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69)
EP.70)드리우는 그림자 # 6
070 – 아크에 드리우는 그림자 # 6
마왕의 핏줄이 살아있다.
그 놀라운 이야기에 엘가는 정말 못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머리칼을 곤두세웠다.
“앙그마르의 자식이 살아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놈들에 대한 건 왕국 전체가 전부 지워버렸던 거 아니었냐?”
미르나의 멱살을 쥔 손이 힘을 더했기 때문인지.
엘가보다 덩치가 작은 미르나는 낚시 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버둥거리게 됐다.
“이거 놓으시죠.”
“그럼 거짓말이라고 해!”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실이에요. 저희 네 가문이, 앙그마르 가문의 모든 것을 왕국에서 없에긴 했지만. 국외에까지는 손을 뻗을 수 없었으니까요.”
“젠장, 그런 중대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고?”
엘가는 마치 화산처럼 끓어올랐다.
그렇지만 앙그마르의 핏줄이 살아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충분히 흥분을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리오네스 가문을 비롯한 네 가문의 안녕과 평화에 있어서 본디 적법한 왕좌의 주인이었던 그들만큼 위험한 자들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나라고 해도 저렇게 당황 했을 거다.
처형엔딩을 피해 발버둥치고 있는데 앙그마르 가문의 생존자가 있어서 아이라의 왕권과 네 가문의 안녕을 위협할지 모른다고? 그건 난이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이다.
“야, 태오, 너도 혹시 알고 있었냐? 저딴 이상한 흑마술사도 알고 있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그때 엘가의 화살이 내게로 쏠렸다.
알고 있었냐니.
나도 몰랐었지.
“…저도, 몰랐습니다.”
진짜 바로 얼마 전까지는 몰랐어.
근데 이제는 안다. 알고 자시고 그걸 내가 직접 겪고 있기까지 하니까.
엘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대가 그 당사자라는 걸 전혀 모를 테지. 만약 알게 된다면 당장 내 머리를 몸통에서 뽑아버릴 게 확실했다.
“흐흐흐-.”
그때 내 귀에 발란 교수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꼴이 무척 우스운 모양이었다.
“싸워라, 싸워.”
아마 굳이 혼란스러운 정보를 우리에게 밝히고 건넨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내분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엘가와 미르나는 저 발란에게 있어서도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상대일 테니까. 그러니까 서로 분산시켜 이간질을 하고 싶은 것일 터.
물론 엘가나 미르나라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아이라는 이에 대해 알고 있냐? 마왕의 핏줄이 남아있다는 거.”
살짝 누그러진 엘가의 목소리에 미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모를 겁니다. 제가 다 해명하도록 하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 자를 먼저 상대해야 해요.”
“그건 그래. 일단 여기 자리부터 정리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엘가와 미르나는 생각보다 금방 의견을 좁혔다. 다시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그들에게 “쯧-.”혀를 차는 흑마법사 발란, 가미긴.
“그대로 서로 싸워 자멸하면 좋았을 것을. 뭐, 좋다. 굳이 꼭 명을 재촉해야겠다면 어쩔 수 없지.”
슥.
가미긴은 자신의 키 만큼 높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무어라 중얼중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가는 그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처럼 빠르게 돌진했다. 거대한 도끼를 쥐고 있다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내가, 주문 외울 시간을 줄 것 같냐?”
“뭣? 이렇게 빨리-.”
가미긴이 반응할 수도 없이 높이 들어 올린 할버드의 거대한 도끼날이 수직으로 번쩍인다.
스릉, 촤아아악!
반월을 그린 도끼날이 가미긴의 몸통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까지 절단했다.
촤아악!
피를 뿜어내며 반 토막으로 쓰러지는 가미긴의 사체.
“별 것도 아닌게, 퉤.”
그에 침을 뱉은 엘가였다만 미르나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리오네스 영애! 솔로몬 왕의 주술이 이렇게 쉽게 당할 리 없습니다! 조심하세요!”
“흐흐흐-. 똑똑한데. A학점 주고 싶어지잖아.”
엘가의 발밑에서 토막 난 사체와 피가 서로를 향해 엉겨 붙고 있었다.
