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205)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205화(205/209)
***
어느덧 히어로 연합 본부를 덮쳤던 유토피아의 습격이 일어난 지 일주일.
고작 열 명 정도의 빌런에 의해 일어난 테러는 대한민국 전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단 하루 만에 연합과 국군이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차기 총수가 빌런 수괴와 협상을 타결한 덕분에 피해는 더 커지지 않았으나,
현장에 남아 있는 테러의 피해는 빠르게 복구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본부를 구성하고 있는 본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건축이 필요할 정도였고,
본관마저도 곳곳이 무너져 내린 상태인 만큼 재건에만 몇 개월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합에서는 테러 중단 직후 본부를 복구시키는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복구 작업이 시작되지도 않은 현장에 수백 명의 히어로를 배치했다.
“뜬금없이 본부 재건 현장에는 왜 배치된 거지?”
“그러게나 말이에요. 새로 오신 총수님의 명령이라고 하던데요?”
배치된 히어로들은 왜 본래의 업무인 시민 구제와 빌런 제압이 아닌,
작업에 들어가지도 않은 현장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테러를 일으켰던 빌런에게 더 이상 연합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합의를 받아냈고,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한창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얌전히 대기하다 호출이 떴을 때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연합의 기능이 마비된 지금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뭐 어쩌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이렇게 있다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신임 총수의 명령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상관의 명령을 거슬렀다간 무슨 처사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 잠자코 대기하고 있을 뿐.
그저 빌런 습격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경계선 너머로 침입하는 이들이 없는지 지켜보고만 있다.
“오늘 혹시 비 예보가 있었나? 왜 이렇게 깜깜하지?”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혹시 저쪽에서 불이라도 난 게 아닐까요?”
그렇게 수십 명의 히어로가 경계 근무를 몇 시간 째 반복하던 중,
경계선 너머로부터 새까만 실루엣이 흐릿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제가 자세히 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패기 넘치는 젊은 히어로 한 명이 자신의 이능력을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재빠르게 새까만 무언가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지…? 웬 버스가 저렇게 줄지어서 이쪽으로…?”
새까만 실루엣의 정체는 바로 줄지어 연합 본부 쪽을 향하고 있는 차량 행렬.
거진 열 대는 넘을 것 같은 버스의 행렬이 도로를 완전히 점거하고,
그 앞에 선 고급스러운 승용차 한 대가 우아하게 그 무리를 이끌고 있다.
“선배님… 들리십니까?”
“어… 무슨 일이야? 뭐 때문에 새까맣게 보이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그가 무전 장치를 이용하기 위해,
슈트 주머니에 들어 있던 디바이스를 꺼내어 선배 히어로에게 무전을 걸었던 그 순간.
– 지이이잉ㅡ
“커헉…?!”
어딘가에서 날아든 새빨간 레이저 광선이 그의 복부를 향했고,
순식간에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난 그는 비행을 유지하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말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대답해! 혹시 빌런이야?!”
“모… 르겠… 습니다… 커헉…!”
상공 수십 미터에서 건물 외벽에 부딪힌 뒤 도로 위에 떨어진 충격은 상당했고,
아무리 강인한 육체를 가진 히어로라도 버티기 어려울 부상.
타오르는 듯한 격통에 선배의 무전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꿰뚫린 배를 붙잡고 흐르는 피를 간신히 막아보려 애를 쓴다.
“야! 야! 이… 이거 큰일 난 거 같습니다! 그… 지이이이익ㅡ”
무전을 걸었던 후배 히어로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선배 히어로는 필시 위급한 상황임을 알리려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 건지 몰라도 갑작스럽게 무전이 끊기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찌직 소리만이 그의 귀를 맴돌았다.
“선… 배….”
너무나도 심각한 출혈로 인해 몸이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하고,
총명했던 눈빛도 서서히 죽어가는 걸 인지하는 듯 그 빛이 사그라들었다.
– 또각… 또각…
처절하고 비참한 몰골이 되어버린 젊은 히어로의 앞,
디바이스의 시끄러운 노이즈가 아닌 뭉툭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는 그의 머리맡에서 멈추었고,
구둣발 소리의 주인공이 그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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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멀리서부터 우리가 오는 걸 보고 정찰하러 오신 거죠?”
길고 긴 분홍빛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다가온 여자는 조롱하듯 비웃으며,
죽음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히어로의 머리를 구둣발로 잘근잘근 밟았다.
‘어서… 맞서 싸워야… 하는데…!’
분명 자신을 향해 레이저를 쏜 것도 이 여자의 짓이고,
이들이 연합 본부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너무나 손쉽게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고,
자신을 모욕하고 비웃는 그녀에게 대항할 힘이 없다.
