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Fanatic Wanders Through The Night RAW novel - chapter 188
“사대악인이었잖습니까. 저도 쫓겨났겠지요. 가뜩이나 사고도 많이 치는데…….”
사제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대제자가 사제들을 노려봤다.
“이것들이…….”
사제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진시월이 중얼거렸다.
“지금은 뭐 천하제일이니까 밝혀도 되는 거고요. 인사나 시켜드릴 것을… 제가 실수했습니다.”
진시월이 무리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사제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사제들아.”
“네, 진 사형.”
“그거 아냐? 어렸을 때 싸우면 맹주님이랑 나랑 승부가 반반이었어. 이거 사실이다. 나중에 물어봐. 진짜야.”
사제들이 대꾸했다.
“그걸 누가 믿어요.”
“맞아. 아까도 맹주님한테 한 대 맞으시던데.”
“사형, 원래 어렸을 때는 먼저 코피 터지면 지는 거였습니다.”
“그것도 맞아.”
진시월이 씨익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 양반이 원래 기습을 잘해. 기습을… 내가 방심한 거다.”
사제들이 진소한에 대한 이야기 좀 해달라고 들러붙자, 진시월이 귀찮다는 것처럼 말했다.
“시끄럽다.”
웃고 떠드는 무리에서 감정적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대제자만 시큰둥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잠시 조용해지자 진시월이 한 가지만 말해주겠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진소한 맹주님은 말이야.”
“예.”
“강했다. 어렸을 때부터.”
“왜요? 왜 강했죠?”
진시월이 비밀이라는 것처럼 사제들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수련을 열심히 했거든.”
사제들이 짜증 난다는 것처럼 비난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진시월이 혀를 차면서 사제들을 꾸짖었다.
“진실을 말해줘도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사제 놈들아……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셋을 세겠다. 꼴찌가 청소를 도맡는 걸로 하자. 결승점은 매화동까지…… 셋, 둘, 하나.”
진시월의 말이 끝나자 사제들이 일제히 경공을 펼치면서 달려 나갔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대제자와 진시월이 말없이 걸었다. 그러자 대제자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사제, 정말 반반 싸움이었나? 어렸을 때.”
“아니요?”
“그럼?”
“형이랑 저는 한 번도 안 싸웠습니다. 대신 제가 어디 가서 맞고 들어오면 형이 나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골탕을 먹이거나 팰 수 있으면 패거나 그랬습니다.”
진시월이 화산을 떠나고 있을 진소한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형입니다.”
진소한
특이한 복장을 입은 젊은 사내가 이마가 툭 튀어나온 고수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우리, 대막(大漠)에서 왔다.”
“대막 어디?”
“대막은 대막이다.”
구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통역도 말을 똑바로 못하네. 답답하게.”
“여기 말이 어렵다네.”
존댓말에 반말에 엉망진창이었다. 통역이 딱딱하고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이분, 새외제일인이시다. 광풍사(狂風沙)의 지존이신 하산 공자이시다.”
“아이구, 무섭네.”
구사가 묘하게 생긴 중년인을 바라봤다.
진소한에게 도전하겠다고 위령호로 찾아온 대막의 최고수였다.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일단 구사가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이 좀 커진 상태.
광풍사의 고수들이 위령제일루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전부 괴이한 월도를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그 수가 대략 삼십여 명이었다.
위령호가 사유지역이 아니었으니,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진소한은 위령호 지부를 만들어서 진홍도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게만 감시하고 있었다.
구사가 짐짓 근엄한 어조로 물었다.
“공자치곤 나이가 좀 있는 거 아닌가?”
“공자이시다.”
구사가 탁자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공자라 치자… 왜 왔는지 밝혀라. 내가 책임자다. 현월맹, 위령호 지부장 구사. 구사라고 말해. 유명한 사람이라고 전하고.”
통역이 너는 관심 없다는 것처럼 바로 대꾸했다.
“구사 지부장?”
“그래.”
“하산 공자는 대막의 최강자, 새외제일인. 여기 천하제일인, 만나러 왔다. 곤륜파도 이겼지요. 곤륜제일검, 박살 났습니다. 곤륜제일검이 최고다 하면서, 진소한 맹주 만나라 했습니다. 그가 제일이랍니다. 구사는 관심 없다.”
통역의 엉망진창 말투에 구사가 웃음을 참았다. 통역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소한이 이거니까.”
옆에 있는 하산 공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소한.”
구사가 엄지를 치켜들더니 통역의 말투를 따라면서 대꾸했다.
“그래. 최고시지. 그런데 맹주님 바쁘시다. 바빠.”
“바빠?”
“그래. 이 새끼야. 아무나 안 만나. 맹주님도 너희 놈들 관심 없으시다. 너희 사는 곳으로 정중하게 꺼져주세요. 통역해.”
