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46)
제 555화
145화. 전조(16)
론을 제외하면 진은 현재 검황성 진영에서 가장 먼 사거리를 보유한 무인이었다.
뇌기에 휩싸인 광속 찌르기는 2형의 화염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았다. 맹렬히 나아가는 검기가 2형의 화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룬 문자와 선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진이 모두가 인정하는 ‘위대한 무인’의 반열에 오르기 전이었다면, 그는 이런 일을 행하기 전에 많은 의심과 검증을 요구받았을 것이며, 그래서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이 2형의 약점을 알고 있는지, 왜 그 근거 없는 말을 따라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면 되었다. 진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어준 자들을 실망하게 만든 적이 없으니까.
룬 문자와 선을 베고 있는 바멀 연합과 검성들은 그때마다 2형의 화염이 작아지고 옅어지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완벽한 조화에서 비롯된 파해였다.
아군 전체를 보호하며 띄울 수 있는 론의 무형검풍, 진의 마법적 능력과 해제식, 무인 중의 무인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번 파해는 성공할 수 없었다. 해제식을 알고 있다 한들, 이 끔찍한 화염 속에서 마력을 뿌리고,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진 경에게는…… 승리를 부르는 힘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힘이.’
‘이러니 주군을 모시지 않을 수가 있나!’
진과 바멀 연합, 검성이 무형검풍에 뜬 채 2형을 막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숭고한 느낌으로 가득하기도 했다.
굴하지 않기 위한, 꺾이지 않기 위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처절하고 순수한 사투는 늘 그런 법이었다.
그렇기에 지플에 맞서는 이들은 2형의 악독한 화염 속에서도, 삶과 죽음이 초마다 얼굴을 들이미는 전투 속에서도, 팔이 끊어져라 검을 휘두르고 악을 쓰면서도.
내면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큽……!”
켈리악이 목구멍으로 치미는 열기를 삼키며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엔 핏발이 섰고, 코로 흐르는 핏방울들이 수염을 붉게 적셨다.
“가주!”
옥타비아가 소리쳤다.
시론도, 론도 아닌. 진 룬칸델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가주의 피를 보게 했다는 사실은 직접 보고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켈리악은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역류 반응과 달리, 흐로티를 쥔 그의 손은 전혀 떨리지 않고 있었다.
“히스터가 2형의 해제식을 알려준 모양이다. 히스터, 지독하게도 끈질긴 친구들이야…….”
켈리악은 역류 반응이 왔음에도 차분하게 2형의 마력을 회수하고 있었다.
그는 ‘마력 역류’라는 마법사의 한계를 이미 한참 전에 벗어났다.
신체적인 타격은 있을지 몰라도, 역류 때문에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더 이상 켈리악 지플에게 없는 일인 것이다. 그건 마신석의 힘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 켈리악 지플이 달성한 업적이었다.
“옥타비아, 다시 길을 열겠다. 내가 론 하이란에게 집중할 수 있게, 자네가 성가신 것들을 맡아라.”
“알겠습니다.”
켈리악의 두 눈이 시퍼런 청화로 물들었다. 청화의 마안, 과거 뮤론 지플이 사용했던 지플의 비전 마법.
당연하게도 그 위력은 뮤론의 마법과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의 왼손에 또 다른 화염이 맺혔고, 흐로티는 시퍼런 뇌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켈리악은 세 가지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는 ‘초동시 영창’의 영역도 넘어섰다. 아직 회수가 끝나지 않은 2형까지, 그는 네 개의 대마법을 동시에 펼치고 있었다.
청화의 마안
광뇌狂雷
멸살화염옥 – 켈리악 지플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2형
그중 2형은 빠르게 회수되며 지플의 빙결계 비전 마법, ‘서리지옥’으로 치환되는 모습이었다. 그 네 개의 마법은 하나하나가 2형에 버금가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총 마력량은 2형의 세 배에 달하니, 론이 견뎌야 할 마력의 무게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늘에선 미친 듯이 뇌전이 떨어졌고, 사라진 2형의 불은 켈리악 지플이 개량한 멸살화염옥이 대신했으며, 얼어붙은 허공에선 차가운 폭음이 들려왔고,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푸른 불꽃이 피었다.
