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미친놈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지만 제임스 리드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버서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기회였다.
미국에서 파악하는 버서커의 실력은 초인 초입 수준.
초인이 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려졌기에 어쩌면 당연한 평가다.
‘여기에서 조금 더 높게 평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제임스 리드는 여기에서 조금 더 추가했다.
‘최준호와 함께 다니니 실력이 더 뛰어날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최준호에 대해 연구를 해 왔다. 종잡을 수 없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조차 쉽게 가늠하기 힘든 계산이 깔려 있었다.
최준호는 아무나 함께 다니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천재 정다현도 그렇고 신성그룹의 재녀 이세희도, 친동생인 최윤희마저도 모두 굉장한 재능의 소유자다.
버서커도 꽤 알고 지냈으니 숨겨둔 한 수가 있을 것이다.
둘은 자연스럽게 마주 보고 섰다. 기세가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 의지만으로 주변 공기를 바꿔 버릴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완숙한 초인에게서나 발산될 법한 서릿발 같은 기세가 피부를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제임스 리드가 미간을 모았다.
버서커가 대검을 뽑아 겨눴다.
“와라.”
“…….”
“오지 않으면 내가 가지.”
순간, 눈앞에 벼락이 쳤다. 포스가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면전에 도달하기 무섭게 연이은 충격파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예상을 초월한 자연스러운 포스 수발이고, 연계 공격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제임스 리드가 손을 휘둘렀다. 강렬한 회전이 일어나며 주먹에 실린 포스의 위력이 배가 되어 버서커의 검격을 튕겨 냈다.
포스가 무겁고 날카로우며 단단하다. 초입이 아닌 완숙의 경지가 맞다.
“호오, 제법인데.”
나직한 감탄사와 달리 버서커의 검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얼핏 보면 포스를 남발하는 공격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실린 강맹함은 부드러움과 조화되어 한번 잡은 기선을 이어 나갔다.
‘효율적이다.’
어지럽게 쇄도하는 검격을 일일이 쳐내며 제임스 리드는 버서커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흐름을 꽉 쥐고 강맹함으로 찍어 누른다. 빈틈을 파고들지만 빈틈이 없더라도 힘으로 열어젖히고 파고든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방어에 임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 놓은 뒤 부수는 방식이다.
그것이 버서커의 스타일이었다.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승리공식이다.
꽝!
“큽!”
포스를 두른 팔이 부서질 것처럼 시큰거렸다. 제임스 리드는 근육 컨트롤로 통증을 상쇄시켰다.
그의 기프트 ‘바디 컨트롤’은 세세한 조정으로 육체의 위력을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자연치유력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폭풍처럼 휘몰아친 여파를 순식간에 해소시킨 제임스 리드가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놀란 듯한 버서커의 말을 흘려버리며 제임스 리드가 주먹을 뻗었다.
그 궤적은 기괴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직선이 아닌 복잡한 곡선을 그리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극한의 바디 컨트롤로 만들어 낸 예측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제임스 리드는 이러한 움직임으로 마물보다 각성자에게 더 강한 초인이라 칭해지며, 초인들의 사신이라 불렸다.
쿵!
“크크크!”
“……!”
주먹이 가슴을 강타했지만 버서커는 오히려 웃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맞대응을 한 것이다.
제임스 리드의 옆구리에는 버서커의 칼등이 틀어박혀 있었다.
“컥!”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난 제임스 리드.
그의 두 눈에 경악이 서려 있었다.
대결이 시작하기 전만 해도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대결이 시작되고 그 생각은 오산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버서커, 이 정도 강자일 줄은.’
입가를 훔쳤다. 피가 묻어나왔다. 조금 전 공격으로 내부가 진탕된 것이다.
그에 반해 버서커는 멀쩡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맷집이란 말인가.
‘괴물이군.’
최준호 앞에서 경박한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제임스 리드는 기본적으로 빠른 판단력, 뛰어난 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간파할 줄 아는 능력자였다.
대결 전에 버서커를 한 수 아래로 본 이유는 간단했다.
흔히 초인이 된 후에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과정, 위력을 극대화하고 완급 조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에 온전히 깔려야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체계적인 훈련이다. 빌런인 버서커는 기본적으로 추적당하는 입장이며, 근거지를 마련해 두지 않는다. 이것은 체계적인 훈련을 쌓을 시간이 부족함을 의미했다.
