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ing Tycoon RAW novel - Chapter (248)
꿈꾸는 재벌 249화(248/249)
249. 웃기는 짓
“미안하지만… 거절입니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
이미욱 회장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마 거절할 줄은 몰랐던 것이겠지.
“왜……?”
이민욱 회장이 그동안 봐 온 이선수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했다.
강하게 나오면 이선수 역시 강하게 나갔다.
숙이고 들어가면 이선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자신이 이렇게 머리까지 숙이면서 부탁한다는 말을 했는데.
“왜라고 물어도 답해 줄 말은 하나입니다. 거절입니다.”
이민욱 회장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반도체 공장을 넘겨주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겁니까?”
“네.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 만족할 수 없는 겁니까?”
이유를 말해 줘야 할까?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힘이 없었던 때 저들은 나를 방해하는 것으로 부족해 완전히 짓밟아 버리려고 했었다.
싹을 잘라 버린다는 이유로.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싹을 잘라 버린다는 이유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저들은 그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힘없는 이들을 짓밟는 것을 즐긴 것뿐이다.
“그 만족보다 다른 것이 더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더 만족스러운 다른 것이라니요?”
희망을 잘라 버려야겠지?
“삼두 전자의 몰락이겠죠.”
“…….”
이민욱 회장은 할 말을 잊었다.
이선수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라서였다.
분명 자신이 파악한 이선수는 이런 결정을 하지 않는다.
이민욱 회장은 이선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선수의 눈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너무 궁금했다.
“왜 삼두 전자의 몰락이 더 만족스럽다는 겁니까?”
말투도 거칠어졌다.
“내가, 아니… 다른 이들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니까요.”
“삼두 전자의 몰락이? 도대체 드림 그룹이 뭐를 당했다는 겁니까? 오히려 당한 것은 삼두 그룹이지 않습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에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그런 이민욱 회장에게 이선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드림 그룹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이민욱 회장께서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요? 솔직하게 생각해 보시죠.”
“그거야 당연히…….”
꽝!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이선수의 입장이었다면.
그리고 이선수가 머리를 숙여 가면서까지 부탁했다면?
아니다.
이 만남 자체도 없었을지 모른다.
왜 만나야 하냐며.
졌으면 패배를 인정하고 몸을 숙여야지.
감히 거래를 하자고 해?
“제대로 떠올렸나 보군요.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 어떤 것이 더 이익인지 생각해 봐요.”
이민욱 회장은 이선수가 거절하는 것이 이해가 됐다.
자신이 이선수였다면 거절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의 경우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왜냐?
핸드폰까지 망한 마당에 반도체 공장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 손실만 쌓여 간다.
드림 전자에 안 판다?
전혀 관계 없는 듯한 회사가 공장을 매입해서 드림 전자에 넘길 수도 있다.
자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이선수가 생각 못 할 리가 없었다.
“더 말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으니 이만하죠. 밥은 잘 먹었습니다.”
나는 일어났다.
이민욱 회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 * *
이선수를 만난 후 이민욱 회장은 일주일 정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이라면!”
이민욱 회장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삼두 전자가 매년 올린 막대한 이익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 덕분에 반도체와 핸드폰이 망했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버틸 수는 없기에 구조조정을 하며 내실을 다지려 한 것이다.
어차피 핸드폰과 반도체를 되살릴 수 없다면.
“한 번 해 보지. 이선수 회장.”
이민욱 회장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생각이었다.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세계적인 회사.
삼두 전자의 남은 자금을 모두 쏟아부어 엔비디아를 인수하거나 대주주가 되어 기술 이전을 받을 생각이었다.
현재 드림 그룹이 확보한 기술과는 연관없는 곳이다.
퀄컴이나 ARM 그리고 TSMC는 삼두 반도체를 노린 것이니까.
“김필호 사장 들어오라고 해.”
이민욱 회장은 모든 힘을 다해 엔비디아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 * *
[선수 회장님아.]“무슨 일 있어?”
[웃긴 일이 생겼다.]“웃긴 일?”