하산 공자의 무공이 제법 강해 보이긴 했으나, 그간 도전자가 한둘이었던가.
진소한에겐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도전자들이 강하다고 한들, 대부분 광마의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진소한은 바빠서 이런 도전자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가끔, 위령호로 산책을 나온 진소한과 만나게 되면 붙잡혀서 실컷 잔소리, 비난, 꾸중, 놀림, 협박을 받다가 대부분 그냥 조용히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통역이 고집을 부렸다.
“바빠도, 만나야 해. 우리, 멀리서 왔기 때문에. 반드시. 무엇 때문에 바쁜지 알고 싶다. 왜냐하면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지.”
구사가 한숨을 내쉬면서 위령호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하이, 새끼들… 맹주님 바쁘다고. 육아… 육아 때문에 잠을 못 자. 압박, 고통, 술도 못 마셔. 불쌍한 분이다. 겨우 낮에 산책만 해. 산책도 마음이 편하질 않아. 여기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안절부절 집에 간다. 이해했어?”
통역이 되물었다.
“육아?”
구사가 두 손으로 아기를 어르는 시늉을 하면서 대꾸했다.
“그래. 육아… 아들내미. 응애, 응애. 키운다. 천하제일께서는 요새 똥 기저귀 가느라 바빠. 이해했어? 이 똥 덩어리 같은 놈들아. 귀찮게 하지 말라고. 경을 치니까.”
통역이 전달하자 하산이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구사의 말투 때문에 하산의 표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구사가 중얼거렸다.
“이 새끼들이 근데 겁도 없이… 정중히 대해주니까 자꾸 인상을 쓰고 있네. 얼굴 곱게 펴라…….”
통역이 구사의 말을 반쯤 알아듣더니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새끼? 새끼?”
“어, 그래. 아기 보느라 바빠. 아기가 새끼잖아. 좋게 말할 때 그냥 가라.”
하산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자, 통역이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 구사에게 말을 전했다.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진소한 등장한다. 그걸 원하는가? 이곳 사람들 죽이는 건 하산 공자에게 쉽다. 개미보다 쉽다.”
구사가 위령제일루의 탁자를 거칠게 두드렸다.
“이 새끼들아… 그러면 안 돼. 맹주님 화나시면 너희 수장된다. 수장이 뭔 뜻인지나 알아? 저기, 위령호 봐봐.”
구사가 손짓하자 하산 일행의 고개가 위령호로 돌아갔다.
구사가 말했다.
“풍덩, 이 새끼들아. 뒈진다고.”
하산이 살기를 머금은 눈으로 구사를 바라봤다. 지부장부터 죽여서 진소한을 불러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산이 노려보자, 구사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이인자를 소개해주마. 좌호법! 천하제일장! 주먹 완전 강해. 하산 공자 흠씬 두드려 팰 수 있다. 그걸 원해?”
통역의 말을 들은 하산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신다. 그놈부터 위령호에 풍덩 빠트리겠다. 그럼 진소한, 어쩔 수 없이 나올 거니까.”
구사가 한숨을 내쉬더니 대기하고 있는 수하를 불렀다.
“신월단주.”
지난날 구사에게 두드려 맞았던 신월단주가 공손하게 대꾸했다.
“예, 지부장님.”
“녹원루에 가서 좌호법 어르신 좀 모셔와. 위령제일루에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고. 대막제일인이라 전해 드려. 곤륜제일검도 꺾은 놈이라고 말씀드리면 오실 것이다.”
“알겠습니다.”
구사가 통역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기다려. 너넨 이제 맞아 죽는다. 우리 현월맹 좌호법, 성질 나쁘다. 통역해.”
통역이 하산 공자에게 말을 전하자, 하산 공자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산 공자께서 이르기를, 자신의 성질이 더 나쁘다 한다. 달리 광풍이 아니다. 알았니?”
구사가 손가락을 이리저리 저었다.
“아, 아니야. 우리 좌호법 형님에겐 못 당해. 성격, 개 같아. 개. 왈왈! 이 개새끼들아, 알아들었어? 전해.”
통역이 구사를 노려봤다.
뭔가 욕을 하는 거 같긴 한데 자신들에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 실로 애매했다.
통역이 말을 전하고 대답을 듣더니 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는 귀여울 뿐이다. 하산 공자에겐 상대가 안 된다.”
“하, 이 새끼들 말이 안 통하네.”
드디어 통역이 인상을 쓰면서 구사를 노려봤다.
“새끼는 욕이다. 하지 마라. 욕은 통역, 일부러 안 하고 있다. 구사 지부장… 경고한다.”
구사가 눈을 부라리면서 통역을 노려봤다.
