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51
51. 욕망의 끝자락
장인걸은 새해가 되자 한국과 미국에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국내의 콘서트는 어느 때보다도 흥행을 했다. 티켓의 경쟁률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 회에 1만 장 가량을 판매하는데 1백만 명이 응모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국내 3개 여행사를 통하여 매번 900명의 해외 팬을 불러들였다. 한국 관광을 하면서 콘서트까지 관람하는 패키지 상품을 판매했는데 사전 예약을 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쪽은 스키관광과도 연계를 하여 인기가 좋았다.
미국의 콘서트도 장인걸의 노래가 케이블TV에서 방송되고 마라톤 선수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다양한 홍보과 광고를 통해 콘서트를 알린 덕분에 대부분 만석이 되었다.
LA에서 할 때부터 흥행 몰이를 하고 장인걸이 발매한 2집 앨범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마침내 마지막 뉴욕에서 콘서트를 할 때는 암표까지 등장했다.
장인걸은 콘서트를 할 때 20여 곡을 불렀는데 보통 5곡 정도를 한국어로 불렀다. 한국어로는 이번에 미국에 발표되지 않은 3집과 4집의 노래를 주로 불렀다. 그 결과 장인걸이 한국의 가수라는 것을 콘서트에 왔던 사람이 알도록 했다.
순회 콘서트를 하는 동안 각 지역에서 다양한 홍보활동도 병행했고 그 덕분에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는데 뉴욕 공연을 마칠 무렵에는 메인인 핫100에서 무려 25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월 말이 되자 장인걸은 강진경의 졸업식도 있었고 3월이면 다시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만 더 다니면 졸업할 수 있기에 그냥 학교에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 사이에 주식시장은 IT버블 붕괴를 앞두고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 종목은 대폭락을 하고 있지만 어느 종목은 여전히 기세를 떨치면서 폭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2월이 되면서 시장의 추세는 급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버블의 붕괴가 진행되었고 그로인해 전 세계가 패닉에 휩싸였다.
한국도 IT버블 붕괴는 피할 수가 없었다. 장인걸은 프리웨이나 자회사에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에 자사주와 폭락하는 주식 중에 내재가치가 높은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도록 했다. 폭락은 피할 수 없지만 모든 종목이 무너지는 사태는 피하고자 했다.
한때 주당 7만 원까지 치솟았던 프리웨이의 주가는 IT버블이 붕괴되면서 공모가 수준인 2만 원대로 다시 폭락했다. 장인걸과 HR홀딩스가 보유한 프리웨이의 지분의 주가가 6만 원대로 접근하자 보호예수로 묶인 30%만 제외하고 모두 처분했었다.
HR홀딩스와 장인걸이 보유한 지분으로 5천만 주를 처분했는데 그 금액이 무려 3조원이 훌쩍 넘었다. 프리웨이를 공모할 때 책정한 가치를 상회했다.
그렇게 되자 HR홀딩스와 HR화학은 시장에 나오는 프리웨이의 주식을 50% 이상 확보할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유통주식을 매입하자 주가도 3만 원대에 안착을 했다.
또한 계열사는 아니지만 폴라텍스트의 주식도 지속적으로 구입하여 한때 10% 이내로 보유했던 주식을 무려 35% 이상으로 올렸다. 아예 HR홀딩스의 계열사로 편입하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HR홀딩스와 프리웨이는 자회사의 주식도 상장할 때의 공모가에 근접하면 구매하는 방법으로 지분을 확보하고 주가도 유지시켰다. 프리웨이도 버블 당시에 자회사의 주식을 보호예수로 묶인 것을 제외하고 절반 정도 매각했었는데 현금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프리웨이의 자회사들은 상장 시에 납입된 자금을 절반 이상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서버를 확충하고 연구개발에 치중했지만 그 외에는 긴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버블붕괴 이후에도 성장하는 IT기업을 선정하여 폭락한 주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나갔다. 프리웨이나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살 수도 있지만 순환출자 금지를 어기는 것이기에 아예 구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지 알고 있었기에 사전에 충분히 계획을 세워 놓고 계열사의 경영진과 자금관리자들을 모아 수시로 교육을 시켜 놓았기에 IT버블이 붕괴해도 당황하지 않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프리웨이의 주가도 폭락을 했지만 다른 주식들처럼 최고가의 10%, 심하면 1% 이하로 떨어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버블 붕괴 이후에 살아남는 것은 프리 시리즈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미국에서 시작된 IT버블 붕괴로 시장은 패닉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장인걸은 폭락한 우량주들을 쓸어 담았다. 이런 IT 버블은 전통적인 우량주까지 폭락을 가져왔고 천명전자나 한동자동차, 한동전자 주식의 투매로 이어졌다.
