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4
◈ 204화. 흑백독화 이하빈
비록 무기를 들지 못했다곤 하나 낙양의 절대자 백행전퇴 고정륭의 죽음으론 다소 허망한 죽음이었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유대하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승심이 치솟았다.
‘역시 강해졌어.’
자신이 알던 예전의 당천이 아니다.
녀석은 사천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둘은 육군명을 도와라. 대표두를 잡겠다.”
허무하게 죽은 고정륭과 달리 도와 검을 쥔 이무위는 육군명을 거칠게 압박하고 있었다.
적에게 근접할 수밖에 없는 유대하와 용추라면 창을 쥔 이하빈에게 방해가 될 터.
그녀를 도우려면 암기를 사용하는 자신이 낫다는 게 당천의 판단이었다.
“그래. 서두르자.”
밤이 깊어지면 개봉의 거리가 한산해진다.
그리되면 나갔던 무인들이 휴식을 위해 돌아올 것이다.
용추와 유대하가 몸을 날릴 때.
육군명은 쏟아지는 검광의 향연 속에 정신없이 보법을 전개했다.
콰콰콰쾅!
간발의 차이로 비껴 나간 공격에 지축이 요동친다.
“처음의 기세는 어디에 갔느냐? 아직도 이 몸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무위의 조롱 섞인 일갈에 육군명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직 미치지 못했나.’
상대는 분명 운화결보다 아래다.
다음엔 반드시 운화결을 잡겠다고 다짐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떨어지는 상대에게 고전하고 있으니 화가 치미는 것이다.
“어디 한번…….”
육군명이 운화결을 상대했을 때처럼 한계를 넘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또 앓아눕고 싶냐?]유대하의 날카로운 전음이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칫!’
생각을 고친 육군명의 도신이 반원을 그리더니 쏟아지는 검광을 막아냈다.
카앙!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며 육군명이 뒤로 미끄러진다.
그사이 번개같이 나타난 유대하의 검신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시퍼런 빛을 토해냈다.
방향을 튼 이무위의 검신이 호선을 그리며 공격을 받아친다.
까가가가강!
뒤따라 용추까지 합류하며 세 사람은 불꽃튀는 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멈춰선 육군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달빛이 스며들고 있다곤 하나 컴컴한 밤이다.
용추와 협공을 가하는 유대하의 공격에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색맹의 한계를 벗어난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나만 그대로인 거 같잖아.’
당천도, 유대하도 사천에 있을 때보다 몰라보게 성장했다.
이대로는 진무립을 쫓아가기는커녕 저들과의 승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질 수 없다.’
각오를 다진 육군명의 도신에서 시꺼먼 흑광이 피어오를 때.
대표두들의 후미로 돌아온 당천은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무려 여섯 명의 고수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
도리어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거침없는 그녀의 창술은 마치 절대자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과연 머리를 치자고 나설 만하군.’
그때 당천의 눈에 담긴 것은 십 장 밖에서 활로 동료를 지원하는 공맹이었다.
‘저놈만 없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온 신경을 이하빈에게 쏟아붓는 공맹은 나무 뒤로 이동한 당천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인가!’
같은 낙전표국의 대표두인 원세명도 흑천비류창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위력은 천지 차이였다.
정말 같은 무공을 익힌 게 맞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 여인은…….’
마른침을 삼키는 공맹의 뇌리에 해묵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창성 반서련을 뛰어넘었다.’
흑천비류창을 가장 완벽하게 사용했던 여인.
천하대전에서 잠시나마 그녀를 보필했던 공맹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대체 이런 무인을 어디에서 키웠단 말인가!’
모두 죽었어야 할 자들이다.
쿠콰콰콰쾅!
넘실거리는 흑광이 해일처럼 쏟아지며 굉음과 함께 지축이 요동친다.
그녀의 거침없는 맹공은 마치 자신들에게 천벌을 내리는 듯했다.
대표두들은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좀처럼 열세를 뒤집지 못했다.
원세명이 다급하게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간격을 벌리고 포위하자!”
카카카캉!
시꺼먼 도광을 흩뿌리던 도조군은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삼켰다.
‘그게 가능하면 안 했겠나!’
비록 국주에 비해 무공이 떨어진다곤 하나 접근전을 펼치는 대표두가 무려 다섯이다.
포위를 갖추고 상대한다면 이토록 속절없이 밀릴 싸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단순히 무공만 고강한 게 아니다.
