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78
제77화
스르륵…
전송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설은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또다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차오가 지시한 일은 그늘 협곡에서 동쪽으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에서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원정 시스템이 발동했다.
[당신은 인적 드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이름은 땅거미 마을. 화전민들이 일군 소규모 공동체라고 합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굴뚝의 연기만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당신은 마을의 주민에게 이곳에서 쉬었다 가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1. 호의를 받아들여 여장을 푼다.
2. 이곳에서 식량과 물자를 보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본다.
3. 타지에서 처음 받는 호의다. 제안은 거절하되 가진 물건 중 하나를 내놓고 떠난다.
4. 수상하다. 외지인인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품으려 하다니. 곧장 이곳을 떠난다.
5.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다. 인적이 드물다 해도 족히 10명은 넘는 인원. 장정들도 꽤 있었으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일단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상황을 살핀다.
……
‘아, 된통 걸렸군.’
강설은 이곳과 비슷한 마을을 몇 개쯤 알고 있었다.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은 지역에 있는 마을.
모험가들이나 외지인들이 이런 장소에 방문하면, 십중팔구 배척받는다. 무수한 약탈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지인을 환대하는 마을은 도리어 모험가가 경계해야 했다.
‘일단은 5번으로 간다.’
4번을 선택했다간 어떤 재수 없는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강설의 실제 성격도 5번과 유사한 면이 있었으니 그는 5번을 선택했다.
꾸국…
5번의 선택지를 누르자, 선택지의 색이 변하면서 모든 선택지가 사라졌다.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날 밤, 당신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 에라이, 썅! 이럴 줄 알았다 ㅋㅋㅋ
–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들켰네?
– 전통적으로 이런 마을은 불길해!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마을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 아마도 그 내용이 등장할 것이다.
강설은 다음으로 떠오른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영생불사! 영생불사! 영생불사! 마을 깊은 곳에 있는 전당에서 사람들의 기도문이 들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매료된 비이성적인 신자들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진상을 몰래 확인했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1. 불길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짐을 버리고 도주합니다. (소지품에 있는 모든 물건이 사라집니다.)
2. 이들은 아직 자신들의 정체가 들통났다는 것을 모릅니다. 당신은 이곳에 좀 더 머물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3. [필요 : 이단심문관] 하늘 아래 사악한 신을 섬기는 이는 모조리 스러질 것입니다. 마을의 모든 이들을 참수해, 마을 입구에 내겁니다!
4.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이 섬기는 신에 관해 묻습니다. 진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깊은 환희에 벅차오를지도 모르는 일이죠.
……
‘선택지들이 제정신이 아니군. 리스크들이 너무 커.’
1번의 선택지는 리스크 때문에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3번은 애초에 다른 직업을 요구하니 2번과 4번이 남는다.
‘4번도 강제 개종 이벤트라도 벌어지면 끝장이니… 2번만 남는군.’
2번도 그다지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아마, 이 선택지의 끝에는 주민들과 대적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광신도들은 그 목이 베여야 굴복하기에, 뜻하지 않게 살인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꾸욱…
어찌 됐든,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라 여긴 강설은 2번을 선택했다.
[비로소, 이 마을에서 벌어진 모든 참상을 알게 됩니다.]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상태 이상 : 불신에 노출됩니다.]
정신 페널티를 받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어쨌든 사건의 진실에는 도달했으니까.
[영생불사! 영생불사! 마을 주민들은 지금껏, 이곳에 머문 여행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후 그릇된 신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는, 감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고 그것을 목격한 당신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이들은 인간의 선을 넘은 자들입니다. 전부 죽여 불태웁니다.
2. 비록 선을 넘은 자들일지언정 그들을 벌할 권리가 당신에게 있을까요? 침묵합니다.
3. 모든 걸 덮어두는 대신,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합니다.
4. 가까운 도시의 영주에게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고발합니다.
