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73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배인 날카로운 공포를 무시하며 다시금 불렀다.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숨소
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좁다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는 케이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으로 떨어진 쿠션들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치우다가 그는 마침내 그녀를 보고 말았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목이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지도 않았고 피도 흐르지 않았다.
좋은 징조다. 의학 지식은 별로 없지만 적어도 목도 부러지지 않고 피도 흐르지 않아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죽을 수 없어, 케이트.”
그는 겁에 질린 손가락으로 잔해를 치우며 그녀를 끌어낼 수 있게 틈을 넓히려고 애썼다.
“내 말 들려? 당신은 죽을 수 없다고!”
날카로운 나무 조각이 손등을 찢었지만 앤소니는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부서진 마차 들보를 치웠다.
“숨쉬고 있는 게 좋을걸.”
그가 경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떨리고 있었다.
“당신일 리가 없어. 절대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였다고. 당신 차례가 아니라고 내 말 알아들어?”
그는 부서진 나무 조각을 잡아뜯으며 넓어진 구멍으로 팔을 넣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맥박을 짚었다. 다행히 맥은 고른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는지, 등이 부러졌는지, 머리를 부딪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일…….
그의 심장이 진저리를 쳤다. 사람이 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강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를 벌 한 마리가 죽일 수 있다면 자그마한 여자는 마차 사고에도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앤소니는 앞을 막고 있는 마지막 나무 조각을 옆으로 밀어내려 애썼지만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게 이러지 마.”
그가 내뱉었다.
“지금은 안 돼. 당신 차례가 아니라고 내 말 들려? 당신 차례가 아니잖아!”
그는 뭔가가 뺨을 적시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희미하게 깨달았다.
“원래 내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잖아.”
그는 목이 메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애당초 내게 일어나야 할 일이었잖아.”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다시 한 번 마지막 나무 조각을 잡아당기려 하는데 케이트의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꼭 움켜쥐었다. 그는 얼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의식이 분명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안도감이 너무도 거세게 밀려들어 고통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당신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매 음절마다 울음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난 괜찮을 거예요.”
앤소니는 그녀의 말을 곱씹다가 얼른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으냐고?”
그녀가 기침을 했다. 그는 방금 그녀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다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아요. 피는 안 흐르는 것 같지만.”
“기절할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워? 힘이 없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플 뿐이에요,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 찾으러 왔지.”
“그래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지……그러니까 마침내 깨달았는데…….”
그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이 말을 여자에게 할 날이 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어느샌가 가슴속에서 너무도 커져 버려 말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당신을 사랑해, 케이트.”
그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그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제 알게 되었으니까. 당신에게 얘기를 해주려고 했지. 오늘.”
그녀는 입술을 꿈틀거리며 힘겹게 미소를 지은 뒤 턱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타이밍 최고네요, 당신.”
자신이 미소를 지은 것에 그 자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내가 그 말을 하려고 여태까지 기다린 게 기쁘지, 그렇지? 지난주에 그 말을 했으면, 오늘 공원까지 당신을 따라나서지 않았을 거 아냐?”
케이트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냥 꺼내 주기나 해요.”
“그러고 나면 당신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줄 테야?”
앤소니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녀는 서글프고도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은 사랑한다는 고백과 다름없었다. 완전히 뒤집어진 마차파편 속을 기어가면서도, 이 저주받을 마차에 케이트가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갑자기 무한한 만족감과 평온함을 느꼈다.
거의 12년 만에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부모님의 침실로 들
어가 침대 위에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본 이래 처음이었다.
“이제 당신을 잡아당길 거야.”
그는 그녀의 등 아래로 팔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당신 다리가 아플 거 같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내 다리는 지금도 아파요.”
그녀가 용감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앤소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린 뒤 케이트의 옆구리에 손을 고정시키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좀 어때?”
그녀가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녀가 헐떡였지만 다 허세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당신 몸을 옆으로 돌릴게.”
그는 위쪽에서 삐죽삐죽 솟아나와 있는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저걸 피해서 몸을 돌리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드레스 따위가 찢어지건 말건 상관없었다-제길, 만일 그녀가 앞으로는 그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 모는 마차에도 타지 않겠다고 약속만 해준다면 새 드레스를 백 벌쯤 사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녀의 피부가 긁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커다란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그녀를 또다시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머리부터 먼저 꺼내야겠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당신 팔 아래로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큼만 움직여 주면 되겠는데.”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이를 악물고 손과 엉덩이를 이용해 몸을 시계 방향으로 조금씩 돌렸다.
“잘했어.”
앤소니가 그녀를 칭찬했다.
“이제 내가 뭘
할 거냐면…….”
“그냥 해버려요.”
케이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설명할 필요 없어요.”
