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tor who's a former hitman RAW novel - Chapter (216)
더 닥터 더닥터-216화(216/217)
#216. 길을 찾는 자 (2)
기억난다.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니고, 약제 개발에 참여하면 지분에 따라 상용화 후 그 수익의 일부로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던 것을.
하지만, 이건 좀 얘기가 다르달까.
“글쎄요. 두 분께서 이러시는 이유는 알겠는데…….”
안다.
단지 날 얼굴마담이나 시키려는 게 아니란 걸.
어찌 보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일 터다.
애당초 약조한 바대로 한다면 결국 내 손에 쥐어지는 건 세상에 기여했다는 자족감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눈에 보이는 이득, 즉 돈을 안겨줄 수 없다면 명예라도 얻기를 바라는 거겠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영향력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당장 이들의 몸에 손을 대고 생각하는 바를 읽어보면 분명해질 테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이미 표정에 확연히 다 드러나니까.
마치 친손자를 대하는 듯 얼굴 가득 피어오른 흐뭇함.
두 사람의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할 말은 많다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결국, 바쁘다는 얘기가 될 테고, 애초부터 뭔가를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거로 귀결될 테니.
“그래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는요.”
별거 아닌 얘기이지만, 내가 들어도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음성이었다.
그래서일까.
두 노인이 날 묘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다가 이충헌 회장이 픽하고 웃는다.
“내 말이 맞지?”
“흠…….”
둘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얘기하며 서로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알겠네. 그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하지.”
대체 뭘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건지.
왠지 이걸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류성환 회장이 얘기했다.
“이제 와서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이 늙은이의 마음은 또 그런 게 아니라네.”
물 위로 삐죽 올라와 있는 찌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딘지 아련하기만 했다.
“살아보니 그래.”
“…….”
“주는 사람 마음 따로 받는 사람 마음 따로라는 거지.”
날 가만히 쳐다보던 류성환 회장이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문다.
“그래서겠지. 자넬 보면 푸근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뭔가 속이 뜨거워지는 것도 같고. 허허. 갈 때가 됐는데도 이러니…….”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는 류성환 회장. 내게 손짓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리 와 앉게. 온 지가 언젠데 여적 세워두고서. 낚시는 좀 해봤나?”
그가 한쪽으로 자리를 가리키며 한껏 풀어진 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빈 의자에 앉았을 때였다.
“고맙네.”
날 향한 그의 눈빛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고 있었다.
***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이렇다 하게 머릿속이 정리된 것은 아니고.
단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랄까.
이계에 있을 때도 그렇고, 그전에도 그렇고…….
기실 따지고 보면 그간 세상을 구한다거나 누굴 살린다고 애써본 기억이 없다.
그냥 살기 위해 살았다?
당연히 요즘 누군가가 농담처럼 하는 말처럼 태어난 김에 산다는 뜻은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라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든, 혹은 누군가의 목숨을 살렸든지 간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나’였을 뿐.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느끼는 감정은…….
뭐랄까.
묘하기만 하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저만치 앞에 갈림길 하나가 놓여 있는 느낌.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가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맞는지.
그렇게 생각이 깊어질 때쯤이었다.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고 내리니, 바로 눈앞에 병원 건물이 보인다.
오늘은 오프라서 굳이 출근을 안 해도 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또 병원.
픽.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워커홀릭도 아니고.
고개를 내젓고 말았을 때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메시지를 꺼놓은 게 아닌가?
분명 꺼놓은 거로 아는데.
뭐, 무슨 상관인가.
요즘 툭하면 레벨이 오르고, 카르마 지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거늘.
이 모두가 이번에 신약을 발표하면서 덩달아 명성이 올랐기 때문.
또 그런 거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메시지를 다시 끄려는 찰나였다.
[명성이 2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200 내려갑니다.] [명성이 5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500 내려갑니다.] [명성이 1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100 내려갑니다.] [명성이 7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700 내려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뭐지?
엊그제 난 기사와 그로 인해 요사이 부쩍 올라간 유명세를 감안하더라도 메시지가 너무 많은데?
의아해진 마음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상태창을 띄웠다.
뒤이어 황당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이런 표현이 맞나 싶다만, 지금 실시간으로 달라지고 있는 상태창의 숫자들……. 이를테면 명성 수치라든가 카르마 지수 등을 보는 기분은 뭐랄까, 흡사 주유소에서 차에서 기름을 넣을 때 미터기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그런 느낌이다.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보는 내가 다 두려워질 지경.
이 정도라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싶어서 얼른 인터넷으로 들어보곤…….
할 말을 잃었다.
후…….
고개를 내젓고는 그대로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러곤 병원으로 들어가 휴게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TV로 확인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어! 형!”
한데, 이미 선객들이 있다.
노기혁, 차선우 선생, 채수아 선생…….
한두 명도 아니고 꽤 많은 이들이 TV 앞에 모여 있다가 노기혁의 외침에 날 돌아본다.
“왔어?”
차선우 선생이 그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음성으로 날 반길 뿐.
다른 이들은 묘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하아……. 그럴만도 하지.
나라도 그랬을 터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곤 TV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
– ……그러니까, 지금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백악관 측에서 발표한 내용이 사실무근은 아니란 거네요?
– 맞습니다. 이번에 밝혀진 APV-mR2의 파괴력은 가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데요. 설사 백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면역체계를 세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그 위험성은 어지간한 핵폭탄보다 더 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 아, 잠깐만요. 방금 말씀하신 APV-mR2이라는 게 아까 설명해주신 아큐프리온……. 맞는 거죠?
