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9)
먼치킨 길들이기 99화
“아, 에버렛의 심장을 뵙습니다. 에버렛 공작님.”
줄리안 에버렛.
얼마 전, 작고한 선대 에버렛 공작의 뒤를 이은 에버렛 공작이 소년처럼 웃었다.
좀처럼 교류가 없던 인물이 말을 걸어오자 허링 후작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괘씸, 말입니까?”
줄리안은 면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허링 후작님께서 리온에게 어떤 고초를 겪으셨는지 저조차 잘 아는데 말입니다. 아, 물론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해 마세요.”
줄리안이 손을 내저었다.
“뭐, 저도 사내인데, 그런 오래전 일을 아직도 품고 있겠습니까…….”
오래전 일을 마음에 오래도록 품고 있던 허링 후작이 애써 무마하려 하자, 옆에 있던 변경백이 끼어들었다.
“이제 와 뭘 감추십니까. 허링 후작님께서 리온을 탐탁지 않아 하신다는 건 온 제국민들이 다 알 텐데.”
“어허, 말조심하십시오.”
줄리안이 그를 만류하니 변경백이 웃으며 술잔을 흔들며 말했다.
“어쨌든 대공녀께서 가진 게 돈뿐이라면 자금줄을 막는다든가…….”
“자금줄을요? 설마 혜민원 말씀이십니까?”
허링 후작이 놀라 되물었다. 신전에서 혜민원을 습격했다가 대신관이 갈렸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게다가 혜민원은 이제 로슬린 공작과 손을 잡은 채다. 명분 없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을 리가.
그러자 줄리안이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허링 후작님께서는 던전 관리국의 장과 각별한 사이 아니셨던가요? 친척?”
“아, 사돈입니다.”
던전 관리국의 국장은 허링 후작 부인의 언니로, 허링 후작과는 사돈 관계였다.
“그렇군요. 좋은 끈이 있으십니다, 허링 후작님.”
머리가 나쁜 허링 후작도 줄리안이 암시하는 바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연줄을 이용하란 뜻이겠지.
그러나 허링 후작은 그의 제안을 선뜻 받는 대신에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대공녀가 운용하고 있는 그 길드가, 흑야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소문이긴 했지만. 아예 이름까지 바꾸며 새로 등록한 데다가, 대공녀 개인 길드로 운용되는 바람에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변경백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으시다니. 허링 후작께서도 제법 순진한 부분이 있으십니다. 흑야는 절대 아닙니다. 저도 길드에 관심이 많아서 흑야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찾아봤었는데, 거- 이름이 뭐라더라.”
끙, 소리를 낸 그가 생각을 짜내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박수를 쳤다.
“키네미아 리온 요정님의 흑야? 이런 이름이었습니다. 그 흑야가 왜 그런 우스꽝스러운 길드명을 달고 있단 말입니까? 필시 흑야 흉내를 낸 가짜지요.”
“흐음?”
그러자 흥미가 생긴 듯 허링 후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짜가 판을 치면 제국에 누가 될 일이지요.”
* * *
최상급 던전 앞.
우스꽝스러운 길드명을 가진 흑야의 로우는 간단하게 몸을 푸는 중이었다.
제 주군은 매일 던전 공략에 나서는 게 흑야에게 무리가 아닐까 걱정스러워했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검을 쓰지 않는 무료한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에 로우와 크샨들이 기쁜 마음으로 공략에 나서려던 그때, 눈앞에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수장!”
혜민원에 남겨 두었던 다른 크샨이었다.
로우는 보통 흑야를 5개의 조로 나누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1명을 혜민원에 상주하도록 놔두었다.
그러니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그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던전 관리국의 직원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심상치 않은 상황에 로우가 미간을 좁혔다.
* * *
“오늘도 안 왔지?”
거울 앞에 앉은 키네미아가 고개를 들었다.
유모 바네사는 키네미아의 머리를 빗어 올려 주면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매일 뭘 그렇게 기다리세요?”
“응? 아, 결국 토벌은 우리 쪽에서 끝냈잖아. 그런데 폐하께서 통 서신을 보내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말이야.”
대공 성에는 ‘생각보다 마물이 많아 워맥 자작의 기사단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고 전해 두었다. 물론 기사단에게 세뇌도 그렇게 해 두었고.
‘고대 유물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나.’
