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62)
EP.163)밤 # 4
163 – 낮과 밤 # 4
사실 드레이코 자매의 상태를 알게 된다면 당연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매의 몸은 하나.
영혼은 두 개.
만약 내가 언니인 미르나 드레이코와 약혼을 한 남자고.
마침내 결혼식까지 올렸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미르나 드레이코와 나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다. 합법적으로 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와 나르미 드레이코의 관계는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형부와 처제? 이게 만약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랬을 터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일 때의 이야기.
처제와 아내가 한 몸으로 합쳐져 있는 드레이코 영애로서 그들의 남편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이를 것이 분명할 터.
“음.”
내 질문을 이해한 것인지 나르미가 찻잔에 담긴 빨대를 빙글빙글 돌렸다. 덕분에 푸른 알콜 위로 이글거리는 불꽃이 뱀의 혀처럼 일렁이기를 잠시-.
“아무래도 나하고 언니도 그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눠봤었거든.”
“그렇겠죠. 당연히.”
“근데 사실 우리도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중혼의 형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일단 가장 그럴듯한 답은 그거야. 중혼!”
“중혼이라면, 중복으로 결혼을 한다는 소리죠?”
“그래! 드레이코 가문의 남편이 되려면 나도 언니도 한 사람과 동시에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확실히. 그게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일 터다. 나르미와 미르나. 두 여성의 머리로 생각해낸 방법이니까 당연하겠지. 다만 나르미는 쪼르륵 빨대로 알콜을 섭취하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어.”
“문제요?”
“나와 언니. 우리 둘 다 동시에 맘에 드는 배우자를 구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리고 그 배우자가 될 사람도 나와 언니를 공평하게 좋아해줘야만 해. 안 그럼 분명 문제가 생길 테니까.”
“과연 그렇겠네요.”
“하지만 그런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가 않아. 또, 나랑 언니의 이 기묘한 체질을 알면 다들 기이한 실험체 바라보듯 하는 사람들도 많고.”
드레이코 자매들의 마음이 확실히 이해가 됐다. 상대를 구하는 건 쉽지가 않았으리라.
이제 더 쉽지 않겠지. 왜냐하면 나르미는 모르겠지만 이미 드레이코 영애의 순결은 내가 가져갔으니까! 그 말은 내가 그러한 신랑감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신랑으로서 신부인 나르미와 미르나를 공평하게 사랑해줄 수 있을까?
이것은 문득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하렘을 관통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앞으로 내 하렘의 일원이 될 여성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줄 수 있는가.
하지만 사람인 이상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럼 나머지 여성들은 합심해서 그 여성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렘이라는 것도 쉽지가 않구만.
내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나르미가 말 했다.
“물론 굳이 그런 게 아니라도. 방법이 아주 없는 것만은 또 아냐.”
“방법요?”
“그래. 이건 금단의 영역. 비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지만. 태오, 너에게는 이야기 해줘도 상관없을 것 같아.”
슥슥.
고개를 두리번거린 나르미가 자신의 입가를 부채로 가리고 내게 고개를 슥 들이밀었다.
“우리 드레이코 가문의 최고위 강령주술 중에는 강신(降神)이라는 게 있어. 신내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신내림요?”
무속 신앙에서나 쓰일 법한 이야기에 내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드레이코 가문은 본디 동쪽의 패자. 원작의 설정 상 동쪽은 동양 쪽에 연관이 있었던가.
제령의 달인인 미르나가 검과 부적 그리고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도 다 그런 것에서 나온 이야기다.
나르미가 계속해서 말했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의 서재에서 비술서를 발견했거든. 그릇을 준비하고. 그 그릇에 영혼을 옮기는 강령술이었어.”
“그러니까, 영혼을 다른 몸에 빙의를 시킨다 이 말이군요?”
“그래, 빙의라고 봐도 좋겠네.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서적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나 언니 때문이 아닐까 싶어. 우리는 체질이 특별하잖아.”
“그걸 사용하면 나르미 님이나 미르나 님이 새로운 육신에 옮겨질 것이라는 거죠?”
“그래!”
과연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드레이코 가문은 본디 아주 오래전부터 흑마술과 강령술을 비롯한 영혼을 다루는 가계. 영혼을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술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솔로몬 왕의 대주술인 아르스 노바도 그런 식이 아닌가? 영혼이 깃든 주술을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해 사상과 인격을 개조하는 것이니.
어쩌면 솔로몬이 대주술을 만드는 것에 드레이코 가문이 협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정답이구만. 위대한 마술사들의 왕 솔로몬이라고 하여도 이렇게나 거대한 주술을 만듦에 있어서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렸던 듯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아르스 노바가 고위 강령주술 가미긴인가? 일리 있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나는 마왕 솔로몬이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스텔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솔로몬은 아끼던 님프가 죽자 그녀를 기리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눈물로 애도를 했다고 그랬다.
그러다가 그가 울음을 그친 순간.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반혼의 마법. 사자소생의 부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나.
나는 여기서 여러 퍼즐들이 연결되어 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왕 솔로몬이 드레이코 가문의 도움을 받아서 누군가의 영혼을 새로운 그릇에 집어넣으려고 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깨달은 정답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죽은 님프였겠지. 솔로몬은 님프를 부활시키려고 하거나, 혹은 빙의시키려고 했었다.
빙의라-.
나도 빙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꽤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착잡한 마음이 된다.
내가 이런 몸이 된 것도 혹시 무언가의 주술로 인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닐 것 같다.
누군가 지구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이성음, 즉 나의 영혼을 끌어다가 태오 가스펠의 몸에 빙의 시킨거지.
그렇게 침착한 사고를 하고 있으려니. 눈앞으로 글자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건 또 아닌가.
