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50)
50
‘……그거, 약간 두고 보자는 말투 같았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나는 조금 심란한 심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복도를 거닐었다.
아까 내 어깨를 두드리는 마넬라노의 손길은 가벼웠어도 어쩐지 진득했다.
그래서 그가 완전히 떠났음에도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왠지 찜찜했다.
‘뭔가 숨겨진 저의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래도 그냥 낭독회 때 보자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마넬라노가 이번에 도련님 몫으로 보낸 마차엔 이번 낭독회에 필요한,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며 도련님 몫의 선물들이 있었다.
수도 유행에 눈이 어두운 내가 봐도 이것만큼 도련님께 잘 어울릴 만한 장신구는 없었다.
과하지도 않고……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센스가 꽤 있는 놈이었다. 보는 눈도 있고.
따지면…… 도련님 곁에 두면 나쁜 인사는 아니었다. 귀족이면 귀족과 어울려야 하니까.
하지만 원작을 읽었던 나로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놈이 집착하면서 우리 도련님 귀찮게 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골치가 아팠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도련님 방으로 돌아가는데, 그 앞에서 단정하게 선 웨인을 만났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낭독회 준비를 마치자마자 바로 복귀한 모양이다.
과연, 내게 하는 짓과 별개로 성실함과 도련님께 잘 보이고 싶은 출세욕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한편 그는 나를 발견하자 보일 듯 말 듯 한 재수 없는 웃음을 짓다가 정중히 물었다.
“왜 이렇게 늦으신 겁니까. 아, 혹시 오늘도 돌아오는 길이 조금 어려우셨던 겁니까?”
아마 자기 일당 중 한 명이 나를 또 어디다 가둬서 늦었겠지, 예상한 눈치였다.
얘도 참 보면 볼수록 밉상이네.
하지만 이번 낭독회도 그렇고, 나중에 저놈 손을 야무지게 써먹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 일단은 참자.
“다음부턴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늘 그렇듯이 풀이 죽은 척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러자 예상대로 웨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더한 만족감을 주기 위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옜다, 받아라.
“도련님은…… 어디 가신 건가요?”
“크림슨 씨와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설마 도련님이 나한테 말도 없이 또 혼자서 공작을 찾아간 건 아니겠지?
잠깐 불안해졌으나, 이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저번에 약속도 했는데, 도련님이 나와의 신뢰를 어길 리가 없다. 그렇고말고.
“그럼 저는 도련님 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약하게 보이기 위해 시선을 떨구며 말하자, 웨인이 길을 터주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전처럼 살벌한 가짜 미소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가 이번 낭독회 준비를 전담해서 그런지 기분이 진짜 좋아 보였다.
고오맙다. 앞으로도 자알 부탁한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혼자서 방에 들어서는데, 아무도 없었다. 도련님도, 림슨 형도 없어서 유난히 적적하게 느껴졌다.
상단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 내내 같이 생활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좀 북적거리는 게 익숙해지고 만 것이다.
뭐, 그래도 오래 심심할 일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태평하게 하품을 하다 보니 도련님이 들어왔다.
목욕이라도 마치고 오셨는지 머리가 조금 젖어있었고, 향유 냄새가 났다.
마치 새벽이슬을 머금은 한 떨기의 고고한 장미꽃 같다고 할까…….
‘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모습을 마넬라노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군.
“어디 다녀오셨어요?”
“저택을 둘러보았어. 로벨 너는?”
……말 어딘가에 작은 가시가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그런데 도련님의 휠체어를 밀던 림슨 형이 뒤에서 입을 벙끗거리며 내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려 했다.
붕어 같아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다가 말았다. 형의 표정이 지나치게 심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에 힘을 주고 보려 했다.
저게 뭐지. 사실…….
‘사실대로?’
……아무래도 마넬라노랑 있던 걸 봤나 보군.
나는 판단 즉시 입을 뗐다.
“도련님. 그런데, 아까 잠깐 마넬 님이 오셨었습니다.”
“……그래?”
“예. 도련님께서 여기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직접 선물을 주고 가셨어요. 아주 기뻐하시더라고요.”
“…….”
저번에도 느꼈는데 마넬라노를 진짜 끔찍하게 싫어하는 눈치다.
왜냐하면, 지금 도련님은 선물이 아니라 무슨 독약이라도 받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싫어하지? 아직 소설처럼 집착하는 건 없었는데…… 뭐, 본능적으로 느끼기라도 한 건가??
“마넬…….”
그런데 도련님이 내가 무의식중에 뱉은 마넬라노의 애칭을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흡사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기분 더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도련님을 묘하게 바라봤다.
마넬라노와 내가 있는 걸 봤다면 그놈이 내 어깨를 감싼 모습도 함께 봤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혹시…… 친구라도 뺏기는 기분이 드는 건가?’
따지고 보면 지금 내 역할은 시종이라기보단, 첫 번째 친구에 가까웠다.