키네미아가 생각에 잠기는데, 바네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가씨께서도 이제 슬슬 수도에 올라가는 건 어떠세요?”
“수도에?”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패키지가 아주 잘나간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범위를 좀 넓혀 보고 싶다고.”
“아, 응.”
이전에 준비하고 있었던 침술과 포션 패키지는 모험가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제 몸에 침 꽂는 걸 꺼리던 이들도 지금은 새벽부터 혜민원 분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후문이었다.
바네사가 키네미아의 머리를 묶어 주며 말했다.
“이참에 수도에 세운 혜민원 분점에서 다른 패키지를 시험해 보시고-”
“사교계도 나가고?”
키네미아가 다른 귀족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 잘 알고 있던 바네사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이제 마력 기계도 들여올 테니.’
마력 기계의 잠재적 구매자들은 전부 수도에 몰려 있을 터였다. 키네미아가 혀로 입천장을 두드려 똑, 소리를 냈다.
‘수도라…….’
워맥 자작의 방문 이후로, 마침 작위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던 차였다.
최종 보스를 잡아야 하는 주인공이니 뭐니 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 같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이니까.
‘이대로 미적거리면서 언제까지고 모욕당할 생각도 없고.’
키네미아가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먼저 치고 들어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지도…….’
언제까지 원한이 무섭다고 영지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내 상황도 달라졌으니, 선택지도 많고.’
이제는 귀족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을 포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던가.
비록 관계 점수는 남들보다 마이너스로 시작해야겠지만…….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치고 나가 볼까.”
“네……?”
똑똑.
바네사가 의아해하는 사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키네미아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자 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주군.”
“로우?”
그가 평소처럼 요정님이라 부르지 않자, 키네미아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던전 관리국에서 이제 저희 길드는 최상급 던전을 돌 수 없다고 합니다.”
“뭐?”
* * *
로우의 말에 따르면 사정은 이러했다.
새로운 형태의 마정석이 발견되고, 던전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던전 관리국에서는 운영 규정을 수정하기로 했다는 것.
각 길드는 각자 랭크에 맞는 던전을 공략해야만 하며, 현재 랭크가 높은 길드를 사칭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나니 사칭으로 밝혀질 시 던전 공략에 페널티를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키네미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런데 흑야는 S급 아니었어?”
“예, 그런데 길드명을 바꿔서 랭크가 내려갔습니다.”
“길드명을 바꿨다고?”
“예. ‘키네미아 리온 요정님의 흑야’로.”
“힉!”
지금까지 길드를 그저 흑야라고만 알고 있었던 키네미아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했을 줄은…….’
그녀는 이름 짓는 데 무척 힘들었다며 유순하게 웃는 로우를 일단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방침을 바꿨다고? 흑야를 노린 것처럼?’
랭크라고 해 봤자, 길드가 얼마나 강하고 믿을 만한지에 대한 척도로 쓰일 뿐이었다. 던전 관리국에서 이런 식으로 제한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지금처럼 마정석 수급이 절실할 때 던전 공략을 막아 버리다니…….
‘누군가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나?’
그럴 수 있지. 알아봐야겠지만. 의구심을 가진 채 키네미아는 다분히 귀족적으로 펜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깔끔한 글씨로 서신을 적기 시작했다.
[키네미아 리온 요정님의…….]이 부분을 쓸 때, 그녀는 밀려드는 수치심에 눈물을 글썽였다.
로우, 왜야? 꼭 이래야만 했어?
[……흑야라는 길드는, 이전 S급까지 올라가 있던 흑야 길드가 맞다. 랭크 제한을 풀어 주길 바란다.]다음 날.
던전 관리국에서 회신한 편지는 이러했다.
[던전을 돌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랭크를 올리거나, 사칭이 아니어야 한다. 이는 던전 관리국의 방침이다.던전 관리국에서는 길드, ‘키네미아 요정님의 흑야’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 전달할 생각이다.]
우리는 너희를 사칭으로 결론 짓고 있으며, 이제 아예 공략을 막아 버리겠다는 결론을 내리겠다는 의미가 코앞까지 느껴지는데.
키네미아가 깊게 숨을 내뱉은 후에 설렁줄을 당겼다. 대기하고 있던 하녀 리리네가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뭘 도와 드릴까요?”
“수도로 갈 준비를 해 줘.”
“수도로요?”
“던전 관리국의 국장을 만나러 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