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122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122화
“재밌군.”
한창 작업에 열중하는 미하일을 보며 루트는 만족스레 웃었다.
미하일의 주변에는 갖가지 종류의 문자가 허공에서 떠다니며, 그를 빼곡하게 감싸고 있었다.
사라지면 새로운 문자가 생겨난다. 해석한 문자의 자리를 빠르게 새로운 것이 대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해해진다.
[뭐가 재밌다는 건데.]“저 녀석 말이다. 이제 스물둘이라고 했었나? 젊단 말이지. 가뜩이나 짧은 인간의 수명 내에서도 꽤나 젊은 편이야.”
[그렇지.]“그런 녀석이 7서클.”
루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난 인간을 과소평가하지 않아.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건 달라. 철저하게 규격 외라고. 단순히 7서클이기만 했다면 괴물이다 싶었겠지만…….”
“신물을 저렇게 한 번에 해석에 성공한 건 경우가 다르지.”
20대에 7서클?
분명 불합리하며 상식적이지 않은 성장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인간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지 않으며, 서클의 경지는 그 가능성의 범주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건 달라.’
신물은 그 범주에서 아득하게 벗어난 힘이다.
쉽게 말하자면, 신물은 마법을 넘어선 기적에 도달한 힘이었다.
마법은 구조를 해명한다.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가.
어떤 원리로 현상이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지.
애초에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마법이다.
반면, 기적은 다르다.
기적은 현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마법은 현상을 해석하는 입장이지만, 기적은 현상 그 자체.
해명하려는 마법보다 필연적으로 한참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물이.
기적이, 지금 저 인간의 손에서 손쉽게 해석되고 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하나밖에는 없다.
‘……이미 영혼의 격이 인간을 초월한 경우지.’
마법을 단순히 마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자의 입장에서 다루는 것.
그렇다면 저리 여유로운 것도 말이 된다.
메이릴은 ‘마법’의 입장에서 신물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저 인간은 그저 더 높은 위치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서 있는 지점이 다르다.
그런 루트의 생각을 읽은 듯, 세트가 말했다.
[원래 용사는 평범하지 않아.]“하, 나도 용사는 충분히 많이 봤어. 저게 용사 수준이라면 내가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어.”
루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건 이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어. 저 용사라는 놈이 자각을 하고 있건, 아니건 말이야.”
[…….]“애초에.”
그때, 루트의 시선이 세트 쪽으로 향했다.
시선이 꽤 차가웠다.
“저놈이 평범한 인간 수준이었다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아…….]그 말에 세트가 움찔거렸다.
[그, 그건…….]“그게 네 형벌이었잖아.”
세트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런 과거가 있었다.
아니, 단순히 과거라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사라져야 했다.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될 수 있다면 네 손으로 직접 속죄를 하고 싶다. 뭐, 그런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하는 거냐.”
[……조금 달라.]루트는 대답 대신 조용히 세트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뭐, 그렇겠지.”
그는 화를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세트의 말을 긍정했다.
“어차피 그날의 일도 죗값이라고 하지만 휘말린 거잖냐, 결국.”
[아니, 나는…….]“그만.”
뭐라 더 말하려는 그녀를 루트가 가로막았다.
“여기까지 하자고. 여기서 더 해 봤자, 어차피 좋은 말이 나올 리도 없으니까.”
[……응.]“오랜 시간이 지났어. 그때는 꽤 열이 차올랐지만, 시간이 지나니 좀 진정이 되더군. 그분께서 그런 결과를 몰랐을 것 같지도 않고. 혹시 모르지. 어쩌면…….”
시선이 미하일에게서 멈췄다.
“그때 그 일조차, 그분의 안배였을지도 모를 일이니.”
[……날 더 탓해도 되는데.]“이제 와서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하…….]세트는 그런 루트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그래.
더 말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 * *
키잇!
마법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창조자의 특성을 닮게 된다.
같은 마법이라도 누군가의 것은 재빠르고, 또 누군가의 것은 파괴적이기 마련이니.