다른 가설을 세워보려는 그때 나르미가 말했다.
“하지만 뭐, 근데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 그릇을 준비하는 건 쉽지가 않으니까. 또 나와 언니 둘 중 누가 새로운 그릇으로 옮겨갈지 정하는 것도 어렵고.”
“확실히 그건 어려운 문제겠네요. 그릇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이 될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하지만 누가 자신의 몸을 바치려고 하겠어? 또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을 생각도 안 할 거야.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거든.”
“그렇군요.”
“또 영혼과 맞는 육신을 찾는 일도 쉽지 않을 거야. 내가 말하는 것이니까 확실해. 아마 많은 실험체들이 필요할 걸! 난 그런 일 못해.”
그렇게 말하는 나르미였으나, 나는 드레이코 가문의 영애가 미친 강령술사로서 2부 이야기의 악당으로 쓰러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미친 강령술사는 그릇을 찾고 있었지. 지금 나르미가 했던 이야기와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을 한다.
미르나와 나르미의 타락. 흑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오싹한 소름이 돋으며 그녀들을 잘 조율하는 게 좋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 *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지나서 새벽 세시를 향하고 있었다.
평일의 새벽 세시.
내일도 아침부터 일어나 할 일이 무척 많았던 나로서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깨어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한다는 게 사실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하루 종일 졸리겠구만.
하루 정도는 새벽 런닝을 재껴버릴까? 아냐, 엘가가 난리 피울 텐데.
그런 느낌으로 힘든 하루를 예상하고 있을 즈음 나르미가 기숙사가 보이는 산책로에서 산뜻하게 말을 걸어왔다.
“태오야, 오늘 고마웠어. 갑자기 불쑥 찾아가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솔직히 완전 민폐였지. 흐-.”
흐-하고 살짝 혀를 내미는 나르미. 마치 실수를 애교로 얼버무리려는 사춘기 소녀 같아서 풋풋하게 귀여웠다. 소량이지만 도수 높은 알콜을 마셨기 때문인지 얼굴이 꽤 붉다.
맴맴-.
즈즈즈-.
사방에서 풀벌레들이 울어대는 여름밤.
나르미가 말을 덧붙였다.
“부끄러운 이야긴데. 사실 나는 친구가 없거든. 이렇게 밤에 얘기할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태오 너에게 어리광 부린 것 같아서 좀 미안해지네.”
나르미의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고,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그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테지.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대체로 낮에 움직이고 밤에는 잠을 잘 테니까.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가씨로서 자라온 미르나에 비해 나르미는 자신이 고독한 외톨이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미르나는 반대로 말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르미 쪽을 더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모르겠구만. 이 자매들의 사이는 너무 긴밀해서 오히려 복잡하다.
나는 그녀의 방문 앞까지 잘 데려다 주었다.
이제 방문을 열고 잘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나르미는 어째선지 머뭇거리며 방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나는 또 해가 떠오르는 거. 못 보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모르고. 여름 볕에 빛나는 들판이나 꽃도 못 볼 거고….”
나르미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취한 탓에 감정이 싱숭생숭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걸 보고 싶어. 낮에만 판다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것도 먹어보고 싶고. 지하시장이 아니라 지상의 떠들썩한 5일장도 가보고 싶어.”
하고 싶은 것들을 읊으며 아쉬운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나르미. 밝고 명랑했던 나르미의 안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작은 어둠들이 도사리고 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하나 둘 싸여서 나르미가 악당이 되었던 걸지 모르겠다. 나르미의 정신건강을 생각해서 일단 위로를 좀 해주는 게 좋을까.
“그럼 또 언제 같이 놀러가죠.”
“낮에?”
“나르미 님도 원하시면 낮에 나오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언니랑 규칙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가 나르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래, 나도 하고 싶은 것 좀 해 볼거야-!”라고 명랑하게 외치는데.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용기를 얻은 것인지 나르미는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서서히 닫는데, 곧 자신의 얼굴만을 빼꼼 내민다.
“태오야, 오늘 고마웠어.”
“저도 덕분에 여러 가지 새로운 걸 알았는데요 뭐.”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는 뭐야?”
“글쎄요, 그건….”
내가 좋은 대답을 찾아 우물쭈물 할 때였다.
“흐응, 태오야, 그럼 다음에 또 봐.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주고. 알지?”
“알겠습니다.”
나와 나르미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 얼른 잠에 빠져들었던 다음 날. 졸린 몸을 이끌고 런닝을 향했던 나는 나를 지도감독 해주는 엘가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야, 어제 혹시 미르나랑 뭔 일 있었어?”
“미르나 님이랑요? 미르나 님이랑은 딱히….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보니까. 걔가 방에서 난리도 아니라서-.”
난리도 아니라니.
엘가의 말에 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런닝이 끝나고 허겁지겁 미르나와 나르미의 기숙사로 향하자 무언가 안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이건 분명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징조였다.
“미르나 님, 괜찮으십니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는데. 중요한 것은 방문이 아닌 그것 안으로 보이는 방 안의 상태였다.
“…미르나 아가씨?”
드레이코 영애만을 위한 화려한 기숙사.
그 넓은 방안은 온갖 유리파편으로 가득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깨진 유리들에 내 얼굴이 비춰지는 모습이 아찔하다.
그것은 창문과 거울 조각이었다.
그리고 미르나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자신의 손등과 주먹으로 거울을 깬 듯했다.
“이야, 방 안 꼴이 이게 다 뭐야?”
나를 뒤따라온 엘가가 방으로 들어와 주변을 향해 혀를 내두른다.
“전쟁터잖아.”
“당신들, 누가 멋대로 들어오라고 했죠?”
미르나가 전에 없이 서늘한 목소리로 내게 시선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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