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55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55화
55. 플.세.바
플레이어가 세상을 바꾼다.
소위 플.세.바라는 카페에선 일요일마다 정기회의를 진행하곤 했다.
-어서 오십시오, [얌띠] 님.
-방가워용. [회장] 님.
-[포포링] 님도 어서 오세요.
화상채팅 화면에 속속들이 나타나는 여덟 명의 얼굴들.
카페의 창설 멤버와 신용이 높은 고레벨의 멤버들로 이루어진 8인의 간부들이다.
-모두 오셨네요?
안경을 쓴 사내가 화면 속에서 젠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4월 3주 차 정기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로스트야크] 님.
-예, 회장님.
-이번 주 카페 가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조사한 자료에 시선을 두었다.
-대략 2천 명 정도 됩니다.
-저번 주보다 올랐군요.
-그렇습니다. 라운드마다 플레이어는 줄어들기 마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입자 수는 매주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들을 위한 연합 카페가 있다는 기사가 유입을 끌어당긴 것 같습니다.
-그 기자를 고용한 분이 누구였죠?
회장의 말에 색기가 흐르는 여성이 눈웃음을 치며 손을 들었다.
-저예요, 회장님.
-얌띠 님이었습니까? 기자 인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이참에 한 명 만들었죠. 호호.
-역시, 대단하십니다. 초창기 멤버다워요. 후후.
-감사합니당!
웃음 짓던 회장이 시선을 돌렸다.
-그럼 로스트야크 님. 2천 명 중에서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면 몇 명이나 남습니까?
-직업이 없는 플레이어, 10레벨 이하 플레이어, 제대로 신청서를 쓰지 않은 인간들을 거르고 나면 대략 1,200명이 남습니다.
-그중에서 쓸 만한 인재들은요?
-그건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포포링 님.
-우선 주목할 만한 플레이어는 ESKS45-5 구역의 [오른손에 흑염룡]입니다. 레벨 10에 평범한 전사지만 신청서에 적은 바에 의하면 해당 구역 3위도 해봤다고 합니다.
-해당 구역 3위라…… 레벨에 비해 룬이 좋은 모양이네요. 아니면 거짓말이거나.
-그래도 이 정도면 간부 후보에 올려도 될 만한 인재라고 봅니다.
-그렇네요. 다른 후보는요?
-또 다른 후보로는 [꼬꼬마꼬막]이 있습니다. 이 자는 ESKS122-7 구역인데 랭킹 4~10위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호오, 생각보다 인재들이 많군요.
-그 외에 해당 구역 랭킹 100위 안쪽에 드는 플레이어가 50명이 있습니다.
-이거 면접하느라 시간이 남아나질 않겠네요. [내 나이 서른] 님?
-예?
회장의 부름에 40대는 넘어 보이는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졸고 계셨습니까?
-아, 죄, 죄송합니다.
-밤에 뭐 했길래 아침부터 졸고 계십니까?
-면목이 없습니다…….
-면접 담당이 면목이 없으면 어쩌나요? 자꾸 이러면 내 나이 서른 님의 간부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 그건…….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다음 주 회의 때까지 50명분의 면접을 처리해 오세요. 만약 못한다면 다른 고레벨 후보가 자리를 대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힘차게 대답했지만, 내 나이 서른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언제 50명분을 채울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그나저나 로스트야크 님.
-네, 회장님.
-검은 낫이 접촉한 흔적은 없습니까?
로스트야크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있었다면 다른 일 제쳐두고 즉각 보고했을 겁니다.
-하긴. 로스트야크 님이라면 그랬겠죠.
전 구역 1위를 놓치지 않는 검은 낫은 이미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초특급 네임드.
회장이 탐을 낼 만도 했다.
-검은 낫이 가입한다면 즉시 간부 자리를 내어줄 용의도 있건만…… 아쉽군요.
-회장님. 그건 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네임 [소소한 먹방]이 손을 들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검은 낫이 아무리 네임드라지만 국적조차 확인되지 않은 자입니다. 외국인을 간부로 채용하는 건 비효율적이라 사료…….
-한국인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닉네임 [소보루는 졸맛탱]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아는 지인이 ESKS45-5 구역인데 검은 낫과 같은 구역이라고 합니다.
-같은 구역이면 한국인이 맞다는 거네요? 구역 내에 외국인이 끼어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크흠.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소소한 먹방이 뻘쭘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검은 낫이 한국인이었다니……. 그런 네임드 중의 네임드가 우리 카페에 가입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회장이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얌띠님? 혹시 그 기자 양반에게 더 많은 기사를 쓰게 하실 수 있나요? 검은 낫이 카페의 존재를 알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페이만 맞춰주신다면야…….
