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74
제373화
“…적당히 해라.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도 좋지 않으니.”
“하… 합! 예!”
“너희도 얼른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가라.”
씨익 웃고 사라지는 카루나.
듣기로는 웃는 얼굴의 측근이라는 말이 있다.
카루나는 웃는 얼굴임에도 눈빛만큼은 차가웠다.
결국 그래도 카루나의 위선 덕분에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감독관은 뒤끝이 심했다. 기어코 유림과 내 배식 순서를 어그러트려 평소 먹는 양의 반밖에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으로 그의 화가 풀렸다면, 차라리 나은 거겠지.
‘이렇게 보니, 별 탈이 있는 것 같네.’
채찍을 얻어맞은 상처는 아마도 곪을 것이다.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면 바다에 버려질 것이고.
‘이렇게는… 더는 이렇게는 살 수 없어.’
평소였다면 한차례 바람이 지나갔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권성 쟈마드가, 이곳 멜튼에 방문한다는 것이다.
한차례 대중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 후, 도시를 순회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테지만,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유림, 떠나자.”
“…뭐?”
“이 지긋지긋한 하역장에서 함께 떠나는 거야, 유림!”
“…….”
“유림?”
대답을 못 하는 유림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권성 쟈마드가 도시를 방문하는 날. 도시가 발칵 뒤집히는 그때 난입하는 거다. 영웅의 앞에 서서 구원을 기다리자.
“데려가 주는 거야?”
유림이 해맑게 웃었다.
채찍을 맞아 성치 못한 몸이었지만, 마음만큼은 들떴다.
우리는 아직 어리고, 순수함을 간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쟈마드가 방문하는 날짜가 코앞으로 왔다. 그런데, 하역장 측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영웅 쟈마드가 하역장의 실태를 눈으로 본다면, 크게 분노할 것이 뻔하니까.
“모두,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라. 일은 며칠 뒤에 다시 시작할 것이니 그때까지 휴식해라.”
“휴, 휴식이요?”
“입 닥쳐, 너희는 대답만 하면 돼.”
“예!”
해맑게 웃는 아이들.
다만, 유림과 나의 입은 웃지 않았다.
특히나 유림은, 아이들을 다 밀어 넣은 건물에 무릎을 끌어안고 힘들어했다.
“유림, 왜 그래?”
“계획이 실패했잖아, 설아… 우리가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걸 녀석들이….”
“실패해? 누가?”
유림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알려주진 않았다. 여린 친구라 실패하면 분명 실망할 테니까.
녀석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될 줄 알고 뒷문 열쇠를 구해뒀어.”
“어, 어떻게?”
“슬쩍했지. 당연히.”
“역시! 설아, 넌….”
“쉿… 계획은 계속된다.”
계획이랄 게 별거냐.
권성이라면….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 높은 권성이라면, 분명히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을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권성이 도시를 순회하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으나, 낮이라고 듣기는 했다.
도시에 방문한 쟈마드 때문인지, 부두의 일상도 달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여길 좀 봐주세요!
도시의 소음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그 모든 것에서 배제된 채, 돼지우리 같은 곳에 갇혀 지내면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에 웃는 아이들.
슬슬, 정오가 될 것이다.
창고의 경계를 맡은 녀석들은 건물의 정문에만 있었고 그마저도 연초를 태우기 위해 중간중간 자리를 비웠다.
대에에에엥…
대에에에에엥…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
대부분의 인원이 식사하러 가고 부두는 조용해진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찰칵…
“달려, 유림!”
“응!”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다른 녀석들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용기 있게 나선 것은 나와 유림뿐이었다.
그나마 운이 좋다고 느낀 건, 미리 봐두었던 담장이 건물 가까이에 위치 한다는 점이다.
태풍 때 무너져 비교적 낮은 담장이다. 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던 곳이다.
어린아이의 발이 어른들보다 빠를 순 없다.
분명히 도주를 눈치채면 노역꾼들이 뛰어와 우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하역장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쟈마드에게 가야 해!’
오늘을 위해 버텼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고작 그 잠깐 사이에 산산이 부서졌다.
“이럴 수가… 언제….”
담장은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살갗이 다 찢어져 죽는 게 먼저일 것이다.
“틀렸어. 설아. 지금이라도….”
“아니, 아니야! 아직 아니야!”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문밖에 없어.’
판단은 빠르게.
달음박질은 그것보다 더 빠르게.
정문은 분명히 쟈마드의 방문을 기다리느라 열려 있을 것이다. 다급한 상황에서 머리는 잘도 돌아갔다.
“찾아라!”
삐이이이익-!
하역장에 우리를 찾는 소리가 가득했다.
컹!
커어엉-!
무서운 사냥개까지 풀었다.
이상하게, 마음은 안정되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한 것처럼.
늘 태풍 속에서 거닐던 사람처럼.
“달려어어어어어-!”
철문은 마침, 지원 요청을 받고 경계병들이 부랴부랴 오던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아예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왼쪽 아저씨, 다리를 절어. 저기로 가!”
유림이 나에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무튼, 유림의 말을 믿고 문의 측면을 맡은 경계병을 제치고 나아갔다.
“큭… 이 녀석들이!”
“됐다! 됐어!”
“응!”
