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tor who's a former hitman RAW novel - Chapter (217)
더 닥터 더닥터-217화(217/217)
#217. 길을 찾는 자 (3)(완결)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처음 현수네 집에 간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서울에서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지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당시의 내게는 꿈같은 일이었고, 솔직히 말해서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러웠다.
집이 있다는 게 부러웠던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따스한 공기가.
그게 가족이 주는 안락함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머니께서 날 보자마자 물어왔던 그 한마디 덕택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밥 먹었냐는.
그 한마디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북받치는 감정을 삭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 했던가.
“……병원이 어딘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을 애써 지워내며 녀석에게 물었다.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병원은 내가 아는 곳이었고.
불행하게도 여기서 너무 먼 곳이었다.
장충동 한서 병원.
그래도 이게 어딘가.
모르는 곳이었다면, 아니 거기가 아닌 다른 곳이라면 아무리 나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을 테니까.
우연이라도 좋고, 운명이라도 좋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지금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바로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 흑! 지, 지훈아……나 지금 너무 겁…….
후…….
마음을 다잡으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현수야.”
– 으, 응.
평소답지 않은 녀석의 모습.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나만 해도 몸이 다 벌벌 떨리는데.
하지만, 나 그리고 현수 녀석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머니는 누굴 믿는다는 말인가.
“알잖아. 어머니……그렇게 약하신 분 아냐.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셔.”
내가 그렇게 두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진정해.”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알겠다고 대답하는 현수였다.
녀석을 다독이곤 전화를 끊었다.
그런 뒤, 등을 돌리는데.
통화하는 걸 들었는지, 차선우 선생이 앞에 와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입술을 잘끈 씹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헬기 좀 써야겠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차선우 선생. 그녀가 한차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곧바로 돌아섰다.
그러곤 노기혁을 채근했다.
“노 선생! 지금 바로 헬기 준비시켜!”
***
투다다다다다다다.
헬기가 날아오르고.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인 소음 속에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채로 남은 한 손을 펴서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그걸 보면서 눈을 감았다.
내게는 세 명의 어머니가 계시다.
한 분은 날 낳아주셨으나 너무 빨리 돌아가신 어머니.
또 한 분은 아직 어리기만 했던 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셨던 원장님.
그리고 현수 어머니.
상처 입은 들개처럼 떠돌던 날 자기 자식들만큼이나 사랑해주신 분이다.
그런 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요. 지금 수술은 누가…….”
– 곽영준 교수님께서 들어가셨네.
“후……. 그런가요?”
조민국 과장의 얘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안도했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내가 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외상은 문제가 안 된다.
팔 하나, 다리 하나쯤 부러진 거야 나중에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1차 충돌 시 어딘가에 부딪히며 장이 파열되고, 다시 2차 충돌이 일어나며 유리창을 뚫고 튕겨 나가면서 부서진 차의 파편이 폐를 찌르고 들어간 게 문제였다.
더불어 쇼크로 정신을 잃으신 상태라고 했고.
한시가 급한 상황.
“호흡은요?”
– 후우……. 이런 말을 전하게 돼서 미안하네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어레스트도 한차례 왔었다고…….
큭.
이미 한차례 심장이 멎었다는 건 언제라도 또 그럴 수 있다는 얘기.
제발 그것만은…하고 바라고 또 바랐건만.
그나마 다행인 건 머리는 괜찮다고.
이를 악물며 앞쪽을 향해 물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앞으로 10분. 아니, 7분이면 도착합니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핸드폰에서 와작하고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죄송하지만……. 교수님께 전해주십시오. 5분 안에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달라고요.”
– 알겠네.
무거운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는 조민국 과장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헬기 조종사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무리인 건 알지만…….”
“들었습니다.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뒤늦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펼쳐보는 손.
아직까지도 떨리고 있다.
이 손으로 메스를 쥔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환자 앞이라면 더더욱.
수술을 해야 하는 의사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한데, 지금의 난…….