장인걸은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잘 나가는 회사들이 어떤 회사인지 알기에 그런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HR홀딩스는 23%까지 내려간 프리웨이의 지분을 다시 43%까지 끌어올렸다. 물론 장인걸도 7% 정도 보유했던 주식을 15%까지 끌어올렸고 58%까지 치솟았다.
또한 HR홀딩스는 버블이 한창일 때 고가로 처분한 상황이라 프리웨이의 5개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10% 이상 보유하게 되었다. 프리웨이의 지주회사이기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물론 프리웨이도 사내에 유보한 현금으로 다시 지분을 매입하면서 50% 가까이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했다. 버블이 한창일 때 자회사의 주가도 상장할 때보다 5배 이상 치솟은 상황이었고 프리웨이도 보유한 주식을 절반가량 처분했었다. 보호예수기간에 적용을 받은 상황이라 절반만 처분이 가능했다.
유통주식이 감소하면서 프리웨이나 자회사의 주가는 상장할 때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가 있게 되었다. 윤리적으로 주주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고가에 팔고 싸게 구입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사전에 그런 사실을 공시하고 진행했기에 문제는 없었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유통 주식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폭락시기에는 경영권 보호 및 주가 유지라고 공시했다.
IT버블이 한창일 때는 HR그룹의 시가총액이 무려 18조 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다시 쪼그라들어 8조 원 안팎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선방을 하고 모든 계열사가 살아남은 IT기업은 없었다.
HR그룹의 계열사는 사내에 유보한 자금이 꽤나 있기에 시중의 자금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경영에 지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성장성이 좋은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신규투자까지 할 여력이 있었다.
장인걸은 한국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고 여름 방학이 되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장 큰 일이 남아 있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있어야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사전에 지침을 내려놓았기에 IT버블이 오기 전에 모든 주식을 처분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폭락이 있으면 반등이 있고 다시 주식이 오르는 기미를 보이자 투자를 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항공기와 충돌하여 무너지는 무역 센터 빌딩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던 장인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오래 전에 포기하고 차라리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재앙을 막지 못한 것이 괴로웠고 자책감마저 들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매달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주가지수 하락이나 상승에 베팅하여 약간의 이득을 봤지만 7월과 8월 하락세가 진정되고 기술적인 반등이 일어나면서 매월 500만 달러 정도 손해를 보았다.
2000년 11월부터 6월까지 8개월 동안 얻은 이익을 두 달 사이에 거의 날려먹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투자는 이번 투자를 위한 포석이었다. 난데없이 폭락에 베팅하면 테러집단과 연관 되었거나 정보를 얻었다고 의심받을 수 있었다.
의심을 받지만 소명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뜬금없이 선물에 투자했다면 그것은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질 수가 있었다.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지속적인 투자로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9.11테러를 예상했기에 8월에도 풋옵션을 거래했다. 다우지수, 나스닥, 프랑크푸르트, 일본, 싱가포르, 홍콩, 런던의 주가가 하락할 경우 돈을 버는 옵션이었다. 약간 하락해도 레버리지 때문에 큰 이득을 보는 구조였다. 물론 주가지수가 상승하면 보증금을 납입하지 않으면 풋옵션이 청산되기에 투자한 자금만 날리면 되는 상품이었다.
