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age Who Uses His Fists RAW novel - Chapter (201)
주먹 쓰는 천재 마법사-201화(201/201)
201화. 세계의 끝 (完)
이자르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번번이 막히는 공격에 놈이 느끼는 감정은 분노일까 두려움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놈의 몸에서 미세한 떨림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아는 거냐. 왜 나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냔 말이다!”
눈빛이며 기운이며 한풀 꺾여있었다.
테무드의 힘이 없음에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널 이기기 위해 수백 번 도전했으니까. 수없이 좌절했고 마지막엔 이겼지.”
“뭐라고…?”
“물론 억울하겠지. 이해한다. 내가 너보다 강한 건 아니니까.”
“하! 너 따위가 짐을 이해한다고?”
“내가 살던 세계에선 나도 너와 같은 입장이거든.”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숨을 헐떡이는 이자르가 꼭 나에게도 다가올 미래인 것 같았다.
누구든 챔피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도전자였던 시절이 있다.
나는 유일하게 얼굴을 기억하는 그 선수로부터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았다.
방어전 실패 혹은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
두 사람의 극명한 현실을 표현하기에 단 한 줄의 기사 제목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한 문장 뒤에는 신문 전면을 활용해 적어도 부족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선수의 경기 영상을 뇌리에 박히도록 돌려봤기 때문이다. 난 악성 스토커보다 더한 집념으로 그 선수에게 집착했다.
종국엔 어깨 근육의 움직임만 봐도 어디로 펀치가 날아올지 알았고 그의 표정만 봐도 절로 생각이 읽혔다.
비로소 챔피언이 되고 몇 번의 방어전을 치렀을 때 나는 그 선수가 마지막에 느꼈을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엔 수많은 도전자들이 있고 그들의 목표는 한 명이다.
링 위에는 한 명만 올라가지만 챔피언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모두와 싸우는 자리였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집착 받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 감정이 싫어서 외면하고 싶었다.
대적불가, 지상최강의 사내.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명실상부한 최강자라도 적의 얼굴을 모른다는 건 무언의 공포를 갖게 했다.
과녁 없이 활을 쏘고 결승선 없이 트랙을 질주하는 기분이 그럴까.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추락은 길고 고통은 배가 된다는 건 뜨거운 눈물과 함께 은퇴 선언을 하는 그 선수를 보며 알았다.
나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원래 그 선수의 것이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언젠가 나에게도 조명이 비추지 않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 선수의 것을 앗아갔듯, 얼굴조차 모르는 어느 도전자는 나의 것을 손에 넣으려 링 위에 오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다시 도전자가 되는 것이었다.
챔피언이란 결국 추락할 일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와 같았으니까.
현실에 없는 강자를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찾았고, 그렇게 이자르라는 새로운 챔피언을 만났다.
“생각해 보면 넌 고마운 존재였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자르는 나의 방공호였다.
승부욕과 투지라는 듣기 좋은 이름 뒤에 숨어 추락의 공포를 견뎠다.
그 도피처마저 무너지려는 이 순간, 나는 오히려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닥쳐! 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자르의 모습에서 가물거리는 눈꺼풀에 억지로 힘을 주며 다시 일어서는 그 선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현재의 이자르는 나의 미래고 그 선수의 과거였다.
“네가 일어선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싸울 거다.”
“시끄럽다! 죽어라, 아라한!”
수천 개의 검붉은 창이 소나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테무드의 힘이 돌아왔음을 느꼈지만 난 누군가의 힘을 빌려서가 아닌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마왕, 악의 근원, 제국의 원흉이기 전에 그는 한 세계의 챔피언이기에.
그의 것을 뺏으려는 도전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우다.
언젠가 나의 미래가 될 테니까 이 승부에 일말의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지겨운 새끼! 적당히 좀 하란 말이다! 그만 죽으라고!”
빼곡히 쏟아지는 창날을 피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턱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도 언젠간 손에 닿기 마련이다.
도저히 적수가 없어 보였던 그 선수를 내가 이겼듯. 나 역시 그러하듯.
느려도 상관없다. 때론 멈춰도 좋다.
방향만 옳다면 언젠간 목적지에 도달할 테니까.
“제, 제발!”
난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는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선수의 마지막은 어땠는지 기억해본다.
카운터펀치가 턱에 꽂혀 다운되기 전까지도 그 선수의 눈빛은 살아있었건만.
“완벽한 적수라 여겼는데 아니었구나. 결국 넌 그저 그런 상대인 거야.”
“사, 살려줘! 내가 제국을 떠나마! 약속한다!”
아름다운 추락이 있을까.
정신을 잃고 링 위에 널브러진 모습은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
놈을 보며 생각한다.
아름답진 않겠지만 적어도 추하진 말아야겠다고.
“이제 끝이다. 받아들여라.”
오른손 끝에 모든 마나를 집중했다.
뇌기를 한 점으로 뭉치고 뭉쳐 태양처럼 구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놈의 심장을 향해 힘껏 내지른다.
“커헉-!”
굉음이 울렸다. 강렬한 빛이 일었다.
놈이 피를 토한다. 심장의 무언가가 유리조각처럼 깨어져 나간다.
그렇게 나의 방공호를 무너뜨렸다.
털썩!
이자르가 무릎을 꿇었다.
목을 옥죄던 악한 기운이 옅어지며 냄새도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흑룡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저물어가는 해에는 아무도 염원을 담지 않는다.
때문에 은퇴식이란 보통 초라하다.