이래서 가족의 수술은 하지 못하게 하는 거구나.
머리로만 알던 상식이 폐부 깊숙이 찔러오며 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꾹.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온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불안함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따스한 온기로 감싸고 있는 게 누구인지.
“걱정 마. 너라면 할 수 있어.”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가죽 가방.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스와 수술 도구들을 떠올렸다.
동시에 내가 가진 스킬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숨을 고르자, 손의 떨림이 서서히 가신다.
한참 만에 평정심을 되찾은 나는 차선우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진심으로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
헬기에서 내리기 무섭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중 나온 이들의 면면은 익숙하다 못해서 반갑기까지 했지만, 한가롭게 인사나 나누고 있을 틈은 없었다.
타다다다다다닥.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조차 아까워서 비상구를 통해 계단을 날 듯이 뛰어 내려갔다.
이제껏 살아오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이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전력 질주.
헬기가 내린 옥상에서부터 수술실까지. 불과 1분도 안 되어 도착했을 때 수술실 앞 복도에서 파리한 안색으로 서 있는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지, 지훈아!”
“흑……. 오빠아!”
현수와 진아가 날 알아보곤 마주 달려오고, 아버님이 침중한 얼굴, 아니 비통한 얼굴로 날 보고 계셨다.
그런 그들에게 딱 한 마디만 했다.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살려낼 거니까.
굳이 덧붙이지 않은 말을 속으로 삼키며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서부터는 환자의 보호자가 아니까.
난…….
의사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도 살릴 것이다.
설사 내 영혼을 갈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다짐하며 세 사람에게 고개를 한차례 끄덕여 보이곤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가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커녕 누군지 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런 날 이해해 주는 모양.
사과는 나중에 확실히 할 생각이었고, 지금 중요한 건 시간일 뿐.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
“후욱…. 간신히 심장은 뛰게 만들었다만…….”
곽영준 교수님은 이미 지쳐계셨다.
그럴 만도 하다.
벌써 두 번이나 온 어레스트.
오는 동안 한 번, 수술실에서 또 한 번.
그 탓에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마취의는 스태프들과 함께 약물을 투여하고 혈액팩을 쥐어짜느라 탈진 상태에 이르러 있었고.
이쪽은 이쪽대로 수술진이 다 달라붙어 엠부를 짜고 제세동기로 어떻게든 심장을 뛰게 해보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친 바람에 수술실은 엉망이었다.
어찌 되었든 어머님은 살아계셨다.
그걸로 된 거다.
난 곽영준 교수님을 비롯해 이제껏 애써준 모든 스태프들에게 눈빛으로 감사를 표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사이 간호사 한 명이 내가 건네었던 가죽 가방에서 황금빛 메스를 비롯해 손에 익은 수술 도구들을 꺼내어 소독까지 마친 후 밧드에 늘어놓고 있었다.
그걸 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핏기라곤 없는 얼굴이셨다.
언제나 날 보고 웃으시던 눈은 감긴 채였고.
인공호흡기를 한 채로 들릴 듯 말 듯 낮은 소리로 겨우 숨만 내쉬고 계셨다.
가슴은 조금 전 CPR을 하느라 훤히 드러난 상태.
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압박했는지, 피멍이 다 보일 지경.
게다가 폐가 있는 위치에 박혀 있는 파편까지.
한눈에도 위중한 상태.
그걸 보는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부서질 듯 빠드득거리는 순간, 손을 내밀었다.
“메스.”
그리고 그때였다.
[카르마 지수가 0이 되었습니다.]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머릿속에 차가운 물이라도 들이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전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미 깨닫고 있었고.
CNM이 내보낸 뉴스를 통해, 그리고 애덤 모라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백악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통하여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아큐프리온과 함께 내 이름을 말하고 있으니 명성 수치가 미친 듯이 상승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그로 인해 카르마 지수가 0이 된 건 이해할 수 있다만.