장이 며칠간 폐장이 되었다가 개장이 되었을 때 며칠 사이에 다우지수나 나스닥 공히 15% 가량 하락했다. IT버블 붕괴 이후에 주가가 바닥을 쳤다고 반등하던 시점에 일어난 변고로 인해 주가는 다시 폭락하고 말았다.
5천만 달러를 투자한 풋옵션은 무려 80배에 달하는 대박을 냈다. 모든 선물상품을 청산했을 때 40억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이제부터 주식을 구입합니다. 다우나 나스닥 할 것 없이 사전에 선정한 종목을 최대한 구입합니다.”
7월과 8월 사이에 다우와 나스닥이 반등하자 HR투자회사의 매니저들은 세금을 내고 남은 35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투자하자고 성화를 부렸지만 장인걸은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확실히 반등한 시점, 발등이 아니라 무릎에 사는 것이 좋다면서 투자를 보류하도록 했다.
하지만 9.11테러가 발생하자 장인걸은 마침내 투자를 단행했다. 그동안 지켜만 보던 저평가된 주식을 구입했다. 75억 달러 중에 세금이나 예비비 명목으로 25억 달러를 남기고 50억 달러만 투자하도록 했다. 특히 IT버블 붕괴여파로 인해 폭락한 나스닥 주식 중에 그가 회귀할 때에 잘 나가던 주식을 최대한 구입했다.
‘특히 애플이 잘 나갔지. 물론 MS도 다시 주가를 회복했지.’ 장인걸은 그런 회사를 떠올리면서 메모를 했고 투자매니저인 엘레나 킴이나 한스 마케나에게 통보하여 매입하도록 했다.
미국에 있는 장인걸에게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국가안보실장을 맡고 있는 박민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내의 상황이 급하다는 말이었다. 특히 국가경쟁력과 연관이 크면서 국가안보와도 밀접한 문제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장인걸은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후에 청와대로 이동했다. 이미 예상을 했던 문제였다. 회귀 전에는 공적자금을 투자하여 해결을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은 마이텔 때문일세.”
“마이텔의 규모가 크다고 하지만 정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략 1조 정도만 자금을 투입해도 회생이 가능할 것인데요. 물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요.”
“문제는 중국의 차이텔이 노리고 있기 때문일세.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있는 상황인데 무작정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하네. 만일에 중국 업체로 넘어간다면 휴대폰 블록이 깨질 수밖에 없네. 중국에서 마이텔을 가진다면 국내 업체는 강력한 경쟁업체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일세. 국내의 자본 중에서 인수할 능력을 가진 업체는 몇 개 없는데 다들 그 업체에 관심이 없는 실정일세. 국내 업체는 인수할 메리트가 없어.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어 고민이 많았는데 박민수 안보실장이 자네를 추천하더군.”
그러자 옆에 있던 박민수 실장이 장인걸을 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장인걸의 경우에 미국에서 큰 자본을 운용하다보니 결국 정보기관에 그 정체가 알려질 수밖에 없었고 현 정권의 실세들 중에 일부도 알게 되었다. 현재 그 사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종의 엠바고 상태였다. 보도를 했다가 부인할 경우에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9.11테러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 때문에 의심을 받았지만 1년 전부터 5천만 달러 규모로 계속 선물에 투자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혐의점을 벗어났다. 테러단체와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IT버블 붕괴를 예견하고 모든 주식을 처분하고 하락에 베팅한 상황이었다.
“입찰에 응해서 인수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실정일세. 정리절차를 진행하는데 차이텔이 응찰하면 막을 방도가 없어.”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데 국내의 휴대폰 생산 업체는 마이텔을 인수하기보다 그냥 공장을 하나 더 지으면 그만이었다. 신규로 시작하는 업체라면 메리트가 있지만 기존 업체는 큰 이득이 없었다.
반면 중국 업체는 단숨에 휴대폰 시장에 진입하는데 필요한 라이선스를 모두 획득할 수 있고 각종 기술마저 획득할 수가 있고 연구능력마저 확보할 수 있었다.