그리고 전장 가득 내려앉았던 무형검기의 진행이 느려졌다. 론의 검기가 켈리악의 마법들에 가로막혀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무형검기를 타고 있던 무인들의 비행은 아슬아슬해졌다. 땅을 밟은 듯 단단하던 무게 중심이 휘청였고, 사방에서 화기와 냉기, 뇌기가 그들을 덮쳐댔다.
켈리악 지플의 힘은 그들이 알고 있던 마법이라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마법보다는 차라리 거스를 수 없는 재앙에 더욱 가깝다. 일행은 이를 악물며, 폭탄을 밟는 심정으로 안전한 무형검기를 찾아야 했다.
난사된 마법으로 휘감긴 허공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서늘한 땀방울이 등줄기를 적셨다.
얼어붙은 무형검기를 밟으면 발목이 잘릴 듯 시렸고, 다시 디딜 곳을 찾으면 두 가지 화염이 온몸을 압박해왔다.
몰아치는 광뇌는 너무나 쉽게 그들의 보호막을 찢어버렸고, 검으로 쳐내면 손목이 터질 것 같았다.
론이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켈리악 지플은 명백히 세계제이의 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일행이 그와 싸우는 ‘느낌’이라도 낼 수 있는 것은, 론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진은 새로운 마법들의 해제식을 알지 못했다.
행여 알더라도 이 상태로는 풀 수 없었다. 순수한 마법적 성취만을 놓고 보면, 분명 켈리악은 진이 이룬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진과 일행의 투지를 꺾지는 않았다.
다만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저 마법의 정점에게 다시 타격을 줄 수 있을지,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 진에게 한 방 먹었다고 그냥 꺾이면 지플의 가주라 할 수 없지. 안 그런가, 켈리악.”
론은 하늘에서 분투하는 이들과 전혀 다른 영역에 서 있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처럼 가슴속이 심란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힘과 힘의 정면 대결을 펼치면 되는 문제였다.
론은 옥타비아의 함선이 검황성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켈리악이 옥타비아가 바멀 연합과 검성을 상대하도록 맡겼듯, 이제는 론도 그들에게 옥타비아를 맡겨야 했다.
각자 어울리는 상대에게 집중하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켈리악, 함대, 용과 론.
옥타비아, 망령대와 바멀 연합, 검성.
전장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나뉘고 있었다. 옥타비아가 가까워질수록 론은 아군을 보호하는 무형검풍을 조금씩 줄여나갔고, 켈리악도 바멀 연합과 검성이 멀어질수록 옥타비아의 침투를 돕는 마력을 축소시켰다.
이윽고 켈리악과 론이 자신의 모든 힘을 서로에게만 쏟게 되기까지는 채 3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쯤 진 일행과 옥타비아의 함선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두 거인의 격돌을 피해 지상으로, 검황성 앞의 평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그 압도적인 전장의 폭풍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크드드득-!
옥타비아의 함선이 추락하듯 지상에 착지했다. 검기와 마법에 휩쓸렸는지라 이미 반파되어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마저도 옥타비아와 진 망령대가 필사적으로 보호막을 펼친 결과였다. 그들은 진 일행에 비해 비행 거리가 훨씬 길었고, 그건 곧 그만큼 더 두 초인의 힘을 견뎌야 했다는 뜻이었다.
“진 룬칸델…….”
어둡고 낮은 목소리, 진을 바라보는 옥타비아의 눈동자엔 지독한 살의가 배어 있었다.
망령대들의 후드 너머로도 온통 살기가 진동을 했다. 그들은 모두 진 때문에 일원을 잃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옥타비아 지플.”
“베라딘의 섬에서 네놈을 살려 보낸 것이 이렇게까지 성가신 문제로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옥타비아는 그날, 무라칸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룬칸델이 우릴 꺾고 세상의 왕좌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천 년 전, 그대의 옛 계약자가 남긴 교훈을 잊었나 보군.
