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300)
300
제300화
그렇게 유성운은 정해운과 만났다.
“…….”
“유성운 정원사?”
“아, 예.”
왜지?
‘내 인생에 마가 꼈나?’
제 금쪽같은 초상화가 그려준 금쪽같은 작품을 자택에 안치한 게 불과 28시간 전.
급한 업무만 끝내면 ‘같이 설원에 들러보자’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 마음의 준비는커녕 상상도 못 한 존재가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정해운 길드장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정해운 정원사는 난감한 얼굴로 사과했다. 과연 명성대로 다정다감하고 정중한 태도였다.
“정말 못난 발언이겠지만 가급적 비사벌 길드장님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영원의 상징과 비사벌은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다. 유성운이 생각하기에도 그의 길드장은 인생을 너무 즐겼다. 조금 아슬아슬할 정도로 즐겼다. 지구를 수호하는 입장인 영원의 상징이 꺼리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아무리 콩깍지가 꼈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란 말이지.’
수집가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96%의 확률로 비사벌이 문제였다. 유성운도 그 데이터값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단지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성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 던전에서?”
“분위기 좋은 카페나 깔끔한 응접실이 아니라 송구한 마음입니다만, 정원사끼리 대화를 나누기에 던전만큼 용이한 공간도 없지요.”
“그것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신비에 예민한 정원사들 아닌가. 정도 이상의 급에 다다르면 지구보다는 신비 속이 더 편안할 때가 있었다. 이래저래 조정하기도 편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에도 딱 좋고.
여러모로 말이다.
‘다만 여기가 네발 우림 속이라는 점은 조금 걸리는데.’
지오의 수족인 물새들이 사방에 널린 곳 아닌가. 물론 유성운은 제 작품의 편이었지만 동시에 지구의 편이기도 했다. 지구의 수호자이자 정원사의 어른인 정해운을 홀대할 수도 없었다.
그가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이 구역에는 지금 저만 있긴 합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정해운 길드장님.”
“예, 다시 한번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공식적인 일정을 잡아서 뵙는 것이 예의인 줄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이런 식으로 찾아뵙고 말았군요. 이 점은 허락해 주신다면 추후 보상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선배님이 늘 바쁜 분이라는 건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아는데요.”
헌터 사이에 사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건 분명한 무례였다. 하도 서로 죽고 죽이던 대재앙 시기에 생긴 암묵적인 전통 중 하나였다.
찾아오는 사람이야 어쨌든 맞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가 암살자일지 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상대가 정해운이라면 예외였다.
‘시간이 없지.’
그냥 없다. 물리적으로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아예 없는 걸 넘어 그냥 마이너스 통장 수준이다.
‘그런 사람이 특정한 인물을 찾아온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한 것일 테고… 그 정도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찾아왔을 정도라면 나눠야 할 주제는 딱 한 가지뿐일 텐데.’
생각을 정리한 유성운이 물었다.
“…‘지오의 초상화’ 때문에 찾아오셨습니까?”
“아, 이런. 먼저 말을 꺼내도록 만들다니 부끄럽습니다. 예, 후배님께 이런 무례를 저지르고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니 참 민망하지만… 지금 담당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의문이 생겨서요.”
“저는 괜찮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빨리빨리 이야기를 마치는 편이 정해운 길드장님께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자, 근원입니까?”
“…….”
이건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갑니다.”
“제 작품 관리가 미흡하기라도 했던 걸까요…?”
“유성운 정원사께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다만 저는 며칠 전 직접 ‘서지오 헌터’를 보기도 했고, 그렇게 느낀 바도 있으니까요.”
“아하….”
역시 까마득한 대선배의 관점은 또 다르다 이건가.
“저는 꽤 오래도록 관찰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부족한 점을 이렇게 느끼게 되니 참 부끄럽군요. 앞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
“유성운 정원사는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마다 해야 하는 일이 다르고 할 수 있는 일이 다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항상 같은 시야를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나긋하게 이야기하던 정해운 정원사가 물었다.
“혹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서지오 교사’의 이야기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만….”
“최소한 그자가 ‘약속’에 얽힌 존재라는 건 아시겠군요.”