“일단 응찰은 하겠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와 동일한 기준으로 임하겠습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 말입니다.”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가격요소는 그리 크게 적용하지 않도록 할 것일세. 5년 동안 국내의 고용을 유지하는 조항이나 공장이전 금지를 넣을 것일세.”
중국업체를 배제하는 조건을 넣을 계획이지만 그것을 넣기 위해서는 한국 업체에서 인수할 것이라는 확신을 채권단에 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유력한 한국 업체가 인수의향을 표명해야 가능했다.
“원하신다면 마이텔 인수의사를 표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채권단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사실 많은 준비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마이텔을 인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자금마저 확보해 놓은 상황이었다. IT버블이 붕괴되었지만 그 정도 인수할 자금은 충분했다.
“휴대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전체로 보면 성장의 여지가 있다고 보네. 그러니 자네가 인수하여 잘 성장시키기를 바라네.”
대통령의 부탁에 장인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청와대를 다녀온 다음날 장인걸은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장인걸의 청와대행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측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라 괜한 억측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제가 미국에서 IT산업에 투자한 부분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법적인 문제나 세금납부 문제는 양국의 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인걸은 처음으로 자신이 미국에 HR투자법인이라는 비상장 개인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사실을 언급했다.
“현재 재무상태가 악화된 마이텔을 인수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마이텔 인수에 대하여는 이미 3개월 전 1차 부도가 난 이후에 인수준비팀을 구성하고 프리웨이 안정만 부사장의 주도로 준비 작업을 했습니다. 채권단이 발표한 입찰조건을 검토하고 있으며 큰 하자만 없다면 조만간 입찰의향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건은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일반적인 따를 것입니다.”
장인걸은 청와대에서 권유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질 수도 있기에 굳이 언급하여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질문을 무시했다.
장인걸의 계획에는 1년 후 월드컵을 전후하여 마이텔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그 전에 처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회귀 전에는 차이텔이 먼저 인수를 타진했다.
하지만 고용문제나 공장이전금지 문제, 부채탕감문제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너무 커서 협상이 결렬되어 공적자금을 투자했고 1년 후쯤에 RC와 천명전자에서 공동으로 인수하여 두 회사에서 생산하는 중저가 보급 폰의 조립공장으로 활용했다.
장인걸은 당장 부담이 되더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과 자금이 꽤나 확보된 점을 고려하여 빨리 인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바하마에 있는 3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도입하기로 하고 절차를 밟아 나갔다.
그 정도 자금이라면 인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 자금을 나중에 상환해야 하지만 그것이야 필요할 경우 조건을 조정하면 되었다.
장인걸은 협상을 함에 있어 라이선스의 가치를 높게 쳐주지 않았지만 고용의 유지 등의 비경제적인 요소에 대해 어필하면서 부동산과 기타의 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했다.
“굳이 그 회사를 인수해야 합니까?”
HR전자의 황기성 사장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반문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천명전자처럼 종합전자업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품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가능해집니다. 아울러 차세대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단말기 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차세대 이동통신이라니요?”
“제 생각에는 현재의 휴대전화는 색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 봅니다. 뭔가 패러다임이 바뀌는 수준, 흑백TV에서 컬러TV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봅니다. 후발주자나 선발주자나 큰 차이가 없이 같은 출발점에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장인걸은 황기성 사장에게 스마트폰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런 휴대전화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목표 하에 기술을 개발해 나가야합니다. 이동전화 CPU 설계기술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카메라나 마이크, 스피커, 모니터의 성능도 개선해야 하고, 특히 모니터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대신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모바일 운용프로그램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장인걸의 설명에 황기성 사장도 그동안 장인걸이 인수한 기업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바로 핸드폰과 밀접한 것을 깨달았다.
장인걸이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황기성 사장이 신제품의 개발을 진두지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관련된 모든 계열사가 하나가 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다.
