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tel life of the returning champion RAW novel - Chapter 95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94화
디지는 메시지를 읽으며 팔짱을 꼈다.
‘진행이 이렇게 되는구나.’
남궁천과 대화를 나누는데 시스템 메시지가 온 걸 보면 능력이 부족해서 들킨 건 아니고 시스템적으로 강제되는 루트 진행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당장 구하러 가는 게 맞는 선택이지만.
‘시간 여유가 없진 않을 거야. 미행조엔 미카엘이 있으니까.’
지구로 귀환한 뒤 만난 이들 중 유일하게 인정하는 천재, 미카엘.
디지는 미카엘을 믿었다.
그러니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다른 변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남궁천이었다.
“남궁천. 네 아버지가 내 동료들어찌 한 건지 알고 있나?”
“모르오. 난 본가와 소통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으니까. 다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어떤 방식으로든 죽여서 입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군.
“남궁천. 동료들을 구하는 걸 도와줄 수 있나?”
“……미안하오. 아무리 본가와 소원해 졌다지만, 가문을 배신할 수는 없소이다.”
미안해하면서도 확고한 태도.
설득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트리거가 필요한 모양이다.
‘조건을 찾아 정해진 공략법대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는 와 비타에서 수많은 돌발 상황을 겪었고 적들의 음모를 분쇄한 경험이 있다.
경험상, 누군가의 큰 그림대로 움직여서는 최선을 결과를 낼 수 없다.
설령 그것이 게임 시나리오이더라도.
[님들. 동방서토의 NPC들은 시뮬레이팅 기술로 학습된 AI라고 했죠?]-ㅇㅇㅇㅇ.
-적어도 이 게임 안에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임.
-근데 갑자기 왜?
게임 속 세계에서 AI가 수십 년을 살아가며 스킬을 생성하고 문화를 만드는 시뮬레이팅 기술.
그렇다면 지금 그가 생각하는 방법이 먹힐지도 몰랐다.
‘아무리 시스템적 제한 안에 있다고 해도…… 가능성은 있어.’
결국 문제는 남씨도당 일가 중에서 하늘의 힘을 얻은 사람이 없단 점이다.
만약. 남궁천이 하늘의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면?
하늘의 힘을 검에 담은 이가 나온다면 남씨도당과 다국인의 결탁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디지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천을 바라봤다.
‘문제는 가능할지 여부인데…… 밑져야 본전이지.’
이건 어차피 게임이다.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리트라이 하면 그만이란 뜻.
“님들. 영약 다섯 개를 한 번에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무협지 안 읽어봤어, 형?
-진기 양이 폭증한 걸 못 견디면 그대로 죽는 거임.
“그럼 세 개는?”
-먹으면 시스템 메시지가 뜰거임.
-명상으로 다스리거나 스킬 펼쳐서 소화하라고 할걸?
‘오케이. 기본 설정은 내가 아는 거랑 비슷하구나.’
디지가 고개를 돌렸다.
“남궁천.”
“듣고 있소.”
우승 상품으로 받은 영약 다섯 개 중 두 개를 자신이 먹고 세 개를 남궁천에게 건넸다.
“먹어.”
“……무슨 생각이시오?”
“결국 네가 부족해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남씨도당의 대공자인 네가 검에 하늘을 담지 못해서 남씨도당이 다국인과 손을 잡은 거니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분노를 토해내려던 남궁천이 이내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당장 공자를 베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진실이구려. 맞소.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그러니까, 먹어.”
“……괜찮소이다. 창천의 검은 진기가 많다고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구태여 말하기가 귀찮아서 손을 내밀었다.
남궁천이 피하려 들었지만 디지의 손은 뱀처럼 움직이며 정확히 남궁천의 입에 영약을 밀어 넣었다.
“무, 무슨 짓이오!”
“됐고, 진기 소화시켜야지? 창천무애검법을 펼쳐라.”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이미 영약을 먹은 이상,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소화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남궁천이 주루 뒤쪽의 공터로 달려가더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강직한 힘이 담긴 채 휘둘러지는 대검.
디지는 빛무리에 휩싸인 채 검무를 추는 남궁천의 진기 흐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늘을 담는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동방서토라는 세계의 스킬이 전부 시뮬레이팅 학습 기술에 의해 AI가 직접 개발한 거라면.
대충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남씨도당의 스킬은 패와 중을 중시하지. 거기에 하늘이면.’
챙!
홀로 추는 검무에, 또 다른 검이 섞여든다.
남궁천은 반응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치솟는 진기에 휘말려 무아지경에 빠졌기 때문이리라.
