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50)
EP.251)속의 새 # 6
251 – 새장 속의 새 # 6
이 드넓은 저택의 지하실에는 오팔을 위한 비밀 시설이 존재한다고 그랬다. 앙그마르의 관청에도 기록되지 않은 지하 3층이 있다고.
그곳은 사시사철 엄중한 보안으로 유지되며 외부인의 발걸음을 전혀 통용하지 않는 곳이라나.
당연히 그 이유는 벨호크 가문이 숨겨야만 하는 치부가 그 안에 잔뜩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실험실이야.”
스텔라는 지하 3층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실험실.
그 짧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에 21세기의 온갖 미디어 매체를 접해왔던 나는 단박에 이해가 됐다. 그러나 엘가는 상상력이 부족했는지 스텔라를 향해 되물었다.
“웬 실험실?”
“오팔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한 본거지라 이거야. 당연히 온갖 불법적인 것들이 가득 담겨 있는 범죄의 온상 같은 곳이고.”
내 머릿속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들이 온갖 비커와 수조 그리고 약물이 가득한 곳에서 오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악당들의 비밀 결사 같은 느낌이려나.
미르나가 묻는다.
“그렇지만 그 오팔 벨호크를 저희만으로 물리칠 수가 있을까요? 증거만을 확보해서 군대를 몰고 온다든지 하는 것은…?”
“할 수 있으면 내가 벌써 했을 거야. 세상 여기저기에 벨호크의 자금이 뿌려져 있어. 어디서든 정보가 새어나가기 마련이고 그럼 영영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어.”
스텔라 벨호크의 태도는 단호했다.
또 오팔의 존재가 바깥으로 알려지는 걸 꺼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이번 일을 비밀리에 처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지금 이것은 목숨이 달릴 지도 모르는 중요한 일.
그게 뭔지 꼭 물어봐야한다.
“오팔의 존재가 대대적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스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오빠는 영웅이야. 영광스럽게 죽었지. 그의 이야기는 솔로몬과 함께 끝났던 거야. 사람들의 희망이라구.”
“그게 거짓말이라 밝혀지는 것이 싫다 이겁니까?”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그런 것뿐만이 아니야. 이건 단순히 직감이지만…, 내 오빠가 민중들의 앞에 다시 서면 안 될 거라는 기분이 들어. 예감이지만….”
예감과 직감.
그 두루뭉술한 단어에 엘가는 쯧-혀를 찼다.
“겨우 그런 불확실한 것에 목숨을 걸으라고?”
그러나 나는 스텔라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오팔은 위대한 영웅으로 죽었다. 그가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금기를 깨트리고 마도에 타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앙그마르 국내가 적지 않게 혼란스러워질 터.
그럼 내란과 내전이 벌어질지 모르고 아이라가 폭군 여왕으로 각성을….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영웅으로서 죽어있는 게 옳다.
스텔라가 말했다.
“정말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일이야. 하지만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이 없었어. 기회는 단 한 번뿐일 테고 그에 걸 맞는 실력 있는 사람들을 몰래 모으기도 힘드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말이 떠오른다.
스텔라는 어렵게 포착한 기회에 매우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흥분해서 일을 진행하면 어떤 일을 해도 그르치기 마련이던데.
그래서 나는 그녀를 침착하게 만들 겸 가볍게 질문했다.
“오팔을 쓰러트릴 방법이나 계획은 있습니까? 그냥 막무가내로 들이 받았다간 오히려 저희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데요.”
심검이라는 것을 구사하는 요정 검사.
소드마스터라는 말로도 담을 수 없는 그릇일 터. 그런 자에게 우리들이 한꺼번에 덤벼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할 터다.
나는 엘가와 미르나가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랬다간 내 말랑한 요정의 감수성이 폭발하여 정말 가슴이 아플 것 같으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스텔라에게는 오랜 시간 세워둔 계획이 있는 듯했다.
“태오 군, 혹시 오팔을 만나 봤을 때.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니?”
“불이 꺼져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오팔은 마도공학 장치로 생명을 연장 중이거든.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술식이 담긴 고가품이지. 그게 없으면 잘 움직이지 못해.”
“아.”
그때서야 그의 기묘한 호흡법이 떠올랐다. 산소 호흡기를 얼굴에 달고 있는 것처럼 깊고 깊은 숨소리였지. 몸에 장치를 달고 있었던 것이구나.
