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05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306화
“괜찮습니까, 아리안델?”
정말 생명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폐허 한가운데, 헝클어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은 한 남자가 물었다.
지옥이었다.
그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지옥.
인류에게 명백한 악의를 지닌 신이 강림했으며, 그의 뜻에 따라 수많은 악마들이 세계에 쏟아졌다.
어딜 가든 악마가 보인다.
피와 살을 탐하고, 게걸스레 시체를 찢는 마물들도 보였다.
죽여도, 또 죽여도 그 숫자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날 뿐.
결국, 이 끔찍한 전쟁의 리더 격인 원정대, 〈아르고〉조차 미래를 비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게…….”
그녀는 성녀였다.
눈앞의 남자, 미하일과 만난 시점에서는 이미 정신적으로 완성되어 있었으며, 오히려 그를 이끌어 줬던 게 그녀다.
하지만 얄궂게도, 거듭되는 비극과 참상 속에서 더 강해진 것은 미하일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살할 것만 같았던 꼴의 마법사는 꿋꿋이 견디고 성장하여 지금은 원정대의 두뇌로서 우뚝 섰다.
모두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 나가며,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절망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어떠한가.
그녀는 피에 물든 제 손을 보았다.
그 아래에는, 결국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소년이 있었다.
……아니, 아니다.
피 같은 건 묻어 있지 않다.
그 소년을 구하지 못한 것도, 벌써 며칠 전의 일이다.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고, 전부, 그녀의 손을 떠난 것이다.
이런 기억에 붙들려 있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린 나이였어요, 미하일.”
“그랬지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한다는 듯,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였습니다. 죽음보다, 당장 내일 어떻게 놀지를 고민해야 할 아이였어요.”
“……익숙해졌을 텐데요. 정말, 이미 질리도록 봤으니까. 이런 건 넘어가야 하는데.”
“익숙해진다…….”
그녀의 말에 미하일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슬픈 일이지요.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은.”
“…….”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리 말해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이렇게 괴로워하시지도 않을 테니.”
그 말에 아리안델의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미하일의 말대로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완벽한 해결책은 못 된다.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녀는 계속해서 봐야 한다.
그렇게 된 세상이다.
그런데 그때.
“그러니 계속 제게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뭐, 듣겠습니다.”
“미하일도, 힘들잖아요. 저만 일방적으로 푸념하는 건, 결국 당신에게 폐가 될 텐데.”
“아아, 전 괜찮습니다. 아니…….”
미하일이 웃었다.
어딘가 덧없이,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의지를 품은 채.
“괜찮게, 됐습니다.”
* * *
“……아.”
아리안델은 눈을 떴다.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본 채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수많은 기억들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참혹했고, 안타까웠다.
어쩌면 악몽에 가까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기억…….
‘내 망상?’
아니, 그럴 리는 없지.
이게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때의 미하일과 지금의 미하일은 다르다.
어느 쪽이 더 보기 좋은가 하면…….
아무래도, 지금이긴 하리라.
그때의 미하일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으니까.
일행의 고통과 절망마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며 감내하고 있었다.
용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용사도 아닌 주제에 그 몫까지 떠맡아야 했었으니…….
‘아.’
문득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어떤 공간에 있는지를.
위대한 솔로몬.
발푸르기스의 시조이자 마신의 편린이기도 하며, 옛 신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 간 자.
“제게…… 뭘, 원하시나요?”
아리안델은 조심스레 허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솔로몬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받아들이길 원했다.」
‘젊은 시절’의 솔로몬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야 네 안의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을 뿐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네가 이것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알겠던가?」
“그 말씀은, 역시 제가 떠올린 이 기억들은…….”
「그래, 진짜겠지. 나 역시도 제법 흥미를 느꼈으니.」
그녀는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온갖 절망을 뚫고, 어떻게든 마신에게 도달했던 원정대.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으로 이어졌다.
‘아, 그때 지크프리트, 그걸 좀 확실하게 팼어야 했나.’
여러 번 만났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때리지를 못했네.
그냥 대가리를 확…….
“……아, 좋은 생각.”
그래, 좋은 생각, 좋은 생각…….
모든 걸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건 전혀 성녀답지 않은 일이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며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지크프리트가 맹렬한 삽질 끝에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뒤, 그녀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희생하여 시간을 벌 것을 결의했다.
지하드와 수왕, 무휼이 처절하게 맞서며 최후를 맞이했고, 그녀 역시 스스로를 희생했지.
아마, 현재 미하일의 변화는 그녀를 포함한 동료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번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
그제야, 떠올랐다.
여태까지 열리지 않은 채, 영혼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날 따르는 아이에게……
어쩐지 처연했던 미소.
그녀가 모시는 현명한 신이 그리 말하며 손을 뻗었던 기억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소통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 속에서, 인류를 지키던 신이 아무것도 안 했던 건 아니다.
얄궂게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제 아이에게 닿게 된 것이다.
가능성을 남겼고, 그녀에게 ‘떠올릴’ 자격을 남겼다.
「조금, 알게 됐나?」
“예, 덕분에.”
머리가 맑아진 것만 같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솔로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어찌 됐나요?”
「저마다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네가 좀 빠르지만, 머지않아 다른 이들도 ‘마땅한 성과’를 얻고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모두가 모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는 뜻이다.
바깥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음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하일은 움직이고 있겠지.
열심히,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터.
그렇다면 자신 또한 도와야 한다.
다행히, ‘기억’을 되찾은 시점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옛 동료들과 재회하고, 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어.’
