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310)
가짜 용사 이야기-310화 (시즌3 완결)(310/310)
시즌 3 : 118화
“제군들은 이 전쟁의 끝을 안다. 그 끝에 누가 오고, 누가 어떻게 전쟁을 끝내는지 알지.”
마법대학 <델라이텐>의 봄은 창틀을 넘어 교실 속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봄의 비린내가 교실 깊숙이 스며들어, 어디서나 생명 태동의 향기가 자욱했다.
노교수는 마침내 두꺼운 역사서를 덮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들은 알지 못했다. 누가 오긴 하는 것인지, 어떻게 올 것인지, 그런 걸 무엇 하나 알지 못한 채 싸워왔다.”
싸워서, 그 길을 이어왔다.
싸워서, 그 길을 예비해왔다.
할 수 있던 기도란 ‘속히 끝을 보내 주시옵소서’밖에 없었지. 하지만 모두 그것만은 믿었다.
“이 보이지 않는 길 저 너머에, 끝이 있다는 것. 즉 삶의 싸움이란, 너희들이 받은 소명이란, 창세의 뜻을 끝으로 이어가기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다.”
“……!”
“평화의 시대가 되었고 심연은 진멸되었으나, 이런 세상에도 여전히 너희를 향한 창세의 뜻과 소명이 있으리라 믿는다.”
“……!”
“그러니 너희도 믿으라. 그 소명이 있고, 그 소명의 끝이 있단 걸 믿으라. 우리도 믿어서, 믿을 수 없는 시대였는데도 믿고 또 믿어서, 마침내 도달했으니. 너희의 소명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다. 모두,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창세의 빛과 함께 거닐기를.”
그렇게 수업을 마치려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노교수는 고개를 끄덕여 질문을 받았다.
“카밀라와 카이센, 두 영웅의 관계가 너무 안타깝단 생각만 듭니다. 헤어지는 순간에서야 서로의 진심을 깨닫게 된 것 아닌가요?”
그 질문은, 노교수를 전쟁 저편, 영원한 봄이 꽃피기 전의 날로 돌려놓았다.
– 검의 수평선을 완전히 넘어서고 나니 알겠더군요. 스승님께서 제게 전해주신 십문자도가, 대체 얼마나 큰 고뇌와 노력 속에서 완성된 건지…….
대영웅 샤릴리온.
그가 북부에서 막 엘디아 오메크(06)로 거듭났었던 날의 기억 속으로.
– 특이한 방식이기야 했지. 어릴 적의 카밀라는 그걸 편법을 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싫어했었지만 말이야. 단장님이 칭찬해준 뒤에는 발도 천재를 자칭하고 다녔지만.
– 정말 그러셨나요?
– 그래. 자칭 발도 천재야.
샤릴리온은 하하, 하고 웃었다.
메마른 웃음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흘리는, 웃음이라기보다는 웃음기를 띤 울음이었다.
샤릴리온은 손바닥 위에 놓인 아라다만텔의 칼날 파편(뤼카엘과의 결전 끝에 부러졌다 했다)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 그렇게, 모든 걸, 값없이 주셨는데, 근데, 그런데…….
하이 쿤 타르크를 베고.
마우나 로아를 베고.
옛 왕을 베고, 외우주를 베고, 옛 용사마저 벤…… 역사에 완전무결하게 기록된 대영웅은 입술을 짓씹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 저란 놈은, 어떻게, 그분한테 ‘스승님 감사합니다’ 같은 말 한 번 돌려드리지 못했을까요…….
아직, 유년기에 있던 그날처럼.
첫 전장에서 첫 살육을 행하고, 라미네아의 죽음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그날처럼.
– 카이센, 만약 카밀라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야. 아니, 그 녀석 성격이라면 오글거린다면서 정수리를 쥐어박았겠지만.
‘붉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카밀라는…… 살육의 나선 위에서 걷는 데 서서히 지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싸우다, 싸우고 또 싸우다 죽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삶 자체가 고통이란 것처럼.
– 그런 상황에 카밀라는 널 만난 거야, 카이센.
그때, 그 만남의 순간부터 카밀라는 다시 삶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대가 누구든 전력을 방출해 압도해 버리던 싸움에서, 싸움터에서의 세월 속에 쌓아 올린 관록으로 힘을 비축하는 싸움을 취하기 시작했다.