“귀찮게 하기는!”
재생을 막기 위해 엘가가 몸통을 향해 다시금 할버드를 휘둘렀으나.
촤악, 촤악.
꿈틀꿈틀.
공격에 베이고 찢겨나간 가미긴의 몸은 마치 붉고 끈적끈적한 슬라임과도 같이 계속해서 엉겨 붙고 뒤틀릴 뿐이다.
마침내 전부 재생된 그 몸은 아까보다 더 거대하고 끈적끈적한 괴물 같이 변모해 있었다.
몸통은 길게 늘어뜨린 해삼처럼 질퍽거려서 인간의 형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괴물 민달팽이처럼 변한 것이다.
발란 교수의 형태를 유지한 것은 상체 뿐. 그 하체 아래로 달라붙은 해삼 같은 거대한 몸통 배 쪽으로 쫘아악-하고 거대한 입이 벌려진다.
『푸흐흐히힝-.』
거기서 들려오는 것은 마치 비웃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말의 투레질 같기도 한 괴상한 목소리였다.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진짜 흉측해 죽겠네! 개똥같이 생겼잖아!”
이 끔찍한 모습은 아무리 엘가라고 하더라도 처음 보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녀석에 대해 떠오르는 바가 좀 있었다.
『푸흐히히히이-!』
이렇게 특색 있는 모습과 압박적인 웃음소리라니.
이런 존재 쯤 되면 중요 에피소드의 악역 보스로 원작에 나왔어도 이상할 게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었다.
이놈, 가미긴이 아니라 「포식자 사미기나」 아닌가?
교단의 성녀가 최종보스가 되는 2부.
장벽에서 넘어오기 시작하는 악의와 여러 한계들로 깊은 나락에 떨어져버린 성녀 프리가가 빌런 사냥꾼 파티와 싸우기 전, 그 사이를 연결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아크 내부에서 적들과 소통하는 배신자들을 찾아나가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에피소드의 막바지에서 등장해 쓰러졌던 것이 포식자 사미기나였다.
묘사에 따르면 바다에 빠져 1년 정도 부풀어 오른 돼지처럼 푸르딩딩하게 생겼다고 했는데 딱 저 꼴이다.
『기에에에에엑…!!!!』
그때 거대한 입이 내 귀가 다 먹먹해질 만큼 커다란 포효를 내질렀다.
“온다!”
높이 소리쳐서 경고하며 도끼를 고쳐 쥐는 엘가. 하지만 해삼 괴물 가마긴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어둠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촤르르르르.
그런 녀석이 지나간 곳에는 끈적끈적하고 역겨운 점액 덩이만 남아있을 뿐.
“뭐야? 도망쳐?”
엘가는 뒤를 보인 가미긴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주변을 살펴봤다. 이 넓고 혼란스러운 광장에 괴물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나는 녀석이 어디에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위쪽입니다…!”
“위-?”
엘가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펄쩍 뛰어 자리를 이탈했다.
철퍼어어억-!
엘가가 있던 자리에 무언가 걸죽한 것이 떨어졌다.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거대한 괴물 가미긴이었다.
질퍽, 질퍽-.
바닥에 떨어져 깨진 계란처럼 납작해졌던 가미긴이 형태를 수복하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가미긴은 자신의 기습이 간파된 것에 놀란 듯했다만 나는 내 예상이 맞았음에 나름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소설 속 사미기나와 이 가미긴은 묘사된 패턴이 같다.
처음은 어둠으로 사라진 척 하다가 천장에서 나타나 덮쳐왔었지.
저 점액질 몸으로 기둥과 벽을 타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릴 수도 있다는 묘사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르으으으-! 알레이스터-!』
기습이 실패해 화가 난 것인지 괴물은 허공에 높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공중에 떠올라 멈춰 있었던 엘드리치 알레이스터가 움직인다.
━Lognas. Itum kila.
리치의 손에 휘감긴 푸른 불꽃이 크기를 더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향해 발사되지 않는 까닭은 무릎을 꿇고 앉아 염불을 외듯 기도하고 있는 미르나 드레이코 덕분이겠지.
