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43
운동복이라도 적당히 두툼한 방수 운동복이다.
하나면 충분하다.
대신 장갑과 모자는 확실히 챙겼다.
밖으로 나왔다.
산 위의 저녁이라 그런지 칼바람이 분다.
눈밭 곳곳에 각 그룹의 깃발이 꽂혀 있다.
다들 눈치껏 본인 그룹 색의 깃발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삽.
삽이 있다.
깃발 옆에 하나씩 놓여 있는 네모난 플라스틱 공구함엔 눈삽과 줄자, 끈, 부싯돌, 나무 3―4개와 같은 이상한 도구들이 놓여 있다.
이겼군.
삽질이면 뭐 볼 것도 없다.
부싯돌 같은 것들이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이겼다고 본다.
마크와 크리스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본다.
마주 웃어 주었다.
“지금부터 옆에 놓인 삽과 양동이, 긁개 모든 것을 동원해 이글루를 만듭니다. 지름 5피트, 높이 4피트가량을 목표로 합니다. 정확한 계량은 안 해도 되지만, 비슷할수록 좋습니다. 당연히 무너지면 실격, 너무 작아도 실격입니다. 이는 눈 덮인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 잠시 동안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훈련입니다. 교관들이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으나 참여는 불가입니다. 시간은 지금부터 밤 9시, 총 4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그럼 실시.”
― 삐.
“실시!”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누구 이글루 만들어 본 사람 없어?”
“누가 그런 걸 만들어 보겠어?”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
“흐음, 대충 바닥 잡고 둥글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
.
.
모두들 눈과 도구들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말들을 한다.
다른 팀들도 우왕좌왕하는 건 마찬가지.
서로 다른 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치작전을 펴고 있다.
마크와 크리스틴이 줄자를 가져와 내게 내민다.
“제이든, 어떻게 해? 일단 길이부터 잴까?”
“땅이 평평해야겠지? 여기 눈 치우고 자리부터 확보할까? 아까 지름이 5피트라고 했는데.”
“근데 지름 5피트면 상당히 크지 않아? 블록을 어떻게 만들지?”
나도 이글루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방공호 보수를 해 본 적은 있다.
이 사람들 보게.
공구들을 자세히 보다 보니 도구들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상자 자체가 딱 블록 사이즈다.
다들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쯤 되면 좀 나서도 되겠지?
“크리스틴. 에밀리, 올리비아랑 같이 이쪽에 바닥 길이 재 줘. 대충 가운데 한 명 서고, 두 사람이 줄자를 컴퍼스처럼 이용해서 동그랗게 모양 잡을 수 있겠지? 끈이 더 편하면 그걸로 해도 돼. 줄자로 길이 재고, 끈을 이만큼 잡아서 길이에 맞게 빙 돌면 되겠지? 한 명은 바닥에 제대로 그림 그리고.”
“어, 해 볼게. 어디에서 해?”
“여기. 마크, 이안, 저기 눈 좀 쓸어 줄래?”
“어.”
“근데 너는 뭐하고?”
“난 매튜랑 얼음 블록 만들게.”
“얼음 블록? 어떻게?”
“눈삽도 있고, 블록도 있잖아.”
“뭐?”
도구들을 모두 바닥에 쏟았다.
네모난 플라스틱 공구함 상자.
이거 분명 주문 제작된 거다.
사이즈가 딱이다.
“우와, 이거… 이게?”
“어. 딱 봐도 사이즈 나오잖아. 매튜, 같이 하자. 내가 삽질할 테니까 니가 발로 밟든 저기 저 판판한 밀대 같은 걸로 누르든 틀 잡아 봐.”
“어? …어.”
“뭐해? 다들 일 시작해.”
“어? 어, 그래.”
우리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교관의 표정이 묘하다.
마치 ‘이놈 봐라?’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삽질을 했다.
매튜가 의외로 일머리가 있다.
내가 삽질하면 발로 꾹꾹 눌러 담더니 옆에 있던 막대기로 끝을 판판하게 다듬는다.
― 끙차.
공구함을 뒤집어 털었더니 완벽한 사각형의 눈 조각이 만들어져 나온다.
“우와, 대박.”
“와. 제이든, 어떻게 알았어?”
“역시, 우리 캡틴!”
“…….”
“눈썰미가 좋네.”
그렇게 팀워크가 시작되었다.
“와, 이렇게 한다고?! 오케이! 제이든 고맙다.”
“넌 또 언제 왔어?”
