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유성운이 달려왔다.
“지오야.”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우리가 뭐 섭섭하게 한 거 있을까?”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없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허탈하게 웃은 유성운이 물었다.
“요즘 다른 직원들하고 자주 말을 섞는 것 같아서.”
“업무에 방해가 되었을까요.”
“아주 조금? 뭐, 네가 아주 무례했다는 건 아니고….”
공포감을 조성한 것을 민폐의 영역으로 보기는 좀 애매했다. 지오의 정체가 몬스터도 신도 아닌 근원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는 유성운으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이야기를 들었는데, 악신에 대해 묻고 다닌다면서?”
“자네의 말이 맞아.”
“으억.”
초상화 속 지오가 불쑥 상체를 들이미는 것에 유성운이 화들짝 놀랐다.
“너 그런 식으로도 나올 수 있었구나.”
“몸을 반쯤 걸치고 있는 것뿐이니.”
너울처럼 일렁이는 검은망토 아래로 채도 낮은 적발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어조로 따졌을 때, 아마 스스로를 악신이라 소개한 아르지오가 된 모양이었다.
그가 액자에 몸을 기댔다. 가볍게 까닥거리는 손톱이 짐승의 것처럼 길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르지오가 말을 이었다.
“최근 들어 악신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뭔가.”
“의문? 어떤 의문인데?”
“악신이 뭘까? 뭘 어떻게 해야 악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정말 구분이 어렵지.”
유성운이 목을 쓸었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하는 신을 악신이라고 부르거든.”
“그렇다면 축제에 난입해서 술을 마시거나 사냥터에 끼어드는 것도 악한 행위인가?”
“그 지역의 풍토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딱히 악행이라는 느낌은 안 드네.”
“나를 공격하는 이들의 목을 매달아 숲에 장식한 것은?”
“그건 확실히 악행이라고 불릴 만도 하지…?”
세상에는 정당방위라는 말이 있지만, 받은 만큼만 돌려주기엔 인간이 그리 공정한 생물은 아니었다.
천부 인권 인식이 높은 지역에서는 특히 그런 식의 적나라한 보복을 반기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뭐, 나는 개인적으로 악행이라고까지 생각은 안 해. 나도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살려두지는 않거든. 그렇다고 장식을 하지는 않지만….”
“나라고 그게 아름다워 보여서 장식을 했겠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시비를 걸러 들어오는 멍청이들이 있으니 문제지. 아무튼 자네는 크게 악하다고 느끼지는 않는군?”
“다른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다면 역으로 죽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걸? 그런데 이런 질문은 왜 하는 거야?”
“…….”
잠시 침묵한 아르지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악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기준에서 떨어지는 것 같아서 그러네.”
“기준이라. 우리 지구에서는 악신을 정의하는 확실한 기준이 있지.”
유성운이 물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적이 있어?”
“무고하다는 건 어떤 사람을 뜻하지?”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거나 호의를 베푼 사람들이라던가.”
“설마 그런 이들을 죽였겠는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적은 없고?”
“무시하면 모를까 그런 짓을 한 적은 없어.”
“아니 그럼 대체 왜 악신이야?”
이해가 잘 안됐다.
“사람들이 너를 악신이라고 불렀다면서.”
“그랬지.”
“왜 그렇게 불렀던 거지? 심지어 아르지오라는 이름의 뜻은 멸칭이잖아.”
“재수가 없어서?”
아르지오가 긴 손톱을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아름다운 짐승은 사람들의 미움을 살 만해.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했는데, 그들은 나를 탐욕과 분노의 악신이라고 칭했어.”
“탐욕과 분노….”
“난 재물을 좋아하거든. 금은보화와 질 좋은 술은 나의 둘도 없이 친한 친구이고, 짐승으로 자랐으니 인내할 필요도 없었네. 날 거슬리게 하는 자들에게 분노를 되돌려주는 건 즐거운 일이야.”
“하지만 그걸로는 악신이라고 하기엔 조금.”
“…으으음….”
아르지오가 턱을 괴었다.
“역시 그런가.”
“뭐가 마음에 안 들기라도 하는 거야?”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악신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는 건가?”
“그 또한 나의 명예 중 하나이니 당연하지.”
“명예라….”
“내 품에 들어온 나의 것이야.”
“…….”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나의 악명도 별것이 아니었군.”