-그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고생하신 만큼 인센티브는 두둑이 챙겨드릴 테니까요.
-히히, 고마워용, 회장님!
얌띠가 애교를 부리며 윙크를 보내자 오히려 다른 간부들이 더 좋아했다.
-그럼 신규가입자 건은 이걸로 끝내고 다음 안건으로…….
-자, 잠시만요, 회장님!
로스트야크가 평소답지 않게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입니까?
-바, 방금 네임드가 카페에 가입 신청을 했습니다.
-네임드 누구요?
-거, 검은 낫입니다.
벌떡-!
회장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탓에 화면에는 회장의 바지춤만 보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했군요.
진정한 회장이 자리에 앉았다.
-정말 검은 낫이 가입 신청을 했다고요?
-예. 지금 막 신청했습니다.
네임드라면 천마도 있고 똥 멍청이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검은 낫의 유명세엔 비할 바가 못 된다.
-검은 낫이 우리 카페에 가입할 줄이야……. 이거 믿어지지 않는군요.
-어떻게 할까요?
바보 같은 질문에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가입 절차를 밟아야지요. 정보가 얼추 맞는지 확인하고 지금 거론한 가입자들과 함께 면접을 진행하세요. 당장!
-아, 알겠습니다!
-뭐합니까? 내 나이 서른 님! 당장 면접하러 나가지 않고!
-예? 예! 가, 갑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내 나이 서른이 채팅방에서 퇴장했다.
* * *
“여기가 맞나?”
심형택이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면접 담당자 : 정오까지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어여와 카페로 오세요. 복장은 자유입니다.]고개를 드니 문자에서 말한 커피집이 보인다.
‘카페 하나 가입하는데 면접까지 봐야 한다니…….’
심형택의 미간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서울과는 1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불러내니 짜증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불러낸 장소는 자차 없이는 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내려서 걸어야 했다.
그것도 30분씩이나.
심형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지치진 않았다.
자신은 나름대로 네임드 플레이어였으니까.
‘X발, 갔는데 조금이라도 X같이 굴면 그 자리에서 그냥 죽여버려야지.’
수틀리면 면접 담당자가 플레이어든 아니든 죽여 버리리라.
그런 생각으로 카페의 문을 열었다.
딸랑-
간판은 별로였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세련된 카페였다.
문제는 넓은 자리에 비해 손님이 두 명밖에 없다는 점이지만.
‘이런 외진 곳에 카페를 차리니 손님이 없지.’
속으로 흉보고 있는데 손님 중 한 명이 일어나서 다가온다.
“혹시 플세바 가입 신청자되십니까?”
딱 봐도 4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플레이어가 아닌가?’
심형택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죠?”
“오른손에 흑염룡입니다.”
“오! 반갑습니다. 저는 면접 담당자인 내 나이 서른이라고 합니다.”
“네? 설마 플레이어세요?”
“하하…… 네. 겉보기엔 아닌 것 같지만 올해로 만 29세가 된 플레이어입니다.”
“…….”
“우선 이쪽으로.”
대충 악수를 한 담당자가 자리로 안내했다.
그러더니 먼저 앉아 있던 청년을 소개했다.
“이분은 먼저 면접하러 오신 꼬꼬마꼬막 님입니다. 꼬막 님? 여기는 오른손에 흑염룡 님입니다. 같은 카페 회원이 될지 모르니 서로 인사들 나누세요.”
‘이 멸치 새끼도 플레이어야? 한주먹거리도 안 되겠네.’
속으로 흉을 본 심형택이 머리만 까닥거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인사했으면 여기 앉으세요. 흑염룡 님.”
심형택은 자리에 앉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살인을 저질렀을 때를 대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여긴 장사가 잘 안 되나 봐요? 손님도 없고 흔한 알바생도 안 보이네요?”
“외진 곳이니 아무래도 그렇죠. 저희가 면접 장소로 이곳을 빌린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 빌린 거구나. 그래도 사장님은 계실 거 아니에요. 안 보이네요?”
“사장님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여기가 카페지만 식사도 겸하는 곳이라서요.”
심형택은 끄덕이면서도 CCTV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 흔한 CCTV조차 없었다.
‘이거 당장 두 사람 죽이고 튀어도 아무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행동에는 옮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았기에.