미하일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모두가 모이기 전까지, 미하일의 눈이 차마 닿지 못한 곳을 살펴야 한다.
우선은.
「나갈 생각인가?」
“예, 나중에 다른 분들이 나오시면 전해 주세요.”
그녀는 확실한 의지를 담아 그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어렴풋이 남아 있던 기억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놀라울 정도로 모든 게 명확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중에서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얼 할 계획인가. 미리 내게 말한다면, 나중에 후손이 왔을 때 전하도록 하겠네만.」
“잠시, 신 좀 뵙고 올게요. 그 과정에서 옛 인연도 좀 만나고.”
아리안델은 웃으며 덧붙였다.
“미하일에게는, 제가 곧 직접 찾아갈 거라고 전해 주세요.”
자신을 찾아올 필요는 없노라고. 알아서, 그의 도움이 되는 일을 처리한 후 가겠노라고.
강한 결의와 함께, 성녀가 움직였다.
* * *
사도들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의 사정은 알게 되었다.
물론 사도라 해서 아사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건 도움은 됐다고 할까.
솔로몬과의 갈등.
세트와 어떤 식으로 틀어졌으며, 또 어떤 과정으로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게 됐는지…….
뭐,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어쨌건, 이제 뭐 가릴 상황은 아니게 됐다. 우리 때의 이야기는 일단은 뭐, 이 정도로 하고.”
“그래.”
“현재, 최우선 과제는 네가 모든 신물을 모으는 거지. 남은 건 넷. 위치는 전부 우리가 알고 있으며, 최대한 지원할 생각이다.”
“괜찮겠어?”
대가를 감당한다고는 했어도, 일단 아사르가 건 제약이 아닌가.
어긴다면, 결코 그 대가가 약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괜찮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원래라면 말이야.”
토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네가 좀 많이 규격 외거든. 대가가 없다고는 못하지만, 네 존재 자체가 그 ‘대가’를 최소화시키고 있다.”
“……그 정도라고?”
“넌 스스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모르는군. 하긴, 그러니 이러는 거겠지만.”
토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시간을 거스르고,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넌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다. 피조물로서, 한없이 신에 가까워졌다는 말이지.”
“흐음…….”
체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나 스스로가 온전히 인간을 초월해 다른 존재가 됐다는 ‘실감’이 드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군.’
나 스스로를 여전히 ‘인간’이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여전히 신격이건, 9서클의 경지건 간에 마신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미적지근한 내 반응조차 예상했다는 듯 토트가 말을 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이제 대가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없지는 않지만, 미약한 수준이니 우리가 널 지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냐.”
“그러니, 이제 네가 나머지 넷을 다 모아 원탁을 완성하고, 그분의 안배를 완벽하게 이어받는 게 중요해졌다. 지금부터는 그것만 생각하도록 해.”
말은 쉽다.
문제는 마신의 개입으로 인해, 지금 곳곳에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과연 현재의 인류가 나 없이 ‘마신’이라는 존재에게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많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군. 온전히 무덤에만 신경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걸 다 하려면…….”
그런 걱정을 하던 때.
“이 미묘한 데서 미련한 놈아.”
혀를 끌끌 차며, 토트가 날 쳐다봤다.
사도 중 어찌 보면, 가장 먼저 내 ‘회귀’를 공유했던 존재.
그 녀석이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닌 이유가 뭐냐. 애초에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다면, 그냥 네가 먼저 10서클 찍고 마신과 영혼의 대결을 벌였겠지. 그런데 아니잖아.”
“그, 건…….”
“여태까지 인류에게 자립심을 준다는 생각만으로 그렇게 달려왔으면서, 정작 중요할 때 네가 구한 그 인류를 믿지 않는다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그거야말로 모순이 아니냐고.
토트가 말했다.
[미하일,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세트 또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도, 네 덕에 기회를 얻은 다른 인간들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한 대,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녀석의 말대로다.
난 마신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인재를 모아 그에 대항한다는 생각을 한 주제에…….
‘믿지 않은 건가.’
편집증처럼 모든 상황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 생각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애초에 그게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유능한 이들을 어떻게든 살리고 곪은 부위를 잘라 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순간에 와서 내가 구한 이들을 믿지 않다니.
웃기지도 않는 오만이다.
“……그렇군.”
이해했다.
난 훈훈한 미소와 함께 날 쳐다보는 사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미하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너희들을 미친 듯이 굴려도 상관없다는 뜻이지?”
응, 나 믿어.
내가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도 너희들이 들어 줄 걸 믿어.
뭐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뭐든 시켜도 된다.
“…….”
멋진 말을 했다며, 자랑스레 웃던 토트의 입가가 슬쩍 내려갔다.
토트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도들도.
“아니, 야.”
“왜.”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인류를 믿고, 좀 네가 용사답게…….”
“그렇다면 지금처럼 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 그게 분명 아닌데, 뭔가 결론이 이상하잖아! 왜 그따위로 가냐고!”
“옳소!”
토트의 말에 아누비스가 한마디 보탰다.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나, 미하일. 한번 얻은 깨달음은 포기하지 않는다.
타협을 모르는 남자. 그게 바로 나.
“그래, 투자를 했는데 뽑아 먹어야지, 멍청하게 나 혼자 다 하려고 하고 있었네. 이런 실책을.”
“그만 생각해! 야, 시발! 그냥 너 혼자 다 해! 다 하라고!”
“응, 싫어. 같이 할 거야.”
하늘에 맹세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내 말에 토트가 두렵다는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내, 내가 뭘 깨운 거지?”
뭐기는.
채굴 업체 사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