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83)
83화 하수도 (4)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눈치를 챘을 때.
“미샤? 드왈키? 히쿠로드?”
모두가 눈 뜬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대체 뭐지?’
의문을 느낌과 동시에, 미처 보지 못했던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얇고 기다란 침.
그것이 동료들의 목에 하나씩 박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마 침이 박힌 건 나도 마찬가지겠지.’
목 근육이 빳빳하다.
그리고 그 저린 감각이 점점 아래로 퍼지고 있다.
「캐릭터가 ‘바실리스크 마비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캐릭터의 육체 수치가 300 이상입니다.」
「중독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위협을 감지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반면 뇌는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
스르륵-
우람한 팔은 방패를 들어 올려 상체를 가리고.
다리는 살짝 굽어지며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의 균형을 낮춘다.
“…….”
목을 옥죄는 듯한 정적.
그 속에서 호흡조차 아끼며 소리에 집중한다.
똑- 똑- 또옥-
저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하지만 나는 의심치 않았다.
고블린 덫을 밟았을 때처럼.
분명, 적은 이 근처에 있다.
“…….”
몇 초간 살 떨리는 고요가 이어진다.
마치 온몸의 모든 신경 세포가 곤두서는 듯한 느낌.
탓.
그때 아주 작게나마 기척이 들린다.
발걸음 소리라고 하기도 애매한… 마치 돌 부스러기가 바람에 굴러가는 듯한 소음.
‘……은신 계통 스킬인가?’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뭔진 몰라도 독이 점점 몸에 퍼지고 있다.
그러니 이럴 시간에 차라리…….
「캐릭터가 [야성분출]을 사용했습니다.」
어떻게든 승부를 보는 게 낫겠지.
그게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 있을 테니.
“베헬—라아아아아아!!!”
온 힘을 다해 함성을 내지른다.
물론 마물과 달리 사람에겐 ‘위협 수치’가 절대적으로 작용치 않지만…….
이 부분은 지난날 연구가 끝났다.
[으음… 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소. 머리로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단 걸 아는데, 몸이 막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달까…….] [야성분출]에 노출됐을 때, 기가 약한 자라면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오히려 ‘도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하지만, 반대로 대상이 호전적인 자라면…….
어느 정도 ‘도발’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긴 정체불명의 적은 어떨까?
“신기한 느낌이군, 바바리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뭐, 신기하다는 말은 이쪽이 해야 할 대사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 목소리가 앞뒤에서 동시에 들린다.
다만 적의 위치를 알 수 없단 문제는 둘째치고.
‘잠깐, 뭔가 목소리가 익숙한데…….’
나는 흠칫 굳었다.
방금 들린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조금 허스키하긴 했지만 그건 분명했다.
‘대체 누구지?’
의문을 느낀 뇌가 키워드를 조합한다.
‘암살자’처럼 모습을 감추고 ‘마비 독침’을 쏘는 ‘여자’.
……기억이 났다.
“너였군.”
망자의 땅에서 만났던 그 사이코패스 년.
그년이 틀림없다.
***
정체를 감출 생각은 없었을까?
“…목소리만으로 구별해 낼 줄은 몰랐는데.”
이내 정면부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170이 조금 넘는 날렵한 체형.
타오르는 듯한 적발과 반쯤 잘려져 나간 오른쪽 귓등. 입고 있는 옷이 평상복이란 것만 빼면은 모든 게 그때와 일치했다.
터벅.
그런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디며 거리를 좁힌다.
솔직히 말해서 식은땀이 줄줄 새어 나왔다.
최근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작은 발칸이란 이명까지 얻었다곤 하지만…….
“많이 강해졌군, 바바리안. 그걸 맞고도 움직이다니.”
그래 봤자 아직 이년한테는 비빌 바가 아닐 테니까.
‘8층에서 활동하는, 오러까지 쓸 줄 아는 탐험가라…….’
암만 봐도 혼자서는 답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죽어 줄 생각은 없다마는.
방패와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으며, 겁먹은 정신을 재무장한다.
그런 나를 보며 여자가 묻는다.
“도망치지 않는 건, 동료 때문인가?”
거, 누가 사이코패스 년 아니랄까 봐.
그딴 걸 궁금해하는 감성부터가 존나 소름 끼친다.