-[푸흐흐…… 크하하! 누가 지상의 왕이 되는 것이 룬칸델 가문이라고 했더냐. 나는 지금 내 계약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네놈들에겐 오늘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조차 모르고 떠들어대는구나.]
그때도.
옥타비아는 룬칸델이 아닌, 진 룬칸델이 지상의 패자가 되리라는 그 허황한 이야기를 왜인지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독히도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더러운 직감은 지금도 옥타비아의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삶을 살아오며 이보다 더 불길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체 왜?’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베라딘의 별장에서 진을 죽이지 못한 게 1798년 초의 일이었다. 지금은 1800년 4월이니, 그때 이후 시간은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진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고, 그야말로 거물이 되었으며 이제는 전쟁에서 자신과 직접 맞서고 있었다. 겨우 2년 만에…….
“우선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마. 진 룬칸델, 너는 미칠 듯이 탐이 나고 소름 돋도록 놀라운 인간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명이 길기도 하지…… 이 나와 헤도 경을 만나고도 살아남았으니.”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바멀 연합과 검성들은 명백히 옥타비아와 망령대보다 전력이 떨어진다.
지플의 2인자가 직접 이끄는, 서른 명의 진 망령대는 흑기사를 포함한 룬칸델의 1군이 모여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검성들이 패왕검이라는 봉인기를 펼치지 않았다면, 애초에 승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왕군림검을 펼친다 하더라도 승산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밀리면…… 가문도 계속 관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의 생각대로, 로사는 전투의 흐름을 읽으며 진이 처한 상황을 유추하고 있었다.
‘막내의 전력으로는 옥타비아와 망령대를 감당할 수 없다. 비궁주가 참전할 것인가? 그 여자가 나서지 않으면, 흑기사들을 보내주어야겠군.’
지플과 차후 협상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전면전에 돌입하더라도, 지금 진을 잃어서는 안 된다. 로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은 가문에 기대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명왕군림검이라는 변수를 극한까지 끌어내 옥타비아를 저지하는 그림을 그렸다.
승산이 낮다지만, 없는 것은 결코 아니기에. 그런 낮은 확률의 승리를 지금껏 수도 없이 해왔기에.
‘어머니가 끼어들면, 단테의 생존 가능성은 아예 사라지게 된다. 가문은 하얀 돌을 파괴하거나 획득하기 위해 여기 있을 뿐이지, 그 녀석의 목숨 같은 건 계산에 전혀 없어.’
무엇보다도 그게 중요했다.
이미 친구, 단테는 ‘돌아올 수 없는’ 상태에 놓였을지도 모르나. 진은 그를 향한 끈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변치 않을 것이다.
옥타비아는 그런 진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친구를 살리고 싶겠지. 하지만 네 가문이 나서면 그는 반드시 죽어. 차라리 우리에게 넘겼다면, 너는 친구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주께서 말한 8할의 확률로.”
“룬칸델이 나 하나를 살리자고 나설 것 같나, 옥타비아 지플.”
“반드시. 이제 너는 룬칸델에서 그런 위치가 되었다.”
“좋은 평가는 고맙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숨겨둔 힘이 있으니 그리 말하는 것일 테지. 기대하마, 모든 것을 보여다오.”
“그리고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내 가문이 나서지 않도록 비는 게 좋을 텐데, 살고 싶다면.”
옥타비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로사가 직접 나서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대의 수호룡이 보이지 않는군. 그에게도 갚아줄 것이 있…….”
돌연 옥타비아가 말을 끊었다.
켈리악의 마법과 론의 검이 미친 듯이 격돌하는 하늘 위로, 별안간 두 개의 검은 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년 전에도 그와 똑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꼬마!]무라칸.
[진.]그리고 미샤.
솔더렛의 계약자를 위한 두 수호룡들이, 진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옥타비아는 끔찍한 불쾌감이 뇌리를 짓누르는 걸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