“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렇습니다. 무례했을까요?”
“무례보다는 유능이라고 표현해야 옳겠죠.”
정해운이 소탈한 모습으로 으쓱였다. 그는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오가 말한 ‘불량아’가 상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제 배경과 그러한 ‘약속’ 덕분이 컸습니다. 유성운 정원사가 담당하는 작품에 대해 알아차리기가 꽤 수월했죠. 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알아내기 어려운 진실일 테니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말했다.
“최근 정원들이 한차례 열병을 앓았습니다.”
“예, 저의 설원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죠. 저는 이것을 일종의 성장통,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로 판단했습니다. 유성운 정원사의 담당 작품이 정말 근원과 엮인 존재라면 그쪽에서는… 무언가 반응이 없었을까 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정도로 ‘서지오 헌터’와 친한 사이일 거라 생각하시나 봅니다.”
“두 분이 공식 석상에서도 친분을 과시하는 사이라는 건 꽤 유명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저 역시 ‘서지오 헌터’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죠.”
“…워낙 친화력이 좋은 친구이기는 해요….”
좀 머쓱했다.
“…그 이전에도 열병의 기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 기분 탓이었겠습니까?”
“아뇨, 예전부터 정원은 불안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느 지점에서 확 터진 것처럼 보였고요. 다만 그 지점 근처에 무언가 계기가 있지는 않았을까 해서.”
“계기라… 음….”
유성운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어….”
하지만 결론은 아직도 나지 않았다.
“곤란하네요, 이거.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럴 만도 한 것이 상대는 ‘지오의 초상화’였다. 근원의 눈이라는 것이다.
그런 존재에게 최근 여러 자아가 덧씌워지기도 했고, 던전이나 몬스터 같은 여러 신비를 매만지기도 했으며, 옛 제자를 만나거나 퍼레이드에 나서는 등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원이 동요할 이유는 이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니면 일종의 감사(監事)라던가?’
뭔가 그럴싸했다.
‘눈이라는 신체 부위가 가지는 특성상 지오의 방문을 눈치챈 정원들이 긴장한 탓에 몸살을 앓은 걸 수도… 몸살 이후에는 더더욱 정돈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나름 일리가 있긴 하지.’
하지만 이것도 명확한 건 아니었다. 유성운의 정원만 하더라도 몸살 이후에 딱히 ‘완벽’해진 건 아닌 것이다. 단지 손이 조금 덜 가게 된 것뿐이지.
‘정말 높으신 분께서 거행하는 감사의 의미였다면 생기가 넘치기보다는 여전히 긴장 상태였을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정원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고.’
아니, 그 영향이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정해운 정원사가 말하는 ‘사건의 원인’에 이것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원사는 근원의 존재만을 알 뿐 그의 정확한 구조를 아는 건 아니었다. 추측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무한대의 상상을 해낼 수 있었다.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유성운이 무던하게 웃었다.
“…다시 짚어 보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복잡한데, 바로 대답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쁘신 분께 이런 실례를 끼치다니.”
“죄송하다뇨, 지금 이렇게 적극적으로 답변해 주시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도 추가 근무이지 않습니까?”
“비슷하기는 하죠?”
“실례는 제가 끼쳤고, 도움도 제가 구하고 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뭐라도 괜찮으니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일단, 음….”
유성운이 변명처럼 말했다.
“…이전부터 기미는 보였죠. 지구의 신비는 쌓여만 가는데 정리할 인원은 적으니 모든 정원사들이 예견한 미래였겠습니다만. 또, 이게… 최근에는 여러 던전이 터졌고.”
“모두 ‘지오의 초상화’와 연관이 있는 던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초상화가 근원에 가까운 존재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어요. 제가 봤을 때 반은 의도한 것 같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워낙 속 모를 녀석이라.”
“음… 제가 직접 뵈었을 때도 그리 만만한 분은 아니셨죠,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꿈의 유원지’ 직전까지만 해도 열병이라 부를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직전처럼 모든 정원이 떠들썩해졌던 것도 아니니까요.”