“이것은 1~2년 안에 달성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성능을 발휘하려면 단말기 성능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가 그만큼 받쳐줘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속도와 용량이 빨라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폴라텍스트도 같이 협력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손 안에 컴퓨터, 인터넷을 개발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황기성 사장도 장인걸이 뭐를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렇다면 비디오나 오디오의 성능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계열사는 아니지만 HR홀딩스에서 몇 개 업체에 투자를 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와 보안장비 업체들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 무선 스피커 기술을 개발하도록 했습니다. 해당되는 기술이나 장비를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황기성 사장은 장인걸이 사전에 마이텔을 인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하여 개발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 같았다.
“현재 프리웨이 내부에 소프트웨어개발부문을 확대하고 있고 기존의 모바일OS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이텔도 새로운 운영체제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장인걸은 마이텔의 인수를 서둘렀다. 앞으로 어떤 계기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장인걸은 3000억 원으로 마이텔을 인수한 후에 HR전자와 합병시켰다. 두 회사 모두 상장폐지가 된 상황이라 가능했다. 그런 다음 회사를 정상화시키는데 주력했다.
연구개발을 하면서 기존의 제품을 개선하여 무너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 나갔다. 초기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적자가 났지만 1년, 2년이 지나면서 경영상태가 개선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여 매출을 증대시켰고 마침내 2004년이 지나면서 흑자로 전환했다. 장인걸은 그 동안 무려 5천억 원이 넘는 누적적자를 감당해야 했는데 여기에는 양진에서 개발한 몰리브덴 광산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2006년 말에 HR전자에서 HS-01 스마트폰을 개발했다. 실로 5년 동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었다.
2001년 마이텔을 인수한 장인걸은 기존에 생산하던 벡스턴1과 벡스턴2, 벡스턴3를 기본으로 하여 HR-01을 2002년 발매했고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 HR-05모델을 2006년 초에 발표했다.
하지만 장인걸은 마이텔을 인수한 직후부터 새로운 개념의 휴대폰인 스마트폰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5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새로운 개념의 휴대용 전화인 HS-01이란 스마트폰을 발매했다.
이를 위해 HR반도체와 공동으로 HS-OS1이라는 메인보드 칩셋을 개발했다. CPU에 해당하는 HRS-01은 HR공학연구소로 이름을 바꾼 HR화학에서 개발, 설계하여 HR반도체에서 생산했다. 이를 위해 매년 300만 달러 이상, 원화로 3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또한 HS-01에는 프리패스-01이라고 하는 프리웨이에서 개발한 OS가 탑재되었다. 2G와 3G에서 모두 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아직 한국은 3G가 개통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2G에서도 충분히 가동이 되게 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발표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당장 2G에서 제대로 작동이 되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관심을 받았다. 물론 3G가 되면 기존 전화기도 문제가 없이 작동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이동통신사의 태도인데 일단 개통이 되도록 했고 전국 10대 도시에서는 3G가 가능하도록 폴라텍스트와 협약을 체결한 상황입니다. 일단 출시를 하고 난 다음에 무선통신망의 업그레이드를 압박하고자 합니다.”
HR전자의 사장이 되어 HS-01의 개발을 주도한 안정만 사장이 별도의 자리에서 문제점에 대하여 보고했다. 3G를 도입하라고 촉구했지만 국내 이동통신 회사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만 보이고 있었다.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 일단 내가 움직여 보도록 하죠. 사기업은 손익계산으로 움직이지만 공기업은 다르죠. 위에서 찍어 누르고 그렇게 하여 먼저 도입을 하면 일종의 담합이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인걸은 마침 미국의 경제동향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정부에 전할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의 경제가 회복이 되고 있지만 미국 발 경제위기에는 대응할 능력이 떨어졌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만날 사람을 만나 이동통신 문제도 해결하도록 하죠. 물론 미국에 가서도 판로를 개척할 것이고요.”
장인걸은 스마트폰을 한국에서만 판매할 생각은 아니었다. 미국에 가서 판매할 계획이었다. 또한 HR전자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표준마저 노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었다.
장인걸은 HR그룹의 오너이자 미국의 HR투자법인의 단독 주주였지만 여전히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HR전자가 개발하던 스마트폰을 발표하자 판촉활동을 겸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하여 순회 콘서트를 6개월간 했다.