유림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마침 저기, 권성을 위시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있는 게 보였다.
“서라!”
누군가 쫓아왔다.
“달려!”
권성의 얼굴이 점점 뚜렷해졌다.
짙은 눈썹.
각진 턱.
그리고 이목구비에 가득한 흉터까지.
영웅의 풍모가 짙었다.
달렸다.
달려야 했다.
영웅에게 알려야 했다.
이 생지옥에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의 삶을.
“이야아아아아-!”
비명은 닿지 않는다.
인원들이 만들어낸 소음은 내 고함을 일시에 지워버렸다.
그럼 더 빠르게!
더 악착같이!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그런데, 어쩐지 갑자기 발이 무거워졌다.
쟈마드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였다.
‘눈이… 눈이….’
유림이 속도가 줄어든 나를 잡아끌며 말했다.
“설아! 왜 그래! 달려야 해!”
“아, 으응!”
그때였다.
파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아아악!”
치이이익…
바닥에 고꾸라져 미끄러지는 우리.
“귀찮게도 하는구나. 쓰레기들이.”
카루나다.
그 싸늘한 눈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몸은 그에게 제압당했다.
저벅…
저벅…
“이봐, 한낮 대로변에서 무슨 짓이냐?”
“…….”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쟈마드가 다가와 물었다.
유림은 기대에 가득 찼다.
드디어 영웅에게 구원받는 순간이라 생각한 것이다.
“…제 동생들입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동생 아니….”
텁-!
으읍…
으으읍…
나와 유림의 입이 카루나의 손으로 막혔다.
그것을 지켜보던 쟈마드가 말했다.
“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지. 자, 이렇게.”
쟈마드가 몸을 숙여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 조용히 자신에게만 말해보라는 동작까지 취해가면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유림이 신이 나서 말했다.
“우, 웃는 얼굴이 우리 같이 어린 애들을 강제로 노예로 부려요! 우리는 여기 팔려 와서 매일 같이….”
쟈마드가 유림을 보았다.
“매일 같이….”
그리고 그의 미소를 보았다.
내가 그의 눈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유림도 이제 보고 만 것이다.
그의 눈은…
“그렇구나. 그런데 어쩌지.”
카루나의 눈과 같았다.
그가 우리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웃는 얼굴인데.”
“…….”
몸을 일으켜 대중에게 너스레를 떠는 쟈마드.
“하하하! 형제끼리 그럴 수도 있지. 이 쟈마드도 형제가 있었다면 매일 같이 사고만 쳤을 테니까.”
“아, 난 또 뭐라고… 애들 일이구만.”
“그럴 줄 알았어.”
드드드…
입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쟈마드의 힘이 우리가 입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썩어빠진 세상은, 이런 가짜도 영웅으로 꾸며낼 만큼 곪아있었다.
시커먼 어둠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믿었던 영웅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이라 생각했던 자와 동일 인물이라니.
우웁…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고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전하구나, 쟈마드! 그 고약한 냄새는! 여전히 위선자 행세를 하는 것이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복면을 쓴 2인조가 있었다.
‘누구지, 저들은….’
쟈마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장막이 너를 주시하고 있다 쟈마드.”
“…장막? 지금 장막이라고 했나?”
장막이라는 말이 나오자 웃는 얼굴 쟈마드가 당황했다.
‘장막이 대단한 건가?’
영웅이자 희대의 악인이기도 한 쟈마드를 당황하게 할 정도의 이름이라면, 정말로 대단한 자들일 것이다.
“큭큭큭… 이거, 허풍쟁이들이었군.
“…뭐?”
“장막이 활동하지 않은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나 쟈마드의 앞을 막는다고? 어째서냐? 그리고 만일 너희가 장막이 맞다고 한들 장막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2인조 중 근육질의 거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막은 숨죽였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금 그 날개를 펼칠 때다.”
“헛소리.”
“헛소린지 아닌지는, 끝까지 들어보면 되겠지. 어쨌든,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하나.”
씨익…
복면 뒤에 숨겨진 입꼬리가 웃고 있다는 걸, 이 자리의 모두가 알 것이다.
사내는 알기 쉬운 자였다.
“네가 악인이기 때문이다.”
“……늘 이런 녀석들이 꼬이기 마련이지. 그래서, 이름이 뭐지?”
파아앗-!
근육질의 남자가 알통을 부각하며 말했다.
“나는 최강의 무투가…를 목표로 하는 질리악! 그리고 이쪽은….”
“멍청아! 본명을 말하면 어떡해!”
“앗! 실수! 크하하하하하! 뭐 어떠냐, 말한 김에 너도 기분이나 내라고.”
“제기랄…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것 봐!”
질리악.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
그리고 그의 옆에 홀쭉한 남자 한 명.
드러난 눈만 봐도 미남이었다.
멋들어진 표정을 지으며 세검을 치켜올리는 남자.
“나는 키리. 그리고….”
키리가 하늘을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따라 올라간다.
나의 시선도.
‘…아.’
오늘 본 하늘은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온 하늘이 까맣게 뒤덮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아-!
“그 녀석은 쿠파야.”
“큭… 피해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만들어진 꿈의 세계.
꿈의 세계는 신립, 신현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뒤틀려 있었다.
강설에게 너무도 많은 영혼과 자아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