“질문은 나부터. 약속은 지켰을 텐데, 왜 이제 와서 나를 죽이고 싶어진 거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행동 동기가 궁금했다. 그야 그걸 알면 뭔가 다른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다만…….
“죽이고 싶어지다니?”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한다.
“먼저 문을 열고 침입한 건 너다, 바바리안.”
“……문?”
“말해라. 이곳에 대해선 누구한테 들었지?”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왠지 모르게 시작부터 대화가 엇돌고 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쉽게 말해라. 침입했다니? 여기가 어디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여자가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야 이 대화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
“……문은 어떻게 열었지?”
“하수도에 있던 그 마법적인 무언가라면, 메이스로 내리쳐서 부쉈다.”
“부쉈다고……?”
“문제라도 있나?”
내 당당한 물음에 여자가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다.”
최상위 탐험가인 만큼 드왈키나 난쟁이놈처럼 마법을 맹목적으로 신봉하진 않는 모양.
다만 이유만은 궁금했는지 질문을 해온다.
“근데 어째서 부순 거지?”
“이년이 여기로 도망쳤으니까.”
그제야 짊어지고 있던 엘리사를 자연스레 바닥에 내려놨다.
사실 아까부터 거슬렸거든.
그럴 틈조차 없어 짊어지고 있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방해가 될 게 분명하니까.
“……얼마 전에 수배된 그 카루이의 사제군.”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럼 오해가 풀렸나?”
“오해는 풀렸다.”
“그럼 다행이군. 만나서 반가웠다. 우린 이만 가보겠다. 아, 포션까진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그만, 이곳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그냥 보내 줄 수는 없다.”
“……영상기록구를 파기하고, 맹세코 오늘 겪은 모든 일을 비밀에 부치겠다고 해도?”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씨바… 역시 안 되는 거구나.
나는 나약한 마음을 깔끔하게 지워 냈다.
저년 입으로 확답까지 들은 이상,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따라서—
철컥.
입고 있던 갑옷을 벗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지?”
상대가 의문을 표하건 말건.
각반을 풀고, 투구와 신발도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이봐.”
말을 걸었다.
다행히 상대는 대화에 응해 줬다.
“……?”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한 눈빛.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알고 있나?”
“……뭐?”
“그 첫 번째는 중간에 말을 하다 마는 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나도 모른다.
아무도 그건 안 말해 줬거든.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전력을 다해 앞으로 대쉬한다.
조금이라도 저년의 신경이 분산됐길 바라며.
메이스를 쥔 팔을 어깨 뒤로 당긴다.
잠시 흠칫하던 여자는 뒤늦게 내 수작을 눈치챘는지 피식 웃었다.
“웃기는 놈이군.”
하긴 이 거리에서 대쉬해 봤자 너한텐 그리 당황스럽지도 않겠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후웅-!
팔을 앞으로 휘두르며 메이스를 집어 던진다.
휙-!
역시 피하는구나.
날렵하게 몸을 틀어 메이스를 피한 여자가 이게 뭔가 싶은 눈치로 나를 바라본다.
“……?”
바바리안이란 놈이 시작부터 무기를 던져 올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인데…….
나는 미련 없이 한 손에 남은 방패마저 던졌다.
휘익!!
쉬는 날 연습한 보람 있게 원반처럼 회전하며 날아가는 방패.
그 신속함은 메이스와 비교조차 불가하다.
다만…….
“……!”
저 쓸데없이 유연한 년은 허리를 뒤로 꺾는 것으로 손쉽게 방패를 피해 냈다.
예상한 바였기에 아쉽진 않았다.
타닷-!
메이스와 방패가 벌어진 찰나를 이용해, 한 번 더 지면을 박차며 대쉬를 이어 간다.
어느덧 육체 수치가 일반인의 영역을 뛰어넘은 만큼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지금.’
엘리사 년에게 슬라이딩할 때처럼 손을 앞으로 뻗는다.
저년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저 ‘요것 봐라?’ 하는 정도의 얼굴.
타닷-
실제로 저년은 뒤로 세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정확하게 간격에서 벗어났다.
이번에도 딱히 아쉽진 않았다.
애초에 그러라고 빤히 보이게 손을 뻗은 거니까.
‘역시 예상대로군.’
폭이 넓다고 하긴 힘든 일자형 통로.
덩치 큰 바바리안이 앞에서 달려들면 피할 곳은 뒤밖에 없다.
물론, 확 뒤로 물러난다면 답이 없었겠지만…….