……
이미 일은 진행될 대로 진행되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아무런 피해 없이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맞을 것이다.
꾸욱…
1번 선택지가 움푹 들어갔다.
잠시 후,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더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벌인 행동에 죽어가던 주민은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도께서 오고 계신다. 너희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카렌이 상태 이상 : 악몽에 노출됩니다.]
[피로가 누적됩니다.]
[왜곡된 신앙의 목걸이를 획득합니다.]
‘휴…. 이 정도면 가까스로 막은 건가?’
페널티도 이 정도면 잘 방어한 편이었다.
그가 아닌 카렌이 페널티를 받았다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의도치 않게 장비도 얻었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카렌이 머뭇거리는 사이, 산 전체에 괴상한 존재들이 가득 찼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피해 도주하던 중 물살이 강한 상류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1. 이 정도 물살이라면 하류까지는 순식간에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수영만 할 수 있다면.
2. 물을 뒤로하고, 전투를 택한다. 단, 카렌이 전투에 응할지는 알 수 없다.
3. [필요 : 빛 관련 능력] 빛의 힘으로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4. [필요 : 서리 관련 능력] 도강을 시도한 후, 강을 얼려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
‘빌어먹을, 최악이다.’
그나마 1번이 무난한 선택지였고, 다른 선택지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도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수영은 할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나.’
1번 선택지가 움푹 들어갔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신없이 헤엄치던 당신은 결국, 급류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곳이 어딘지, 어떻게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물을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수차례 정신을 잃기를 반복하던 당신은 마침내, 급류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화아아악…
세상이 깨져나가며, 강설의 몸이 만취한 것처럼 뒤집혔다.
‘숨! 숨이….’
강설은 갑자기, 몹시 괴로워졌다.
“쿨럭… 컥… 컥….”
입에서 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근 일주일간 마신 물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그의 입에서 계속해서 내뱉어졌다.
“하아… 하아… 이런 미친….”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누적된 피로가 몸을 무겁게 합니다.]
[옷이 전부 젖었습니다. 몸을 따듯하게 해야 합니다.]
[상태 이상 : 저체온증에 노출됩니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또 다른 상태 이상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도착까지 7일 12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기랄, 일주일이나 흘렀다고?’
장거리 모험의 폐해였다.
이 끔찍한 결과가 보통 비슷한 지역의 모험을 예정하거나, 연계 모험을 예정하는 이유기도 했다.
‘모험은? 제대로 온 건 맞아?’
그림자 소환도 불가능했다.
몸 전체가 젖은 솜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삭…
인기척이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마주치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저, 저기요?”
“하아… 하아….”
“괘, 괜찮아요?”
강설 또래의 여인이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손목에 바구니가 매달려 있고 이것저것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약초를 캐러 왔거나 버섯을 따러 왔을 것이다.
아무튼, 강설은 상대가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크게 감사했다.
“몸이… 몸이….”
“자, 잠깐만요! 사람을 불러올게요!”
쿵!
강설은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끔뻑.
끔뻑끔뻑.
눈꺼풀이 장난처럼 올라갔다.
그는 지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끄으으… 이게 뭔 꼴이야.”
– 조졌다;; ㄹㅇ 장거리 모험 개 위험하네
– 그 마을은 뭐였던 거여?
– 마을보다 쫓아오던 놈들은 다 뭐지?
– 카렌은! 카렌은 어떻게 된 거야?
“카렌.”
“…….”
강설은 그림자 공간에 있는 게 분명한 카렌을 계속해서 불렀다.
잠깐, 머뭇거리던 카렌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사주었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카렌이 침상 옆에 소환됐다.
“왜….”
“무슨,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억… 안 나?”
“기억이….”
지지직… 지직…
머릿속에, 장거리 모험 도중에 있었던 일들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 끄아아아악!
– 불, 불이… 내 몸에 불이…
– 사도께서 너를 벌하실 거야! 너를…
순간, 끔찍한 뭔가를 더듬은 것처럼 강설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헉… 허억… 허억….”
