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40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400화(400/400)
[에인절스!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벨을 내려보내고 불펜을 준비시켜야죠!]하지만 해설의 바람처럼 불펜에서는 그 어떤 선수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도진은 벨과 단둘이서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고, 상우는 성급히 포수 장비를 착용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비쳤다.
[서, 설마…….]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습니다. 킴. 그가 다음 투수로 낙점된 것 같습니다.]도진은 발바닥으로 흙을 쓸어 넘기며 마운드를 점검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벨을 힐끗 쳐다봤다.
“내려가셔서 응급처치받으세요.”
“보챌 필요 없어. 그럴 생각이니까.”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벨의 심정을 조금 알게 돼서 그랬다.
우승을 위해 팔을 건 선수라니.
그만큼 절실한 거겠지.
그 무게가 도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무사 만루다. 괜찮겠냐.”
무사 만루.
벨의 부상과 별개로 야구는 참 야속했다.
보크가 선언되며 주자가 채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으로는 부족한데.”
“벨. 저 어깨도 못 풀었어요.”
벨은 큭큭 웃었다.
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요! 무리할 필요 없었잖아요!”
“난 나름 만족한다.”
“네?”
“정말이야. 여기서 우승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
벨은 왼팔로 도진의 어깨를 툭툭 도닥였다.
“난 에인절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내가 내 입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내 꼴을 눈앞에서 봤으니 넌 그러지 마라. 물론 만족하는 것과 별개로 마지막이 참 초라하지 않냐?”
“초라하다뇨. 전혀 아니에요.”
“내가 이번 이닝을 마무리했다면 초라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야. 뭐. 어쨌든.”
벨은 그 말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에인절스 스타디움을 찾아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건 에인절스 선수라서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벨에 대한 예의였다.
도진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짙은 한숨을 내뿜었다.
‘초라하다고요?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퍽. 퍽. 퍽.
연습 투구를 끝으로 상우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야. 너 공에 감정이 좀 들어갔어. 자제하는 게…….”
“오늘은 이대로 갈래.”
투수가 공에 감정이 담긴다는 건 그리 좋지 않다.
감정은 곧 멘탈.
타자에게 수를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도진은 굳이 감정을 빼고 던지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버릴 수 있겠는가.
에인절스의 레전드가 팔을 맞바꿔서라도 우승을 원했다.
그의 간절함은 이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는 도진이 절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이닝을 마무리 짓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벨에게서 넘겨받은 의지를 한 구 한 구에 전부 담는다.
도진의 눈동자엔 승리에 대한 갈망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도진은 언제나 승리를 갈구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누구보다 절실했다.
* * *
7회 초.
무사 만루.
타석에는 다저스의 1번 타자 조니 존슨.
그가 승리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타 하나면 역전.
플라이 하나라도 동점.
장타면 에인절스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무사 만루.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합당한 이유 또한 뒷받침됐다.
‘연습 투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역시 저 친구는 아직 어려.’
연습 투구에 힘이 들어갔다.
감정이 실려 있었던 것이었다.
투수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낙승이었다.
하지만 타자는 초구를 맞이하는 순간.
착각이었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됐다.
퍼억.
“스트라이크!”
한복판에 꽂혀버리는 패스트볼.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타자의 시선이 자연스레 전광판으로 향했다.
105라는 숫자에 턱이 원치 않게 벌어졌다.
무려 169km에 달하는 강속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타자는 서둘러 감정을 추슬렀다.
어떻게서든 대응하겠다며 배트도 짧게 잡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던가?
지금까지 줄곧 90마일 후반대의 공을 보다가 100마일 중반대의 공에 쉽게 대응할 수 있던가?
퍼억.
2구째 하이 패스트볼에도 타자는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투!”
도진이 한 구 한 구 던질 때마다 팬들의 함성은 더욱 거세졌다.
타자는 그 함성에 위축되고 있었다.
꼴딱.
타자의 침이 넘어갔다.
도진은 그 모습을 보았고, 상우 역시 놓치지 않았다.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이번에도 한복판으로 향하는 투구.
위축된 타자는 순진하게 속아 넘어갔다.
부웅.
스윙이 나왔다.
하지만 투구는 아직 미트에 꽂히지 않았다.
패스트볼이 아닌 체인지업에 속아버렸던 것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음 타자 테오 페랄타.