그럼 시스템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아니…….
스킬들은 어찌 되는 건데?
설마 싹 다 사라지는 건가?
하필 지금…….
불길한 예감이 솟구쳤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상태창을 띄우려는 찰나였다.
[이제껏 당신이 말살한 생명체에 대한 업보가 모두 사라집니다.] [시스템 사용자 최초의 업적으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뚜뚜뚜뚜뚜뚜…….
미친 듯이 울려대는 신호음.
ECG(심전도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막뿐만 아니라 내 속까지 난도질하고 있었지만.
“혈압! 78, 77, 76……75……. 계속 떨어집니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Pressor(승압제)랑 Cardiotonic(강심제) 투여하세요!”
“큭! 아까도 이미 한 차례 투여했는……. 이대로라면 과투여로 환자가 위험할 수도…….”
“투여하세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레트렉터(Retractor:수술용 개복기) 다시 고정하고요! 멧잼(Metzem:끝이 구부러진 수술용가위)!”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Hemostatic Clamp(혈관겸자)!”
“큭! 산소포화도, 계속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폐동맥 혈관이…….”
“Hemostatic(지혈제) 추가합니다!”
“사, 산소포화도 계속해서 하강 중입니다!”
“교수님! 인투베이션(Intubatuon:기관내 삽관) 부탁드립니다! 도파민(Dopamine:심근수축력강화제)이랑 헤파린(heparin:혈전용해제) 투여하세요!”
“차라리 에피네프린(Adrenaline:심근력강화제)을…….”
“그건……. 과장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지금 바로 베쎌(Vessel:혈관)부터 잡고 가겠습니다. 그런 뒤에…….”
일단 터진 혈관들부터 지혈하고.
그 뒤에 파편 제거.
그러고 나서야 괴사한 조직을 완전히 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사사사사사사삭…….
황금빛에 휩싸인 메스를 빠르게 놀리고.
“보비(Bovie : 전기를 이용해 지혈하는 소작기).”
순식간에 도구를 바꿔 들고 살을 태워 지혈했다.
치이이이이이익.
몇 번이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피가 증발하며 눈앞을 붉게 물들이던 환부에서 피가 점차 멎는 게 보였다.
“석션!”
찌이이이이······찌이이이이······꿀렁 꿀렁.
스태프 한 명이 폐 부위에 가득 고인 체액과 핏물을 빨아들이는 동안,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이내 다시 덤벼들어 다시금 메스를 휘둘렀다.
스걱···스걱···스걱······.
파편을 뽑아낸 자리를 중심으로 괴사한 조직을 제거하고.
슥···슥···슥······.
다시금 손상된 폐, 그중에서도 폐포를 조금이라도 살려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놀렸다.
사사사사사삭······.
그러길 잠시.
숨을 몰아쉬며 환부에서 손을 뗐다.
“바이탈은?”
“혈압, 75···76···77······. 78! 유지합니다! 맥박도 이상 없습니다.”
띠-띠-띠-띠······.
ECG(심전도 기계)의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확인해보니 산소포화도도 정상을 되찾았다.
모니터 상에서 녹색의 그래프가 물결을 치는 걸 보며 얘기했다.
“파편 제거 및 손상된 폐 조직 제거 완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시 한번 어레스트가 온다면 그땐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심장이 멎기 전에 어떻게든 끝낼 수 있어서.
후우. 물론 전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파열된 장을 정상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끝나도 끝난 게 아닐 테니까.
“수혈팩이랑 포도당 추가해주시고. 교수님, 가슴 쪽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고 계시던 곽영준 교수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가 이내 덤벼들었다.
그걸 보다가 돌아섰다.
이제 마지막 고비.
딱 한고비만 넘기면…….
어머니는 사실 수 있다.
눈에 힘을 주곤 메스를 들어 올렸다.
***
타악! 탁!
수술용 장갑을 벗고선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손을 박박 문질러 닦고는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이이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날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다들 아무것도 묻지 않고서 내 쪽으로 달려온다.