“우리는 몰래 잠입해서 호흡기의 필터와 산소통들을 전부 불태우거나 소각시킬 거야. 가득 찬 필터가 대략 한 시간 지속되니까. 새로 장치를 교체하지 못하도록 한 시간만 시간을 끌면 돼.”
스텔라는 자신 혼자서 그를 십 분 정도 묶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하지만 실력 뛰어난 미르나와 엘가 그리고 내가 있다면 넉넉히 두 시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나.
다만.
나는 엘가에 대한 것은 전력에서 제외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엘가의 뱃속에는 작은 꿍꿍이 레오노르가 깃들어 있으니까.
그때 미르나가 먼저 말했다.
“그렇지만, 리오네스 영애는 이번 작전에서 빼는 것이 좋겠어요. 최악의 경우 저희 모두 당해버리면 사건이 은폐될지 모르는 일. 한 명 정도는 외부로 보내는 게 좋겠네요.”
미르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한 명 정도는 내보내두는 게 좋지.
엘가는 “왜 하필 내가?”라고 반문했다만 미르나에게 “그 이유는 리오네스 영애가 더 잘 알 텐데요?”라는 질문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
“쳇.”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빠져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안 것이겠지.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까. 물론 미르나는 그게 아직 강한 ‘악령’ 비슷한 것이라 알고 있지만.
“그럼 한 시간 반 기다릴 테니까. 바깥으로 소식이 없거나 문제가 크게 발생하면 내가 병사들을 몰고 올게. 그때 되면 조용히 해결할 수만도 없어.”
* * *
우리는 엘가의 더미를 만들었다. 엘가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운 것을 엘프들이 눈치 채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커다란 베개를 만들어놓고 미르나의 도움을 받아 머리칼 한 올을 뽑아서 베개에 잘 심어두었다.
미르나가 말했다.
“주술을 걸어두었으니 이불을 펼쳐보지 않는 이상 두 세 시간은 속일 수 있을 거에요. 충분하다는 말이죠.”
리오네스 가문의 영애가 자고 있는 곳을 열고 들어와 이불을 걷어볼 만큼 간 큰 시녀들은 없겠지. 고로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대강 준비를 끝내고 스텔라가 엘가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엘가 양, 내가 옛날부터 썼던 비밀통로를 알려줄게. 저택 바깥으로 빠져나가기엔 그만한 곳이 없거든. 조금 좁고 답답한 것만 참으면.”
“엑, 뭐야. 리오네스의 장녀인 날더러 쥐새끼처럼 하수구를 들어가라고?”
툴툴거리긴 했어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엘가는 결국 스텔라가 안내해주는 통로를 통해 저택을 빠져나갔다. 한 20분 정도 걷다 보면 외곽지역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나.
“혼자 보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요.”
내가 엘가를 걱정하자 미르나가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태오 경, 지금 우리가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나와 미르나는 스텔라 벨호크를 따라 천장에 올라갔다. 천장 위에 통풍구를 통해 바스락바스락 기어 다니고 있으니 마치 도적이나 닌자가 된 기분이었다.
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해보네.
“여길 타고 내려가면 지하로 향할 수 있어. 너무 큰 소리 내면 안 돼.”
갑자기 가파른 경사로가 나타나서 제법 힘든 구간도 있었다만. 우리는 무사히 지하 2층 정도까지 환풍구를 통해 도달할 수가 있었다.
덜컥, 기익.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자 자그마한 방 하나가 나타난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만들어진 틈 같은 공간에 카펫도 깔려있고 의자와 테이블도 있다.
“비밀기지 같네요.”
미르나가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그와 같이 평가했다. 그녀의 말대로 비밀기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약간의 낭만을 느꼈지도.
“저택에서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는 개인 공간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하잖아. 안 그래?”
스텔라는 서랍을 뒤적여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옷이었다.
온통 하얀 복장에 방독면 비슷한 것이 달린 옷. 원통형으로 되어서 배 부분의 지퍼를 위로 쭉 올리면 몸 전체에 두를 수 있는 방호복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다들 이걸 입어. 이걸 입으면 3층에 출입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만들어둔 가짜 신분증들이 있으니까 하나씩 받고.”
철저하구만.
아크의 교수로 망나니 같은 행동을 하며 언제 이렇게 일을 준비해두었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유능하다고 할 수가 있나.
스륵, 스륵.
