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age Who Uses His Fists RAW novel - Chapter (200)
주먹 쓰는 천재 마법사-200화(200/201)
200화. 완벽한 적수
[회복률 62.1%]난 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를 바라봤다.
게임 시나리오에선 늘 100퍼센트였는데 그나마 다행인 걸까.
100퍼센트가 되면 놈은 황제에서 마왕으로 변하며 공략이 가능해졌다.
그러고 보니 난 이자르의 진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첫 만남은 모니터 속의 마지막 보스였고 그다음 만났을 땐 인자한 황제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매번 몸을 갈아타 버리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형태가 놈의 진짜 모습이라고 할 순 없다.
그래도 첫 마주한 감상은 악마의 현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외의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베르샤의 얼굴에서 들리는 굵은 웃음소리며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입이며 인간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아우라다.
무엇보다 놈이 내뿜는 소름 끼치도록 불길한 기운은 사악함의 끝장판을 보는 듯했다.
“나의 군대가 곧 당도할 것이다. 널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지. 네 아비도 친구도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되리라.”
“경기는 원래 일 대 일이다. 도움을 못 받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봐야 네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구나.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싶겠지.”
아니, 틀렸다.
지금 내 머릿속은 네놈과의 전투로 가득하다.
내가 기억하는 수백 가지의 패턴과 그것에 대응하는 내 모습으로 말이다.
“시간을 끄는 건 너 같은데? 지원군이라도 기다리는 거냐? 왜 이렇게 혀가 길어?”
“크큭! 아주 천천히 죽여주마.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이자르의 손에서 검붉은 빛을 뿜는 검이 만들어졌다. 악령의 검이다.
중반 페이즈 쯤에나 시작되는 패턴을 벌써부터 꺼낼 줄이야.
저 검에 닿는 순간, 조금씩 피가 닳아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저주가 내려진다.
때문에 이자르를 이기기 위해선 단 한 대도 맞지 않아야 한다. 퍼펙트게임만이 유일한 승리요건이다.
“와라. 이자르.”
“인간 따위가 짐의 이름을 부르는가!”
놈이 자세를 취했다.
전방 일직선으로 돌진하기 전의 준비 자세.
이 패턴은 보고 피하는 게 아니다. 범위가 넓어서 옆으로 굴러서도 안 된다.
위로 뛰어오르거나 무적기를 써야 한다.
그리고 내겐 아주 좋은 무적기가 있었다.
“우선 팔 한 짝부터 잘라주지!”
타이밍에 맞춰 착각과 자가세뇌를 했다. 원래부터 난 놈의 뒤에 있었다고.
그렇게 비물질 상태가 되어 공간의 영역을 무시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자르와 내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정원 한복판을 가르는 깊은 검흔만이 방금의 공격이 실패했음을 대변해주었다.
이자르는 적잖게 놀랐는지 황당해하는 표정인데 흑룡도 놀란 건 매한가지였다.
-뭐야? 방금 어떻게 한 거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 능력 사기네요.”
문득 북부의 유산이 엔딩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르빌의 마지막 대장장이와 뒷골목의 제왕이 그랬듯 이 게임은 히든피스에 대한 충분한 힌트를 던졌다.
쓸데없다고 생각한 NPC와의 대화에서도, 복잡하게 설계된 세계관에서도.
어쩌면 개발자는 자신들이 만든 세계를 꼼꼼히 음미한 유저에게 엔딩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북부의 유산을 꽁꽁 숨겨두었던 것이다.
난 그것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엔딩을 본 거고.
“생각보다 대작이었네.”
북부의 유산을 얻은 지금으로선 이자르의 위용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수백 가지의 말도 안 되는 패턴은 애당초 극복하라고 만들어둔 게 아니라 세계를 더 탐험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어디서 잔재주를 배워왔구나.”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너는 더 이상 챔피언이 아니거든.”
“건방진 놈!”
이자르에게 흉흉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잠시 후 놈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순간적으로 양팔을 벌릴 것이다.
아주 선명히 기억하는 광역기 패턴이다.
방어기로 막으면 죽고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방해하면 산다.
“큭!”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놈의 면상 앞에 나타나 오른손으로 턱을 날려버렸다.
퍼펙트게임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누구든 놈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 이자르가 잠깐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타이밍을 파악하고 있었다.
“네 이놈……!”
이자르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날 노려봤다.
공격은 성공했지만 불운하게도 타격감이 좋진 않았다.
상상 같으면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을 텐데 턱을 문지르는 것에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집 나간 퍼즐 조각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가 테무드의 힘이 돌아오면 네겐 승산이 없을 텐데.”
“으으윽!”
두 번의 실패로 심리적 우위에 있는 건 나였다.
이제 놈은 무리한 공격을 이어갈 터다. 그것이 악수가 된다는 것도 모른 채.
“지긋지긋한 아라한 놈들…! 장난은 여기까지다! 이제 죽어라!”
쿠구구구궁-!
놈의 폭주가 시작됐다.
검붉은 마나가 몸에 물들더니 이내 눈까지 활활 타올랐다.
악령의 검이 왼손에도 생겨 두 자루가 되었고 긴 머리카락이 불길에 휩쓸린 것처럼 일렁였다.
원래라면 반피 이하로 떨어졌을 때 시작되는 악마화 패턴.
이제 놈은 링 중앙에서 무차별한 폭격을 가할 것이다.
-제드! 기운이 심상치 않아! 일단은 피해! 테무드의 힘이 돌아올 때까진 버텨야 한다고!
처음 이 패턴을 마주하고 내가 느낀 감정은 좌절이었다.
회피도, 선제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무적기로 잠깐은 방어할 수 있어도 그 이후엔 여지없이 당했다.