[삼두 그룹에서 엔비디아 인수하고 싶단다.]이정석 선배의 말대로 웃긴 일이었다.
진짜 웃음이 나왔다.
[거 봐. 너도 웃기지.]“웃기기는 하네. 아직 모르나 보지?”
엔비디아를 인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주주였다.
왜냐?
원래 내가 인수하려고 했던 회사 목록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정석 선배는 그 목록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정석 선배는 엔비디아 주식도 매입했었다.
혹시 몰라서라나?
또한, 씨티 그룹이 보유한 주식 중에 엔비디아 것도 있었다.
이사회에 최소 한 자리 이상은 확보할 수 있었다.
“얼마에 인수하겠다는데?”
[800억 달러. 한화로 10조 원 정도?]2015년을 얼마 두지 않은 지금 엔비디아의 가치는 800억 달러가 되지 않았다.
[조건도 좋아. 경영권 확보를 위해 30% 정도의 주식만 가지고 나머지 주식은 드림 그룹의 경영권 보장만 해 주면 된다고 하네. 20년인가?]30%의 주식을 800억 달러에 파는 것이다.
그중에는 이정석 선배가 확보한 것과 씨티 그룹의 것도 있을 것이다.
“왜? 이익이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구미가 땡겨?”
[솔직히 그렇지.]“팔지 마.”
[정말?]“어. 삼두 그룹에는 그 어떤 기회도 주고 싶지 않아.”
[오. 확실하게 돌아왔네.]“그럴 수밖에 없지.”
[왜?]“실은 삼두 이민욱 회장 만났었어. 거기서…….”
나는 이민욱 회장과 만나서 한 이야기를 다 해 줬다.
[잘했다. 잘했어. 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럼 엔비디아 건은 내가 알아서 할게.]“판다고?”
[아니, 절대 안 팔지. 나도 속 좀 시원해 보려고 한다.]“무슨 소리야?”
[너만 시원하면 다냐? 나도 삼두 무역에서 잘릴 때 생각하면…….]“무슨 짓을 하려고.”
[비밀.]뚝.
어째 불안한데.
* * *
부들부들.
이민욱 회장은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엔비디아에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엔비디아가 아닌 이정석이 쓴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신 삼두 그룹 이민욱 회장님께.
한때 삼두 무역에 다녔던 제가 이제는 엔비디아의 대주주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래서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삼두 무역을 내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헌신짝 버리듯 버리더군요.
하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좋은 사람 만나서 이렇게 성공했으니까요.
이미 아시겠지만.
삼두 그룹에 엔비디아를 매각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다른 대주주도 같은 의견입니다.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민욱 회장님이 직접 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삼두 그룹을 이끄는 회장님께서 책임져야 할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누군지 궁금하다고요?
싱가포르 드림 컴퍼니 대표 이정석입니다.
삼두 그룹의 무한한 발전을 바랍니다.
될지 모르겠지만요.
“이선수!”
이민욱 회장은 이선수의 이름을 불렀다.
싱가포르 드림 컴퍼니가 이선수와 연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편지를 이선수가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삼두 전자가 다시 세계적인 기업의 자리에 올라서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 * *
“짓궂기는.”
[왜? 전화가 아닌 편지로 했는데?]“그게 더 자존심 상하지.”
[아닐걸? 전화로 목소리 들으면 더 자존심 상하면서 화가 났을 거야. 나도 정말 참으면서 썼거든.]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제 삼두 그룹의 자존심은 끝난 건가?]“아직 안 끝났지. 시간이 필요해.”
삼두 그룹의 자존심.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삼두 전자였다.
그리고 핸드폰.
[그래 봤자지. 어쨌든 축하한다. 이선수 회장님.]“고마워.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형이 옆에 없었다면 못 했을 거야.”
[얼레. 이런 칭찬을? 하하. 나도 네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고맙다. 남아공에서 구출해 준 것도 그렇고.]“한국 올래? 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럴까?]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엄청난 가격의 술을 마셔도 가끔은 삼겹살에 소주가 생각날 때도 있다.
그때 그 감정은 잊을 수 없으니까.