그가 좌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앞선 타석을 지켜본 처지로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는 도진의 투구를 빠르고 위력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래도 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상대는 공에 감정이 실려 있지만, 멘탈이 무너진 건 아니었다.
상대를 무시만 하지 않는다면.
존중하고 타석에 임하면 충분히 결과를 낼 수 있을 터.
그 결과가 딱히 거창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타구를 외야로 보낸다. 단순했다.
타자가 타격 자세를 잡았다.
다른 한편 도진은 계속해서 상우의 사인에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원하는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쉐에에엑.
투구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타자의 몸쪽 무릎 높이로 날아갔다.
자신감을 품은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공은 배트와 만나기 전.
짧고 강하게 수직 낙하하며 배트를 피해서 미트에 꽂혔다.
퍼억!
“스트라이크!”
스플링커.
첫 타자와 다르게 초구부터 궁극의 마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진은 이번에는 즉각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2구는 타자의 바깥쪽으로 향했다.
절실함을 담은 타자의 배트가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투심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기 전 존을 벗어나겠다며 휘어져 나갔다.
틱.
그렇기에 배트의 끄트머리에 맞고 파울이 선언됐다.
카운트는 0-2.
투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카운트.
그런데도 투수 타자 그 누구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카운트였다.
투수는 다잡았다고 생각했다가 맞기 십상이었고.
반대로 타자는 카운트가 몰려 버린 만큼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됐다.
그러므로 숨 막히는 심리전이 펼쳐져야 정상인데.
도진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타자가 타격 자세를 잡는 순간.
인터벌을 매우 빠르게 가져갔다.
공이 손을 떠났다.
타자의 머릿속이 뒤엉켜 복잡해졌다.
‘이, 이렇게나 빨리?’
타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1사 만루다. 여전히 만루였다.
안타 하나면 상대는 리드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니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두근대느라 플레이트에서 발을 빼고 시간을 끌어도 모자랄 판에 도진은 인터벌은 오히려 빨랐다.
투수가 인터벌을 빠르게 가져갔다는 것은 자신감이었다.
타자는 패스트볼을 예측하며 스윙했다.
그러나 한복판으로 향하던 투구는 점차 바깥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부웅.
타자에게서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스윙이 나왔지만, 앞선 투심과 궤적부터가 남달랐던 롱웨이 슬라이더는 마치 코웃음을 치며 배트를 지나쳤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만큼 꽥꽥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모두가 도진의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순간 가지런히 모은 양손을 떼어내며 박수를 보냈다.
7회. 2사 만루.
도진은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저스의 다음 타자 앤서니 앨런은 비록 2사지만 여전히 만루라는 유리함을 등에 업은 채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삼진! 또 삼진입니다!] [가공할 만한 피칭입니다. 벨을 대신해서 등판한 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직전입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수 없잖아요?] [네. 2아웃입니다. 주자는 전부 스타트할 테고 짧은 안타라도 2점. 장타면 3점 이상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킴의 체력이 제일 걱정되는군요.] [체력이요?] [네. 그는 올해 그 누구보다 많은 경기에 임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겠죠. 또한 그는 몸도 풀지 못한 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2사를 잡은 지금이 제일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배터리도 슬슬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거든요. 긴장이 풀릴 때 몰려오는 피로감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네요.]해설의 예상 그대로였다.
상우는 지금 머릿속이 새하얘져 있었다.
‘제, 젠장. 망했다.’
시야가 흐리다.
7회 말 무사 만루에서 어느덧 2아웃 만루가 되었다.
이제 한 발짝 남았지만, 그 끝이 여전히 보이지 않았기에.
아랫배가 꿀렁대는 이 개 같은 감정을 좀처럼 추스를 수 없었다.
더욱이 타자는 다저스에서 제일 잘 치는 앤서니 앨런이였다.
경험이 부족한 상우에게는 이 자리는 너무 무거웠다.
꿀꺽.
상우는 마른침을 넘겼다.
그 소리를 듣게 된 앤서니는 어금니를 꽉 깨물어 미소를 감췄다.
‘너를 노리면 되겠구나.’
앤서니는 상우를 먹잇감으로 정했다.
도진은 비록 몸도 풀지 않고 등판했지만, 실투는커녕 떨지도 않는다.
오히려 위력적인 공을 연거푸 던져대고 있었다.
그렇기에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포수의 상태를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이겼다.’
잔뜩 떨고 있는 포수가 과연 정면승부를 요구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휘두르지 않는다.’
