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61)
“사제, 당장 사부의 몸에서 나와.”
“시른데에~.”
나는 혀를 메롱 내밀며 코딱지를 후볐다. 윽, 확실히 양일신과는 달라서 엄지로 코를 후비기는 좀 힘들군.
“사부는 내 거야…….”
고오오오!
주아린의 전신에서 오수처럼 시커멓고 끈적거리는 어둠이 일렁거렸다.
“내 거란 말이야아아!”
콰콰콰콰!
주아린의 신형이 시커먼 밤하늘을 쏜살같이 가른다. 그녀와 나 사이에 놓인 백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놔아아! 천마암연장(天魔黯戀掌)!”
악다구니 가득한 비명과 함께 암연이란 이름처럼 어둡고 집착으로 가득 찬 장(掌)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순간, 내가 빙의한 천마의 기억이 한 자락 흘러들어 왔다.
-아……바, 아바…….
-갈!
짧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두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기 앞에서 천마가 근엄하게 외쳤다.
-아빠가 아니라 사부라 부르라지 않았느냐! 그것도 하지 못하는 우둔한 놈은 본좌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도다!
아기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더니 붉은 석류 같은 입술을 조심스레 열었다.
-싸……부우……?
‘껄껄껄! 그래, 잘했다! 린 이 녀석! 천재였구나!’
천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손에 든 당과를 아기인 주아린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것을 양손으로 꼬옥 움켜쥔 채 주아린이 햇살처럼 활짝 웃었다.
천마의 마음이 전해진다.
아아, 딸랑이를 흔들던 그 작고 여린 손이 어둠에 물들어 이렇게 타락해 버리고 말았구나.
그녀의 무공은 본디 천마가 전수한 것.
쏟아지는 주아린의 장을 향해 나와 천마가 천마암연장을 뻗었다.
주아린의 장과 우리의 장이 마주쳤다.
콰드드득!
주아린의 손이 으스러졌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손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공격이 이어졌다.
“이이익! 내 사부에게서 떨어지란 말이야! 천마절애각(天魔切愛脚)!”
절애(切愛).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사랑.
쐐애액!
그 이름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암기를 머금은 주아린의 각이 천마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다시 천마의 기억이 밀려왔다.
첩첩산중에 은밀히 숨겨져 있는 천마의 은신처.
-아아앙! 싸부우우! 가티 가! 싸부우우!
이제 겨우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어린 주아린이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성큼성큼 걷는 천마의 뒤를 쫓고 있었다.
-어허, 네년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지 않았더냐!
단신으로 은주국 황실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본래 주아린의 것이었을 황위를 찬탈한 그녀의 숙부, 그 늑대 같은 놈의 목을 베어 버릴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100만에 이르는 황실 어림군.
거기에 삼청들의 총애를 받는 천하십대고수와 이 기회에 천마를 도모하려는 무림 세력들까지 모두 모였으니.
고금제일고수라 자부하는 천마라 해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시러! 나도 가티 가!
하지만, 저 고집불통의 계집은 좀처럼 사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천마가 혀를 차며 경공을 전개했다.
콰아아앙!
대지가 요동치는 것과 함께 순식간에 천마가 하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아아앙! 싸부! 싸부우우!
주아린이 세상 떠나갈 듯 울음을 터트리며 천마가 사라진 방향으로 아장거리며 달렸다.
얼마 후, 해가 기울며 밤이 찾아왔다.
아우우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의 어둠, 산짐승들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주아린은 덜덜 떨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길을 잃은 지 오래였건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라진 천마의 뒤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싸부! 싸부우우!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주아린의 모습에 까마득한 밤하늘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천마가 혀를 찼다.
사실 그는 떠난 척하면서 여태껏 주아린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에잉, 끈질긴 놈 같으니.
시간이 좀 지나면 포기할 줄 여겼건만, 무슨 계집년이 저리 고집이 고래 쇠심줄 같은가.
하지만, 그랬던 주아린의 발걸음이 일순간 멈췄다.
크르르릉!
집채만 한 호랑이가 어둠 속에서 사납게 안광을 번뜩이며 주아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힉, 히이익!
캬아앙!
호랑이가 비에 젖은 병아리처럼 덜덜 떠는 주아린을 한입에 삼키려는 듯 아가리를 쩍 벌리며 그녀를 덮쳤다.
주아린이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아빠아아아!
-아빠가 아니라 사부라고 하라지 않았느냐!
천둥 같은 노성을 내지르며 천마가 운석처럼 그들을 향해 낙하했다.
콰드득! 철퍽!
주아린이 덜덜 떨며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호랑이의 머리를 짓밟으며 등짐을 지고 있는 천마를 본 주아린이 반색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싸부우우우!
덥석! 주아린이 천마의 다리를 껴안으며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묻었다. 발에 묻은 호랑이의 피를 털어 내던 천마가 기겁했다.
-어허, 더럽게 뭐 하는 짓이냐!
-싸부! 싸부우! 흐에엥! 너무 무서웠어여!
천마가 울고 있는 주아린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작고 여린 다리가 피투성인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제자 놈을 보았나!
천마가 쳇 혀를 차더니 주아린을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웠다.
-싸부우?
그래, 뭐 이럴 거면 그냥 데려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차하면 천마신교의 교주라 자청하는 그 망할 대제자 놈에게 맡기면 될 일이고.
천마가 오만하게 주아린을 향해 외쳤다.
-흥! 그래! 정 그렇다면 데려가 주마! 거기서 잘 보고 있어라! 네 사부인 고금제일고수 천마의 위용을!
주아린이 활짝 웃으며 양손을 번쩍 들었다.
-꼬금쩨일고수 쩐마 싸부!