망토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오는 꽤 지루해 보였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있나.”
“…으음, 어… 그런가….”
유성운은 대충이나마 상황을 이해했다.
‘신비의 몸집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로 인해 부피를 달리하지.’
악신도 결국에는 신. 그의 존재를 믿는 생물들의 호의 또는 적의에 몸집을 달리하고, 보아하니 아르지오는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악명조차 자신의 것이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럼 직접 행한 악행에 비해 과도할 만큼 사악한 신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기는 해.’
산칼루트교도 그렇지 않은가. 살인은커녕 말조차 하지 못하는 평범한 보석이었던 것이, 국가 단위의 신앙과 제물을 통해 버젓한 악신이 되었다. 아르지오와 비슷한 경우인 셈이다.
‘특히 이쪽은 말도 행동도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을 향한 오해를 적극 수용 했고….’
굉장히 희귀한 경우였다.
“그럼 정작 너는 아무것도 안 한 거나 다름없는 건가?”
“재수 없는 작자들의 저택에 무단으로 방문해 술과 재화를 가져가기는 했지.”
“재수 없는 작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데?”
“내 술맛을 떨어트리는 놈들. 내 앞에서 소란을 피웠어.”
“시끄럽게 떠들었다던가?”
“날 위해 식사를 준비해 준 마을을 몰살시켰노라 떠들어댔지.”
“아, 그건 확실히 정당방위지. 그럼 네가 한 일을 악하다고 하긴 어렵겠네.”
“그거 대단히 안타까운 소식인데.”
“음….”
유성운이 난감한 듯 웃었다.
“네 명성이 허울뿐이었던 것 같아서 그래?”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이 더욱 즐거우니까.”
“…….”
잠시 유성운은 말문을 잃었다.
“…전쟁터라도 좀 알아봐 줄까?”
“아니요.”
지오의 음성은 순식간에 무뚝뚝한 어조를 띠었다.
“아직 아르지오로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싸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저는 원래도 다툼을 꺼립니다.”
“아까와는 말이 조금 다른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흠, 그런가.”
잠시 고민한 유성운이 물었다.
“아직 집에 주현 씨가 있지?”
“예, 주무시고 계십니다.”
“내가 물어볼 때마다 자는 것 같네.”
“피곤한 것 같아 일찍 재웠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네가 자리를 비울 수 있나 해서.”
“권유해 주실 것이 있습니까?”
“악신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잖아.”
뭐든 실전이 좋은 법이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일반적인 종교라고 인정한 악신이 있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악신이겠군요.”
“그보다는 일종의 순리라고 생각한 거겠지, 해가 되기는 해도.”
신과 관련된 신비는 유성운의 전문이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죽음의 신이야.”
“죽음은 확실히 순리가 맞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지.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해가 되는 것이죠.”
“죽음의 신은 최근 14년 사이에 일반 종교로 인정이 되었어.”
“그 이전에는 아니었습니까?”
“워낙 예민한 시기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유성운이 무던하게 웃었다.
“악신이 판을 치던 세상이라 구분할 여력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판을 쳤군요.”
“영원의 상징 덕분에 지금은 나름 체계가 잡힌 느낌이지.”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번 만나볼래? 네가 원한다면 그쪽에는 미리 양해를 구해둘게.”
“그렇다면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렇게 검은망토가 다시금 세상에 출격하게 된 것이었다.
정확히는 A급 헌터 ‘서지오’로서 말이다.
* * *
“…….”
“…….”
“아니 이봐요.”
비사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허락 맡으러 온 유성운을 보았다.
“언제는 나보고 서지오 씨 바깥으로 빼돌리지 좀 말라면서.”
“그건 워낙 길드장님께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내가 지금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대체 얼마인 줄 알고 이런 막말을?”
“저는 최소한 지오 보고 난장판 좀 만들어 보라며 옆에서 박수 치지는 않잖아요.”
“그건 맞지, 맞는데 나 너무 억울해. 이런 대접 받고 어떻게 사나?”
그런 것치고 너무 잘 살아온 걸 유성운이 알고 비사벌이 알았다.
“역시 우리 직원들은 손바닥 비빌 줄을 모른다니까.”
“업무에 따로 추가하시면 얼마든지 비벼드릴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안 하잖아, 나는 그런 여러분이 너무 좋아.”
“저희도 알아요, 알아서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거고….”