카밀라는 카이센을 가르칠 때 즐거워 보였다. 예전처럼 말이 많아졌고, 정말 가끔이지만 웃는 순간이 생겼다.
–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어…… 나는 네가 단장님의 아들인지 몰랐으니까.
아직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선명히 남은 기억이 하나 있었다.
카밀라의 절원 개발이었다.
수면 시간조차 줄여가며 카밀라는 발(發)에 시작과 끝을 둔, 신(新)절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절원이란 검의 기억.
그 기억이 성검에 새겨져서, 다음 계승자에게로 전해진다. 물론 그럴 자질과 기량이 충분할 때 말이다.
카밀라는 생각한 것이다.
십문자도의 정통 사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카이센이 절원에 닿는 방법을.
– 그때 비네사 님의 절원을 어떻게 잘 모방하다 보면 답이 나올 것 같긴 한데…….
그리고 사명을 마치고 죽게 되던 해에, 기어이 새 절원을 완성시키고 말았는데 카밀라는 그 아음속 참격에 대단히 만족해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 그 녀석, 만족해 줬으면 좋겠네.
그 개발 과정에 멋대로 동참해서, 옆에서 책을 읽던 노교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두 귀를 의심했다.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걸 느낀 순간, 헛웃음이 흘러나왔는데 그러자 카밀라가 발끈했던 것도 기억난다.
– 뭔데, 인마. 갑자기 왜 웃어?
뭐야, 이 녀석…….
혼잣말을 한 것조차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있던 건가.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 열성과 정성은 카이센에게 확실하게 계승되어, 그 뤼카엘을 쓰러뜨리게 된 것이다.
– 말씀해주신 그 과정에서 제가 한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 그렇지 않아, 카이센. 계속 카밀라 곁에 있어줬잖아. 그 참혹한 여름 속에서, 옆에 계속 남아서, 계속, 계속, 포기하지 않고…….
– 그건 제 복수를 위해─
– ─책에서 말하길,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해. 카밀라는 너를 가르치면서 자기를 가르치던 단장님의 마음을 알게 된 거야.
다시, 그날의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거야.
죽지 못해 살아가던 그 바보 녀석이,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어린 시절과 똑같이, 환하게, 투명하게, 맑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던 거야…….
–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도 말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마. 넌 말이야, 카이센, 카밀라가 사명의 마지막 때에 찾아낸 빛이란다.
고마워…….
정말로, 고맙다, 카이센…….
그 여름의 날, 그렇게, 내 친구에게 빛으로 찾아와 줘서…… 암흑에 잠겨가던 그 바보의 마음에 빛을 비춰줘서…….
“그리고 카이센…… 아니, 샤릴리온 또한 마지막 순간 카밀라와 똑같은 미소를 머금고 죽었다.”
아무리 사제지간이라지만 어떻게 마지막 미소까지 닮을 수 있던 것인지, 요한은 평생 그것이 궁금했다.
그 의문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 의문을 물어서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 모두 사명을 마치고 이곳이 아닌 저편, 하늘로 올라갔으니까.
“이후의 역사들은 자네들도 잘 아는 대로다. ‘붉은 여름’이 끝나고 창세력이 시작되었다. 이게 기원력의 끝이고, 마지막 전쟁사이다.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전쟁사가 되어 훗날에 잊히길 바란다.”
만약, 그 둘이 살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행복하게 잘 살아라.
우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해줬으니, 그렇게 말했을까?
“인간은, 필멸에 얽매여 순간만을 보며 살아간다.”
“……!”
“아무도 영원을 보지 못하니 전체(全體)를 볼 수 없지. 볼 수 없는데도, 순간을 살아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 덕분에 창세의 역사는 이렇게 마지막에 완성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
“이제 이 세상의 모든 가치는 이 새 시대에 마법으로 창세의 섭리를 전할 자네들의 몫이다.”
노교수는 탁자에 내려놓았던 안경을 잡았다.
백 살에 가깝게 늙어서, 악력이 헐거워진 손은 안경의 무게조차 버거운지 떨렸다.
“내 강의는 이걸로 끝이다. 내 삶의 마지막 강의를 자네들과 나눌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뻤다고 말하고 싶은 바다.”