마지막으로 상성이었다. 버서커의 전투 스타일은 지극히 본능적이고 즉흥적이다. 마초맨이라는 이명과 달리 철저한 분석과 몇 수 내다보는 수를 가진 자신이라면 버서커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간에 완전히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신의 실력이라면 리그의 12궁을 상대해도 그날 컨디션, 주변 환경, 포스 잔량 등을 고려할 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건 착각에 불과했다.
계산이 어긋났지만 제임스 리드는 가슴에 불같은 승부욕이 들끓는 걸 느꼈다.
이런 맞수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목숨을 걸어야겠지만 뼈가 녹는 대결을 한번 벌이고 싶었다.
“꽤 하는군.”
“…응?”
재차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던 제임스 리드는 버서커가 검을 내리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끝을 봐도 상관없긴 한데, 더 하고 싶나?”
“처음부터 그런 생각인 줄 알았는데.”
“크크, 대결에 피가 튀어야 재미가 있지. 하지만 이걸로 네 실력은 알 거 같고,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던 거 아니었나?”
“맞아.”
“그 말을 들어 보고 대결을 지속할지 결정하지.”
“…….”
제임스 리드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당최 이해하기 힘든 사고회로였지만 대화가 이어진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대결의 결과는 무승부…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인정했다. 자신의 열세였다. 물론 끝까지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 정도로 강해진 거지?”
“미국에서 분석했던 것보다 내가 강했나 보지?”
“맞아.”
제임스 리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버서커가 상대한 초인은 붉은 뱀이 전부였고, 한때 전미를 열광케 했던 디버퍼 샤일로가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은 전성기가 지난 초인이고, 다른 하나는 부스트라는 수법으로 초인이 된 가짜였다. 당연히 버서커의 실력에 평가절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행동했어.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하지만 가장 많은 정보를 알려 주는 단서지.”
“틀린 말이 아니야.”
미친놈처럼 보였던 버서커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제임스 리드는 속으로 평가를 바꿨다.
“왜 당신 같은 자가 이 좁은 국가에서 빌런 취급을 받으며 있는 거지?”
버서커는 이렇게 저평가 받을 초인이 아니었다.
12궁에 준할 수 있다면 어딜 가도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빌런이라…….”
“만약 최준호 때문이라면 미국이 책임질 수 있어. 당신의 재능은 좀 더 중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 미국으로 와. 그곳에 기회가 있으니까.”
버서커는 결코 이곳에서 썩어서는 안 된다.
나날이 리그의 위협과 마물의 위협이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동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더 이상 힘을 보태지 못하는 서유럽을 손절하고 친 리그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강한 마물의 등장 빈도는 점점 더 높아져 각성자 전력이 부족한 전력이 지원을 호소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제임스 리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 생각했고, 뜻 있는 초인들이 그곳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 버서커가 폭소했다.
“크크, 그걸 정하는 게 누구지? 미국의 높으신 나리들인가?”
“…….”
“세계의 운명을 논하지만 네 말 속에 담긴 함의는 패권을 향한 야욕이지.”
“확실한 리더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룹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설사 그것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강경함은 각성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안다. 나는 그게 꼴 보기 싫다는 거고.”
“넌 자유로운 영혼이군.”
제임스 리드는 자신이 성급했음을 인정했다.
버서커는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이 이끌리도록 해야지, 계산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커진다.
그가 누리는 것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며, 그걸 위해 말살해야 할 적이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한다.
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지?”
“네가 보기에 강해 보였나 보군.”
“네 실력을 분석한 놈들을 전부 해고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강함이라는 건 별의 순간을 엿보기 위해 딸려 오는 부산물이라 생각했지.”
자부심을 느껴야 할 이야기에 버서커는 오히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건 간단하다. 누군가의 샌드백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가슴이 뜯겨 나가더라도 버텨야 했다. 넌 아나? 초인이 되어도 새벽마다 누군가 불쑥 찾아와 두들겨 패는 악몽을 꾸는 기분을. 이 과정을 거치니 강함은 저절로 따라오더군.”
“…….”
씁쓸함이 담긴 말에 제임스 리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던 거지?
저 상황이면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텐데.
부활 기프트라도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망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험담이라는 건데.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최준호인가?”
“날 그렇게 만들 녀석이 또 있을 거 같나?”
결국 나와 버린 이름.
이토록 고강한 초인도 최준호에게 일방적인 샌드백밖에 안 된단 말인가.
제임스 리드는 속으로 경악했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곤경에서 꺾이지 않고 버텨 낸 버서커가 탐이 났다.
“미국으로 가면 최준호 손에 벗어날 수 있어.”