“알겠소.”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뒤로 조금 물러나 무릎을 풀밭에 고정시켰다.
머리 속으로 셋을 세며, 그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시 뒤 케이트가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만일 자신이 9년 후에 죽을 거란 확신만 없었던들, 방금 그녀 때문에 목숨이 10년쯤 줄었을 거라 여겼을 지경이었다.
“당신 괜찮아?”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다니까요.”
케이트는 한사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악문 이빨 사이로 숨을 몰아쉬며 고통으로 뻣뻣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마차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구를 푸는 것을 마친 에드위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의 비명 소리를 들었는데.”
“에드위나?”
케이트는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보려고 했다.
“너 괜찮니?”
케이트는 앤소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에드위나는 괜찮은 거지요? 다치기라도 했나요? 의사를 불러오게 하는 게 어떨까요?”
“에드위니는 괜찮소.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백웰 씨는요?”
“백웰은 어때?”
앤소니가 에드위나에게 물었다. 잔해 조각들을 헤치고 케이트를 꺼내려고 애쓰느라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머리에 혹이 났지만 벌써 정신을 차렸어요.”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근심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앤소니는 이 사건이 백웰의 탓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뉴튼의 탓일 게 분명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웰이란 작자가 말고삐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그를 딱하게 여길 여유가 없었다.
“필요하면 말하겠소.”
그는 무뚝뚝하게 말한 뒤, 다시 케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백웰은 멀쩡하다는군.”
“내가 두 사람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네요.”
“상황이 이랬으니 다들 이해할 거요.”
앤소니는 이제 거의 마차 밖으로 몸을 빼냈다. 케이트는 입구 쪽에 누워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잡아당기면 그녀를 완전히 빼낼 수 있다.
“에드위나? 에드위나?”
케이트가 외쳤다.
“너 정말 안 다친 거니?”
에드위나는 마차 입구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난 괜찮대두.”
그녀가 다시 한번 말했다.
“백웰 씨는 날려갔었고 나 역시…….”
앤소니는 팔꿈치로 에드위나를 밀어냈다.
“이를 악물어요. 케이트.”
그가 명령했다.
“뭐라고요? 난……아아아아악!”
앤소니는 단번에 케이트를 마차 잔해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함께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앤소니는 지나치게 힘과 신경을 써서 그런 반면, 케이트는 누가 봐도 극심한 고통 때문에 그러는 것 짙었다.
“하나님, 맙소사!”
에드위나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언니 다리를 좀 보세요!”
앤소니는 케이트를 바라봤다가 심장이 발등까지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녀의 다리가 기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단순 골절 이상이었다. 앤소니는 침을 꿀꺽 삼키며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리야 치료받으면 된다지만, 감염과 적절하지 못한 치료 탓에 다리를 잃었다는 사람들 얘기가 떠올랐다.
“내 다리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케이트가 물었다.
“아프긴 하지만……아 세상에!”
“안 보는 편이 좋을 거요.”
앤소니는 그녀의 턱을 다른 쪽으로 돌려 놓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고통을 참으려고 애쓰던 탓에 가쁘던 호흡이 이젠 이주 공포에 질린 헐떡임으로 바뀌고 말았다.
“오, 하나님.”
그녀가 허덕였다.
“아파요. 내 눈으로 보기 전엔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고 있었…….”
“보지 말라니까.”
앤소니가 명령했다.
“하나님 맙소사, 어쩌면 좋아.”
에드위나가 몸을 바짝 기울이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괜찮아?”
하지만 케이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무도 심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앤소니, 에드위나, 백웰 씨, 그리고 뉴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기절하고 말았다.
세 시간 뒤, 케이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앤소니가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목구멍 안으로 억지로 흘려 넣은 아편 덕에 통증은 훨씬 준 상태였다. 그녀의 다리는 앤소니가 부른 세명의 외과의들(그들 모두가 지적했듯 다리를 치료하는 데는 의사 한 명이면 족했지만 앤소니는 팔짱을 끼고 험악한 얼굴로 그들이 입을 닥칠 때까지 노려보았다)의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는 내과 의사가 한 명 더 들러 뼈가 붙는 과정을 촉진시켜 준다는 약을 주고 갔다.
앤소니는 암탉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의사들이 말을 할 때마다 사사건건 토를 다는 통에 결국에는 한 명이 참지 못하고 혹시 왕립 의학 학교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셨냐고 질문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앤소니는 그 말이 전혀 우습지가 않았다.
한참 동안 의사들과 입씨름을 한 뒤, 어쨌거나 케이트의 다리는 치료를 받았고, 적어도 한 달간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 달이라고요?”
의사들이 떠나자마자 케이트는 앤소니에게 불평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