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5)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센터에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뭐 내가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니.
여기까지와서 그냥 가기도 그렇고 소재거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들에게 시선을 집중해보았다.
한 일분쯤 그러고 있다보니.
[눈먼 신의 눈] 고유권능이 발동합니다.대상들을 감정합니다.
‘오, 된다!’
사람들의 정보가 내 시야에 떠올랐다.
-수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30년 되었다.
특이사항 : 치질을 앓고 있다.
-암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24년 되었다.
특이사항 : 임신중이다.
-수컷 인간이다. 사용한지 41년 되었다.
특이사항 : 발기부전이다.
음, 이것 참 미묘하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야 할 곳은 공백인데다 텍스트도 비인간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인간을 짐승처럼 암컷 수컷으로 분류하는데다 나이를 사용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건 혹시 사람을 별로 안좋아하는 내 심리의 반영인가 싶어 찜찜했다.
게다가 더 거슬리는 건 특이사항란이다.
‘이거 진짜일까?’
만약 맞으면 대박이긴 한데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치질이세요? 발기부전이십니까?’ 하고 물어보기는 좀.
특히 겉보기엔 늘씬한 처녀 같아 보이는 저 아가씨한테 임신했냐고 물어보다가 잘못하면 성추행으로 훅 가는 수가 있다.
감정능력의 진위를 떠나서 내가 의사처럼 진료를 할 것도 아니고 참 미묘한 능력이다.
이것 참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보이면 또 몰라.
이거 정말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맞나?
그런데 사람들 중 유독 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프릴이 달린 스타일리쉬한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
아직 이른 아침이라 등교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녀였다.
하지만 난 그 소녀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건 저 소녀가 아이돌 뺨치는 미소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공백만이 보이는 이름란에 저 소녀만이 유일하게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암컷 인간이다. 사용한지 19년 되었다.
특이사항 : 짜릿하다.
짜릿하다니.
시바,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끝
ⓒ 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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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미리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학생, 저기 제가 이런 말은 잘 안하는데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사실 처음에는 헌팅인줄 알았다.
자뻑같지만 그녀에게 남자들의 관심이란 일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이런 남자는 없었다.
너저분한 츄리닝 차림에 뿔테안경, 햇빛은 보나 싶을 정도로 허연멀건한 피부.
거기에 이마에는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동네 백수 같은 남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진 멘트가 더 가관이었다.
“저기, 혹시 지금 짜릿하지 않나요?”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성미리는 혹시 신종 변태인가 싶어서 주먹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띠르르르!
“실례합니다. 급한 전화가 와서 이만!”
남자가 갑자기 벌게진 얼굴로 호다닥 도망치듯 사라졌다.
성미리는 그때의 홍당무 같은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좀 이상하지만 나쁜 사람 같아보이진 않았어.’
검사 대기실에서 담당관이 그녀를 호출했다.
“49번 성미리님. 들어오세요.”
“네.”
성미리가 웃음을 지우고 결연에 찬 얼굴로 번호표를 꽉 움켜쥐었다.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
찰싹찰싹!
공원 벤치에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조막만한 손이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삼촌 어디 아파?”
난 의욕 없는 눈으로 그 손의 주인을 보았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이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가 바로 내 조카 채성연이다.
내가 왜 이 녀석과 지금 공원에 있는가하면, 여고생을 상대로 ‘혹시 지금 짜릿하지 않나요?’ 란 개소리를 한 직후에 온 전화 때문이었다.
“누나. 왜? 어, 뭐? 성연이 봐달라고? 나 지금 바쁜데······.”
“백수가 바쁘긴 뭐가 바빠. 잔말 말고 좀 봐줘.”
“쳇, 하여튼 이게 문제야. 작가들이 집에서 글만 쓰고 있으니까 백수취급이나 하고. 글을 쓰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심력이 필요한지 알기나 해?”
“부탁 좀 할게. 급하게 나갈 세미나가 생겼단 말야.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흥, 내가 앤줄 알아? 겨우 먹을 거에 넘어갈 줄 알고!”
“일신아~, 용돈 필요하지 않니?”
“제 사랑하는 조카를 어디에서 맞이하면 될까여, 누님.”
이게 한 시간 전, 내 누나인 유신자씨와 한 통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임시 베이비시터가 되었다.
