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96
“야단났네.”
호수 위로 솟아난 물의 거인을 바라보며 노아는 두통이 밀려옴을 느꼈다.
‘오러가 생각보다 많이 소모됐어. 이 이상은 위험한데.’
만상붕괴는 위력을 키우기 위해 붕괴 현상을 최대한 중첩시키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었다.
때문에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무형검을 밑 빠진 독에 들이붓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했다.
오로지 외부의 힘만으로 무형검을 만들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노아로서는 자신의 오러도 엄청나게 빨려들어 간다.
‘내 몸에는 아직 흡수하지 못한 영약의 오러가 남아 있어. 내가 가진 오러를 다 써버리면 이 오러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아직 흡수하지 못한 영약의 오러를 버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의 강체술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 이상 오러를 소모하면 그 선을 넘어버린다.
즉, 승의 묘리를 이용한 기술은 더 못 쓴다는 것.
다행히도 다른 기술은 그냥 영약의 오러를 갖다 쓰면 되니 괜찮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나서 만상붕괴를 먼저 써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위력은 큰데 통제가 안 된다. 그저 지금처럼 냅다 터뜨리는 게 전부.
다수에게 포위된 상태라면 모르겠으나 일대일에서는 효율이 좋지 않았다.
화력이 사방으로 퍼진 탓에 애꿎은 땅만 갈아엎었고, 펠릭스도 맞고 버텼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인 것.
쿠구구구!
만상붕괴의 여파로 날뛰는 오러를 진정시키고 있자니 상반신을 완성한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신(降神). 이번 싸움에서 이 기술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도 마이어 검술에 그런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희 집이 원래 큰 기술을 뻥뻥 날려대는 편이긴 했어도 그건 좀 너무하잖아.”
“수신과 그 파생기들은 애초에 대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기술이다. 대규모 전투를 상정한 기술이니 큰 건 당연한 거지.”
때문에 수신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기술임에도 전수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
전쟁처럼 극단적인 환경이 아님에야 쓸 일이 없었으니까.
“정도니 사도니 해도 결국에는 양쪽 다 비슷해지는 건가?”
원리는 달라도 결론은 정령태와 비슷한 기술이었다.
승을 배우며 그 묘리를 깨우친 노아에게는 꽤나 신선한 이야기인 것.
허나 감탄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라운드 종료를 노리고 있겠지? 도망가기 전에 끝내주마.”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물의 주먹이 노아를 향해 떨어졌다.
그림자가 사방을 뒤덮는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으나 노아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피할 수 없다.’
뇌명신을 이용해 도망쳐 봐야 곧 따라잡힌다.
가로세로 1km의 전장은 일대일을 하기엔 충분히 넓다고 생각했으나, 저런 거인이 날뛰기에는 그리 넓지도 않았다.
양팔을 뻗어서 스윽 휘저으면 끝이리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파지지직!
노아는 스파크를 튀기며 주먹을 향해 뛰어올랐다.
물의 표면을 밟고 거인의 팔을 타고 오른다.
펠릭스의 위치는 거인의 머리.
‘몸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감싸고 있는 물이 얇아지는 지점까지 달려간다.
펠릭스는 거인의 팔을 타고 오르는 노아를 바라보며 외쳤다.
“강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유를 눈치채지 못한 거냐!”
이만한 물을 조종하면서 굳이 인간의 형상을 한 이유.
그것은 거인의 형상으로 ‘검술’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콰아아아아!
근접전 도중 상대가 파고들어 격투전을 시도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 말은 반대로 그것에 대응하는 기술도 많다는 뜻.
반대쪽 손이 노아를 덮친다.
아무리 강체술이 강해도 수천 톤의 물에 휩쓸리고도 멀쩡할 순 없다.
그러나,
“펠릭스으으으!”
노아가 거인의 손등을 뚫고 튀어나온다.
상대의 오러가 지배하고 있는 물체라도 조종해 보인다.
지금의 숙련도로 탈취는 불가능해도 일부분의 제어를 끊어놓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순식간에 거인의 어깨까지 치달은 노아가 머리를 이루고 있는 물을 관통한다.
펠릭스는 거인의 몸 밖으로 튕겨 나왔다.
“역시 노아 네 녀석을 상대로 이런 기술은 안 먹히나.”
익숙하지도 않은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
노아가 이미 만상붕괴로 보여준 교훈을 자기도 반복했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디 끝장을 내보자!”
거인의 어깨 위에서 두 사람의 검이 격돌한다.
검이 충돌할 때마다 충격파로 대량의 물이 터져 나갔다.
터져 나간 물보라가 전장에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모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한 두 사람의 전투는 금세 막바지에 치달았다.
“으아아아아아!”
파아앙!
“……!”
격돌의 순간.
