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5)
먼치킨 길들이기 125화
벤자민은 세차게 떨리는 새파란 눈동자를 보며 차마 진실은 이야기해 주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울프만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습니다.”
“괜찮단다.”
벤자민과 울프만이 가엾은 토끼처럼 놀란 키네미아의 머리를 위로하듯 쓰다듬었다.
뭐가 괜찮다는 거죠?!
그때, 그 잠깐을 못 참고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허리를 끌어 제 품으로 당겼다. 에이얀은 가련하게 어깨를 떠는 키네미아를 안아 들고 일어섰다.
“그럼 얼추 이야기는 끝났으니, 저희는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울프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얄미운 놈. 얼른 사라지거라.”
이제 네 얼굴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데, 전음이 스치듯 들려왔다.
– 감사합니다, 스승님.
“……?!”
놀란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에이얀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울프만이 허-! 소리를 내자 벤자민이 물음표를 띄우며 그를 돌아보았다.
‘감사하다고?’
밉살맞은 녀석, 말로 할 것이지. 벤자민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울프만이 픽, 웃음을 흘렸다.
“저 녀석도 성장이란 걸 하는 모양이야.”
“예?”
그는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 벤자민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에 벤자민은 인상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고심하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것도 성장일까요?”
“음?”
벤자민이 ‘마탑의 리카샤께서 제국의 대공비가 되고 싶다고 하시잖습니까.’라면서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사랑의 열병인지, 염병인지에 무척 떫은 표정이었다.
“…….”
울프만은 무심결에 그의 마음에 깊게 공감하고 말았다.
* * *
에이얀이 키네미아를 곱게 내려놓은 곳은 마탑 내 에이얀의 방이었다.
키네미아는 왜 모두가 에이얀과 자신의 사이에 관해 다 알고 있는 건지, 자괴감에 빠진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곤 방 안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깔끔해졌네.’
일전에 어지러운 방에서 넘어질 뻔했던 날 이후로, 에이얀은 나름대로 방을 청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이얀을 따라 꽤 깔끔해진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선 키네미아가 넓은 공간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네. 왜 갑자기 거기서 그런 말을 꺼내 가지고는…….
키네미아가 부루퉁한 얼굴로 에이얀을 쏘아보는 그때였다.
잠시간 말이 없던 에이얀이 키네미아 앞으로 다가왔다.
“미아.”
“응.”
키네미아는 침대 중앙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제 옆자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에이얀이 그녀가 양보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얼간이 말인데…….”
그가 뜸을 들이자 키네미아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왜? 못 찾겠어?”
“살아 있어야 해?”
“응?”
‘설마 죽이려고?’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읽어 낸 에이얀이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 말을 이었다.
“죽었어.”
“죽어?!”
에이얀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시야가 방이 아니라 사역마의 시선으로 넘어갔다. 사역마는 워맥 자작저에서 사용인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의 마법에 의해 최면에 걸린 사용인은 질문에 답하는 중이었다.
에이얀이 사용인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살해당했어.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얼간이가 죽은 채로 발견된 날 밤에, 손목 안쪽에 문신이 있는 주술사를 봤다는데.”
“……주술사?”
“가문에서 정식으로 수사해 달라 청했지만 주술사 협회에서 발뺌했던 것 같아.”
키네미아가 미간을 구겼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한낱 자작에 비해 주술사 협회는 제국의 고위 귀족들을 등에 업은 채 어마어마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저택에 불이 나서 건물의 절반이 소진되는 바람에 증언 외에는 다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고. 저택을 복구 중인 모양인데, 쉽지 않아 보이네.”
“주술사와 원한 관계라도 있었던 거야?”
키네미아의 물음에 에이얀이 고개를 저었다.
사용인의 말에 의하면 전혀 짚이는 곳이 없다고 했다. 워맥 자작과 주술사는 연도 없고, 끈도 없었다. 사용인은 그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고 표현했다.
키네미아가 돌연 말을 잃었다.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진 키네미아에, 그가 그녀가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마법사로서 지금껏 숱한 고대 유물을 보았지만 이것의 기운은 확실히 묘했다. 숨을 죽이고 있는 것도 같고,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고대 유물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미아가 이걸 사용하기 위해 워맥 자작을 애타게 찾는 이유가 있을 텐데.’