조카님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삼촌이 오늘 흑역사를 하나 갱신했단다.”
성연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흑역사가 모야?”
큭, 귀여워!
그 악마 같은 누나한테 이런 딸이 나오다니 이것이야말로 세기의 기적이다.
“이리와봐! 우리 이쁜이! 삼촌이 한번 안아보자!”
“으갹! 삼촌 얼굴 치워! 털 따가!”
성연이가 조막만한 손으로 내 얼굴을 밀어냈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왠지 더 하고 싶은 법.
“꺅! 꺅!”
그리고 5분 후.
“성연아? 삼촌 좀 보렴. 응?”
좀 껴안았기로서니 이 기집애가 팔짱을 낀 채 등을 획 돌리고는 삼촌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왠지 헤어진 전여친이 저러던게 생각나서 가슴 한편이 아릿하구나.
여자는 너무 어려워.
“헤헤, 우리 애기. 삐졌어? 삼촌이 성연이가 너무 이뻐서 그랬져요.”
“흥, 삼촌 미워!”
윽, 전여친이 헤어지자고 할때보다 더 가슴이 아파!
이 기집애 화를 어떻게 풀어야한다?
성연이의 등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띠링!
[눈먼 신의 눈] 고유권능이 발동합니다.대상을 감정합니다······.
감정 성공!
-암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5년 되었다.
특이사항 : 초코 아이스크림콘이 먹고 싶다.
거짓말처럼 내 능력이 발동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성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보았다.
“성연아,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달~ 콤한 초코 아이스크림콘으로?”
그랬더니 성연이가 언제 삐졌느냐는 듯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응!”
이 녀석, 삐지면 기본 한 시간은 가는데 이렇게 쉽게?
이것 참 개똥도 쓸 때가 있다고 애보는데 꽤 쓸만한 능력이었구나.
성연이의 손을 꼬옥 붙잡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100프로 확신하긴 아직 이르지만, 성연이의 반응으로 보아서 내 고유권능이 완전 야매는 아니라는 건데.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체 그 소녀는 뭐가 짜릿했던 걸까?
***
“뭐 드릴까요. 고객님?”
X데리아 직원이 방긋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초코 아이스크림 콘. 하나만 주세요.”
하나를 강조하며 주머니 안의 동전을 모두 털었다.
10원짜리가 섞인 동전 한 무더기를 받은 종업원의 미소가 아주 잠시 흔들릴 뻔했지만, 그는 역시 프로다웠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종업원이 콘을 집고 아이스크림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드르륵!
그러자 똥 싸는(비유가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생겼잖아.) 것처럼 아이스크림이 빙글빙글 똬리를 틀며 콘에 담기기 시작했다.
“와, 와!”
성연이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아이스크림을 담는 직원의 손을 바라보았다.
녀석,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보다.
그 광경을 삼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고 보고 있을 때.
애걔? 겨우 그거?
직원이 아이스크림 버튼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모습이 비쳤다
내 날카로운 눈썰미로 보았을 때 평소보다 약 20프로는 양이 적다.
거참, 애 먹을 건데 좀 더 주지.
설마 동전으로 계산했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할 수 없군. 소비자의 권리를 직접 찾을 수밖에.
스윽.
난 정신을 집중해 검지를 아이스크림 기계의 버튼을 향해 겨누며 은밀히 속삭였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콸콸콸!
“어? 어! 이거 왜이래?”
종업원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분명 기계에서 손을 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크림이 미친 듯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와, 이렇게 서비스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난 평소보다 세 배는 높게 쌓인 아이스크림콘을 향해 손을 내밀며 종업원에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
할짝할짝!
“성연아, 맛있어?”
자기 머리보다 높은 아이스크림 콘을 날름거리던 성연이가 날 보며 방실 웃었다.
“응! 마시써!”
“어이구, 좀 깨끗이 먹지.”
얼굴이 아이스크림 범벅이다.
호주머니에서 누나가 챙겨준 물티슈를 꺼내 성연이의 얼굴을 닦아주자 간지러운 듯 성연이가 까르르 웃는다.
그래.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우리 조카님.
그래서 나중에 삼촌 집에 와서 청소도 좀 해주고 설거지도 좀 해주려무나.
혹시나 나중에 사춘기가 와서 ‘삼촌 냄새 나니까 옆에 앉지 마!’ 같은 소리를 하면 확 울어버릴거다.