‘고작 두 명을 죽이자고 자리를 파투낼 순 없지.’
카페에 가입해서 다른 회원들과 인맥을 쌓으면 주기적으로 유인해서 죽일 수 있다.
굳이 판을 엎을 이유가 없다.
‘우선 가장 먼저 공략할 건 이 멸치 새끼인가?’
심형택의 눈이 꼬꼬마꼬막을 유심히 쳐다봤다.
나이는 많아야 20대 초반.
얼핏 자신의 또래로 보이기도 하는 녀석이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피한다.
‘남자 새끼가 수줍음이 많네? 병신새끼.’
비웃음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세 사람 사이에 멀뚱멀뚱 침묵만 이어지자 보다 못한 심형택이 입을 열었다.
“면접 안 하세요?”
“아, 아직 오지 않은 면접자가 있어서요. 면접은 그분 오시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면접자가 우리 말고 또 있었어?’
혹시나 더 있을까 싶어 확실하게 물어봤다.
“그럼 총 세 명이 면접 보는 거예요?”
“네. 이제 막 약속 시간이 지났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 아, 저기 오셨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먼저 다가간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저어…… 플세바 가입 신청자되십니까?”
“맞다만.”
“실례지만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는지…….”
“검은 낫.”
“……!”
“……!”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랐다.
“거, 검은 낫?”
“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미리 알고 있던 면접 담당자뿐이었다.
“역시! 검은 낫 님이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담당자가 손을 맞잡으며 폴더 인사를 했다.
“오시는 데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조금 불편했다.”
다짜고짜 하는 반말에 당황한 담당자였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내색하지 않았다.
“하하, 외진 곳으로 불러서 죄송합니다. 은밀히 접촉하는 데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어서요.”
검은 낫은 대꾸하는 척도 안 했다.
고개가 뻣뻣한 게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담당자는 불쾌한 기색 없이 웃었다.
“그나저나 실물이 아주 잘생기셨네요. 여자들에게 인기 많으시겠습니다?”
“…….”
“우선 여기 앉으시죠.”
테이블에 네 사람이 앉았다.
“여기 두 분은 오늘 함께할 면접자입니다. 인사들 하시죠.”
“아, 안녕, 하세요. 꼬꼬마꼬막이라고 합니다…….”
“…….”
“흑염룡 님도 인사하시죠?”
담당자가 말했지만 심형택의 귀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긴장감에 등이 축축하게 젖었을 뿐.
‘이, 이 사람이…… 날 다섯 번이나 죽인 그 검은 낫이라고……?’
4라운드 때 녀석 때문에 하마터면 순위권에 들지 못할 뻔했다.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스탯을 올릴 수 있었는데 50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현실에서 만나면 묻고 싶었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날 그렇게 죽였냐고.’
그런데 정말 현실에서 만나게 됐다.
“흑염룡 님? 뭐 하세요? 인사 안 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른손에 흑염룡입니다…….”
검은 낫이 팔짱을 낀 채로 끄덕였다.
“검은 낫이다.”
오만방자한 자기소개에 누구도 딴죽을 거는 이가 없었다.
전 구역 랭킹 1위라면 그럴 법도 하니까.
다만 심형택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뭐야? 아는 체도 안 하잖아?’
닉네임을 밝히면 즉시 알아볼 줄 알았다.
4라운드 때 자신을 다섯 번이나 죽였던 검은 낫이니까.
재차 눈치를 봤지만 검은 낫은 여전히 관심도 없는 표정이었다.
‘설마 내 닉네임을 기억 못 하는 거야? 다섯 번이나 죽여놓고서? 하.’
어이가 없는 건 심형택뿐만이 아니었다.
‘웃긴 새끼네? 저거.’
꼬꼬마꼬막 역시 검은 낫을 보며 황당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고?’
꼬꼬마꼬막은 알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검은 낫이 아니라는 걸.
다름 아니라 진짜 검은 낫은 여기 있는 류민, 자신이었으니까.
‘나처럼 보이려고 연습을 열심히 한 모양이야.’
꼬꼬마꼬막으로 위장한 류민이 검은 낫을 보며 비웃음을 삼켰다.
아니, 검은 낫이라 부르기도 뭐하다.
놈은 그저 사기 전과가 있는 사칭범일 뿐이니까.
그리고 이 사칭범이야말로.
‘분신의 룬을 얻을 수 있는 열쇠다.’
그것이 류민이 현재 꼬꼬마꼬막이란 닉네임으로 위장해 있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