그 순간 나는 이 뜻하지 않은 보스전이 역시 소설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부 엔딩의 중간 보스인 미친 강령술사.
2부의 중간 보스인 포식자 사미기나.
우리는 이 둘을 지금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파티가 애먹었던 보스들을 한 번에 상대하라니.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내가 원작의 에피소드를 뒤틀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이라가 반란으로 처형될 것을 막고, 이 아크에 왔기 때문에?
아크에서 앙그마르로 귀환했어야 했을 드레이코 가문이 계속 아크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냐, 침착해.
그런 것은 전투가 끝난 이후 생각해봐도 되는 거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가미긴과 대치하고 있는 엘가를 향해 소리쳤다.
“엘가 님! 저 괴물의 약점은 하반신입니다! 언뜻 봐서는 상체가 약점 같지만 그건 함정이에요! 덫 같은 거니까, 무시하고 하반신만 열심히 때리면 됩니다!”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 상황에서 정보의 출처를 물어온다니.
당연한 질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허무맹랑한 말도 과연 그렇구나-라고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키워드가 있었다.
“지금까지 제 말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게 있긴 있었습니까? 저를 믿어보세요!”
“…….”
엘가는 대답하는 것 대신 한 손으로 쥐고 있던 할버드를 두 손으로 고쳐 잡고 허리를 숙여 고개를 낮췄다.
고오오오-.
그녀의 몸이 마치 장전된 총탄처럼 긴장감을 형성하는 게 보인다. 주변에 타오르고 있던 불꽃도 엘가의 주변만 서늘하게 식어 꺼지고 있는 가운데에-.
“하-!”
짧은 기합과 함께 대지를 박찬 엘가의 몸이 응축 되어 있던 스프링이 튕겨져 나가듯 빠르게 발사되었다.
발사되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속도로 괴물의 몸을 통과하듯 스치는 엘가는 그야말로 금빛의 섬광 같다.
촤아아아악-!
괴물 가미긴의 몸통에 강렬한 일격의 상처가 남았다. 녀석의 해삼 같은 하반신에 가로로 새겨진 상처가 주우욱 그어진 것.
방금 그것이 아마 엘가 리오네스의 궁극기와 비슷한 기술인 라이언로어겠지.
소설에서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걸 실제로 보는 건 나라고 해도 처음이었다.
『끄이에에엑-! 어, 어느새에…!』
꿀렁, 꿀렁, 꿀렁.
엘가에게 베인 상처로 타르 덩어리 비슷한 내장들이 흘러내리며 역한 냄새를 풍겼다. 누가봐도 상당한 치명상.
그러나 부정형의 몸통을 가진 상대는 어느 매체에서나 그렇듯 회복력이 좋다.
“금방 재생할 겁니다! 엘가 님, 계속 몰아붙여야 해요! 그리고 점액질이 타오르며 내뿜는 가스는 독성분이 강하니까 들이마시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약점 같은 건 더 없냐? 그냥 이렇게 하반신만 공격하면 돼?”
“하반신을 공격하다 보면 안쪽에 심장 비슷한 부분이 노출될 겁니다! 그 부분을 찌르면 됩니다!”
내 머릿속에 빌런 사냥꾼 파티의 보스전이 빠르게 묘사되었다 사라졌다. 아마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약점도 똑같을 터.
『그으으, 이, 님프 새끼가-!』
우수수수수.
내 등 뒤로 오싹한 소름이 내달렸다. 괴물의 살기가 나를 향한다는 뜻이리라.
『어째서 나에 대해 알고 있지?』
놈의 반응은 질척질척거리는 몸과 어울리지 않게 무척 맑고 투명했다.
허를 찔렸기 때문인지 내 정보가 거짓이라고 둘러댈 여유조차 없는 듯이 보인다.
『어째서 나에 대해 알고 있지? 너 정체가 뭐냐.』
문제는 녀석의 관심이 리오네스도, 드레이코의 영애도 아닌 오롯이 내게로 쏠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어그로를 너무 끌었나?
『널 죽여 그 작은 머리통을 갈라 영혼을 뽑아내주마. 그럼 뭐 하는 녀석인지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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