자리를 이탈해 배후로 돌아가려 하면 여지없이 창두가 날아든다.
흑백독화 이하빈은 마치 이 전투에 각본을 입힌 것처럼 치밀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본 천을 노린 것이냐?”
이하빈의 나직한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귓속을 파고든다.
누구도 입을 열어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창두가 시꺼먼 흑광을 한 번 흩뿌릴 때마다 막고 피하기에 급급한 까닭이다.
후방에서 필사적으로 지원하던 공맹이 활을 내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운국주에게 알려야…….’
그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푹!
“컥!”
단말마의 신음을 토해낸 공맹이 가슴을 내려보았다.
그곳에선 등 뒤를 뚫고 삐져나온 비수가 피를 뚝뚝 흘려내고 있었다.
“생각이 많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배웠군. 고맙다.”
서늘한 목소리가 공맹의 귓속을 파고든다.
“크으…….”
억울한 듯 부릅뜬 눈을 감지 못한 그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공맹을 처리한 당천은 두 손에 암기를 끼운 채 적의 후방으로 움직였다.
요소마다 파고들던 공맹의 화살이 사라지자 이하빈의 흑천비류창은 더욱 맹위를 떨쳤다.
쏴아아아!
가슴 서늘한 파공성과 함께 시꺼먼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것을 알아본 원세명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사망벽궤!’
그는 즉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산개!”
그러나 안타깝게도 몸을 피하지 못한 두 명의 대표두를 시꺼먼 구름이 집어삼켰다.
이하빈의 무심한 시선이 몸을 피한 대표두들에게 닿았다.
“운이 좋구나.”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대표두를 집어삼킨 시꺼먼 구름이 순식간에 범위를 압축하더니 안에서 끔찍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두둑, 으드드득!
“크아악!”
곧이어 구름이 걷혀간 자리에 전신이 우그러든 두 구의 시신이 나타난다.
‘아아.’
원세명의 두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망벽궤는 자신으로선 상상도 못 할 경지에 올라 있었다.
협공에 치열하게 맞서는 국주 고정륭은 자신들을 도울 여력이 없다.
여섯 명으로도 상대하지 못했는데 고작 셋이서 그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와 달빛이 공존하는 대지에서.
창두를 겨눈 이하빈이 섬뜩한 미소를 보인다.
“이 정도에 절망하는가?”
지면을 박찬 그녀의 신형이 한 줄기 선풍이 되어 그들을 몰아친다.
“저승에선 나와 같은 뿌리를 가졌다고 떠들지 말도록.”
슈아아악!
줄기줄기 솟구친 흑광이 만개하는 꽃잎처럼 피어오른다.
쿠구구구구!
요동치는 대기의 흐름 속에.
사방으로 뻗어 나간 흑광이 한순간에 방향을 바꿔 그들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쏴아아!
흑천비류창 흑연화(黑煙華)의 초식.
‘지금이다.’
은밀히 후방을 점거한 당천의 장심에서 칠사독장이 쏟아져 나왔다.
‘아아.’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대표두들이 선택한 것은 정면의 공격에 모든 것을 부딪치는 길이었다.
“이년!”
악을 쓰듯 토해내는 일갈과 동시에 허공에서 경천동지할 기파가 충돌했다.
쿠콰콰콰쾅!
얼어붙은 대지가 들썩이고 일진광풍이 몰아치는 전장.
눈에 섞인 흙더미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가운데, 그녀는 결과도 보지 않고 이무위에게 달려갔다.
두 팔을 내린 당천이 숨을 고르며 눈앞의 참상을 응시했다.
‘이 정도였는가?’
만월천비에 당한 고정륭은 시체라도 남겼으나 그녀에게 맞섰던 대표두들은 한 줌 혈수가 되어버렸다.
한순간에 부하들을 모두 잃은 이무위는 피눈물을 흘리며 악을 썼다.
“가만두지 않겠다!”
지독한 살기가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며 부릅뜬 눈에 핏발이 선다.
“물러나라.”
이하빈의 나직한 목소리에 세 사람은 즉시 뒤로 물러났다.
타탓!
지면을 박찬 이무위의 검극과 힘차게 내지른 이하빈의 창두가 허공에서 부딪쳐간다.
“죽어라!”
이하빈은 대꾸 대신 차갑게 눈을 빛냈다.
쐐애액!
