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41)
441화 자이언트 스텝 (3)
잠시간 원탁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
“…….”
고블린이 뱉은 정보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이미 진작에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금은 다들 생각에 잠겨 있느라 바빴다.
유잼판정의 부가적인 효능이었다.
“영생의 현자가… 대체 누구기에…….”
그야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니까.
딱 듣자마자 아우릴 가비스가 떠오르긴 했는데 확실한 건 아니다. 근데 이렇게 해두면, 얘네가 열심히 조사해올 거 아니야.
“…피시싯, 나가자마자 알아봐야겠군요.”
“만약 단서를 찾으면 알려 줘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테니까.”
“못 할 건 없죠. 단, 그쪽도 그러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말입니다.”
“약속할게요.”
그래, 잘들 해보고.
안 그래도 너희 둘에게는 기대하는 게 많으니까.
‘그럼 고블린 문제는 해결이 된 건가?’
음, 그런 듯하다.
광대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걸 보니.
“피시싯, 그나저나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군요. 설마 고블린 씨가 잭팟을 터트릴 줄이야!”
고블린은 광대의 칭찬이 낯선지 어색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 그렇습니다. 참……. 하하핫….”
보아하니, 본인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나군.”
차차 소란이 잦아들자 다음 순번인 사슴뿔의 차례가 시작됐다. 어떤 얘기를 듣던 포커페이스를 지킬 예정이었으나, 이번에는 조금 힘겨웠다.
“라그나 페프로크 여백작은 테르세리온 후작의 사생아다.”
아까 현별이에게 한 번.
그리고 지금 한 번.
공교롭게도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듣고 있는 그 이름.
솨아아아아아-
머지않아 보석에는 초록불이 떠올랐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도 없었다.
“…어쩐지 후작이 정계에서 계속 밀어주는 거 같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려.”
초승달이 한마디 덧붙였고, 여왕도 저만의 반응을 보였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
“…저기 사생아인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고블린이 조심스레 껴들자 여왕이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뭐, 일단은 정치적으로 쓸 수 있는 무기니까요. 한 국가의 이인자나 다름없는 재상을 상대로.”
“아, 예… 그렇군요…….”
아무리 봐도 여왕이 재밌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직접 캐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라그나가 후작의 딸이었을 줄이야……. 어쩐지 항상 부티가 나더라니.’
사실 감정적으로 보면 앞에 광대나 여왕이 뱉은 정보들보다도 충격적이다.
라그나도 라그나지만, 이번 일에는 현별이도 껴 있으니까.
‘하……. 일이 더 골치 아파지는데.’
나중에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간절히 바랄 뿐이다.
라그나가 후작과 견고한 아군 관계가 아니기를.
‘최악의 경우에는 현별이만이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오게 해야지.’
아무튼, 사슴뿔의 턴이 끝나자 자연스레 시선이 초승달에게로 모였다.
흐음, 얘는 뭘 얘기해주려나.
역시 이번에도 요정족—
“창세보구.”
……응?
“드워프들이 새로운 창세보구를 제작할 방법을 찾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냈소.”
……진짜로?
“네? 그게 사실인가요? 제작이라니?”
여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행동에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얘랑 GM 쪽은 돌아갈 생각이 가득한가 보네.’
반면 광대 쪽은 심드렁하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는 눈치라 해야 하나?
음, 이 새끼는 돌아갈 생각이 별로 없는 건가?
어쩌면 장난감 수집가 생활이 나름 마음에 드는 걸지도.
“그래서 방법이 뭐죠?”
“단서는 줬으니, 남은 건 그대들 하기 나름이오.”
“잠깐만요.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엔 너무 애매한 정보지 않아요? 확실하게 알아낸 것도 아니고, 아직 성과가 있는 정도라면서요?”
여왕의 강력한 주장에 초승달도 못 이긴 척 추가 정보를 풀었다.
“수많은 균열석.”
“……?”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피.”
“…….”
“드워프들은 그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창세보구를 새로이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소.”
허, 이건 뭐 미치광이 과학자도 아니고.
저 방법이 제대로 될지는 둘째 치고, 발상 자체는 꽤 인상 깊다.
‘제작이라…….’
진짜 그게 가능한 건가?
말 그대로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존재했다는 설정이 붙은 장비들인데?
‘……생각은 나중에 한 번에 하자.’
이내 나는 잡념을 떨쳐냈다.
그야 아직은 초승달이 뱉은 정보가 준 여운에 잠겨 있는 회원들이었지만, 언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실제로 머지않아 곧 하나둘 시선이 모였다.
“…….”
“…….”
이전과 달리 불안한 눈빛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고블린 때 유잼 판정을 내린 일이 크게 작용한 듯한데…….
‘자, 그럼 뭐로 할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가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스톤 아이벤에서 ‘Elfnuna’란 닉네임을 썼던 자.”
미끼를 던져보자.
“그자는 이미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이제는 나도 슬슬 궁금해졌거든.
별생각 없이 지었던 이 닉네임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이백호와 GM이 그 난리인 것인지.
***
솨아아아.
보석에서 초록불이 밝혀짐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회원들의 입이 열렸다.
“엘프누나라면… 그 사람이죠? 오리지널 버전을 클리어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졌던 사람.”
“피싯, 소환이 됐다니 적어도 커뮤니티에서 돌고 있던 괴담의 절반은 사실이었군요.”
광대가 말한 괴담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았다.
엘프누나가 원본을 깨고서 진작 이 세상에 소환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원본을 깬 대가로 엄청난 특전을 받았다는 것.
장본인인 내가 들으면 웃음만 나오는 괴담이다.
