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38
EP.238
#2-24 파멸의 발자국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합니다(5)
‘응……?’
탈리는 등골을 훑는 오싹한 한기에 한순간 가는 어깨를 떨었다.
문 너머의 수컷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히죽이죽 웃고 있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사람 무시해…?!”
곧바로 잠금장치에 손을 댄다.
어차피 안에 있는 수컷은 팔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고, 무기도 없다.
안에 들어가서 그 몸에 직접 교육해줘야지.
똥개라는 자신의 입장을 알게 해주겠다!
“어…?”
그러나.
잠금장치를 확인한 탈리는 다음 순간 벙찐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잠금을 풀고 자시고 하기 전에, 애초에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무심코 손잡이를 붙잡고 앞으로 밀었더니, 반투명한 문은 손쉽게 열렸다.
‘열려있다?’
머리가 한순간 복잡해진다.
――왜 감옥의 문이 열려있지?
――애초에 이 수컷들은 갇혀있던게 아닌가?
――왜 저렇게 여유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거지?
――아니, 분명 앞에 서있던 보초는 잠금이 걸려있다고 했는데.
――토와는 이곳에서 뭘한거지?
한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푹, 하고.
목덜미에 무언가가 꽂혔다.
“아… 크…!”
“잘 오셨습니다, 소대장님. 안 그래도 직접 찾아뵈려 했거든요.”
“토와….”
등 뒤에 바싹 달라붙은 채, 탈리의 앞에 팔을 둘러 꼼짝 못하게 고정한다.
늘상 서글서글한 표정이던 그녀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음험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사실에 놀랄 겨를도 없이, 목에 꽂힌 주사기에서 무언가가 쭈우우욱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으, 으으으으윽…!”
의식의 틈을 노린 기습에, 저항할 여유는 없었다.
무릎에서 힘이 빠지고, 토와의 품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엎드리듯 털썩 쓰러진다.
의식은 흐릿하게나마 남아있지만, 온 몸이 저리고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아하하핫! 바닥에 엎드린 모습이 잘 어울리네, 소대장 나리!”
“무…슨… 일이…! 뭐가….”
바닥에 엎드린 채, 어떻게든 몸을 가누고자 부들부들 떠는 탈리의 옆을, 토와가 훌쩍 스쳐지나갔다.
그리고는 손수 대장의 수갑을 벗겨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엄~청 고생했다. 에잇, 쓸모없는 것 같으니! 내 잘생긴 얼굴도 얻어맞고, 이게 뭔 봉변이냐고!”
짜증난다는 듯이 토와의 머리채를 붙잡고 굴욕을 주듯 앞뒤로 흔드는 대장.
“아흐… 소, 소대장님이 말을 듣지 않아서… 도저히 연락을 드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굴욕을 당하는 당사자는 헤헤, 하고 얼굴을 붉힌 채 웃고 있다.
그 모습에 답하듯 대장도 피식 웃었다.
“그래도 뭐, 마지막에 잘해줬으니 됐지 뭐.”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고, 대신 토와의 가슴을 옷 위로 주무르며 품에 안았다.
토와는 그것만으로 몸이 감전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암컷의 표정을 지으며 고분고분 그 손짓을 받아들었다.
그 광경을, 탈리는 엎드린 채 전부 보고 있다.
“무, 무,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되긴.”
대장은 토와의 제복 앞섶을 뜯어내듯이 거칠게 벗겼다.
드러난 그녀의 가슴골 왼쪽엔 장미 같은 문양이 드러나 있었다.
그게 무슨 문양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미 너희 암컷들 틈새에는 우리 노예들을 잔뜩 풀어뒀으니까. 그냥 그런 얘기인 거야.”
그 말을 듣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탈리는 이어서 풀려난 괴인들의 손에 짐짝마냥 질질질 끌려갔다.
* * *
벌떡!
서늘한 한기에, 단비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세웠다.