“성연아, 삼촌 한입만 주라. 응?”
“시러! 저번에도 한입만 먹는다고 해놓고 다 먹었잖아!”
“에이, 그러지말구. 이번에는 진짜 한입만 먹을게. 응?”
“악! 안 돼!”
평범한 날이었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평화로운 일상.
삐이이익!
날카롭게 울리는 내 핸드폰 알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휴, 또 그놈의 지긋지긋한 개미새끼들인가하고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역시 갓 메이커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경고?’
[경고! 경고!타이틀 가 활성화합니다!
타이틀 활성화로 인해 ‘이름 모를 신’의 전투운이 크게 증가합니다!]
동시에 섬뜩한 악의가 진득하게 배인 목소리가 내 머릿속으로 직접 울려 퍼졌다.
-크크, 위대한 악의 길을 걷는 자여. 그대를 덮치는 시련마저 잡아먹고 진정한 악신으로 성장할 지어다!
지직! 지지직!
철퍼덕!
성연이가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콘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저, 저게 뭐야?”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직! 지지직!
허공에 거미줄 같은 균열과 함께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맨 처음 갈라진 공간의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검은 뿔이었다.
곧 이어 수박만한 크기의 시뻘건 눈동자가 박힌 짐승의 머리통이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아!
구르르릉!
그것이 내지르는 포효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평화로웠던 일상의 붕괴를 알리는 축포였다.
“게, 게이트?”
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공간의 틈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괴물의 모습을 보았다.
겉모습은 마치 코뿔소를 닮았지만, 온몸에 가시처럼 돋은 수십 개의 뿔과 덤프트럭을 상회하는 저 크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다.
“가시뿔소······.”
헌터 관련 소설을 쓰려고 자료를 모은 적도 있기에 저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저것은 무려 A급 위험도.
도시 하나를 파괴하는 게 가능한 괴수였다.
‘왜 여기서 게이트(GATE) 현상이.’
20년 전에 저것들은 처음 나타났다.
지금처럼 공간의 틈을 여는 게이트와 던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은 닥치는 대로 파괴를 자행했다.
하지만 인류는 그것에 적응하고 마침내는 괴물들을 정복했다.
더 이상, 괴물들은 인류의 위협이 아니었다.
방위 시스템이 24시간 돌아가고 있었고, 예지 능력을 가진 S랭크 헌터들은 99프로 이상의 완벽한 적중률로 출몰하는 게이트와 던전을 예측했다.
평소라면 지금처럼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미리 출동한 헌터들과 군 병력들이 완벽히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꺄아아악! 몬스터다!”
“으아악! 살려줘어!”
순식간에 거리가 아비규환이 되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쳤다.
“사, 삼촌······.”
아래서 들려오는 성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작은 아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만을 의지하고 있었다.
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성연이를 품에 안은 채 전력 질주했다.
지금은 도망쳐야했다.
헌터와 군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캬오오오!
완전히 공간에서 빠져나온 가시뿔소가 굶주린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움직였다.
콰콰쾅! 콰콰쾅!
마치 폭격하는 것처럼 폭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차마 돌아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인파가 몰리지 않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굶주린 가시뿔소가 사람들이 몰린 쪽으로 향할 것이라는 얄팍하고 이기적인 기대를 품으며.
콰콰쾅! 콰콰콰쾅!
하지만 놈이 일으키는 굉음은 내게서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아니,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날 짓밟을 기세로.
“으아앙!”
품에 안은 성연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잘 들리지 않았다.
쿠콰쾅!
바로 내 등 뒤에서 가시뿔소의 거대한 앞발이 내리꽂혔다.
도로가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폭발하며, 충격에 휩쓸린 내 몸이 엉망으로 나가 떨어졌다.
“으아악!”
몇 십 바퀴나 바닥을 구른지 모르겠다.
간신히 품 안에 있는 성연이를 놓치지는 않았지만, 충격에 기절했는지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성연이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후욱! 후욱!
역겨운 악취가 섞인 놈의 숨결과 함께 산처럼 거대한 가시뿔소의 그림자가 쓰러진 우리를 뒤덮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권능이 발동했는지 흐릿한 내 눈에 가시뿔소에 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성이다. 사용한지 400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