“이 새끼가 협박을… 죽고 싶어?”
통역이 씨익 웃으면서 구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구사 지부장, 너부터 위령호에 담가줄까? 하산 공자께서 묻는다.”
구사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대꾸했다.
“나 수영 겁나 잘한다고 전해. 수상비(水上飛)도 할 줄 알아서 위령호 제비라고 불린다고 전해.”
이 뜬금없는 대꾸를 통역이 그대로 전하자, 하산 공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통역도 함께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구사에게 말했다.
“하산께서 지부장 너 재미있는 놈이라 하신다. 웃겨서 살려주시겠다고 하신다. 네가 수상비라니 개가 웃을 일이라 하셨다.”
“뭐 이 새끼야? 갑자기 방언이 터졌나. 청산유수네.”
구사가 못생긴 얼굴로 노려보자, 하산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구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웃어?”
이제는 통역도 웃으면서 말했다.
“대막에선 웃기는 놈, 높이 평가한다. 하산 공자께서 웃으셨으니 그 값으로 살려준다. 너 얼굴도 웃기다고 하신다.”
구사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위령호에서는 이런 얼굴이 먹힌다. 내가 위령호에서 둘째가는 미남이다. 전해.”
통역이 전달하자, 하산이 안 믿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하산 공자가 통역을 툭 치면서 말하자, 통역이 구사에게 말했다.
“너, 웃겨서, 구사일생이란다.”
구사가 놀란 표정으로 하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와… 이 새끼, 제갈량 뺨치네. 그거 내 별호야. 통역해.”
하산이 구사를 향해 엄지를 들더니 어색한 말투로 직접 말했다.
“구사일생.”
꽤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내공이 담긴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다.
“구사일생?”
구사가 살기를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하산과 통역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도착한 광마가 구사를 노려봤다. 어찌나 빨리 왔는지 광마의 뒤로 한줄기 광풍이 불고 있었다.
구사가 화들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섰다.
“아이, 깜짝이야. 오셨습니까?”
광마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놈이야? 주둥이를 찢어버릴까 보다.”
구사가 하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새끼요. 형님. 손 좀 봐주십시오.”
광마가 하산을 위아래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야? 어디서 왔어? 느끼하게 생겨 가지고.”
“생긴 건 이래도 대막제일인이랍니다. 맹주님에게 도전하려고 온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신월단주를 녹원루에 보냈었는데 바깥에 계셨었군요.”
“맹주랑 산책 중이었다.”
“엇! 맹주님 탈출하셨습니까?”
“저기 있잖아. 곧 들어갈 거다.”
구사가 바라보자, 진소한이 정말 위령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산책을 하다가 광마가 구사일생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경공을 펼쳐서 다가온 상황이었다.
진소한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자, 구사가 통역에게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야, 이제 공손히 말해. 분명히 얘기했다. 공손하게 통역해라. 목숨 걸고 통역해라.”
통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전하자, 하산이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광마를 가리켰다.
통역이 말을 전했다.
“너는 누구시냐 묻습니다. 강해 보이신답니다.”
광마가 팔짱을 낀 채로 생각에 잠겼다. 광마라고 소개하자니 여전히 떨떠름했다.
“너? 예의가 없네. 이것들이.”
구사가 광마를 소개했다.
“너가 아니다. 좌호법 일생 어르신이다. 일생… 일생이시다. 너라고 하지 마.”
통역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산에게 속삭였다.
“현월맹, 좌호법, 일생.”
그러자 하산도 조금 놀라더니 손가락으로 구사와 광마를 번갈아서 지목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구사일생?”
광마가 욕지거리를 날리면서 움직였다.
“이 개새끼가!”
“하압!”
화들짝 놀란 하산이 기합과 동시에 쌍장을 교차하더니 날아오는 광마의 앞발차기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하산의 신형이 위령제일루의 지붕을 뚫고 솟구치더니 위령호의 출렁이는 수면까지 날아갔다가 풍덩 소리와 함께 빠졌다.
위령호를 바라보고 있던 진소한이 하늘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구사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도망치자, 광마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했다.
“거기 안 서!”
“아, 예. 형님.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광마가 한방에 하산을 날려버리자, 통역이 바들바들 떨면서 광마를 바라봤다.
광마가 통역에게 말했다.
“야, 통역.”
“예? 예.”
광마가 통역의 눈앞에서 주먹을 쥐자, 빠드득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막 놈들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라. 오면 다 쳐 죽인다고 해. 알겠어?”
“예.”
“꺼져.”
통역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기 중인 하산의 수하들에게 무어라 외쳤다. 수하들은 이미 물에 빠진 하산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토해내면서 겨우 위령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하산 옆에 진소한이 서 있었다.