스르르릉! 스르르릉!
검과 검이 엮이며 부드러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조금씩, 남궁천의 집중이 깨어지지 않도록 미세하게.
디지는 남궁천의 검로를 수정했다.
창천. 맑고 깨끗하여 드높고 푸른 하늘.
그러한 의미를 검으로 해석하면 어떠한 형태가 될까.
하늘은 높다. 또한,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리누른다.
즉.
‘면(面)으로 구현하는 패(覇)와 중(重)의 묘리지.’
위에서 내려치는 검격은 결국 선이다.
그러한 선을 면으로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와 비타와 마찬가지로 진기라는 이능의 자원이 있다.
스르르릉…… 크르르르릉!
가볍던 마찰음이 점점 커진다. 어느덧 우레 소리가 되어 사방을 진동시킨다.
남궁천의 일검에 단순한 검격을 떠나 사방을 압도하는 기세가 실리기 시작했다.
디지는 하늘을 겨누며 땅으로 내려쳐 지는 검격을 부드럽게 받아냈다.
‘아직 부족해.’
전력으로 진기를 끌어올려 검에 담는다.
그를 통해 구현하는 건.
검격의 무거움. 기세의 압박감.
“압도적인 패와 장엄한 중이다, 남궁천.”
그 상태로 남궁천의 검에 검의를 부딪힌다.
남궁천에게 이리하면 된다고 알려주듯이, 검을 섞고 기세를 화합시켰다.
“창천의 높음에 감탄하되, 모든 곳에서 대지를 내리누르는 면면부절(綿綿不絕)의 묘리를 간과하지 마. 모든 걸 너의 검으로 취해. 의(意)를 담는 거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남궁천의 검무가 멎고, 이내 남궁천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공자…… 이게, 대체…….”
디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하늘을 담은 걸 축하한다, 남궁천. 그럼 이제 네 소임을 다하도록 해.”
[NPC 남궁천이 천제지검(天帝之劍)을 습득했습니다!] [히든 피스 – 하늘의 가르침 – 발동!] [NPC를 학습시키는 놀라운 업적을 세웠습니다!] [영웅의 씨앗 루트가 수정됩니다. 이후 이어질 예정이었던 루트의 상당 부분이 삭제됩니다.] [단축된 루트를 감안하여 영웅의 씨앗 루트의 진엔딩이 수정됩니다.]-ㄷㄷㄷㄷ이거 뭐냐?
-아무리 시뮬레이팅 기술이라지만, NPC한테 깨달음을 선사하는 게 가능한 거였어?
-이번 건 진짜 개쩌는데? 이런 건 본 적도 없음ㄷㄷㄷㄷㄷ
-디지 진짜 미쳤네……
밑져야 본전인 도박에서 성공했고, 훌륭하게 변수를 만들었다.
* * *
[흡혈마라의 마법진] [마법진 내부에서 사망한 모든 생명의 진원지기를 대법의 중심체에게 부여합니다.] [마법진 내부의 생명체는 외부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사망할 시 마법진이 최종 형태로 변화합니다.]기사배와 미카엘은 눈앞의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삼이 오빠! 안 들킬 거라며! 안 들킬 거라며!”
“삼이 형. 이런 식이면 고인물로서의 권위를 존중해줄 수가 없습니다.”
왕삼이 머쓱하게 대꾸했다.
“아니…… 딱 보면 알지 않소, 스토리 진행을 위해 시스템적으로 들키는 구조였던 모양이오.”
“그걸 변명이라고 해?”
붉은 기류를 발하는 거대한 마법진.
어느새 제2사도는 사라져 있었고 그들이 들어온 출구 또한 막혀 있었다.
뿐만 아니다.
“크르르르르…….”
사방에 가득한 철장에서 빠져나오는 동물들.
눈이 붉게 물든 게, 척 보기에도 힘을 합쳐서 마법진을 부술 상태는 아니었다.
[광기에 물든 영물들을 상대로 생존하며 동료의 구출을 기다리십시오.]“크아아아앙!”
포효하며 달려들던 늑대가 미간에 화살이 꽂힌 채 쓰러졌다.
어느새 인근의 암벽 위로 올라간 미카엘이 왕삼과 기사배를 불렀다.
“보아하니 타임 리미트 걸린 생존 미션인 거 같은데, 둘 다 이리로 오세요. 여기서 상대하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아요.”
암벽 위에 자리한 채 접근하는 동물들을 죽였다.
미카엘이 최대한 쏘아 죽이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적은 주술의 지원을 받는 기사배가 해치우는 식이었다.
워낙 수가 많아 위험에 처할 때도 있었지만.