왼쪽부터 아버님, 현수, 진아.
현수도 그렇거니와 진아의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건 아버님이셨다.
눈물 자국은 없지만, 눈 안의 핏줄이 다 터져서 흰자위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들을 향해 말했다.
“수술은…잘됐습니다.”
“흑!”
참았던 눈물을 또 한차례 터뜨리는 진아. 녀석을 한차례 꼭 안아주곤 아버님께 눈길을 보냈다.
이제야 눈가에 물기가 가득 차오르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아버님이셨다.
***
그로부터 한 달.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던 수술 때와는 달리 어머니는 입원해 계신 동안 별다른 탈 없이 조금씩 회복되셨다.
예후는 좋았고, 잘려나간 폐 때문에 한동안은 조심하셔야겠지만 앞으로 몇십 년은 끄떡없으실 거였다.
그렇긴 해도, 자꾸만 신경 쓰여서 며칠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서울로 와서 주치의인 곽영준 교수님과 함께 어머니를 진료하곤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퇴원 날이 되어 온 가족의 웃음 속에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지도 벌써 사흘 전.
지금 나는 시리아에 와 있다.
슥슥슥슥.
캠퍼스 위로 지나가는 붓을 따라 화폭에 담기는 일상.
퉁!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아랍계 특유의 큰 눈망울과 높다란 코를 가진 꼬마 하나가 서툴게 차올린 공이 이쪽까지 날아오고 있다.
그걸 앉은 채로 발만 들어서 가볍게 차 녀석들에게 돌려주니, 익숙한 언어가 들려온다.
“고맙습니다!”
피식.
엉성하긴 하지만, 분명한 한국어였다.
그게 또 뭐가 웃긴지 지들끼리 까르르 웃더니 다시금 공을 차기 시작하는 아이들.
세상 어딜 가나 같은 모습일 터다.
저맘때의 아이들은 다 개구쟁이라는 얘기다.
더불어 그런 녀석들을 이렇게 마음 편히 바라보면 그림에 담을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인 거고.
모래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채수아 선생이 또 가운을 입은 채로 병원을 나갔다고 잔소리 좀 하겠지만.
뭐 어떤가.
옷이야 갈아입으면 그만이지.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금 붓을 쥔 채 손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여기 있었네요?”
뒤쪽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 시리아 병원으로 온 지 일주일 만에 처음 맞는 오프 날이었으니까.
난 고개를 돌려 알 마야사 공주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오늘…….”
“……?”
“예쁜데요?”
너무 갑작스러웠던 걸까.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양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러면서도 내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알 마야사 공주는 내 손을 마주 잡고는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며 몸을 일으킨 나.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어디로 모실까요, 공주님?”
그녀의 입가에서 시작된 미소가 얼굴로 퍼져나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더없이 환한 표정이 된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리는 걸 듣고는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서울에서 보던 하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수원에서 보던 것과도……. 아니, 어디에서나 변함없이 내게 보여주던 광활한 하늘이다.
그 하늘을 알 마야사 공주와 함께 올려다보는 내 시야에는…….
‘길을 찾는 자’라는 새로운 칭호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완결)
<후기>
지금까지 <더 닥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내고 보니, 감개무량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이제야 말입니다만, 이 글은 시작할 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의학물이면서 판타지인지라 공부 아닌 공부를 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꼭 쓰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간중간 힘들 때도 있었고, 스토리가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어떻게든 쓰고자 했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많은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었고 또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제 글솜씨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욕심을 버리기로 했죠.
그렇지만 본 줄기에서 꼭 쓰고자 마음먹었던 건 다 쓴 거 같습니다.
쓸데없는 건 다 잘라내고 내용을 최대한 압축하는 바람에 다소 짧아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막판에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어두워지는 느낌이라 심마도 살짝 왔었지만…….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께서도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또 한층 더 성숙한 작가가 되어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