그때도 딱 피할 정도로만 움직이더란 말이지.
성격 문제라기보단 높은 경지를 추구하며 자연스레 갖게 된 효율충의 면모일 터.
‘플랜A로 가도 되겠군.’
따라서 타이밍에 맞춰 [거대화]를 시전했다.
리아키스에게 극적으로 살아남았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연계기다.
「캐릭터가 [거대화]를 시전했습니다.」
몸이 불어나며 그에 맞춰 길어진 팔.
원래라면 세 걸음 정도 부족했어야 할 거리가 즉시 좁혀진다.
“……!”
처음으로 저년의 표정에 당황의 빛이 어린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즉시 어깨를 잡아채 내 쪽으로 확 끌어당긴다.
상당한 저항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너.”
힘에서조차 밀렸던 예전과는 다르다.
그야 그때의 나는 레벨 1에 정수 0개였던 초짜 바바리안이었으니까.
“근력 좀 키워야겠군.”
시체골렘과 뱀파이어, 그리고 오크 히어로가 내게 남겨준 힘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끌려오는 상대.
“큿!”
피할 수 없게끔 목을 꽉 쥔 채로 주먹을 안면부에 꽂아 넣는다.
퍼억-!
묵직한 소리와 손맛.
역시나 한 방으로 제압은 무리였다.
따라서—
‘한 번 더.’
신속하게 회수한 주먹을 다시금 내리꽂는다.
그러나 그 순간.
극한까지 끌어 올려진 내 동체시력에 저년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단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내 팔목을 통째로 자를 생각인가?’
나는 신속하게 판단을 내렸다.
저년은 오러 유저다.
따라서 물리 내성이건 골강도건 항마력이고 뭐고, 크게 의미가 없다. 분명 저 단검은 내 팔이 상대에게 닿기 전에 베어낼 것이다.
그러니……
‘플랜B로 가야겠군.’
뻗던 주먹을 멈춘다.
이제 와서 몸을 사리겠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겼을 뿐.
다치는 건 전혀 두렵지 않다.
그게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살점폭발.’
머릿속으로 이미징을 끝낸 찰나.
상대를 잡고 있던 손에서 강한 폭발이 인다.
퍼엉-!
터져 나가는 살점.
그리고 산성피.
치이이이익-!
저 독한년은 인상만 찌푸릴 뿐 신음 한 번 뱉지 않았다.
다만 고통 내성 스탯은 없었을까?
통증은 참아낸다 쳐도 아주 잠시간, 저년의 움직임이 경직됐다.
‘좋아, 그럼 다시 플랜A.’
휘둘러지던 단검을 피해, 주먹을 복부에 꽂아 넣는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알기에, 이다음은 없다는 듯 계속해서.
퍼억-! 퍽! 퍽! 퍽!
종이몸이 특징인 딜러답게 머지않아 반응이 나왔다.
“……!”
내장이 씹창났는지 입으로 새어 나오는 선혈.
이를 보자마자 눈에 압력이 느껴질 만큼의 엄청난 흥분이 머리로 쏠린다.
씨바, 정말 이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건—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자가복제]를 시전했습니다.」
뇌가 희망을 감지한 그때.
돌연 본능이 경종을 울리며 경고를 보내왔다.
원인은 실로 간단했다.
“바바리안.”
……왜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얘는 분명 여기 나한테 붙잡혀 있는데.
타다닷-!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주먹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똑같이 생긴 여성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씨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것은 딱히 궁금치 않았다.
[자가복제].4층 균열인 ‘도플갱어 숲’의 수호자에게서만 획득 가능한 초레어 정수.
“뱀파이어의 정수를 먹었다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내게 잡혀 있던 여자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수라각]을 시전했습니다.」
여자의 분신체가 크게 도약하더니 허공에서 회전하며 내 안면부에 킥을 꽂아 넣었다.
콰아앙-!!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듯한 충격.
아니, 이거 설마 진짜 날아간 건가?
툭.
귀 옆에서 들리는 묵직한 충격음.
암전하는 시야.
배터리 빠진 휴대폰이 꺼지듯 의식이 멀어진다.
“니, 미…….”
씨발.
***
「패시브 스킬 [어둠의 근원]으로 인해 심장이 파괴되기 전까지 캐릭터가 사망하지 않습니다.」
「캐릭터의 재생력이 [영생자] 효과로 대폭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