메이릴의 경우도 마찬가지.
“하, 정말 노골적이군.”
탐욕스런 검은 양.
난 메이릴의 진명을 알고 있다.
‘꼭두각시’, ‘메이릴’, ‘인형사’.
이 악마 군주를 칭하는 말들은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지만, 그중 메이릴의 영혼 그 자체인 진명은 단 하나뿐.
‘물론 그 사실은 메이릴 쪽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을 터.’
그러니 섣불리 내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지.
바알제붑이 그러했듯, 자신 역시 진명이 간파당해 추도문에 의해 당하지 않을까 하고.
허공에 떠 있는 수많은 문자들.
‘재밌군.’
그것들 중, 유독 검게 일렁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미 해석된 글자들.
본래라면, 내게도 이 모든 것들은 해명과 해석을 거쳐야 판별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 터다.
당연히 진즉에 먼저 와서 미궁의 길을 뚫고 있었을 메이릴을 따라가지 못했을 터.
실제로 내가 확인했을 때, 이미 미궁에서 적지 않은 면적이 해명된 상태였기도 했고.
미궁은 복잡하다.
초 단위로 구조가 바뀌며, 많은 것들이 전과는 달라진다.
따라서 여기서 미궁을 해석한다는 것은 길을 찾는 게 아니다.
그 초 단위로 바뀌는 구조 속에서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변하는 공간을 고정하고 그 공간만큼은 변화하지 않게 만든다.
내가 보기 전까지, 메이릴은 절반 정도를 성공한 상태였다.
‘절반이라. 이름도 찾지 못한 걸 생각하면 제법 분투한 셈이지.’
하지만 이거 어쩌나.
내가 손을 댄 이상 이제 그것도 힘들 텐데.
메이릴에게는 내가 거튼에 올 것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그것에 맞게 짜둔 계획이 있겠지만.
그건 아무 쓸모도 없어질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루트와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의미하니.
내 눈에는 모든 게 보였다.
이 미궁의 지도.
메이릴이 어떤 식으로 길을 뚫고, 또 어떤 식으로 그 길을 고정시키는지…… 그 모든 것들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 이쪽인가.”
메이릴이 뚫으려는 길이 내 눈앞에서 환하게 빛났다.
그녀 특유의 기운은 감출 수 없다.
메이릴이 뚫은 길.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재밌단 말이지.’
9서클에 도달해 인류 마법의 정점에 올랐다 자신했던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우스운 건, 지금 내가 보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능이라 해도 좋으리라.
저절로 몸이 반응하고, 많은 것들을 눈에 담는다. 그런 것들이 지나치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반신.
처음 헤카우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직접적으로 실감된 것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 것 같단 말이지.’
그 반신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고, 또 그것을 이용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난 내 눈앞의 지도에 보이는 메이릴의 길을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한 번에 무너뜨리지 않는다.
지나친 격차를 보이면 상대 쪽은 쉽게 포기할 테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메이릴은 아직 이쪽에 신경을 더 쓸 필요가 있었다.
곧 내가 자신을 갖고 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만…….
‘그 때쯤에는 전부 끝나 있을 터.’
그걸 위해, 미리 여기에 오기 전 그 둘에게 언질을 뒀으니.
“어디 알아서 잘들 해 보라고.”
난 한창 머리를 싸매고, 상황을 해결하려 하고 있을 둘을 떠올리며 웃었다.
* * *
“어르신, 제가 최근에 느낀 건데 말이죠. 미하일, 그 새끼는 분명 사이코패스가 틀림없습니다.”
리안이 이를 박박 갈며 말했다.
“그놈이 이 상황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분명, 알아서 해결하라고 던지고 간 거죠! 아주 반사회적인 새끼라니까요.”
“허어, 리안 공자,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도련님께서 사이코패스라니요.”
아차, 너무 심했나?
리안은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집사를 보았다.
아무리 그라도, 제 도련님을 욕하는 건…….
“사이코패스에게 사과하세요!”
“…….”
냉엄한 눈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집사를 보며, 리안은 입을 닫았다.