그저 차갑게 식어가는 몸이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거나,
자신의 비명으로 다른 히어로들이 위기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채주길 바라는 것이 최선이다.
“설마 그 느려터진 레이저를 그대로 맞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옆으로 발사했어야 하는 걸까요?”
다크 나이츠의 전 총수이자 쉐도우 컴퍼니의 사장을 역임하고 있지만,
결국 빌런 집단인 건 매한가지인 불법 조직의 수장 카이저.
카이저는 그가 레이저를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면 개조 인간의 재료로 쓸 생각이었는 듯,
시선까지 혼탁해진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히어로를 보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이미 죽어가는 목숨이라면 필요 없어요.”
수많은 이들을 개조하여 자신의 병기로 만든 그녀이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닥친 경우엔 그녀조차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컥….”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히어로의 몸을 그대로 발로 차 옆으로 치워 버리고,
다시금 자신이 타고 있던 고급스러운 승용차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이대로… 연합 본부 현장의 경계선 앞까지.”
“연합 본부 현장의 경계선… 확인했습니다.”
운전석 앞에 서 있던 그녀의 비서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운전석에 앉고는 다시 페달을 밟아 버스 행렬과 함께 연합 본부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
한편… 유토피아의 조직원이 머무르고 있는 S시 외곽의 아지트.
평소라면 빌런으로서 파괴 활동을 마치고 온 슬레이브들을 칭찬하거나,
그렇지 않은 날에는 평화로운 일상과 육욕에 가득 찬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시윤과 슬레이브들 모두가 거실에 모여,
언제든 전투에 나설 수 있도록 복장과 자세를 갖추고 있다.
채령의 활약으로 카이저 전 총수가 총괄이사와 임원진에게 접촉한 걸 알았고,
카이저의 알 수 없는 힘으로 결국 연합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빌런 조직인 유토피아가 히어로 연합에 대한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다소 이상하긴 하지만,
이는 히어로 연합의 총수인 수아를 이용하기 위한 계획 실행의 일환이다.
“어…? 히어로들이… 동요하고 있어요…!”
현장에 배치된 히어로들 옆에 선 채령의 분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감지하자,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채령에게도 그 분위기가 전달된다.
“녀석들이… 온 건가…?”
“다들 웅성웅성거려서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이상한 게 보여 정찰을 나갔던 히어로와의 무전이 끊긴 모양이에요.”
– 띠리리리링ㅡ
“이건…!”
채령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시윤과 암컷들에게 사실을 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아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다급한 상황을 알리려는 듯한 알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수님…!!”
“여보세요. 윈드 트루퍼 양?”
수아에게 전화를 건 것은 다름 아닌 B급 히어로 윈드 트루퍼.
며칠 전 습격에서 시윤에게 포획되어 세뇌된 채 도시를 파괴했으나,
그 이후로도 세뇌가 풀리지 않은 채 시윤의 명령으로 수아의 비서 역할을 겸하고 있다.
“비… 빌런 녀석들이…!”
“괜찮으니… 우선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침착하게 말씀하세요.”
상당히 다급한 듯 말을 더듬거리는 윈드 트루퍼.
수아는 차분한 말투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 후 현장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정찰을 위해 경계선 바깥으로 나갔던 히어로와의 무전이 끊겼고…,
이후 경계선 너머에서부터 버스 여러 대가 일제히 본부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지원 인원을 보낼 테니 최대한 동요하지 말라 전해주세요.”
재건 작업에도 채 들어가지 못한 본부에 또 다시 시작된 습격.
“하아….”
수아는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연합을 멸망시킬 뻔했던 빌런 조직과 손을 잡고 그 아지트에 피신 중인 것도 모자라,
이번엔 그들의 힘을 빌려 또 다른 빌런 조직의 습격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빌런 조직은 히어로 연합의 핵심 권력을 쥔 인물과 협력 중이니,
수아의 마음이 굉장히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유산인 연합을 지켜내야만 하니,
수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들어 의지를 다졌다.
그런 수아의 결연한 표정을 본 시윤은 흥미로운 듯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저번 습격에서는 연합 본부와 히어로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하면 돼.
연합 본부 건물과 히어로들을 공격하려고 드는 녀석들을 제압하고,
녀석들을 이끄는 수장과 총괄이사를 붙잡는 게 목적이야.
사실 히어로 녀석들이야 어떻게 되든 딱히 상관은 없다만…,
그러면 이 대단하신 총수님과의 계약을 어기게 되는 거니까 조심하고.”
유토피아의 총수이자 수아의 협력자인 시윤의 말이 끝나자,
아홉 명의 슬레이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전투 의지를 다진다.
“냐앗…! 이동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명씩 차례차례 채령의 손을 잡고 분신과 위치를 바꾸어가며,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