-어허! 쩐마가 아니라 천마이니라! 에잉, 이런 혀 짧은 놈을 황제로 만들려고 하다니, 본좌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짧은 회상.
쐐애액!
그리고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우리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주아린의 천마절애각.
과거 애타게 울며 자신을 쫓던 그 작디작은 아이의 발을 떠올리며, 천마와 나는 출수했다.
우리의 천마절애각과 주아린의 천마절애각이 격돌했다.
으드드득!
주아린의 다리가 나무젓가락처럼 힘없이 부러졌다. 나는 주아린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넌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포기해.”
“으으윽!”
왼손과 오른 다리가 으스러진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주아린의 눈은 아직 투지를 잃지 않았다.
주아린이 이를 악물며 밤하늘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파괴신의 눈동자를 향해 외쳤다.
“제발 도와주시오소서! 파괴신님! 제가 사부를 되찾게 해 주소서!”
하지만, 파괴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키키키키키! 키키키키키키!
대신 음산한 웃음소리가 밤하늘에서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파괴신이시여어어!”
주아린이 애타게 다시 외쳤지만, 파괴신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사부와 제자가 서로 상잔하는 이 상황을 즐기듯.
주아린의 얼굴에 절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떨어져! 내 사부에게서 당장 떨어지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아린이 이제는 하나 남은 손으로, 천마에게 전수받은 삼 초 중 최강의 초식을 펼쳤다.
“절초 천마연리수(天魔連理手)!”
어느새 야수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온 주아린의 손이 우리의 목을 꿰뚫어 버릴 듯 뻗어 왔다.
차아악! 차르르륵!
동시에 그녀의 전신을 꿰뚫고 튀어나온 검은 촉수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윽!”
천마조차 당해 심장을 뽑혔던 무시무시한 절초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이제부터는 본좌가 맡으마.”
내가 조종하고 있던 천마의 몸의 주도권이 나에게서 천마에게로 넘어갔다.
“보아라. 이것이 본좌의 진신무공이니라.”
천마군림, 천마대초열, 천마수라파천신권…….
천마가 평생 갈고닦았던 무의 정수가, 마치 나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하나씩 펼쳐진다.
그것은 감히 내가 흉내도 낼 수 없는, 천의무봉한 무신(武神)의 경지.
잠시 후, 천마의 초식이 끝났다.
스스슥, 스스스슥.
밤하늘에 산산조각 난 파괴신의 촉수가 흩어지며 동시에 전신의 혈이 제압당한 주아린이 천마의 품에 안겼다.
천마가 주아린을 안타까운 눈으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린아, 우리의 연(連)은 이것으로 끝이다.”
“사…… 사부…… 저를…… 버리지 마셔요……. 제발…….”
“딸을 버리는 아비는 없단다, 린아.”
천마가 부드럽게 웃으며 주아린의 수혈을 짚었다.
“잠시 쉬고 있으려무나. 그럼 이 지독한 악몽도 끝이 나있을 것이니.”
그러자 주아린의 눈꺼풀이 힘없이 감겼다.
“막내 제자야, 네 권능을 잠시 빌리마.”
‘어? 제 권능을 빌리겠다니요?’
천마가 대답 대신 검지를 잠든 검지를 주아린에게 겨눴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내 짓뭉개는 신의 검지의 능력은 대상의 On/off다.
츠츠츠츠!
나와 동화한 천마의 의지에 따라 주아린의 몸을 잠식하던 파괴신의 기운이 형상화되더니 강제로 그녀의 몸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엑!
주아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괴물의 모습은 마치 문어를 닮아 있었다. 놈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다.
“이 더러운 놈! 당장 튀어나오지 못할까!”
천마가 야차 같은 얼굴로 주아린의 몸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파괴신의 분신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입에 처넣더니 산 채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그야말로 시궁창에 빤 대걸레 같은 맛과 식감이다.
천마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나는 전생에서 이신 녀석이 억지로 파괴신의 분신을 처먹이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꿀꺽!
그 끔찍한 파괴신의 분신을 처럼 삼켜 버린 천마가 한결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주아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린아, 네 잘못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네 마음의 틈을 비집고 너를 타락시키려 한 저 극악무도한 놈이 원인일 뿐.”
천마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밤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파괴신을 노려보았다.
한편 파괴신은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쩌적! 쩌저적!
파괴신의 눈동자가 갈라지며 그 흉악한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
파괴신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중원을 향해 굶주린 짐승처럼 낙하했다.
-키아아아악!
그것은 그야말로 세상의 종막이다.
‘안 돼! 저건 못 막아!’
마치 신의 탑 1층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파괴신의 분신은 그때 상대했던 분신보다 족히 3배는 더 거대하고 강했다.
비록 주아린에게 깃들어 있던 파괴신의 분신을 삼켜 신력을 늘렸지만, 어른과 아기의 싸움만큼이나 힘의 차이는 역력했다.
그때 천마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이여, 내 오늘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히던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러자 낯익은 천검의 반응이 들려왔다.
띠링!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이 이제야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들었냐며 반색합니다. 어서 조건을 말해 보라 합니다.
천검 이 양반, 아주 옛날부터 천마에게 껄떡거렸던 건가?
“…….”
천마가 말 대신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전음으로 천검에게 속삭였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이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천마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제자야, 삶이란 일장춘몽 같은 것이니라. 그러니 모든 집착을 버리고 자유로워지거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空)에 이르는 길이니.”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것은 마치 유언 같지 않은가?
‘여, 영감님!’
“보아라, 제자야. 이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본 천마가 펼치는 최후의 천마신공.”
천마의 손에는 어느새 붓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선신과 악신, 파괴신과 나 무신의 모든 공력을 담은 천마신공 절초! 진 천마공겁(天魔空劫)이니라!”
스스슥!
허허로이 허공에 긋는 천마의 붓질.
-키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