진소한이 혀를 차면서 하산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좀 도와줘라. 죽겠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있던 하산이 바닥에 잔뜩 마신 물을 게워내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로 구경하던 진소한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구사에게 물었다.
“얘네, 뭐 하는 놈들이냐?”
구사가 두리번거리다가 대꾸했다.
“맹주님한테 도전하러 왔다는데요?”
“나한테?”
“예.”
진소한이 가슴을 들썩이고 있는 하산에게 물었다.
“나한테 도전하러 왔어?”
통역이 대꾸했다.
“누구십니까?”
진소한이 통역을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내가 진소한인데.”
통역이 하산에게 말을 전하자, 핼쑥해진 하산이 무릎을 꿇은 채로 진소한을 올려다봤다. 일생이라는 자의 발차기 단 한방에 졌다. 그런데 진소한이 멀쩡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소름이 돋고 오금이 저릴 수밖에.
하산이 어눌한 어조로 물었다.
“진소한 맹주님?”
진소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먼 곳에서 찾아온 것 같으니 내가 특별히 도전을 받아주마.”
진소한이 주섬주섬 팔소매를 걷자, 하산이 공손하게 대꾸했다.
“살려주세요.”
진소한이 한숨을 내쉬더니 하산의 머리통을 한 대 갈기면서 말했다.
“가… 이 새끼야. 왜 왔어?”
진소한이 다시 뒷짐을 지더니 산책을 이어나갔다. 광마가 옆에 달라붙어서 하산 일행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말했다.
“미친 새끼들, 나보고 구사일생이라고.”
광마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다. 진소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광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오랜만에 한 번 붙자. 소한아.”
“좌호법.”
“왜?”
“내가 어린 아들에게 어디 눈이라도 탱탱 부은 모습을 보여줘야겠어? 사람이 왜 그래? 인간이 되라. 한번 치고받고 할까? 하련이가 무슨 일이냐면서 놀라고… 막 아들내미 울고. 사부님들 무슨 일이냐고 뛰쳐나오고. 사단이 벌어져야 인간이 될래?”
“소한아.”
“왜.”
“졌다. 내가.”
“알면 됐어.”
진소한과 광마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산책을 이어나갔다. 광마가 물었다.
“천하제일이 어렵더냐. 아들 키우는 게 어렵더냐.”
“후자가 더 어렵지. 내가 그래서 요즘 구사랑 좌호법 배필 좀 알아보고 있는데… 두 사람도 장가가야지.”
“닥쳐라.”
구사의 눈에 진소한과 광마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진소한의 목소리가 이제 작게 들렸다.
“알아만 보고 있다고. 성사된 게 아니라… 둘이 평생 같이 살든가 그럼.”
이어서 구사의 눈에 진소한이 먼저 도망치고 그 뒤를 광마가 뒤쫓고 있었다. 경공이 하도 빨라서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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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객잔에서 목을 축인 다음에 위령호로 복귀하려던 구사가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탁자를 두드렸다.
“이보시오.”
손님들이 구사를 바라보자, 구사가 말했다.
“고금제일인이 누구인지 다투고 계신 거 같은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오.”
“오, 들어봅시다.”
“실례지만 현월맹의 위령단주가 아니십니까?”
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쩐지 낯이 익었습니다.”
“에이, 단주께서는 당연히 진소한 맹주님이 고금제일인이라 생각하시겠지요. 형평성이 없는 의견입니다.”
구사가 미소를 지었다.
“진소한 맹주님은 전혀 다른 분이외다. 고금제일인보다 더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싶소만.”
“어떤 면에서요?”
구사가 특유의 손동작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구사가 진소한 맹주님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안다 할 수 있소. 가까이서 모셨고, 지금도 종종 뵙고 있으니까.”
진소한을 떠올리던 구사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진소한 맹주님은…… 본래 천양의 고아셨지…….”
문득 웃음기가 사라진 구사가 저도 모르게 진소한의 별호를 하나하나 또박또박 읊기 시작했다.
천양의 고아.
칼춤 추던 꼬마.
몽아.
현월단주.
도객.
열혈남아.
독마와 의선의 제자.
만독불침의 사내.
사대악인.
협객.
무당검선의 제자.
두주불사.
요마의 목을 꺾고, 색마를 찢어 죽인 사내.
무패의 강호인.
진홍도주.
마교의 적.
마도의 적.
쌍월의 주인.
위여설 장문인의 후견인.
꽃놀이패의 수장.
당가의 사위.
살수들의 살수.
현월맹주.
흑도 그 자체.
화산제일검의 형제.
악인들의 악인.
흑도제일인.
천하제일악인.
천하제일인.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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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미소를 짓더니 수많은 별호를 가진 사내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끝마쳤다.
“진소한.”
《칼에 취한 밤을 걷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