이 고대 유물을 찾아 동굴로 움직였을 때, 키네미아는 이미 무언가 알고 있다는 내색을 보였었다.
그리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하나가 더 있었다. 에이얀은 등 뒤의 매트리스를 두 손으로 짚은 채 상체를 뒤로 기댔다.
그녀가 굳이 지금 고대 유물에 관해 알아보려 한다는 것.
당시라면 바로 워맥 자작에게 최면을 쓰든 협박을 하든 해서, 결과를 얻기 무척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키네미아는 그때가 아니라 지금 워맥 자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지금은 아는 것. 몇 가지 추론을 조합한 에이얀이 불쑥 물었다.
“이게 내 힘이랑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거야?”
“……!”
깜짝 놀란 키네미아가 눈을 굴렸다.
“어떻게 알았어?”
그가 둥글게 눈을 휘며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
눈치 빠른 거 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니 에이얀이 웃으며 말랑말랑한 볼을 검지로 꾹 눌렀다.
“그래서 뭔데, 미아. 동굴 안에서 뭐라도 들었어?”
으응,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피해 눈을 굴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내가 아직 제정신이란 걸 이해시킬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조차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미아?”
“으응?”
좌우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키네미아의 시선을 따라다니던 에이얀이 그녀의 목을 간지럽혔다. 키네미아가 꺅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몸을 받아 낸 그가 키네미아를 바로 세우고 눈을 지그시 마주했다.
“내가 알아야 하는 것만 말해 줘. 응?”
“……응.”
키네미아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계속 숨길 생각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 아니, 그렇게 들릴 건데.”
“괜찮으니까 말해 줘.”
“사실 내가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이거, 아주 오래전에 셀테어에게서 힘을 빼앗았던 초대 용사가 남긴 고대 유물이야.”
“용사?”
에이얀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묻자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최초로 제국을 연 사람이야. 내 힘도…… 아마 내 특별함의 근원이 그 용사인 것 같은데, 찾아봐도 기록이 전혀 없어. 누가 감추기라도 한 것처럼.”
키네미아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을 몇 가지 더 늘어놓았다.
그가 셀테어의 영혼과 힘을 분리했다는 것.
그리고 분리된 셀터어의 힘이 네게 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후에 음, 목을 울린 에이얀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거 전부, 꿈에서 그놈의 계시라도 받아서 알게 된 거야?”
용사를 그놈이라 지칭하는 에이얀의 표현력에 키네미아가 어설피 웃음을 지었다.
“비슷해. 꿈에서 본 건 맞아.”
꿈에서 계시처럼 뇌리에 박히긴 했으니까.
“예지몽인가…….”
에이얀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읊조리자, 키네미아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예지몽이라고 하기에는 전부 딱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어떤 선지자라도 미래를 정확하게 전부 읽어 내는 건 불가능해. 그건 신의 영역이지.”
“그래?”
“예지자들도 추상적이고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곤 하잖아.”
그가 ‘붉은 용이 하늘을 어지럽힌다.’는 육백여 년 전의 예언을 예로 들었다. 에이얀의 말에 따르면 예언자도 정확하게는 잘 몰라서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아하……. 키네미아가 눈매를 좁혔다. 그 사람도 꿈에서 갈수록 산 타는 망작을 읽었을까? 신비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랬구나.”
“응, 내가 읽은 기록상으로는.”
오, 키네미아가 눈을 빛내니 에이얀이 미소를 지었다.
“아, 에이얀. 그리고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
“응.”
그녀가 에이얀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네 힘을 가지려는 인물이 나타날 거야.”
에이얀은 멀뚱히 키네미아를 응시하더니 돌연 한 이름을 뱉어 냈다.
“벤자민?”
“뭐?!”
벤자민이 여기서 왜 나와? 키네미아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런 인물이 나타나려면 우선 내가 힘을 가졌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내가 셀테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너, 스승님, 그리고 벤자민. 만약 스승님이라면 그런 계약 마법을 걸지는 않았겠지.”
키네미아가 맹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 네 힘을 가지려는 사람이 벤자민이라는 거야?”
에이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벤자민이라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날 건드릴 시도도 못 해 볼 테니까.”
에이얀은 은연중에 벤자민을 폄하하며 생글생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