아마 이때가 내가 개발자 욕을 제일 많이 한 시간일 것이다.
“걱정 마세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까요.”
딱 그 말이 맞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 구멍을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지만.
-여기서 죽으면 모든게 허사다! 내 말 들어야 돼!
조언은 고맙지만 지금은 내가 더 전문가다.
예상대로 놈은 정원 중앙으로 쇄도하더니 사방에 마나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난 유일한 바늘구멍을 찾아 재빨리 몸을 날렸다.
-어?!
다시 생각해봐도 개발자는 변태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다.
360도에서 딱 1도만 공격이 닿지 않게 해놨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1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놈의 좌측 후방. 시계로 치면 7시 방향이 그렇다.
-마, 말도 안 돼!
말이 된다.
게임이란 결국 클리어하도록 만들어 놨으니까.
뼈를 짓누르는 위압감도, 자칫하면 죽는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게임 속의 세계다.
난 그 세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낸 고인물이고.
“으아아악! 이 쥐새끼 같은 놈!”
이자르는 극도로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부었다.
물샐틈없이 날아드는 마나 구체는 사방에서 포탄이 터지는 것처럼 눈과 귀를 현혹시켰지만 이 바늘구멍만큼은 안전하다.
이곳은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얻은 한 줌의 기적과 같다.
마치 도전자가 쓰러지기 직전에 날린 럭키 펀치처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이나 공격을 퍼부은 이자르가 힘에 부친 듯 악마화를 해체했다.
원래라면 조금 더 이어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회복률의 차이 때문인 듯싶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대략 10초 동안은 내가 공격할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파지지지지직!
난 ‘근성의 도전자’와 ‘장인의 목걸이’를 동시에 활성화했다.
여기에 흑룡의 힘을 더한다면 유의미한 타격이 가능하리라.
“커헉!”
첫 타격은 레프트 어퍼컷이다.
타격과 동시에 놈의 턱이 들리는 모습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
주먹 끝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묵직한 감각.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날 노려보는 상대.
“그래, 이걸 바랐어.”
난 많은 걸 원한 게 아니다.
두 번 이상 내 공격을 받아줄 샌드백이면 된다.
조금이라도 날 설레게 해줄 적수면 그만이다.
퍽! 퍼억! 퍽! 퍽! 퍼어억!
오랫동안 갈고 닦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지 못한 공격을 시작했다.
오른발 레그킥에 이어지는 왼발 하이킥.
왼발이 떨어짐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는 뒤돌려차기. 다시 역으로 회전시켜 중심을 잡은 후 왼발 올려차기.
놈을 구석에 몰아 퍼붓는 레프트와 라이트 연타.
숨이 거칠어질 정도의 연쇄 공격에 이자르의 얼굴은 걸레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신을 잃지 않는 모습은 잠시나마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 정도로 내 투지를 자극했다.
-이제 그만! 놈의 마나가 회복된다!
근래 들어 가장 강렬하고 행복했던 10초가 지났다.
악마화로 소모된 검붉은 마나가 다시 모이기 시작한다.
시간 내에 다운시키지 못한 건 당연히 아쉬워야 하건만 왜일까.
다시 일어서는 놈을 보며 진심으로 기뻤다.
“…다 끝난 거냐?”
“이제 시작이지. 어서 일어나라.”
마음 같아선 부축까지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놈의 눈빛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독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정말이지 완벽한 상대다.
“이제 내 차례다.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다.”
“널 보니까 이런 명언이 떠오르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그런 정신상태 너무 마음에 들어. 인간보다 낫다는 거 인정.”
“재수 없는 아라한 새끼…!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지켜보마!”
이번엔 어떤 식으로 날 설레게 해줄까.
싸울수록 더욱 두근거리는 이 심정을 놈도 알려나.
촤아아악!
순간, 놈의 검이 13개로 분산되어 공중에 둥둥 띄워졌다.
13개의 검은 각각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난도질을 시작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패턴엔 바늘구멍 같은 꼼수 따윈 없다.
그래도 파훼법은 존재한다.
13개의 검 중에 진짜는 두 자루뿐.
즉, 11개의 가짜와 2개의 진짜를 구별하는 것이 공략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패턴을 ‘환영의 검’이라고 불렀다.
“크크큭! 이건 피할 수 없지!”
애초에 피할 생각은 없다.
구분할 생각만 있을 뿐.
외관상으로 구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오히려 그 점이 내 도전욕구를 자극했다.
슈슈슉!
13개의 검이 내게 쇄도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건 세심한 움직임이다.
2개만 황제의 의지가 들어가고 나머지 11개는 겉절이일 뿐이다.
그 말은 즉, 두 자루만이 내 급소 부위를 보다 정확히 노린다는 소리.
의지가 가미된 두 자루를 찾는 건 얼핏 어려워 보이지만 감각을 집중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난 제자리에 서서 날아오는 검들을 응시했다.
먼저 나서서 움직일 필요 없다. 움직이면 오히려 공격이 분산되어 불리해진다.
-제드! 피해!
아니.
첫 번째로 날아온 검은 가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애매하고 네 번째는 진짜였다.
애매하거나 진짜가 날아오면 시공간 능력을 써서 관통시킨다.
진짜를 찾으면 눈으로 추적하며 동시에 다음 검의 진위를 구별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씩 거르다 보면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두 자루 전부가 놈과 떨어져 있으면 반격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긴다.
“윽!”
찰나의 순간에 난 놈에게 다가가 복부에 오른손을 꽂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놈의 얼굴을 보며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가 될 수 없지. 마치 웨이지산 소고기는 베르티산이 될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