‘특전이라니…….’
장난하나.
특전은커녕 오자마자 고블린 동굴에서 덫 밟고 뒈질 뻔했구만.
“…절반이라니요?”
“그야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그자가 정말 오리지널 난이도를 깼을지는.”
혹시 모르죠. 나중에서야 불가능하단 걸 깨닫고 배율을 조정했을지.
그런 말을 덧붙인 광대가 어깨를 으쓱했다.
얘는 엘프누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여왕, 소울퀸즈와는 다르게.
“…….”
그녀는 단 한 마디의 감상도 뱉지 않았다.
단지 돌처럼 굳어 자리에 앉아 있을 뿐.
오히려 그 모습에서 그녀에게 이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가 느껴졌다.
‘오케이, 그럼 이 소식은 GM한테도 잘 전해질 테고…….’
기다리면 GM이 먼저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1:1 대화를 걸어온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나를 만나 엘프누나에 대해 캐보려 하겠지.
그때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다.
갑의 위치에 서서 역으로 살살 정보를 캐내는 것.
“아무튼, 오늘도 덕분에 신비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군요. 피싯.”
“수사자… 혹시 당신은 그자와도 만나본 적이 있는—”
“사슴뿔 씨! 그런 질문은 실례인 거 모릅니까?”
“…….”
내가 질문을 컷할 것도 없이 전문 대변인 광대가 나서서 여러 의문들을 차단했다.
그리고…….
“피싯, 그나저나 다음 바퀴는 역시 무리인 거 같네요?”
다른 회원들을 비웃듯 실소했다.
다만, 기분 탓일까?
자기도 던질 정보가 없으니까 이쯤에서 끝내자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예, 저는 여, 여기까지만 하는 거로…….”
“저도요.”
“나도 마찬가지오.”
고블린을 필두로 여우, 초승달이 불참을 선언했고 자연스레 집회는 이번 바퀴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따라서,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후우…….”
그렇게 돌아온 이한수의 방.
원탁까지 끝나서인지 피로가 크게 몰려온다.
이번 커뮤니티에서는 유독 일이 많았던 것만 같은 기분.
‘체감상 거의 일주일은 여기 있었던 거 같네.’
이내 나는 컴퓨터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마우스를 조작해 로그아웃 버튼으로 커서를 옮겼다.
뭐, 평소였다면 게시판을 돌면서 봤을 테지만…….
‘얼른 돌아가자.’
오늘은 어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
딸깍딸깍.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자마자 눈앞이 번뜩이며 주변 공간이 일그러진다.
「캐릭터가 라프도니아로 이동합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에르웬의 저택 2층에 위치한 나의 방이었다.
이번에도 옆에는 아멜리아가 있었다.
“오늘은 일찍 돌아왔군?”
“아, 어쩌다보니.”
거, 몇 초나 다녀온다고 매번 갈 때마다 옆에서 호위를 서주는 건지.
어딘가 든든하고 고마우면서도 민망해진다.
“왔으면 됐다. 그럼 쉬어라. 피곤해 보이는군. 내일은 되도록이면 먼저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요정에게도 말해두겠다.”
“아, 고맙다.”
“…….”
이내 아멜리아는 더 볼일이 없다는 듯 쿨하게 일어나더니 방을 나가기 전에 불까지 꺼주었다.
딱 잠에 들기 좋은 정적과 조명.
‘……원래는 대충 정리라도 하고 잘랬는데.’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자 막혀있던 둑이 터지듯 피로가 몰려온다.
살기를 쓰고 원탁까지 했더니 진짜 뒈질 거 같네.
이백호 걔는 괜찮으려나?
“…….”
그렇게 나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
두꺼운 커튼으로 달빛조차 차단된 어두운 방.
“후아, 살 거 같네.”
눈을 뜬 금발 사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케이, 가 있는 동안에 침입한 흔적은 없고.’
후, 설마 이번에 벤이 풀렸을 줄이야.
갑자기 끌려간 탓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가기 전에 준비를 다 해두고 가니까.
“아오, 머리야…….”
현관문을 확인한 사내는 그제야 피로를 느끼고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누워서 그냥 잠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진짜 잠들면 누가 들어와서 업어가도 모를 거 같은데…….”
사내는 애써 피로를 참아내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관짝 형태의 금속 상자를 꺼냈다.
‘이걸 도시에서 쓰는 건 또 오랜만이네.’
No.1,577 영면의 관.
체력 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것 말고도 엄청난 내구도를 지닌 덕에 미궁에서 침낭 대신 애용하던 물건.
‘그래, 오늘은 아예 여기서 자자.
사내가 관 안으로 몸을 욱여넣고는 안에서 관을 닫았다. 편안한 침대를 옆에 두고서 이러고 있는 게 우습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에 하나까지 경계하고 대비하는 것.
그것이 사내의 오랜 철칙이었으니까.
‘…….’
자리는 불편했으나,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마음은 편해졌다.
사내는 눈을 감고서 생각을 정리했다.
안 그래도 연신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죽이는 게 가능할 거 같냐는 질문에 그가 했던 답변.
[못 할 거 같진 않은데.]그 음성을 듣자마자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버튼을 누르겠다고 했을 때 거짓말을 간파했던 것처럼.
저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참 쉽지 않은 형이란 말이지.’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다만, 한편으로는 그가 살기를 뿜어내던 모습이 떠올라 자꾸만 웃게 된다.
“아, 자야 하는데 돌겠네 진짜…….”
사실 이 정도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이러면 더 갖고 싶어지잖아.
엘프눈나.
‘얼른 다음 달이 됐으면 좋겠다.’
이백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