반장 여학생이 벌떡 일어서며 “기립!”이라 외치자 마법대학의 생도들도 허리를 곧추세웠다.
근데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반장의 인사는 목 인사가 아니라 군대식 경례였으며, 다른 생도들도 그 동작을 엉성하지만 열정적으로 따라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잃어 가면서도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고 이 세상을 이렇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요한 교수님. 피와 땀과 눈물로 물려주신 이 봄을 소중히 일구고 가꿔서 다음 세대에 전하겠습니다.”
그 순수한 눈동자에, 그 명랑한 목소리에, 오래전에 죽은 친구의 모습이 포개어진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그 녀석도, 저렇게 경례했는데.
경례하는 자세가 곧고 목소리가 맑고 표정이 사랑스러워서…… 뭇 어른들을, 심지어 비네사 알터 르노드조차 당혹스럽게 만들었는데.
요한의 눈가가 묽게 젖었다.
낡은 안경알이 햇살을 튕겨내어 그 물기를 감춰주길 바랐다.
먼 옛날, 소년 시절부터 청년의 시절까지 해오고 또 해왔기에 몸에 각인된 절도와 기품으로 그 경례를 받았다.
“자네들 모두 이 행복한 세상에서 잘 살아줬으면 좋겠네. 감사 인사는 그걸로 충분해. 그 바보들도 똑같이 말할 것이네.”
프리퀄의 에필로그,
나, 당신과 같은 용사가 되어 (完)
[<하랄도니키>, 황금의 도시 <하랄도니키> 종점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승차권을 확인하시고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요한은 스승의 로브를 걸치고 지팡이를 짚으며 전철에 올라탔다.
<온 것들>의 기술력을 분석한 만병기장 할바론은 늙어 죽기 전에 이 땅에 전기의 시대를 선물하고 떠났다.
전기로 조명을 밝히고, 전기로 산들의 철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전철의 움직임은 증기기관차보다 빠르되 더 포근하고 고요했다.
요한은 삼등 객실에 올라탔다.
맞은편에 한 아낙이 어린 아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아이는 요한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안뇽하때요?”
아낙의 말을 따라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맑고 순박해서 요한은 웃으며 군것질거리를 주었다.
요한을 알아보는 자는 없었다.
단지 낡아빠지다 못해, 곰팡이 냄새를 은은하게 풍기는 시대착오적 마법사 로브를 입은 괴짜 노인에 불과하다.
요한은 그것이 만족스러웠다.
자신은 구시대, 피가 흘러 산천을 적시고 강을 이루어 바다로 향하던 시대의 마지막 잔재였다.
이 시대에는 피비린내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잊힘과 피비린내 없음이 만족스러웠다.
이제, 구시대의 어둠은 잊혀야 한다. 어떤 용사도 영웅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고요한 리듬으로 산맥을 가로지르는 차창 너머로, 따스한 하늘 아래로 산봉우리들은 누렇게 그을려 있었다.
문득, 불현듯, 느닷없이.
산하(山河)가 용암 속에서 불타 녹아내리고 화산재에 검게 침식된 환영이 그 위로 포개졌으나, 눈을 비비자 다행히도 사라져 있었다.
요한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의 모자(母子)는 칼날반도 북부의 한 역에서 하차했다. 내릴 때, 아이가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때요.”
“이때는 계세요, 라고 해야지.”
“안녕히 계때요.”
요한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모자를 배웅했다.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가 적확할 텐데…… 역시 아이들은 어른에게는 없는 감(感)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요한은 <하랄도니키>에서 내렸다.
황금의 시대를 주재했다는 광룡도 오주(五柱) 추기경도 황룡도 없어진 황금의 도시는 단지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이제 모든 싸움의 흔적이…….
용사도, 용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하늘의 구름 너머까지 뻗어나가 창세와 소통했던 법황청 건물은 함락의 날에 파괴되어 지금은 1ㆍ2층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광장은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성황이었다.
요한은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서 상선의 배표를 구매해 푸른 도시 <테르베노플>에 이르렀다. 먼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리암 용사 파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와, 혼자만 엄청 크다! 저게 샤릴리온이야?”
“엄마, 사람이 어떻게 저리 커? 무슨 거인도 아니고!”