[일정 조정하고 가마.]“진짜 오게?”
[그럼 가짜로 가냐? 솔직하게 난 샴페인보다 네가 말한 삼겹살에 소주가 더 좋다. 삼두 전자가 무너지는 것은 곧 삼두 그룹이 무너지는 거잖아. 축하는 삼겹살에 소주로 하는 것이지.]“하하. 알았어. 일정 조정해서 와.”
[그래. 가는 날짜 알려 줄게.]“기다릴게.”
[알았어.]왜인지 모르게 이정석 선배가 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 * *
“어흐. 춥다.”
“겨울이잖아.”
“너무 싱가포르에 오래 있었나 보다. 이제는 한국 겨울 추위가 적응이 안 되네.”
이정석 선배는 코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약간 떨고 있었다.
“그냥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삼겹살에 소주 먹자니까. 굳이 덜덜 떨면서 여기까지 와야 해?”
내 말에 이정석 선배는 씨익 웃었다.
“추억이 깃든 곳이니까. 그런데 여기도 많이 변했다.”
이정석 선배가 가자고 한 곳은 영등포였다.
“아직 있으려나?”
이정석 선배는 영등포 시장 뒷골목으로 향했다.
“여기는 여전하네.”
이정석은 도로변은 건물이 들어서며 화려해졌어도 뒷골목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저기다. 아직도 있다.”
이정석 선배가 싱가포르 일정까지 조정해 가면서 찾아온 곳은 아주 허름한 식당이었다.
“같은 분이 운영하시나 모르겠네.”
드르륵.
문도 옆으로 밀어서 여는 곳이었다.
낡은 간판에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정석 선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주인이 바뀌셨나 보네요.”
“아! 네. 언제 오셨는데요?”
“한 15년은 됐죠?”
반갑게 맞이한 여자 종업원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가 계실 때 오셨나 보네요.”
“따님이세요?”
“아니요. 며느리요.”
“옛날 생각 나서 찾아왔습니다.”
며느리는 웃으며 말했다.
“가끔 계세요. 그 덕분에 이 가게가 아직 남아 있기도 해요. 편한 곳에 앉으세요.”
조금 일찍 와서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나와 이정석 선배뿐이었다.
경호원은 원거리 경호라서 밖에 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한쪽에 들어와 있으라고 했다.
날이 추운데 밖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임강민 대표와 경호원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우리가 앉은 식탁에 물과 컵을 가져다주면서 반겼다.
“뭐 드시겠어요?”
며느리의 질문에 이정석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삼겹살이죠.”
“호호. 그러실 줄 알았어요.”
“4인분 주세요.”
“그렇게 많이요?”
“네. 많이 먹을 겁니다. 그리고 소주도 한 병이요.”
“네.”
며느리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리쳤다.
“여보! 삼겹살 4인분. 연탄불은 내가 넣을게.”
이곳은 연탄불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곳이었다.
연탄으로 구우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은 건강보다 이런 추억의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직도 연탄 삼겹살집이 있네.”
“여기 한 번 데리고 오고 싶었어. 크게 변한 것이 없네.”
이정석 선배의 말대로였다.
이 식당 안은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곧 밑반찬과 연탄불 그리고 삼겹살이 나왔다.
임강민 대표와 경호원이 있는 곳도 삼겹살을 먹었다.
술은 안 마시고.
나와 이정석 선배는 옛날을 추억하며 삼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크으. 이 맛이지.”
“그러게.”
정말 맛있었다.
지금은 그 어떤 음식을 가져와도 연탄불에 구워진 삼겹살을 이길 수 없었다.
또한, 그 어떤 술을 마셔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소주의 쓴맛보다 좋을 수 없었다.
옛날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니까.
힘들게 일하고 퇴근길에 동료 또는 누군가와 함께 소주 한 잔을 마시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벌써 소주가 3병째다.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지니 이정석 선배가 물었다.
“뭐를?”
“삼두 밟았잖아.”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게. 어떻게 할까?”
삼두 그룹의 자존심이자 삼두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던 삼두 전자를 밟고 올라서게 됐다.