다정하게 어르고 이끌어주는 음성에 유성운은 차근차근 시간을 되짚어갔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예상되는 지점은 있지만, 그래도 정해운 정원사 앞에서 허투루 지껄일 수는 없었다.
그가 찾아내야 하는 건 그야말로 불안정함이 팡 터진 시기.
‘정원과 신비의 일로 가장 많이 바빠졌던 때.’
곰곰이 생각하던 유성운이 목을 쓸고는 말했다.
“…역시, 그, 폐교에….”
“…폐교?”
“예, 제 초상화가 폐교에 둥지를 지었습니다.”
“아, 이런.”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것 같네요.”
“무슨 말씀인지 방금 이해했습니다.”
정해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유성운 씨는 ‘관계자’이신 모양입니다.”
“아? 아, 네. 관계자요?”
“아시겠지만 그에 관련된 기억과 정보는 모두 지워졌습니다. 저 역시 헌터 협회장께 호의를 받아 그 오싹했다는 괴담의 존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정확한 기억은… 그다지….”
“…기억이 남은 소수의 사람이 ‘관계자’인 거군요.”
“나름의 기준이겠죠. 정말 모든 사람이 잊어버리게 된다면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습할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유성운 정원사라면 믿고 맡길 수 있어요.”
“그럼 모든 영원의 상징께서 그 폐교 둥지의 존재를 잊으셨습니까?”
“최소한 나와 단해라 협회장은 잊은 게 맞습니다.”
그러고 정해운은 빙긋 웃었다.
“아쉽군요.”
“…….”
기묘한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어딘가 비틀린 울림이다.
‘…정원사 종특이지.’
S급 헌터이자 지구 최초의 정원사. 그 누구보다도 인간 아닌 신비에 가까운 인간. 음성 하나에도 다채로울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정원사였다.
백조처럼 보일 것. 얼어붙은 강가의 수면처럼 보일 것. 그 속내를 드러내지 말 것. 그렇지 않은 정원사는 결국 언젠가 신비에 잡아먹히거나 그로 인해 파멸을 부를 수 있으니….
‘뭐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르겠고.’
정원사는 그래야만 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정원도 쉽게 드러내고, 그렇게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신비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모순이어야 했다.
“…이 이상 더 궁금하신 점은 없습니까?”
“말씀해 주신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귀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이 부분은 사적으로 보답해 드리도록 할 텐데… 원하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실까요?”
“그렇다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든지요.”
“‘지오의 초상화’를 어떻게 대하실 생각인가요?”
“음, 그렇죠. 유성운 정원사라면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이네요.”
잠시 고민하던 정해운이 순순히 대답했다.
“…신비로 대할 것입니다.”
“그를 싫어하십니까?”
“꽤 좋아합니다, 저치고는.”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신비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은 짧고 신비는 순식간에 존재를 드러냈다 사라지니.”
“저는 며칠 뒤 저의 정원에 그를 들이려고 합니다.”
“그건… 꽤 흥미롭군요.”
정해운은 정중한 미소를 지었다.
“그자가 당신을 잘 대해주나요?”
“대단히 잘 대해주고 있죠, 정말 친절한 초상화라서요.”
“그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어째서입니까?”
“신비의 이야기가 더 큰 규모로 넓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군요.”
그러고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정원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나는 그때의 그걸 지구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적응해 나갈 테고요.”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운의 질문은 여기서 끝이었다.
‘나머지는 내가 생각해야 할 문제지.’
그러며 무던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평온했으면 좋겠네요.”
“제 생각에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아주 친절한 초상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지구를 사랑하는 초상화죠.”
정해운이 가볍게 고개 숙여 작별을 전했다.
“최소한 더 나아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요하죠, 믿음이라는 건.”
“그럼 종종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무어라 말을 전할 새도 없이, 정해운의 모습은 사라졌다.
“…….”
나타났을 때랑 똑같네.
‘귀신같은 사람이야.’
귀신도 일종의 신비인 만큼 어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유성운은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안정된 네발 우림은 그들만의 생태계로 생기가 넘쳤다. 이따금 바닥에서 새싹이 자라나 살랑거리거나 투명한 물새가 열매를 물고선 응시하기도 했다.