그래도 림슨 형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는데 영 아닌 모양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도련님이 매번 림슨 형하고만 노니까, 그게 좀 서운하긴 했던 모양이다.
도련님께 미안하지만, 내 기분이 은근히 좋아졌다. 그만큼 나를 신경 쓴다는 거니까.
어쨌거나, 우리 도련님 기분부터 풀어 줘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도련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
“……?”
“나는 에드라고 불러.”
‘어…… 그건…… 도련님의 어머니만 사용하시던 애칭이잖아요.’
나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소설에서 황태자가 도련님을 그 애칭으로 불렀을 때, 도련님은 엄청 싫어했었다.
그건 어머니만 쓸 수 있는 것이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이기까지 했었고…… 결국 황태자는 그 애칭을 쓰는 일을 포기했었지.
자세히는 몰라도 언뜻 기억나기론, 애칭과 관련된 슬픈 일화가 스쳐 갔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토라졌다고 나에게 부르라고 하면…… 나중에 껄끄러우실 텐데.’
가볍게 답하고 넘어가기엔 내 양심이 콕콕 찔렸다.
내가 계속 도련님 곁에 남을 사람이면 모르는데.
나중에 홀연히 사라지면…… 그것도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단 말이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련님한테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없어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데 내 침묵에 도련님이 표정 없는 얼굴로 물었다.
“싫어?”
“무슨 그런 말씀을. 싫을 리가요. 단지, 저는…….”
아직 도련님 뒤에선 림슨 형이 ‘로벨아! 대답 잘해야 한다!!’라고 눈빛으로 강력하게 뜻을 발산하고 있었다.
……동의한다.
여기서 까딱 잘못하다간 우리 도련님 솜털처럼 곱고 여린 마음이 상한다고.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아주아주 아까워 죽겠다는 어조로 말했다.
“왜 도련님의 예쁘고 멋진 이름을 굳이 두 글자로 줄여야 합니까? 기왕 부를 거면 한 글자를 더 채워서 불러야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도련님이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새초롬하게 물었다.
“……내 이름이 예쁘고 멋있어?”
“예. 세상에 도련님보다 예쁘고 멋진 이름이 어디 있어요? 저, 황태자 전하 존명도 도련님보단 못해요. 림슨 형. 루이스, 에드릭. 뭐가 더 멋있어요?”
“이 멍청한 새끼.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묻냐? 당연히 에드릭 도련님이지!”
“거봐요!”
림슨 형과 쿵짝을 맞춰서 말하자 도련님이 눈을 치켜떴다.
……휴. 그래도 넘어가 주려는 건지 다른 얘긴 안 하시는군.
매섭던 눈빛도 조금 풀어지고, 싸하게 가라앉았던 분위기도 한결 나아졌다.
그럼 기회를 좀 노려볼까나.
나는 도련님에게 슬쩍 달라붙어서 오늘 보신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찡얼거렸다.
그러자 도련님이 내게 한 손이 붙들려 만지작거리는 채로 정색을 하며 말했다.
“동화책 아니야. 그냥 책을 읽은 거야.”
“그럼 그거 읽어주세요. 네?”
그때쯤은 기분이 완전히 풀린 건지, 도련님은 순순히 책을 고르러 가셨다.
그…… 휠체어 바퀴를 스스로 밀고서. 아니, 그나저나 저 휠체어는 처음 보는 건데. 새로 산 건가? 어느새?
어쨌든 나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잘 움직이시잖아? 전에는 휠체어 밀고 가는 것도 혼자 못 하셨는데…….’
그런데 되짚어보면 꽤 오래전부터 혼자 움직이신 것 같긴 하다.
‘그게…… 그러니까…… 언제부터였지?’
정확한 기간을 가늠하려는데, 곧 책상 앞에 당도한 그는 팔을 뻗어 책 한 권을 들었다.
목욕 후 몸의 물기도 덜 닦였는지, 소매 사이로 반투명한 실루엣이 비쳤다.
‘……도련님 팔이나 허벅지도 좀 굵어진 것 같고?’
열심히 관찰하다가, 나도 모르게 첫 페이지를 읽는 도련님의 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가 읽던 것을 멈추었다.
“……뭐 하는 거야?”
아까와 달리 화들짝 놀란 토끼 눈이 된 도련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하긴, 손만 만져댔지 이렇게 다른 데를 만진 건 처음이다……. 앗. 아닌가?
아무튼, 림슨 형의 찢어진 눈을 보니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해요. 여기에 왠지 먼지가 묻은 것 같아서요. 아, 이놈의 먼지. 이제야 좀 떨어졌네. 좋은 건 알아서 우리 도련님한테 딱 달라붙네요.”
“…….”
“어라? 이거 새 옷인데도 실밥이 붙은 것 같기도 하고…….”
몇 번 더 수작질을 부리면서 도련님 팔을 슬금슬금 만졌다.
뒤에 선 림슨 형은 나보고 ‘답도 없는 변태 새끼’라고 중얼거렸다.
다 들립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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