– 그렇습니다. Acute-Protein-Virion 통상 아큐프리온이라고 불리는 병원체로 이해하기 어려우시면 그냥 전염성이 강한 광우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어렵네요. 그래도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요. 광우병이라는 건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를 도축해서 그 고기를 섭취했을 때만 발병하는 거 아니었나요?
– 원래는 그렇습니다만. 아까도 잠깐 설명해 드렸듯이 아큐프리온의 경우는 자연발생적인 건 아니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거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패널로 참석한 모 대학의 교수가 한참 설명하고 있었는데, 매일 강단에 서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쉽게 잘 풀어서 얘기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TV를 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갈수록 두려운 빛이 강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웅.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을 꺼내 살피곤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안 그래도 전화를 할까 하던 참이었는데…….
“말씀하세요.”
한쪽으로 물러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 대뜸 사과부터 하는 유리 제이슨이었다.
– 죄송합니다.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유리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 보다 정확한 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국무성 쪽에서 새어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CNM 방송에서 터뜨린 게 어떤 악의나 음모는 아니라는 건가.
“알론 스미스하곤 상관없다는 거군요?”
– 확언하긴 힘들지만, 놈들하곤 상관없다는 쪽이 90% 이상입니다.
하기야, 굳이 놈들이 아큐프리온에 대해서 밝힐 이유는 없겠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음지에 숨은 채로 병원체를 풀어버리는 게 나을 터다.
뭐, 그래 봐야 이쪽에선 이미 치료제를 비롯해 백신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가와는 별개로 그들로선 그다지 실익도 없겠지만.
거기다가 CIA는 말할 것도 없고, 각국의 정보부처들이 서슬 퍼런 기세로 놈들을 뒤쫓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불온한 움직임을 보여도 바로 드러날 테다.
“대통령께선 뭐라십니까?”
– 하아……. 노발대발하시죠. 안 그래도 그 때문에 국장님을 비롯해 위쪽에선 백악관에 들어가셨는데…….
줄줄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왜 안 그러겠는가.
이제껏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꾹꾹 숨겨왔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흔히들 말하듯이, 한번 만들어낸 기계는 어떻게든 쓰게 되어 있고 개발된 약제 역시 그게 치료제든 독약이든 간에 끝내 사용하게 되어 있다는 건데.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거로 알려진 천연두의 균을 계속 샘플로 보관하자는 것도,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차라리 완전히 없애자는 것도 다 그런 이유 아닌가.
두려움.
차라리 모르면 모를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란 얘기다.
그렇기에 확실한 대비책이 설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는 게 정부 측의 생각인 거고.
한데, 그게 이렇게 밝혀져 버렸으니.
더구나…….
– 아무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해서 연락할 거라고…….
이번 이슈의 한가운데…….
내 이름 석 자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눈길을 돌려 TV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이 무시무시한 병원체가 자칫하면 세상에 풀릴뻔했는데, 그걸 강지훈 씨가 나서서 막았다는? 그런 얘기인가요?
– 아마도요. CNM에서 폭로랄까, 출처까진 밝히진 않고 있습니다만, 애덤 모라스 대통령까지 깊이 연관되어 있다며 얘기하는…….
– 그게 지난번 앨라배마 경기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랑…….
– 퍼즐을 맞춰보면 아마 맞을 겁니다. 그때 강지훈 씨가 미국에 있었지 않습니까? 앞뒤 사정을 보면 그때, 강지훈 씨가 아큐프리온을…….
–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강지훈 씨에게 빚을 진 거나 다름없는 거네요.
솔직히 말해서 당황스럽다.
내게 빚을 졌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스튜디오 벽면에 걸려있는 스크린에선 아까 CNM이 속보로 터뜨린 뉴스가 흘러나오는 중.
그중 눈길을 사로잡는 건 세 가지 키워드.
아큐프리온, 애덤 모라스 대통령 그리고 강지훈 즉 내 이름이다.
“혀, 형. 저거 진짜예요?”
노기혁이 놀랐다는 얼굴이 되어 물어오길래, 그저 그에게 옅은 미소만 보여주곤 돌아섰다.
최대한 덤덤한 태도를 취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 한 건데…….
그럼 뭐하겠나.
이미 인터넷상……. 아니,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을 텐데.
[명성이 10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1,000 내려갑니다.] [명성이 5 상승했습니다.] [카르마 지수가 500 내려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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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이 올랐습니다.]그 증거로 지금 상태창의 모든 수치가 미친 듯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게 지금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만.
일단 시끄러운 메시지들을 꺼버리곤 휴게실을 벗어났다.
동시에 관심도 함께 꺼버리고 응급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현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음, 녀석도 봤나 보네.
살짝 인상을 구긴 채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는 순간이었다.
– 지, 지훈아.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떨리면서 더듬는 목소리.
기묘한 감각이 날 사로잡았다.
그게 불안함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녀석이 울음을 터뜨린다.
– 흑! 지훈아! 어, 어떡해?
“…뭔데? 울지 말고 제대로 말을…….”
– 어, 어…엄마가…….
눈이 번쩍 뜨였다.
그와 함께 튀어 나가는 다급한 목소리.
“어머니가 왜?”
– 교통사고로 쓰러지셨다고….
“……교, 교통사고? 얼마나…얼마나 다치셨는데?”
흐윽! 몰라…모르는데……엄청 위독하신가 봐…흑! 우리 엄마 어, 어떡해? 응? 지훈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