펠릭스는 노아의 발이 딛고 있는 물을 움직여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검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노아는 충돌로 몸이 허공에 떴다.
거인의 몸 밖으로 튕겨 나가는 노아.
펠릭스는 거인의 몸에 검을 박아 넣고 달리다 그 뒤를 쫓아 뛰어올랐다.
파앗!
“거신검(巨神劍) 반야(般若).”
거인의 몸을 이루던 물이 펠릭스의 검에 맺힌다.
수천 톤의 물로 이루어진 거검.
강신의 모든 힘을 일격에 쏟아붓는 펠릭스 최대 최강의 기술.
노아는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쫓아 거검을 휘두르려 하는 펠릭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화르륵!
암월에 불꽃이 휘감긴다.
‘엄밀히 말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기술은 만상붕괴겠지만…….’
그저 터뜨리는 수준의 숙련도로는 안 된다.
‘여기선 내가 제일 잘하는 기술로 간다.’
최대 최강을 상대하기 위한 최고 최선.
암월을 휘감은 불꽃이 검게 물든다.
흑염.
노아가 단순히 남의 속성변환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의 속성변환을 사용할 때의 증표.
흑아에 속성변환을 부여할 때만 발현되던 흑염이 여기에도 발현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군.’
한편 펠릭스 또한 흑염을 보고 노아가 하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검이 휘둘러졌다.
“흑암진천(黑暗振天).”
“태세범람(太世氾濫).”
흑염이 담긴 흑천과, 반야를 이용해 펼쳐지는 대범람.
불과 물이 휘감기며 세상을 뒤덮었다.
* * *
오필리아는 노아와는 반대편에서 로젤리아를 지나쳐 퀸으로 승급했다.
쌍둥이는 합류한 뒤 굳이 그녀를 쫓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많은 흑군을 잡으러 중앙으로 향했다.
덕분에 무리 없이 퀸으로 승급한 그녀는 율리우스와 합류할 수 있었다.
“이걸로 백은 두 룩과 킹만 남았군. 쌍둥이는 분명히 강력하지만 3:5의 구도다.”
흑의 왕인 율리우스는 특별히 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기물의 배분만으로 사람들을 조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처음부터 율리우스가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퀸으로 승급한 백의 폰이 하나 남아 있지만요.”
“그쪽은 펠릭스가 가지 않았나? 그 녀석을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텐데.”
“확실하진 않지만 저 폰이 제가 예상한 인물이 맞다면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경기는 킹이 잡히면 끝이니까. 저쪽 승부에서 누가 이기든 경기는 끝이야.”
아니스가 가이잭에게 집착한 시점에서 상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음 턴에 그들을 포함한 다섯 명이 동시에 백의 왕을 덮친다.
쌍둥이가 합류한다고 해도 고작 셋.
아무리 쌍둥이라도 같은 부동의 15인들끼리 이 인원 차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면 혹시 가고 싶은 건가?”
“……!”
“그렇다면 가도 된다. 3 : 4라도 충분해. 아니스는 내가 이길 수 있으니까. 어차피 나머지는 쌍둥이만 붙잡아주면 되는 역할이니 한 사람쯤 없어도 괜찮다.”
그리고 레지나의 라운드 종료 선언이 전해졌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라운드겠군. 전장의 현 상황은 이렇다.
승급한 퀸을 막아선 흑의 나이트가 전장에서 사라졌다.
노아가 이겼다는 뜻.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면 그냥 갔다 와. 물론 오기 전에 경기를 끝낼 거지만.”
“죄송합니다.”
“사과는 무슨. 왕이라고 해봐야 이벤트전일 뿐인데.”
“죄송합니다.”
오필리아는 율리우스에게 사과하고 노아를 향해 이동했다.
그녀 또한 승급으로 퀸이 된 몸.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곧 전투가 벌어졌던 칸에 도착한 오필리아는 그곳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헉 들이켰다.
“……아예 지형을 바꿔놨잖아?”
지도에 없던 호수의 기슭에는 물에 푹 젖은 펠릭스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노아는 그 옆에서 오필리아를 보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마 전투가 끝나고 물에 빠진 펠릭스를 건져낸 모양이었다.
“좀 쉬려고 했더니 15위님이 직접 찾아오실 줄이야.”
“그 상태로 나와 싸우겠다고?”
흑 팀인 오필리아는 분명히 노아의 적이다.
허나 저렇게 지친 상태로는 해봐야 안 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진심이었다.
“이기기만 하면 바로 부동의 15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래, 이기기만 한다면 말이지.”
노아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렇게 판단한 오필리아는 자신의 성련검인 넵튠을 꺼내 들었다.
창, 그중에서도 작살창에 가까운 형태인 넵튠은 성련검 중에서도 꽤나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너라면 분명 나에게 닿을 거라고 생각했어.”
오필리아는 넵튠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그녀의 검술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투검(投劍).