중얼거린 유성운이 이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죽음의 신전은 경기도에 있어 미리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전과 달리 꽤 멀리 가게 될 것이고, 악신과 악신이 만나는 것인 만큼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
무언가 계산하듯 탁자를 두드리던 비사벌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기는 하군요, 악신인 지오와 고요한 악신이 만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것보다는 훨씬 재밌고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겠습니까?”
“흥미로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르지오랑 좀 닮으신 것 같네요.”
아르지오가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더 자극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류의 평화에 큰 관심이 없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즐기기 위해 선을 옹호하는 건, 비사벌이나 아르지오나 확실히 닮은 부분이 있었다.
그에 비사벌이 샐쭉 웃었다.
“아르지오 역시 저와 색이 비슷하다고 했던가요?”
“길드장님보다는 더 차분한 색감이지만요.”
“여차하면 내 조카로 둘러대죠.”
“4대 독자셨다면서요.”
“으음.”
유성운의 진한 시선에 비사벌이 말을 덧붙였다.
“숨겨진 아들이라든지?”
“여든 넘으시지 않았습니까?”
“생긴 건 탱탱하잖아.”
“탱탱하다기에는 50대의 육체이시죠.”
“그럼 정정하다고 하죠.”
거기까지는 유성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지오에게는 태양의 신성이 이미 있습니다. 악신의 사악한 신성이 그 위로 덧씌워진 건지, 아니면 공존하고 있는지, 그도 아니라면 바꿔치기를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성운이 말을 이었다.
“서울 지부 태양교는 지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특히 경기도 지부의 악신은 신성끼리의 갈등을 즐기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사료되어 허락을 받으러 온 겁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고?”
“지오가 자신을 악신이라고 소개한 이상 주의할 것은 주의해야겠죠. 그는 특히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대비는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비사벌의 수집상은 비즈니스 회사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길드원들이 전투에 능하지 못하다는 건 아니었다. 일부 그의 명령만을 따르는 수행조도 존재했다.
“제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놓도록 하죠.”
“뒤를 봐주신다니 마음이 든든하군요.”
특유의 무던한 미소를 지은 유성운이 감사를 전했다.
“늘 도움만 받는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심정입니다. 다만….”
“다만?”
“나갈 때는 ‘서지오 씨’로 나갈 테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비사벌이 제 턱을 쓰다듬었다.
“조만간 서지오 씨의 비서를 구해도 괜찮겠어요.”
“지오를 공식 헌터로 만들 생각입니까?”
“그동안 차단해서 그렇지, 이미 시선은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일을 조용히 진행한다 한들, S급 던전 ‘심해의 나라’에 서지오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이 방문한 이후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것을 꽤 많은 사람이 알았다.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한 A급 헌터와 그의 방문 이후로 잠잠해진 한국의 바다. 특별히 증거가 있는 건 아닌 탓에 의심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은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서지오 씨가 ‘심해의 신전’에서 사람들을 구하기도 했고요.”
“아직도 그 영향력이 남아 있다고요? 공식 활동도 안 하는 헌터 때문에?”
“잘생기고 능력 좋은 헌터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죠.”
“…그건 그렇습니다.”
특히 지오는 유독 사람들의 기억에서 잘 잊히지 않는 아우라가 강했다.
무엇보다 힘들고 무서웠던 당시 사람들을 한데 모아 다독여 주었던 ‘서지오 헌터’를 해가 지난 지금에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망한 신입 A급 헌터이면서도 그 행적을 파악할 수 없다는 부분이 이목을 더 끌었을 거고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으로 읽혔으려나….”
“잘 알면 진작에 우리 지오 씨 좀 바깥으로 내돌려 주지.”
“그게 길드장님의 사심이 듬뿍 담긴 권유라는 것을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아무튼, 그러면 매니저는 직원 중에 찾아봐야겠네요.”
공식 활동이 잦은, 혹은 인지도가 높은 헌터라면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 한두 명씩은 붙이고 다녔다.
지오가 공식적인 활동이 잦을 예정은 아니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면 다른 의미로 비서는 필요했다.
“‘서지오 씨’의 존재를 알아야 일정이나 이미지를 관리하기도 편해질 테니….”
“그 부분은 차차 사람을 구해보도록 하죠.”
비사벌의 길게 찢어진 동공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주현이라고 했던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꽤 쓸 만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