일직선으로 쏘아진 두 사람의 공격이 정면에서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잔상을 남기며 흔들린 창두가 검신을 거슬러 오르더니 이무위의 가슴을 찔러간다.
“어딜!”
이무위는 즉시 우수의 도파를 끌어당겼다.
콰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이무위의 신형이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미끄러지던 이무위의 눈에 지독한 혈광이 떠올랐다.
‘이 한 수에 모든 것을 걸겠다!’
투둑. 투둑.
이마에 시뻘건 힘줄이 불거지며 전신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간다.
죽을 각오로 단전 밑바닥의 내력까지 모조리 일거에 끌어올린 것이다.
가까스로 발을 멈춘 그는 허공으로 검신을 집어 던졌다.
그리곤 두 손으로 도파를 움켜쥔 채 사력을 다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죽여주마!”
악에 받친 외침과 함께 도신에서 시꺼먼 흑광이 솟구치더니 그녀의 전신을 태산처럼 찍어 누른다.
육군명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무진강천(武鎭姜天).’
한계를 넘어선 그의 초식은 자신이 펼치는 것보다 족히 두 배는 강렬했다.
눈앞에서 흑무진천도 무진강천이 짓쳐 들고 있음에도 이하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머리를 썼다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
용천혈에 내력을 집중한 그녀는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쾅!
강렬한 굉음과 함께 그녀가 단숨에 이무위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됐다!’
광소를 머금은 이무위는 온 힘을 다해 도신을 내리찍었다.
그에 맞서 이하빈의 창대가 수레바퀴처럼 회전했다.
콰콰콰콰콰쾅!
귓전을 후려치는 거친 폭음과 함께 조각난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전력을 다한 무진강천이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이무위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
“네년은 이제 끝이다!”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졌던 그녀가 이무위의 우측에서 나타났다.
“네가 뿌린 씨앗은 스스로 거둬라.”
“뭣…….”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그의 턱밑으로 시꺼먼 창대가 솟구쳤다.
콰직!
“큭!”
부러진 이빨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온다.
그의 턱에 창대를 건 이하빈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휘둘렀다.
슈우욱!
솟구치는 이무위의 두 눈에, 조금 전 자신이 던져올린 검과 함께 시뻘건 운무가 떠올랐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뿌린 씨앗, 혈옥비가 그곳에 있었다.
‘이런 망할 년이…….’
생각이 끝나는 순간 혈무를 뚫고 나온 시뻘건 벼락이 대지를 폭격했다.
콰아아앙!
언 땅이 움푹 꺼지며 돌가루를 동반한 일진광풍이 몰아친다.
유대하들은 즉시 뒤로 물러나며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솟구친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지며 들뜬 밤공기가 차분히 내려앉는다.
전장을 응시하는 네 사람은 나직이 숨을 골랐다.
‘끝났나.’
웅덩이처럼 푹 꺼진 땅에, 머리가 사라진 이무위의 시신과 땅에 박힌 검파가 보인다.
유대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이런 여인이…….’
이무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를 죽인 이하빈의 무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창을 회수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돌아가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들은 이하빈을 따라 몸을 날렸다.
전투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고작 이각.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섯 사람은 식어가는 시신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 * *
밤이 내린 평야의 끝.
달빛을 등진 한 무리의 무인들이 눈 덮인 들판에 올라섰다.
“피냄새가 나는 것 같군.”
선두에서 나직이 읊조리는 인물은 악계화였다.
곁에 선 자영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기분 탓인 모양이다. 몸은 좀 어떤가?”
“상천에서 제공한 마차가 제법 편하더군요. 움직일 만합니다.”
제남에서 출발해 얼마 전 하택현을 지나기까지.
밤낮없이 마차를 번갈아 타고 온 이들은 어느새 개봉에서 하루 거리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개봉에서 분명 뭔가 벌어지고 있다.”
동진상단의 깃발을 위장용으로 걸어두었음에도 여러 차례 마차를 수색하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마차를 호위하던 상천의 무인들이 그들의 목을 베었다.
죽은 청금환을 떠올린 자영이 섬뜩한 살기를 표출했다.
“개봉에 우리가 나타나면 운화결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요.”
“설지량이 있다면 개봉의 성문을 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근처에서 때를 기다린다.”
“부디 오래 기다리는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육신의 상처는 나아지고 있었으나 배신의 상처는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다.
가까워지는 개봉과 함께 복수의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