목표를 이룬 것이다.
무언가 허전했다.
“그냥 삼두 더 밟든지.”
이정석 선배의 말에 나는 또 웃었다.
삼두 그룹을 더 밟는다.
그렇게 할 의미가 있을까?
삼두 그룹을 더 밟으려면 이제는 출혈 경쟁뿐이다.
삼두 그룹의 남은 계열사 대부분이 재무구조가 탄탄했다.
매출도 좋았고.
반도체나 핸드폰처럼 기술로 경쟁할 수 없는 구조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왜?”
“이제는 삼두 그룹이 드림 그룹을 따라와야 하는 위치니까.”
“오! 이제는 별 볼 일 없는 그룹이다?”
“그렇기도 하지.”
“그럼 됐다. 너도 나도 이제는 털자.”
이정석 선배는 소주 한 잔을 시원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이 쓴 소주처럼.”
나도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오래 걸렸다. 선수야.”
“그러게.”
1992년 겨울에 일이 터졌다.
1993년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21년이다.
“애기들은 잘 크지?”
“아주 쑥쑥 커서 당황스러워.”
“내년에 학교 가나?”
“그것 때문에 아주 난리야.”
이정석 선배가 웃었다.
“그럴 때지. 더군다나 쌍둥이잖아.”
“그래서 애 엄마가 더 신경 많이 써.”
“잘해 줘라.”
“잘해 주고 있어.”
“그럼 됐다. 다 털어 버리는 기념으로 마셔라.”
“그러자고.”
소주가 달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였다.
곧 가게 안이 꽉 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겹살 가격이 싼 데다가 이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가 싹싹해서였다.
중간에 서비스라고 된장찌개에 계란탕까지.
반찬이 모자란 것 같으면 재빠르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느새 소주가 7병이 넘어갔다.
가게도 너무 시끄러웠고.
“형. 이제 가자.”
“그래. 가자. 너무 많이 마셨다.”
이정석 선배가 휘청였다.
나도 술기운이 많이 올라왔다.
예전 같지가 않았다. 푸틴과 보드카를 마실 때는 멀쩡했는데.
“여기 계산이요!”
이정석 선배가 소리쳤다.
“형. 내가 낼게.”
“무슨 소리! 내가 데리고 왔으니까 내가 내야지!”
기어코 이정석 선배가 계산했다.
그리고 가게를 나왔다.
찬 겨울의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좋다!”
이정석 선배는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술주정이야?”
“응. 2차는 선수 네가 쏴라.”
“뭐 먹고 싶은데?”
“삼겹살에 소주 마셨으면 다음은 생맥주지!”
이정석 선배는 20년 전 그때의 기분을 그대로 다시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고. 근처에 호프집이…….”
“나만 따라와!”
이정석 선배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넘어진다.”
“절대로 아니다. 내가 이 골목을 얼마나 다녔는데.”
또 아는 집이 있나 싶었다.
그대로 이정석 선배를 따라갔다.
“어라? 여기가 아닌가?”
술 취한 이정석 선배는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이 골목이 아닌데?”
하지만 나는 이 골목이 너무 익숙했다.
잊고 있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골목이었다.
영등포 개미골목.
일명 쪽방촌.
부르르.
나도 모르게 몸이 휘청였다.
“어? 선수야!”
“회장님!”
깜짝 놀란 이정석 선배와 임강민 대표가 소리쳤다.
나는 벽에 손을 대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술이 깬 것 같은 이정석 선배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왜 그래?”
임강민 대표가 내 옆에 왔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두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저 앞에 온몸을 움츠리고 추위에 덜덜 떨며 걸어가는 한 남자가 보여서였다.
“김 씨 아저씨?”
내 목소리가 컸나 보다.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골목 보안등 덕분에 얼굴 확인이 가능했다.
맞다. 내가 아는 김 씨 아저씨가 분명했다.
이곳은 내가 추위에 덜덜 떨며 죽어갔던 곳이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
그래서 외면하고 있었나 보다.
김 씨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김 씨 아저씨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