“크크, 그걸 믿으라고?”
“내 말은 거짓이 아니…….”
“뒤통수에 구멍 뚫릴 위기를 느끼며 살고 싶지 않다. 평생 최준호를 마주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나?”
“…….”
당연히 장담 못 했다.
최준호의 뒤끝은 자신 또한 겪어 봤으니
고작 지중해식 된장찌개 레시피 갖고 면박을 받지 않았던가.
“최준호에게 종속된 처지가 아니니 잘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틀린 말이 아니군. 근데 끌리지 않아.”
제임스 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말을 꺼내 놨으니 버서커에게도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당장 오지 않아도 좋아. 생각해보다 끌리면 얘기해 줘. 미국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알았다.”
‘됐다!’
거의 억지를 쓰다시피 해서 받아 낸 승낙이지만 제임스 리드의 표정이 환해졌다. 처음 허락이 어렵지 나중은 일사천리였다.
“미국은 버서커 널 환영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김칫국 거하게 마시는군.”
“어차피 한 식구가 될 거니까.”
능글맞게 웃어 보이니 버서커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밀어붙이는 거에 약한 타입이로군.
제임스 리드는 버서커의 아픈 부분을 공감해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준호도 너무한 거 아냐? 이토록 강한 초인을 막 다루고.”
“음?”
“버서커는 좀 더 존중받아야 할 초인이야. 그런데 준호는 그러지 않고 있어.”
“내가 좀 험하게 굴려지고 있긴 하지.”
버서커의 입가에 걸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고 제임스 리드는 흥을 냈다.
최준호를 향한 험담이 늘어날수록 호감도가 상승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미국에는 널 더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또 독특한 개성을 가진 초인들도 많이 있고!”
“그거 심심하지 않겠어.”
“맞아! 한식도 LA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어!”
근거 없는 확신도 날려보고.
슬슬 버서커가 미국으로 넘어올 확률이 반반이다 싶을 때,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거하게 붙었군.”
자리를 비웠던 최준호였다. 멀리서 대결이 끝나길 기다렸나 보다.
하필이면…….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제임스 리드는 본능적으로 말투를 바꿨다.
“끝났어.”
“그래서 결과는?”
“승부를 내지 못했다. 마초맨의 위명이 허언이 아니더군.”
“버서커 너도 졸라 강했어.”
“쓸 만하지. 아직 멀었지만.”
“…….”
12궁에 견줄 수 있는 초인이 이런 취급당하다니.
버서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던 제임스 리드가 흠칫했다.
기분 나쁘거나 실망한 게 아니라 히죽 웃고 있는 게 무척 수상했던 것이다.
무척 악의적인 느낌이 풀풀 풍겼다.
그리고 대뜸 튀어나온 말.
“그건 그렇고 마초맨은 최준호 앞과 내 앞에서 말투가 많이 다르군.”
“그야…….”
허를 찔린 제임스 리드가 멈칫했다.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꽤 좋았지 않나?
그런데 뭔가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기분이다.
최준호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말투가 달라?”
“내 앞에서는 한국어가 유창하던데.”
“붙었다면서 그 사이 대화까지 나눴냐.”
“용건이 있는 거 같아서 간만 봤다. 날 미국으로 오라고 하더군.”
버서커는 최준호에게 비밀이 없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결정타는 그 다음이었다.
“그리고 네 욕을 많이 하더군.”
“내 욕?”
“너더러 제정신이 아니라던데.”
“자, 잠깐!”
“왜? 내가 없는 말이라도 했나?”
“…….”
제임스 리드는 경악했다.
그건 둘만의 대화 아니었던가?
아니, 그보다 자신은 최준호가 제정신 아닌 거 같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니야, 그런 말 한 적 없어! 준호! 날 못 믿어?”
“그럼 내가 널 믿겠냐?”
“…….”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분명 분위기가 좋았었는데!
제임스 리드가 버서커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자 히죽 웃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완전히 농락당한 것이다.
시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준비해.”
“뭐, 뭘?”
“나한테 사기치고 튀어 놓고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냐? 버서커를 상대해 봤으니 나도 상대해 봐야지.”
“나, 난 지금 졸라 지친 상태야.”
“상관없어. 그럼 맞기만… 아니, 막기만 해.”
기어이 두들겨 주겠다는 의지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그보다 방금 맞기만 하라고 한 거 같은데?
‘왓더 졸라 퍽!’
최준호와 눈이 마주친 제임스 리드가 혼종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