나와 미르나는 스텔라 교수의 말대로 옷 위에 방호복을 걸친 후에 지퍼를 잠갔다. 이로서 우리들의 신분은 수상쩍은 연구원 A와 B그리고 C가 되겠지.
“이제부터 조용히 있는 게 좋아. 얌전히 잘 따라오고.”
덜컥, 드르르르륵.
방호복을 입은 우리는 비밀의 벽돌문을 열었다. 주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 바깥으로 나오자 지하 감옥을 연상캐하는 차가운 석벽들이 보였다.
아무도 없구만.
그 뒤로 우리들은 근처에 놓인 수레를 하나씩 붙잡아 복도를 걸었다. 수레 안에 무언가가 가득 담긴 것을 발견한 미르나가 작게 말한다.
“이거, 번개 강황이잖아요…?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판명 나서 교단이 직접 금지한 식물인데…?”
“미르나 양. 그런 것에 하나하나 놀랐다간 아래층을 보면 기절할지도 몰라. 담대하게 마음을 먹고 있으라구.”
데굴데굴.
바퀴를 굴리던 우리는 어느덧 승강기라고 부를 만한 것에 올라탔다. 마침내 달그락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하는 톱니바퀴와 함께 우리들은 존재할 리 없는 3층으로 향했다.
드륵, 드륵, 드륵.
도르레가 돌아가는 소리가 얼마간 났을까. 곧 나는 차갑고 서늘한 바람이 화아악 불어오는 것을 방호복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춥군요.”
미르나 역시 그걸 느꼈는지 자신의 팔을 슥슥 문지르는데. 우리들이 모두 말을 멈춘 것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시설이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높다.
그것이 내 첫 감상이었다.
수 미터는 될 법한 천장.
그리고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세상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여기저기 놓인 비커. 보글보글 끓는 플라스크.
수조에 들어가 있는 정체 모를 짐승들의 표본과 쓰임새를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생긴 마도공학의 장치들.
다만 감상에 빠져있을 수도 없었던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
위를 쫙 조이는 것처럼 강렬한 긴장감이 몸을 감돈다. 하지만 이때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해왔던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스텔라가 능숙하게 이야기를 받았다.
“C동에 사용될 재료들을 가져왔어. 용액 배합에 급히 써야할 것들이니까 얼른 지나가게 해 줘.”
“C동? 그렇군. 얼른 가 봐.”
연구원으로 보이는 자의 옆을 기릭기릭 손수레 끌며 지나친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르릉!
━규이잉….
바로 그때 무언가가 덜컹거리며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좌르르 늘어서 있는 철창에 온갖 동물들이 웅크려 있는 게 보인다.
미르나가 말했다.
“세상에, 사자거미에 와일드링까지 있다니…. 모두 멸종 위기종이라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짐승들이잖아요?”
그러나 미르나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멈췄다.
멸종 위기의 짐승보다 더 기묘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지. 방호복의 안쪽 그 렌즈 너머 빨간 눈동자에 비춰지는 것은 수족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커다란 유리벽이었다.
차가운 유리벽. 더욱 차가워 보이는 용액에 절여져 온갖 호스를 몸에 연결된 채 죽 널브러져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엘프나 님프, 인간과 드워프 할 것 없이 남녀노소 주르륵 늘어서 있는 것이다.
“…통나무들이로군요.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다니.”
씹어 뱉듯이 한 미르나의 작은 말에 스텔라가 답했다.
“그래, 맞아. 인종이나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지. 검은 로브단과 협약해서 각지의 인간들을 제공받고 있는 거야.”
검은 로브단?
그 이름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있었다. 한창 앙그마르 각지에서 소란을 피우던 강도단이었는데. 도무지 뿌리 뽑히지 않는 괴상한 집단이었다.
아이라도 검은 로브단에 대해서는 종종 토벌이 지지부진하다며 짜증을 부렸었지.
그들과 벨호크 가문이 손을 잡고 있었다니. 강도단이 어째서 그렇게 말썽을 부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동시에 벨호크 가문에 대한 위험도가 훨씬 높아졌다.
이건 이미 반란이었으니까.
스륵.
고개를 들어 올린 스텔라가 투명한 유리창에 흐늘거리는 님프 실험체를 보며 씁쓸히 말했다.
“이것이 지금의 벨호크야. 아무튼, 이곳에 오래 있을 수만도 없어. 필터와 산소통을 쌓아두는 곳은 저쪽의 A동. 얼른 따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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