서울을 시작으로 하여 일본, 미국, 유럽, 다시 아시아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콘서트를 했다. 물론 중간에 회사의 일을 보기도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경영에서 손을 뗀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서울에서 콘서트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페럴 해런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장인걸이 IT버블과 9.11 사태로 크게 수익을 내고 그 이후에 우량주식을 사고 벤처투자로 큰 이익을 내자 월가로 대표되는 미국 금융계가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현금으로 280억 달러입니다. 그것을 투자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월가의 붕괴 예상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풋옵션만 일부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차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월가에도 문제가 많다고 말했고요. 누구도 그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예견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고요.”
장인걸은 대부분의 주식을 정리한 후에 오직 1억 달러 규모로 풋옵션을 운용 중이었다. 투자 자금 전부를 잃어도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HR투자법인에서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보유한 주식은 애플과 구글 등 몇몇 우량기업에 대한 주식이 전부였다. 물론 상장을 하지 않은 벤처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선물 투자는 한 번 시도하여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바로 9.11 직후에 풋옵션으로 하락에 베팅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장인걸이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재무부와 사법당국에서 투자자 적격 문제로 계속 주식의 매도를 지시한 상황이라 굳이 주식에 돈을 넣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장인걸의 말에 페럴 해런드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장인걸이 2006년 하반기부터 모든 CDO(주택담보부증권)를 처분했다. 그 이후에 몇 가지 지배지분과 장기 투자종목을 제외하고 전부 다 처분하여 현금화를 시킨 상황이었다.
“HR투자법인이나 장인걸씨 개인으로 보면 이런 방식이 손해를 보지 않는 투자 정책이지만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정책입니다. 이 정도의 자금이 현금으로 묶이면, 월가에서 벗어나면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소지가 있습니다.”
“뻔히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은 바보입니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빨리 탈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작년 6월부터 그런 기미를 알고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장인걸은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방위산업에 관련된 투자를 하는데 제지를 당했다. 투자한 회사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업종으로 지정이 되면 주주로서 권리가 정지되고 유예기간 안에 주식을 대부분 처분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장인걸은 2006년부터 보유한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금만 가지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임박한 지금의 상황에서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손해가 뻔히 보이는데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우스에서는 몇몇 금융기관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너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조기에 수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페럴 해런드는 로펌을 그만두고 법무담당 이사로 취임한 이후에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인걸이 외국인이기에 법적인 문제나 세무관련 문제가 많았다.
“불가능합니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최소 1조 달러가 있어야 수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인데 고작 3%도 가지지 못한 내가 나선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금이 땔감이 되고 불쏘시개가 되어 더 일을 키울 것입니다. 지금 자금을 대주면 부실투자를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 타기를 시도하여 부실만 더 키울 것입니다. 레버리지 효과 아시죠? 스노우볼 효과라고 할까요? 결론적으로 1천억 달러의 부실 정도는 추가적으로 발생시킬 것입니다.”
어설프게 영양제를 주어 빨리 쓰러질 기업을 쓰러지지 않게 하면 부실만 더 커지고 다른 기업마저 쓰러지게 만들었다. 한계기업이 쓰러지지 않으면 다른 기업이 한계기업이 되어 쓰러지는 것이 경제의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전처럼 이번에도 경제위기가 가라앉은 이후에 투자를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그게 맞지 않을까요? 굳이 지금 들어가서 파산할 이유는 없죠.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돈을 버는 겁니다. 투자매니저들에게는 적당히 휴가를 다녀오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장인걸은 단호한 어조로 페럴 해런드의 제안을 거부했다. 하우스나 월가의 요청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당분간 한국에 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한 지침이 없는 이상 주가지수 선물만 투자하도록 하죠. 물론 벤처창업투자는 규정에 따라 진행하면 됩니다. 그런 투자는 주식시장과 크게 관련이 없으니 말입니다.”
장인걸은 더 이상 미국에 있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한국으로 출발했다. 곧 붕괴가 시작될 상황에 미국에 있다가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끝ⓒ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