“다 과장된 거지. 그래도 세상을 구해주신 영웅님인 건 진짜란다. 자,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용사 파티의 동상을 보러 온 사람들이 동상과 충혼비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나중에는…….
전쟁의 참상이 완전히 잊히면 저런 기도도 사라지겠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왔을 때 더 기뻐하게 되리라.
용사를 찾고 그리워한다는 건.
저들의 싸움이 헛됐다는 것으로 다시 세상에 난세가 찾아왔다는 것이 될 테니까.
‘카이센, 너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웃으며 죽은 것이겠지.’
요한은 충혼비를, 그 석면에 단 한 줄로 새겨진 ‘샤릴리온’이라는 글자를 대낮부터 심야까지 올려다보다가 그 앞에 꿇어앉았다.
정확히는…….
카밀라를 매장한 곳 앞에…….
이제는 평탄해져서 지세가 다른 지대와 다르지 않았지만 요한은 결코 잊지 않았고, 혹여 잊을까 봐 여기저기 기록해 두기도 했다.
무덤 앞에는 도라지꽃이 만개해 있었다. 영원한 봄이 꽃피워지면 무덤가에 도라지꽃을 심어달라는 것이 대영웅의 유언이었으므로.
세상 곳곳에서 모여든 도라지꽃은 세상 곳곳의 봄빛을 품고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꽃을 들여다보던 요한은 빙그레 웃었다.
“카밀라, 세상에 이제 정말 봄이 온 모양이야.”
단 한 사람.
평생, 한 사람.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진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했기에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욕심이 생기게 되더군.”
요한은 그 사랑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고 그 어떤 여자와도 사귀지 않았다.
그 가르침 또한 친애하는 스승에게서 받은 것.
델프레드 울프 블라도는 자신의 사랑을 평생 숨겼고, 죽는 그날까지도 숨겼다. 하지만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한 것이다.
요한은 그걸 보고 배웠다.
그리고 똑같은 어른이 되었고, 똑같은 마법사로서 이 전쟁의 마지막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품은 소망 또한 이토록 똑같은 것일까.
제자는 스승을 닮아가는 자.
그러니 카이센도 카밀라와, 카밀라를 넘어 단장님과 똑같은 삶을 산 것이겠지.
“너와 이런 시대에서 함께 늙어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봄의 달빛이 가득히 내리는 가운데, 늙은 대마법사는 그 말을 끝으로 편안히 눈을 감았다…….
마침내…….
삶의 끝에 도착한 ‘눈꽃의 대마법사’는, 먼저 죽은 친구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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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세상의 소리가 멎었다.
차갑고도 덧없는, 죽음의 한기가 전신을 장악한다 싶더니만 따스한 온기 속에서 시야가 열렸다.
‘아니……?’
요한은 극장에 앉아 있었다. 평생 동안 그리워한 장소였다.
아직, 세상에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단장님과 스승님과 카밀라와 함께 리스타 파티의 연극을 보러온 극장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관객석에 앉은 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암막이 드리워지는 무대 위에는 동료들 품에서 죽던 ‘대마법사 린’이 아니라 충혼비 앞에서 꿇어앉은 채 죽은 ‘대마법사 요한’, 즉 자신이 있었다.
“하암…… 진짜 좆도 재미없는데 대본은 또 좆나게 길어서 졸음 참느라 뒤지는 줄 알았다. 극본가 누구야? 덕분에 너무 잘 잤다고 면상에 감사 인사 좀 하게.”
“스승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좆까고 있네. 뒤질래, 이 상놈아? 내내 졸던 게 너지, 나냐! 이 개새야. 침 흘리면서 처자던 거 딱 맞춰 깨워 줬더니만.”
“크흠.”
불현듯 눈에 걸리는 습기가 무거웠다.
그 목소리, 떠나보내던 날부터 죽던 오늘날까지 사무치게 그리워한 그 목소리의 파문이 부서지면서 넓게 흔들렸다.
분명 어린 시절의 몸으로 돌아왔건만, 목소리의 발원지로 고개를 돌리는 동작 하나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야, 너 내가 존나 오래 기다린 거 알지? 가자. 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떤 목소리도 낼 수가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서서히 어두워지는 극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향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아련하고, 아늑하고, 아득한…… 태초의 빛의 품으로.
<가짜 용사 이야기>
시즌3, ‘Prequel : 검은 여름’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