빙하를 꿰뚫고 해저 깊숙한 곳에 숨은 마수마저 잡아내는 투검술은 수십 킬로미터 밖의 동전도 저격하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파괴력과 정확도야말로 오필리아를 부동의 15인에 들게 한 장점.
‘랭킹전 시스템상에서는 살릴 수 없는 초장거리 전투법으로도 그만한 순위에 도달한 강자.’
전력을 다해도 넘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지친 상태로 이긴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
허나 지쳤다고 포기하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힘들 테니까 최대 파워로 한 번에 끝내줄게.”
“예?”
-!
음속을 초월한 투검에 검이 날아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컥!”
정신을 차렸을 때 노아는 넵튠과 함께 바위에 꿰여 있었다.
풀밭에 위치한 볕이 잘 드는 바위 위.
물에 젖어 차가워진 몸이 햇볕에 달궈진 바위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부동의 15인은 다음 기회에 도전해 봐.
전투 지역을 벗어난 장외패.
아무리 지쳐서 반응속도가 떨어졌다곤 해도 손도 못 써보고 당했다.
“하핫…….”
일말의 여지도 없는 깔끔한 패배에 노아는 그냥 편하게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옷이 말라갈 때 쯤, 백의 왕인 아니스가 쓰러지며 경기가 종료되었다.
* * *
“자, 그럼 경기도 끝났으니 랭킹 정산 결과를 확인해 볼까?”
경기가 끝나고 모든 참가자들이 모이자 레지나는 참가자들의 랭킹 리스트를 펼쳤다.
경기 중 각각의 승패에 따라 랭킹이 계속 변했기 때문에 최종 결과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노아도 마찬가지라 지금 자신의 랭킹이 정확히 몇 위인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마지막엔 오필리아 선배한테 졌으니까 랭킹이 떨어지진 않았겠네.’
상위 랭커의 랭킹전 방식은 랭킹이 높은 상대에게 졌을 때 손해가 없었다.
‘홀수라 흑팀이던 펠릭스가 분명 41위였으니…….’
펠릭스를 쓰러뜨린 자신은 적어도 41위.
혹시 펠릭스가 경기 중 랭킹을 더 올린 상태였으면 좀 더 높을 수도 있었다.
“일단 부동의 15인만 따지면 이렇게 되는군.”
1위 아슬란 (미참)
2위 알렌 (미참)
3위 율리우스
4위 아니스 → 베로니카
5위 밀리아 → 리나리아
6위 셰리
7위 가이잭
8위 테리
9위 비타
10위 페르난도 (미참)
11위 베로니카 → 아니스
12위 로젤리아
13위 리나리아 → 밀리아
14위 나이로비
15위 오필리아
“5위인 밀리아가 13위인 리나리아와 변경, 4위인 아니스가 11위인 베로니카와 변경인가. 생각보다는 변동사항이 없군.”
탈락하더라도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상대에게 지면 변동이 없다.
덕분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탈락하고 왕들이 직접 싸우는 지경까지 갔음에도 랭킹 변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쌍둥이 랭킹이 크게 벌어졌네?”
“밀리아는 나랑 리나가 같이 싸운 건데!”
“하지만 랭킹 정산은 처음부터 막타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셨거든요.”
“으으, 이러니까 누나랑 싸우긴 싫다니까! 모처럼 찾아온 랭킹 올릴 기회가……!”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랑 싸웠으면 가이잭이 다칠지도 모르잖아? 누나는 절대 그런 거 용납 못 해.”
“아니, 그러니까 좀!”
반응들은 다양했다.
허나 노아는 이어진 내용으로 인해 다른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스트에서 부동의 15인 바로 아래에 적힌 이름
16위 노아.
노아가 쓰러뜨린 것은 펠릭스뿐이니, 펠릭스가 그때 이미 16위를 쓰러뜨리고 자신이 16위가 된 상태였다는 뜻이었다.
아니스는 그 부분을 확인하고는 노아를 축하해 주었다.
“잘됐다.”
“예?”
“다음 학기면 아슬란과 알렌도 졸업이잖아. 두 명이 빠지면 자동으로 14위가 될 테니까.”
“흐음. 그러면 부동의 15인이라는 말도 이제 폐지인가? 13인이 되어 버렸네.”
“응? 노아도 속성변환을 쓸 수 있으니까 그냥 이어받으면 되지 않아?”
가이잭의 말에 아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펠릭스도 다음 학기 안에 17위까지 올려두면 내년에도 속성변환 사용자 15명이 딱 맞는데.”
“무슨 소리야 누나. 그거야 연말까지 걔가 올라오고 얘가 버텼을 때의 이야기지.”
“쟤네가 싸운 흔적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해? 확정인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
‘아…….’
그제야 노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상 지금.
그는 이미 새로운 15인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