언제부터 잠들었던 걸까.
평소에 항상 늦게 자던 그녀가, 자정도 넘기지 않은 시간에 잠들어버리다니――
‘머리가….’
머리가 어지럽다. 속도 메쓱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자고 싶어하는 몸을 억지로 깨워서 그런걸까?
“…깜짝이야. 놀랐습니다.”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옆.
어느샌가 지척에 다가온 누군가.
“뭐야… 너희는.”
불 하나 들어오지 않은 방 안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듯이 서있는 이들을 노려봤다.
남자는 아니다. 아니, 그보다 이 실루엣도, 목소리도….
레지스탕스의 대원들?
“좀 더 편하게 주무셔도 되는데.”
“…자는 사이에 코 베어갈 줄 누가 알고.”
“아이 참, 설마 그러겠습니까. 귀한 여자 얼굴에.”
태연하게 깔깔 웃는 실루엣.
그러면서도 목소리톤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그러면 주인님들께서 안 기뻐하시거든요. 상품 가치가 떨어져버려요.”
그런 말을 했다.
펄럭!
“!”
이불이 크게 펄럭였다. 어질거리는 머리, 메쓱거리는 속을 무시하고 몸을 놀린다.
“코스튬――”
펄럭이는 사이에 변신하고자 손목에 손을 댔다.
면 몰라도, 제대로 변신한다면 이런 몸 상태여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깨달았다.
“없어…!”
“이거 찾으시나요?”
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습격자의 손 안에서 빛나는 을 비췄다.
“락을 해제하느라 힘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상당히 견고하게 짜여져 있더라고요.”
저걸 빼가고 나서야 알아차리다니, 이런 실책이.
대항할 수단은 없고, 그 이전에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당장에라도 눈꺼풀을 덮고 다시 잠들고 싶다. 한순간이라도 깨어난 게 기적이었다.
짐작이 가는 거라면 조금 전에 마셨던 커피.
그 커피를 마시고 난 후부터, 미칠 듯이 졸음이 밀려와 잠들어버렸음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너희… 【레지스탕스】 대원들이지.”
“그렇답니다.”
어둠에도 눈이 익숙해져, 대강의 얼굴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소대장 측의 대원들이 또 무슨 해코지라도 하려고 찾아올 거라곤 예상하였으나, 방 안에 보이는 면면들은 예상과는 달리 같은 차를 타고 왔던, 그 유난히 친근하게 굴던 여자들이다.
‘이유 없는 호의는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도 은 잘 때도 목욕할 때도 벗지 않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했었는데.
순조롭게 일이 끝났기 때문일까, 너무 느슨해져 있었다.
그 커피도 의심했어야 했는데.
“무슨 짓이지?”
“후후, 말해드리지 않아도,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마법소녀님, 부디 얌전히 따라와주세요.”
눈꺼풀이 무겁다.
일어서는 것도 힘겨워, 단비는 침대 위에 고꾸라졌다.
“이대로 끌고가면 되지 않아?”
“토와 님이 효력이 약한 약을 썼댔어. 무색무취의.”
“그래서 깨어났나보네.”
“말씀대로 이 기기부터 벗겨버리길 잘했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자 단비가 신음하는데, 인기척이 가까이 다가왔다.
“잘 자요, 마법소녀님♡”
저항하지 못하는 단비의 목덜미에, 무언가가 푹 꽂힌다.
그대로 주입되는 어떠한 약물이 몸 안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단비는 천천히 의식을 놓았다.
* * *
‘아데님을, 어떻게 해야 한다.’
아데의 부관, 메디아는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하늘은 완연히 어두워졌는데, 그녀는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고 있다.
본디 이 【물의 도시】에서 여성들이 주로 다니는 길은 밤이어도 밝지만, 이런 시간인데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일부러 어둡고 사람이 뜸한 길로 우회해 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동경하는 아데님.’