“이쪽에 오면 답이 있을 줄 알았지, 헤헤. 그럼 수고.”
언제 왔는지 오디가 염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엄지를 치켜들며 사라진다.
수평계를 따로 맞춰 볼 필요 없이 바닥은 이미 평평하다.
해마다 해 왔던 작업인 게 틀림없다.
마크와 이안이 눈 덮인 바닥을 쓸어 내고, 크리스틴을 포함한 여학생들이 동그랗게 틀을 잡았다.
곧 나와 매튜가 만들어 내는 직사각형 모양의 눈덩이들을 가져다 쌓기 시작한다.
“안으로도 위로도 조금씩 어긋나게 쌓아야 모양이 잡히지. 아고, 입구는 열어두고. 거기까지 다 막아 버리면 어떻게 들어가? 위에도 다 막으면 안 되고, 연기 빠질 굴뚝 역할 할 만큼은 남겨 둬야 해.”
“아. 그러지 말고 제이든, 니가 해라.”
“어?”
“이거 어떻게 만드는지 알았으니까 우리가 눈덩이 제조할게.”
“그래, 그게 좋겠다.”
그렇게 자리이동.
잠시 후 이안이 모자를 벗어 던진다.
그러다가 결국 삽을 내려놓는다.
“후우, 도저히 안되겠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나, 나도.”
매튜와 마크가 따라붙는다.
딱 봐도 화장실 가서 타이즈 벗고 오려는 걸 게다.
체질적으로 아시안보다 열이 많은 놈들이 2겹, 3겹으로 껴입었으니 당연하지.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인 듯 이마로 땀이 흘러내린다.
“교관님, 저희 10분간 휴식해도 되겠습니까?”
“4시간 안에만 끝내면 되니 상관없지.”
“그럼 다들 화장실 가고, 땀 좀 닦고 나와. 난 여기 입구 보수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어? 어.”
“어, 고마워.”
“금방 갔다 올게.”
크리스틴만 빼고 5명이 모두 사라진다.
“너는?”
“난 괜찮아. 이럴 줄 알고 가볍게 입었어. 나 진짜 이런 쪽으로 특화된 거 같지 않냐?”
“진짜 군인으로 갈 생각이면 웨스트포인트 같은 데 입시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일반 대학하고는 좀 다르잖아.”
“됐어. 그런 데는 너 같은 애나 목표로 삼는 거지. 난 그냥 일반 군대 가려고.”
“하사관 쪽으로 생각하는 거야?”
“아니, 장교지. 일단은 4년제 주립대를 졸업하고, 그 후에 군대 들어가서 교육받으면 장교 쪽으로 빠질 수 있대. 하사관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닌데, 아무리 봐도 난 장교 쪽인 것 같단 말이지.”
“크리스틴, 너 아직 10학년이야. 웨스트포인트 갈 수 있어. 거기 아니면 국방대학도 있고. 목표가 확고하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길을 노려 보는 거야.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땐 어쩔 수 없지만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
“하하, 그래. 까짓거 해 보지 뭐. 남친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좋네.”
동그랗게 입구를 손질하며 주고받는 대화.
크리스틴과 이 정도의 진지한 대화는 처음이다.
매번 광인의 끝판왕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친구가 오늘따라 일반인으로 보이는… 건 아니구나.
머리를 입구에 들이밀었다 빼냈다 정신없이 굴더니 급기야 쌓아 올린 눈 벽을 혀로 핥는다.
“뭐하냐?”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말을 말자.
보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제이드은… 어으으. 사… 알려즈으으…”
“으악! 크리스틴!”
혀가… 얼음에 붙었다.
저거 잘못 떼면 혓바닥 아작 난다.
“그러게 왜… 으이그, 진짜. 잠깐만 기다려 봐.”
“빠아… 리… 아… 파.”
“미치겠네, 진짜.”
혀 동상 걸리기 딱 좋은 시점.
― 졸졸졸.
혹시나 몰라 준비해 왔던 보온 물통을 열어 크리스틴의 혀와 얼음 사이에 졸졸졸 흘려 냈다.
뜨거운 물이 아닌 적당히 따뜻한 물이다.
크리스틴의 입 옆으로 침과 함께 물이 줄줄 흐른다.
“아. 아. 아. 으아. 됐다, 헤헤. 고맙다, 제이든.”
혀가 떨어지자마자 손가락들로 혀를 문지르는 크리스틴.
눈알이 튀어나올 거 같다.