수풀 사이에서 등꽃 수룡이 뽕뽕뽕 얼굴을 내밀었다. 옹기종기 모인 녀석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다시 수풀로 들어갔다.
“…으으음.”
귀엽기는 하다만.
‘…그사이에 또 성장했네. 설마 여기에도 근원의 영향이 미친 건 아니었으면 하는데….’
한숨처럼 신음이 나왔다.
“언제 퇴근하지.”
빌어먹을 야근이었다.
* * *
“서서희.”
그의 방문은 평소보다도 갑작스러웠다.
“…정해운.”
“그가 아직도 너를 보러 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답부터 해.”
대뜸 서서희를 찾아간 정해운이 험악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자가 아직도 너를 찾아?”
“…아니, 당분간은 쉬겠다고 했어.”
“너, 절대로, 절대….”
어깨를 꽉 쥔 양손과 살기가 감도는 날 선 어조. 화를 내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절대 그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그래 줄 수 있지? 그럴 거라고 믿어.”
식은땀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지 말은 안 해줄 생각인가?”
“그래, 곧 죽어도 말 안 할 거야.”
“너 지금 평소 같지 않네, 허세는 다 어디 갔어?”
낯선 상황이다.
“뭘 무서워하는 거지? 서지오 선생님?”
“그 말도 하지 마. 신비에게 이름은 중요해, 너도 알잖아.”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나 봐?”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너 방금 어디 다녀왔어.”
“빌어먹을 학교.”
“뭘 알아내고 이렇게 찾아온 건데, 정해운.”
“우리가 지은 죄.”
“…….”
“…그 인간에게, 우리가, 우리가 그날 뭘 했는지 알았어. 그러니까….”
서서희가 이어서 물었다.
“알려고 하지 마라?”
“시발, 대체, 그 존재가 뭘 하려는 건지 좃도 모르겠다고…!”
“진정해.”
“…….”
숨을 내쉰 정해운이 말했다.
“난, 나는… 이제부터 잊으러 갈 거야.”
“해라한테 갈 건가?”
“너랑 나는 경우가 다르니 이 짓 하라고는 안 해.”
“그래, 네가 걱정하는 허튼짓 안 할게.”
“그럼 됐어.”
그리고 이내 정해운이 사라졌다.
“…….”
서서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 개같네….”
주변에 있던 부길드장, 강은성이 물었다.
“…저도 기억 지울까요?”
“그럴 필요 없어. 강은성 씨가 여기에 있는 거 다 봤으면서도 별말 없었잖아, 해운이가.”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시던데 그 탓에 저를 신경 쓰지 못하신 걸 수도 있습니다.”
“정신이 없어 보이긴 해도 강은성 씨 존재를 못 알아챌 정도로 나사 빠진 상태는 아니었거든. 괜찮아, 걔 그렇게까지 생각 없는 놈 아니니까.”
“예, 이해했습니다.”
머뭇거리던 강은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그러게, 도시락 맛있었는데….”
“그 정도 호의를 받는 것조차 안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과연 어떨까?”
그러곤 평소처럼 미소 지었다.
“아직 서지오 헌터님께 방문 연락 없지?”
“예, 없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는 해. 이 정도로 데면데면한 거리감이라면 말이야.”
“정해운 길드장님께서 알아내지 말라는 것은 결국 과거의 인연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쌓은 관계만 생각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감히 사료됩니다.”
“그래, 그러니까… 괜찮겠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죄라고 하면 무슨 잘못이었을까.’
오래된 꿈에 살아보려고 했더니 그조차 안 되나 보다.
익숙한 체념이 찾아온다.
‘…그래, 원래도 그냥 이렇게 지내려고 했잖아. 과거 같은 거 들추지 않고 살기로 결정했던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시스템이 어떻게 뒤틀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지금처럼 대화 잘 통하는 좋은 사람과 종종 만나 식사나 하면 그만이지.’
그럼에도 기분이 나쁜 건 반성의 기회조차도 없음이라….
“…….”
…생각하지 말자.
* * *
오류 발생
복구 진행 중_0%
복구 완료_100%
…….
따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