볼을 골라내기만 하면 포수는 자멸할 테니까.
초구가 날아왔다.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 존을 외면했다.
퍼억.
“볼!”
이 상황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없이 중요하다.
그 무대가 월드시리즈 7차전 7회 2사 만루인 승부처라면 더더욱 그랬다.
포수는 절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공을 꽂아 넣자고 하지 못할 터.
2구.
롱웨이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바짝 붙어 들어왔다.
“볼!”
2-0.
타자가 노림수를 가져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카운트.
하지만 앤서니는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포수가 패닉에 빠진 표정이 마스크에 가려졌음에도 훤히 보였으니 말이다.
3구.
공이 날아왔다.
스플링커는 스트라이크 존 하단을 살짝 벗어났다.
퍼억!
“볼!”
3-0.
이겼다.
카운트가 유리해진 순간 앤서니의 눈앞에 승리가 보였다.
볼넷이면 1점 추가하며 동점이 된다.
경기가 길어질 수만 있다면 벨과 도진까지 올라온 에인절스가 장기전에서 다저스를 이길 수 없을 터.
‘물론 투수가 승부하려고 들어올 수도 있겠지. 난 패스트볼만 노리면 된다.’
변화구는 흘려보내고 패스트볼만 노린다.
3-0 카운트는 그래도 된다.
3-1이 되어도, 3-2가 되어도. 타자는 패스트볼 하나만 노리고 배트를 휘두르면 된다.
세 번의 기회를 모두 패스트볼만 노릴 수 있다니.
앤서니는 타자가 이기는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무릎을 굽힌 채 먼저 포수에게 사인을 보내는 도진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 * *
도진은 검지와 중지를 팔뚝에 가져다 댔다.
‘정신 차리고 미트나 중앙에 고정해.’
공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우는 지금 사인을 낼 처지가 아니었다.
이해는 한다.
큰 무대를 겪어보지 못한 선수들이라면 이 상황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직접 나설 차례였다.
‘맞더라도 도망가선 안 돼.’
맞으면 진다.
그런데 도망가도 질 것이다.
도망가는 건 두들겨 맞는 선택 보다 악수였다.
그도 그럴 게 도망가는 건 100% 상대에게 실점을 헌납한다.
다만 정면 승부는 적어도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후우.”
도진은 글러브 안에서 다양한 그립을 쥐어보며 한숨을 뿜어냈다.
그러고는 사방에서 ‘킴’이라고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
그는 투구를 이어 나갈 수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진의 멘탈은 실로 대단했다.
그에게 이 긴장감은 다른 어느날과 똑같았다.
미국에서 처음 야구했을 때 만루에서의 등판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니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나는 최고의 공을 던진다.’
상우는 정중앙에 미트를 고정했다.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로케이션은 한가운데.
괜히 좌우를 노려봤자 공이 빠지면 그게 더 큰 문제였다.
빠드득.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공이 손을 떠났다.
한복판으로 향하는 105마일짜리 투구는 폭풍을 몰고 갔다.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이겼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따—악!
배트의 스위트 스폿에 얹힌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야수들은 전부 손을 놓고 에인절스의 제일 먼 정중앙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공을 바라만 봤다.
상우는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도진은 몸을 완전히 틀어 타구를 쫓았다.
자리에서 전부 일어나 있던 팬들은 숨을 죽인 채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에인절스 구장에서 움직이는 생물체는 오로지 셋.
외야수들이었다.
그들만이 타구를 쫓고 있었다.
중견수 라이언의 걸음을 펜스가 막아섰다.
그는 여전히 떠 있는 타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점차 속도를 잃고 떨어지는 타구.
그 타구는 담장을 넘기지 못하고 중견수의 글러브 안으로 쏙 들어갔다.
터억.
“아웃!”
모두 홈으로 쇄도하던 주자들의 발이 허망하게 멈췄다.
타자 앤서니는 결과에 고개를 떨궜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조엘 오스틴은 모자로 눈을 가렸다.
다만 그들을 제외.
“우와아아아아!”
관중석에서도.
더그아웃에서도.
그라운드에서도 승리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다저스는 무사 만루에서 득점하지 못했다.
에인절스는 도진의 활약으로 무사 만루에서 단 한 점도 실점하지 않았다.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1:2.
승부처에서 나온 도진의 활약으로 에인절스는 월드시리즈 7차전을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