살면서 별꼴을 다 봤지만 10학년 여자애가 저러는 꼴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으악, 드러. 크리스틴, 하지 마!”
“내가 뭘? 이렇게 해 줘야 혀가 풀어진다고. 어우, 죽는 줄 알았네. 넌 평생 그 고통을 알 수 없을 거다.”
“알고 싶지 않아! 와, 내가 살다 살다. 너는 진짜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거냐? 10학년이나 된 게 그러고 싶어?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여자에 대한 환상이 다 깨진다!”
“뭐래, 지가 언제부터 여자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고.”
“와, 난 뭐 그런 것도 없을까 봐?”
“어, 넌 없어. 남자 여자가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말을 말자.”
“됐고. 야, 물통 다시 줘 봐. 물 따뜻하더라. 으하하. 이왕 입 댄 거 그냥 내가 다 마셔 주마, 으하하하.”
“뭐래, 입은 안 닿았거든? 나중에 마셔야 하니까 놔 둬.”
“치사한 놈. 그게 또 아깝냐? 내놔 봐아!”
“싫다고!”
“뭐냐? 니들 왜 싸워?”
“싸우긴 누가 싸워.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구만.”
“아닌데. 뭐 있는데. 크리스틴, 제이든한테 뭔 짓 했어?”
“얼씨구, 마크, 다짜고짜 제이든 편을 든다 이거지?”
“야, 크리스틴이 있지이….”
크리스틴이 나를 향해 눈알을 부라린다.
“제이든, 그거 말하면 나 죽어 버린다.”
“허얼.”
죽여 버린다도 아니고 죽어 버리겠단다.
죽여 버린다고 하면 폭로하려고 했는데.
협박이 참… 적절하다.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승리의 미소를 짓는 크리스틴.
“뭔데에? 얘가 뭔 짓 했는데?”
“시꺼! 쬐끄만 게 뭘 알려고 그래!”
“와, 쬐끄… 야. 제이든, 뭔데? 어? 뭐냐고오!”
“알 거 없다고!”
투덕거리는 두 놈을 보고 있자니 어째 다른 학교 놈들보다 우리 공부방 놈들이랑 2주를 보내는 게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4
투덕거리는 두 놈들을 버려 두고 우리는 계속 작업을 이어 갔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이안도, 매튜도, 올리비아와 에밀리도 빠르게 잘 도왔다.
돔의 천장에는 길쭉한 나무 하나를 주워 와 공간을 확보한 후 주변을 다듬었다.
“와우, 우리 너무 잘 만들었는데?”
“그러게. 진짜 살아도 되겠어.”
“제이든, 수고했다.”
“덕분에 빨리 완성했네.”
“역시 우리 캡틴!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얘가 왜 너네 캡틴이야?”
“아, 그게 우리 공부방이 있는데에….”
경계심을 키우던 이안과 매튜가 손을 내민다.
나를 인정한다는 제스처.
아직 리더까지는 아니겠지만 일단 확실히 도움이 되는 팀원으로는 인식한 것 같다.
마주 악수를 하고 있자니 교관이 다가온다.
“훌륭하다. 하지만 아직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안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가 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까지가 이 미션의 완성이다.”
“아, 네. 제이든, 좀 쉬어. 그건 우리가 할게.”
“그래.”
이안과 올리비아가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나머지 팀원들이 입구를 통해 땔감들과 짚을 넣어 준다.
― 탁탁. 타타탁. 타타타타.
― 앗, 뜨!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분명 불꽃이 튀는 것도 같은데 좀처럼 연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도와줘?”
“…어. 잠깐 와 볼래?”
좁은 공간을 비집고 기어 들어갔더니 땔감들이 일직선으로 바닥에 누워 있다.
저러니 불이 안 붙지.
“너네, 한 번도 모닥불 안 피워 봤지?”
“…….”
“그, 그래도 부싯돌에 불은 튀었어.”
“잘 봐봐.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나무를 서로 어긋나게 해서 이렇게 텐트처럼 세워야 해. 그래야 공기가 들어가지. 내가 부싯돌로 짚에 불을 붙이면 옆에서 후후 바람 좀 불어.”
“어, 알았어.”
나무들을 삼각형으로 겹쳐 세워 공간을 만든 후 부싯돌을 부딪쳤다.
제법 좋은 품질의 부싯돌들인지 몇 번 타닥거리지도 않았는데 금방 불이 붙는다.
― 후후후후.
짚을 나무들 사이에 집어 넣자 옆에서 열심히 입바람을 불어 댄다.
― 화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