며 부탁하기 전까지 누리라고!”
이인성은 박성민과의 대화에 완전히 걸려들었는지 자기공명영상, 즉 MRI 연구 개발하는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그리고 언젠가, 기필코 내 머리를 숙이게 만들겠다며 킬킬 웃었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내게 건네진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정직하게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김만덕. 세글자를.
“싸인이···”
“제가 따로 싸인이라할 게 없어서···”
머쓱한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봤다. 양 손으로 사진을 받아든 학생의 두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멋져···”
“예?”
“김만덕이란 이름 진짜 멋있는거 같아요.”
“에.”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내 이름을 말했을 때, 백이면 백 다들 웃거나, 웃음을 참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눈 앞의 여학생은 진심으로 내 이름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덕 선배님.”
“어···서, 선배요?”
“한국과고 졸업생이시니까 선배 아닌가요?”
사진을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듯이 꼭 끌어안은 여학생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도 생물 전공이에요!”
“오···?”
“저는 암을 치료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으나, 옆에 있던 이인성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암을 치료하는거면 과학자가 아니라 의사가 되야하는 거 아니야?”
“과학자의 범위는 넓으니까요. 뭐가 되든 간에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드는 게 제 목표에요.”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이인영이 툭 내뱉었다.
“근데 암은 종류가 많잖아. 치료제도 시중에 어느정도 나와있는 편이고.”
“항암치료는 생각보다 엄청 괴롭거든요. 죽고싶을만큼요.”
“그럼 아프지 않은 치료제를 만들겠다는거야?”
이인영의 말에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쌍둥이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흐음···뭐랄까, 목표는 좋은데···실현 가능성은 없어보이는데.”
“야.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물론 내 생각에도 조금 허무맹랑한 감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여학생은 쌍둥이들의 반응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오직 나만을 또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 있을거라고 이야기해주세요.”
“네?”
“김만덕 박사님이 할 수 있다고 말해주시면, 진짜 그렇게 될 거니까요.”
여학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박사님 인터뷰 봤어요. 다들 말도 안된다고 할 때,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아···”
“그러니까 저도 꼭 해낼게요.”
그러니 응원해주세요, 라는 말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지금까지 나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봐왔었다. 인터넷 상에서도, TV 방송에서도.
하지만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건 새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여학생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저 멀리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쌍둥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이곤 “밖에 차 빼둘게. 저녁 먹으러 가자.” 라며 강당 밖으로 나갔다.
“그래, 이제 가냐?”
“네.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려고요.”
모든 행사를 마치고 박민철이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동상을 덮어뒀었던 천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카트 위에 30년의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 동상이 놓여있었다.
“동상 옮기시는 거에요?”
“응. 강당에 계속 둘 수는 없으니까.”
“도와드릴게요.”
내 동상을 내가 옮긴다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다른 선생님들이 옮기는 걸 보고 있는 것도 좀 그랬다. 박민철은 처음엔 거절하다가 내 끈질긴 요구에 결국 동상 옮기는 걸 허락했다.
“그나저나 아까 쌍둥이들 기다리고 있는거 아니냐? 여기에 이렇게 있어도 돼?”
“지금 주차 대란이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대요. 좀 늦게 나오라고 하는데요?”
“하긴. 안그래도 네 연설 보려고 학부모님들까지 뒤에 빼곡히 오셨더라.”
그런데 연설이···박민철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명연설이라고 나름 생각했기에.
문득 박민철과 함께 동상을 옮기던 중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혹시 생물 전공 중에 독특한 여학생 있어요?”
“독특한?”
“그니까 음···꿈이 암 치료라고 하던데요.”
아, 걔? 박민철이 바로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는 눈을 지긋이 감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학생의 개인적인 일을 말할 수는 없지만, 너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거다.”
“저랑요?”
“너가 치매를 치료하기로 한 이유나, 가정환경 말이다.”
“아···”
“그리고 산골 오지 출신이더라. 초등학교에 사람이 5명이었단다, 5명.”
그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아까의 분위기가 이해가 됐다.
“그 전파도 제대로 안터지는 시골 촌구석에서 네 신문을 꼬박 꼬박 모았다나봐. 감동적이지 않냐?”
“오히려 부담스러운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터뷰라도 좀 성의있게 할 걸 그랬어요.”
“짜식, 인터뷰 내용도 다 괜찮던데 뭐. 물론 거기에 내 이야기가 한 줄도 없는게 좀 서운하긴 했다.”
“에···그, 그게···”
식은땀을 흘리며 해명하려고 하자, 박민철이 웃으며 나를 말렸다.
“장난이다, 장난. 하여간 장난도 제대로 못쳐요.”
“…죄송합니다. 다음 인터뷰때는 꼭 언급해드릴게요.”
“됐다. 엎드려 절받기보다 비참한 것도 없다고.”
“그럼 TV 방송에 나오는 일이 생기면—”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동상이 놓일 본관 1층 로비에 도착했고, 우리는 말 없이 동상을 바라봤다.
덩그러니 중앙에 놓여있는 동상 하나.
“선생님.”
“오냐.”
“유사과학 믿으세요?”
“갑자기?”
내 질문에 미간을 좁히던 박민철. 하지만 나는 그의 대답을 듣기 전에 입을 열었다.
“이건 제 감이긴 한데요···”
나는 웃으며 동상을 쓸어만졌다.
“분명 머지 않아 여기에 동상들이 더 생길 것 같아요.”
“?”
“두번째, 세번째 노벨상 수상자들 말이에요.”
비록 지금은 이곳에 내 동상 하나만 있지만···박민철이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무슨 근거로?”
“근거라···”
근거를 묻는 박민철의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비교할 과거는 없거든요.”
“?”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는 말이에요.”
이건 과거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 역시, 내가 전혀 모르는 일들로 가득 채워지겠지.
나는 이해가 잘 안된다는 듯 미간을 좁히는 박민철을 향해 물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라는 말 아세요?”
“운명론이냐? 너 그런 거 믿어?”
“한때는요.”
“그럼 지금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과거에서 회귀한 직후 내게 뿌리처럼 박혀있었던 명제.
하지만 그 명제가 틀렸다는 걸 알아차린지는 꽤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평범한 일들이 일어날 거에요.”
“평범?”
“네. 진짜 너무 평범하고 사소해서 기억조차 안나는 일들이요.”
내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박민철.
기억조차 안나는 평범한 일상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거다.
어제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싸우고 돌아서고 그러다 왜 싸웠는지조차 까먹고 다시 화해하는,
그런 말도 안되게 평범한 일상들.
훗날 30년, 아니 70년이 훌쩍 지나 죽는 그 순간이 왔을 때, 이런 평범한 일상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
치매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게 모든 걸 기억하는 뇌가 된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기억조차 안나는 평범한 일상들 마저도 소중하니까요.”
교수로 일하고, 연구소에서 일하고, 그러다가 또 새로운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겠지만,
평범한 내게 어울리는 평범한 나날들이니까.
그렇게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상을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 평범한 일상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