동안의 사랑스러운 얼굴도, 어눌한 말투도, 귀족으로서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도.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메디아는 한 눈에 충성을 다하고자 맹세했었다.
그런데 그 아데님이, 충성을 다바치고자 했던 사람이 거리에 널린 천박한 여자 같은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컷에게 지배당하고 싶어하고.
수컷에게 호기심을 가지려 하고.
어쩌면 여성을 우대하려는 자신들의 제도에도 의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무릇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폭탄을 안고 있다간, 결정적인 순간에 도시 전체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지구에 그런 습성을 가진 쥐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처럼.
그 정도로 귀족인 아데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에 잠긴 채 걸어가는 부관 메디아의 앞에.
“후욱, 후욱, 후욱, 후욱――”
“……뭐죠?”
그건 어둠 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왔다.
쳐다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가죽천쪼가리만을 적당히 몸에 두른 변태 같은 남자.
일전 케이가 이곳에 머물렀을 때, 그녀가 입던 옷을 사삭 훔쳐갔던 그 남자였다.
퉁퉁한 체형의 그는 안대 같은 것을 쓴 채 뒤뚱거리면서 메디아의 앞으로 나아왔다.
“여기는 경계 구석 아슬아슬하게 여자구역일텐데, 수컷 주제에 어딜 기어 나와? 이 더러운 돼지새끼가.”
“후우우…?”
수컷은 메디아의 매도를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뒤뚱거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끔 있다. 정신이 망가져버린 수컷이 말도 듣지 않고 제어도 통하지 않게 되어 거리를 더럽히고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짜증나게.’
이런 수컷은 그냥 처분해버리면 된다.
메디아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대로 손끝만 움직여도, 저 더러운 수컷의 모가지는 똑, 하고 잘려나갈 것이다.
그랬을 텐데.
“――멈춰.”
수컷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것만으로, 메디아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끌어올리던 마력도, 지금 막 행사하려던 마법의 술식도 전부 다 올스톱.
당황하는 메디아의 눈에, 코 앞까지 다가온 수컷이 앞으로 내민 손이 보였다.
손에는 추한 수컷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반지가 끼어져있으며.
반지에 박힌 돌을 쳐다보고 있자니, 메디아는 마치 영혼이 그 돌 안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겉으로 포장되어 있던 가짜 인격이 벗겨지고, 본래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 뿐이지만.
앞머리 너머로 드러난 이마에, 가려져 있던 장미 문양이 떠올랐다.
선명한 문양은 그녀가 뼛속까지 노예로서 종속되어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아주 잘해주고 있어. 그대로 충실한 부하로서 아데의 곁에 있어주면 돼. 이제 곧이니까.”
안개가 낀 듯 희미해지는 시야 속. 수컷의 목소리가… 아니.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행복감에 젖어 메디아는 배시시 웃었다.
메디아의 ‘주인님’은, 이어서 그녀에게 몇가지 지시를 더 내리기 시작했다.
* * *
“핫…!”
그리고 메디아 홀로 남은 어두운 골목 한복판에서.
메디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라? 나, 잠깐 잠들었었나?’
길거리 한복판에서 잠들다니, 그런 일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만 과부하가 온 걸까.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아, 맞아. 좋은 생각이 났어.”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명쾌한 결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렇게 끙끙 앓으면서 고민했는지 이상할 정도다.
“아데님을 수컷한테 넘겨드리는 거야. 험한 꼴을 당하면, 분명 남자 따윈 싫다고 학을 떼겠지. 아니, 아예 도시를 싹 다 넘겨버릴까. 아직 남아있는 온건파도 마음을 돌릴 테고, 다른 애들도 훨씬 더 남자들이 미워질테고.”
정말이지, 명쾌한 결론.
메디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이미 귀족인 그녀를, 레지스탕스들에게 지배된 이 도시를 어떻게 남자들에게 넘기면 될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짜여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