[스킬: 적궁백시(赤弓白矢)] [붉은 활이 하얀 살을 쏘아내노라.] [백귀의 진기 화살로 형상화하여 쏘아냅니다. 급소에 명중 시 적이 즉사합니다.]그때마다 미카엘이 스킬을 쓰며 위기를 넘겼다.
“삼이 형, 자체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으음, 아마 없을 거요. 보통 이런 마법진은 외부에서 핵심이 되는 코어를 부숴야 작동을 멈춘다오.”
“그럼 디지랑 딱빵 형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미카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디지가…… 하다못해 딱빵 형만 있었어도 이렇게 몰리진 않았을 텐데.’
궁수, 암살자, 주술자는 다수의 적을 상대로 버티기엔 좋지 않은 조합이다.
전열을 맡을 사람이 있다면 미카엘 자신도 지금보다 더 활약할 수 있고 말이다.
“대회조가 구하러 올 때까지 한번 버텨보죠.”
미카엘은 진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며 화살을 날렸다.
백여 마리가 넘는 적.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단 뜻이다.
최대한 오래 버티려면 자원 활용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했다.
핑! 핑! 핑! 핑! 핑!
정신을 집중하며 활시위를 놓는다.
미카엘의 화살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동물들의 급소에 꽂혔다.
“역시 카엘 군은 최고의 원딜러구려. 정확도가 소름 돋을 정도군.”
왕삼이 미카엘을 보며 혀를 내두르자 기사배가 툴툴거렸다.
“쳇, 나도 총만 있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슬슬 다음 대처법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미카엘의 맹활약으로 당장은 안정적인 전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미카엘에겐 궁수의 고질적인 단점이 있었으니까.
“삼이 형, 주술을 전부 저한테 걸어주세요.”
“왜 그러시오?”
“슬슬 화살이 다 떨어져 가요. 작전을 바꿔야겠어요.”
“큰일이군. 어찌할 생각이오?”
“형이랑 누나는 암벽에서 버티고 계세요. 저 혼자 내려가서 화살을 수거하면서 전투를 해볼게요.”
“으음, 알겠소. 조심하시오. 동방서토는 죽으면 그대로 끝이니.”
이동 속도가 빨라지는 가보보쾌와 진기 소모가 줄어드는 기화수분의 주술이 몸에 임하는 걸 느끼며.
미카엘은 암벽 아래로 도약했다.
핑! 핑! 핑! 핑! 핑!
착지 와중에 쏘아진 다섯 대의 화살. 발이 지면에 닿음과 동시에 인근의 시체에서 화살을 빼어 들고 활시위를 튕겼다.
핑!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달려들던 늑대가 쓰러지고, 미카엘이 몸을 굴렸다.
“크아아앙!”
그렇게 덩치 큰 호랑이의 앞발을 피한 미카엘이 호랑이의 눈알에 화살을 찔러넣었다.
마무리에 턴을 쓰는 바람에 이어지는 멧돼지의 돌격은 피할 수 없었지만.
‘메이게츠의 제자가 되어서 다행이야.’
미카엘의 몸이 둘로 분열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피피피피피피핑!
두 배로 빨라진 속사. 진기 소모량이 많아 분신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지만, 당장 달려드는 동물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도 남은 적은 막막할 정도로 많았다.
‘디지라면 이 상황에서 웃었겠지?’
문득, 미카엘은 최근 들어 가장 신경 쓰이는 상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해보자. 다 해치우고, 나중에 디지한테 다시보기 보여주면서 자랑해야지.’
핑!
화살을 쏜다. 적이 쓰러진다.
핑!
화살을 뽑고 휘두른다. 적의 피가 터져 나온다.
미카엘은 정신없이 화살을 줍고, 또 쏘아냈다.
시간 감각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온 신경을 집중한 채로.
[고도로 정신을 집중했을 때의 뇌파를 감지합니다.] [히든 피스 – 깨달음의 순간 – 발동.] [원하는 스킬의 경지를 1성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아.”
그제서야 미카엘이 정신을 차렸다.
히든 피스. 거액의 미션이 걸렸음에도 그동안 디지만이 발동시켜서 내심 자존심이 상하게 만들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마법진 내부의 모든 적대 생명체를 사살했습니다.] [히든 피스 – 일당백 – 발동.] [적대적 존재의 말살을 확인. 마법진에 내재되어 있던 제한 시간이 사라집니다.]-캬, 히든 피스ㅋㅋㅋㅋ
-역시 우리 카엘이라니까.
-한 번 보여줄 줄 알았지. 믿고 있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