“우리는 마을을 불태웠어.”
“광신도들의 마을이었지… 하아… 후….”
“그래,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괴로워?”
카렌은 조금 어두워 보였다.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죄책감? 아니, 그것보다는 실망감?”
강설은 카렌이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왜,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까?”
“카렌.”
“시대가 변했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 몬트라 때와 똑같아.”
카렌이 울상을 지었다.
“여전히 세상은 잔혹해. 난… 난… 뭣 때문에 이렇게 되돌아온 걸까? 이 꼴을 보려고?”
“…….”
“그냥… 모르겠어. 신경 쓰지 마.”
카렌은 강설의 모험을 이제 막 경험한 신출내기였다.
능력은 베테랑이었지만, 뒤바뀐 세상을 처음부터 알아가야 했기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렌이 침울해하던 그때, 그림자 공간에 머물던 쟈마드가 말했다.
“흠, 그보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보는 게 어떨까?”
“쟈마드?”
“계속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긴 했다만, 그 인간 여자의 마을에 온 것 같다.”
쟈마드는 강설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잠시 의식을 잃었던 상황이지만, 쟈마드가 위험을 살피고 있었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온다.”
달칵-
문이 열렸다. 물가에서 마주쳤던 그 여인이 서 있었다.
“꺄아아악!”
“왜, 왜 그래?”
“누, 누구세요?”
“나? 나 말하는 거야?”
“여기 모르는 사람, 아니 요정이 당신밖에 없잖아! …요.”
카렌이 갑자기 쌩뚱 맞은 장소에서 등장했기에, 여인이 놀란 것 같았다.
카렌은 재빨리 변명했다.
“그, 저기, 어… 나, 나는 그러니까 말이야.”
“강도?”
“강도라니! 그, 그… 이 남자의 동료라고나 할까….”
“동료? 거, 거짓말! 이 남자는 혼자 있었다고요!”
“사정이 생겨서 잠깐 떨어진 거야. 진정해.”
“저, 정말이에요?”
여인은 강설에게 사실을 확인받으려 했다.
강설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휴… 저는 또… 이런! 실례를 해버렸네요!”
“괜찮아. 나라도 놀랐을 거야, 그… 인간 아가씨.”
“제 이름은 세라예요. 세라라고 부르세요, 예쁜 요정 언니.”
“뭐? 카하핫! 들었어? 들었냐고? 주인!”
“주인이라고요?”
“아니, 그… 나와 친한 동료 모험가 스노우맨.”
마치 친한 직장 동료라고 소개하는 것 같은 카렌을 뒤로하고, 강설은 세라에게 물었다.
“세라, 나는 스노우맨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여기가 어딥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스노우맨 님, 이곳은 아우데닌에서 북쪽에 있는 물안개 마을이라고 해요. 매일 아침 호수 주변으로 물안개가 펼쳐져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해요!”
– TMI네…
– 제가 LA에 있을 때부터 물안개 마을은…
– 세라 커엽네 ㅋㅋ
강설의 눈초리가 일순 싸늘하게 굳었다. 하지만 곧, 다시 눈웃음까지 지어 보이는 그였기에 아무도 그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군요. 저 세라. 제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으니 잠시만 자리를 피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 물론이죠! 편하게 갈아입으세요. 전 밖, 밖에 있을게요!”
쿵!
“아야!”
세라가 나가면서 문에 이마를 부딪쳤다.
– 10점.
– 완벽해, 지금 바로 팬아트 갈기러 간다.
– ㅋㅋㅋㅋㅋㅋㅋ 리얼 덜렁이네.
강설은 그녀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 소지품에서 차오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맞게 온 것 같네.”
두루마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 그늘 협곡의 동쪽, 남쪽의 대도시 아우데닌의 북쪽에 자리한 물안개 마을로 가.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두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