“그 사람들도, 그, 감정이 좀 희미하다 뿐이지, 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에요! 도련님하고 비교할 예시가 못됩니다, 그건!”
“그, 그렇습니까……?”
“예, 그런 겁니다!”
집사는 그렇게 말하며 한동안 미하일에 대한 뒷담화를 참으로 소상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리안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름다운 뒷담화였다.
그렇게 좀 분을 푼 후, 둘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쨌건, 보통 일이 아닌데요.”
거튼 자체에 거대한 암시가 퍼져 있다는 사실은 파악했다.
“그렇지요. 이 정도의 암시라면 수틀릴 경우, 아예 거튼 자체를 인질로 삼는 방법도 있을 테니.”
예를 들자면.
거튼에서 암시에 걸린 인원에게 전부 자살을 명한다거나.
메이릴은 미하일을 흠집 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이다.
악마에게 있어서 생명이란 길거리의 돌멩이만도 못한 것.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으리라.
“다만, 대악마가 여기까지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라, 저희를 인지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 녀석 때문이군요.”
“예, 아마 의도적으로 도련님은 자신에 대한 걸 보였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한순간에 시선이 쏠린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 힘드니…….”
집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건 그 도련님이 벌어다 준 기회다.
어떻게든 유용하게 써먹을 필요가 있었다.
‘거튼 전역이 암시에 걸린 상태. 하지만…… 처음 인상만큼 절망적이지는 않군.’
의외로 할 만하다.
하긴 그러니까 그 도련님이 굳이 이 거튼에 들어온 거겠지만.
“하, 그냥 싹 다 악마 모가지 자르고 다니면 안 되는 건지.”
– 자르고 다니면 되겠네.
“……?!”
그때, 갑작스레 어깨 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리안이 화들짝 놀랐다.
슬쩍 보니, 자그마한 크기의 요정이 앉아 있었다.
“뭐야, 시발.”
– 뭐긴 뭐야. 내가 원격으로 일 시키고 있는 요정이지.
미하일의 일부, 요정 더지.
– 미리 슬쩍 넣어 뒀거든.
“흠.”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이 말했다.
– 참고로 뒷담화도 다 들었다.
아, 좆됐네.
리안은 그렇게 잠깐 생각하고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뭐, 그냥 대가리 자르고 다니라고?”
– 당연하지만, 생각 없이 자르는 건 안 되고.
미하일이 집사 쪽을 보았다.
– 집사, 원래 어스름은 여러 마법 중에서도 암습 쪽에 꽤 특화되어 있잖아?
“흠, 그건 그렇지요.”
– 그럼 여기서 문제. 아무리 대악마라도, 설마 제 힘도 못 찾은 반푼이의 정신 장악이 완벽할까?
“호오.”
집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정신 장악조차 반쪽이다, 그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 완벽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완벽하게 보이게끔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그 말에 집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템(Totem)이군요.”
주술에 사용되는 매개체.
거튼은 도시 특성상 그러한 토템이 수도 없이 많았다.
만약 메이릴이 본래 거튼에 있던 그것들을 이용했다고 한다면…….
– 집사라면 얼마든지 토템의 위치 정도야 특정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전원 정신이 장악된 상태에서 토템을 부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거튼 곳곳에는 메이릴의 권속들이 숨어 있다.
이미 자신들에 대한 것도 인지하고 있을 터.
– 하하, 집사. 여기가 어디?
그런 집사의 말이 우습다는 듯 미하일이 말했다.
“그야 미궁 도시…… 아.”
그제야 깨달았다.
길잡이가 없이는 제대로 길을 찾을 수도 없는 미궁이 이곳.
그 말은 길만 알 수 있다면.
“……몰래 들어갔다 나오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 그렇지.
미하일이 웃었다.
때마침, 여기 있는 이 요정은 미하일의 일부로서 길잡이 역할이 가능한 존재.
확실히 요정이 있다면 토템을 부수고, 거튼의 정신 장악을 푸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미하일이 말했다.
– 그럼 시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