하지만 그 선수의 은퇴식은 전혀 초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팬들이 그와 함께 울어주었고 나 역시 마음속으로 격려의 박수를 쳤으니까.
누군가는 그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이자르는 눈물이 흐르는 대로 멍하니 주저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은퇴식에서 그 선수도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엔 둘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았다.
그 선수의 눈물은 뜨거웠지만 이자르의 눈물은 공허했으니까.
“폐, 폐하!”
정원을 찾아온 건 아데스 콜트였다.
그는 반쯤 넝마가 된 몰골로 뛰어왔는데 그보다 더한 황제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자리에 얼어버렸다.
순간, 울고 있던 황제가 정신을 차린 듯 그에게 다가갔다.
난 몸을 질질 끌며 기어가는 황제의 추잡한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어차피 전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기울었을 것이다. 근위대장의 몰골이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폐하……. 성문이 뚫렸습니다. 연합군이 곧 들이닥칠 겁니다.”
“…그대는 짐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겠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우선은 목숨을 보전하셔야-! 컥!”
황제가 아데스의 목을 덥석 부여잡았다.
마나를 잃었기에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름 돋게도 아데스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그대의 충심을 반드시 기억하겠다.”
설마했던 역겨운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데스의 눈빛이 희미해지다가 완전히 빛을 잃더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구토라 쏠리는 걸 억지로 참는 와중에 베르샤의 몸뚱이가 풀썩 쓰러지고 대신에 아데스가 일어섰다.
“크크크! 역시 훌륭한 몸이다. 아주 힘이 넘치는구나.”
다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만큼은 온몸에 털이 곤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역겨웠기 때문이다.
“크하하핫! 다시 시작하자, 아라한! 네놈의 목을 뽑아 연합군 앞에 던져줄 것이니!”
“…잠시나마 너 같은 놈과 비교한 걸 후회한다.”
역겨운 감정은 금세 들끓는 분노로 바뀌었다.
한 세계의 챔피언이라 예우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저런 벌레에게 예우는 무슨 예우인가.
무참히 밟아 죽이는 것만이 온당한 처사리라.
“크크크! 방금의 공격으로 마나가 다 소진됐음을 안다. 승리는 결국 짐의 것이란 소리지.”
“너에게 어울리는 최후는 역시 이것뿐이다.”
[마법, ‘대마법사의 가호’를 사용합니다.]한 세계의 진짜 챔피언.
차오르다 못해 넘쳐흐르는 위대한 힘이 몸에 깃든다.
이자르도 그의 마나를 느꼈는지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서, 설마!”
“벌레는 태워죽여야지.”
[마법, ‘흑염’을 소환합니다.]방어할 틈도 없이 황제의 몸에 검은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순식간에 번져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짐없이 뒤덮는다.
“끄아아아아아악!”
무려 천년의 분노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이다.
황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소리를 지르는 뿐이었다.
“사, 살려줘! 살려…줘!”
무엇이든 태워버린다는 흑염은 놈의 추악함도 태울 수 있을까.
실제로 흑염의 위력을 보니 태운다는 표현보단 잡아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땅바닥을 구르고 악을 지르며 발광해도 흑염은 놈을 차근차근 먹어치웠다.
“…….”
어느덧, 이자르는 사라져 있었다.
흑염은 머리카락 한 올부터 마기의 냄새까지 모두 집어삼켰다.
애초에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정말 한 줌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코끝을 자극하던 역겨운 냄새 대신 어딘가에서부터 은은하게 기분 좋은 향기가 불어왔다.
난 그 향기가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그리고 지금 향기의 주인이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이제 끝입니까?”
-그래. 고생했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잠들 수 있겠구나.
“정말 끝이라고요?”
-원래 마지막은 늘 아쉽고 허무한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지.
“아름답지 않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기분이 엿 같다고요.”
-우리가 너에게 큰 빚을 졌구나. 모두가 제드 아라한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너의 세계로 돌아가라.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날 이 세계로 초대한 존재가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
다시 대화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걸까.
쥐어짜내듯 간신히 꺼낸 말은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모니터 속에나 존재하는 데이터 조각일 뿐이라고요.”
투정이었다.
그의 말처럼 마지막은 늘 아쉽고 허무하기에.
데이터 조각일 뿐이니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이별은 이별이 아니지 않을까.
-너에겐 그럴지 모르나 이곳은 엄연히 우리의 현실이다.
“아니요. 여긴 그냥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이라고요.”
-너의 세계는 무엇이 다른가? 누군가가 만든 세계가 아니라 확신하는가?
“그야 당연히…!”
-그런 세계도 있는 것이다. 어느 세계는 검과 마법이, 또 어느 세계는 점과 선으로, 또 어떤 세계는 문자와 공백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지.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에겐 그 세계가 곧 현실이다.
난 그의 말에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내가 겪은 일들은 분명 실제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짓는 것보단, 이 세계에서 내 역할이 끝났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 영혼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시간이 없구나.
“그럼…?”
-너의 세계로 돌아가겠는가?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먼저 말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수백 번 고민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방공호는 이미 무너졌고 다시 만들 생각도 없고, 그곳에 숨고 싶지도 않으니까.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머리가 살짝 어지럽더니 곧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촉감과 익숙한 가죽 냄새.
미세하게 울리는 최고사양 컴퓨터의 진동과 손끝에 걸리는 마우스의 질감.
<그동안 ‘라스트 세이버’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렷하게 보이는 모니터 속의 글자.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나의 세계가 그 끝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문자와 공백으로 이루어진 어떤 세계도.
<그동안 ‘주먹 쓰는 천재 마법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