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장완은 자신의 발아래에서 빠르게 진군하는 만굴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속도가 쳐지는 것은 키가 작은 코볼트들이다.
코볼트로 이루어진 부대는 주력이지만 속도 때문에 후위를 맡았다.
‘이대로는 느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장완은 부대 사이사이에 있는 사제들에게 계시를 보냈다.
사제들은 각 부대 지휘관에게 신의 뜻을 전했고, 지휘관들은 속도를 좀 더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의 두 발로 빨라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느리게 뛰는 것과 다름없는 속보지만, 이 정도 속도를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는 없다.
소수의 병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뒤쳐지고 있었다.
‘안 돼. 벌써 뒤쳐지면 안 되잖아.’
장완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대 최후미에는 그런 병사들을 다시 부대에 소속시키는 말단 기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발이 느리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병사들을 맞추어 속도를 조금씩 늦추었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콰아앙!
순간 하늘이 번쩍이며 빛으로 가득 찼다.
장완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것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제3 대륙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숫자의 창조물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방금 하늘을 빛으로 가득 채웠던 사도는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싸움을 벌이는 거야?’
원한다면 정찰이 가능한 소영역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장완은 그러지 않았다.
‘왔다.’
흑린의 기병대가 바로 뒤까지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코카투 경기병들이 전방 부대를 형성했고, 그 뒤를 말을 탄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후방 부대가 따르고 있었다.
‘만약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다면, 글자 그대로 끊어 먹히겠지.’
기병대를 등 뒤에 두고 있다면 보병대는 그대로 도망갈 수 없다.
한 번의 돌격이 있을 때마다 후위가 와해될 텐데, 이 와해된 부대는 그 뒤를 따르는 적의 보병대에 의해 수색된 뒤 섬멸될 것이다.
그 사이에 살아남은 병사들이 있어도, 전쟁과 군율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대로 복귀하지 않는 탈영병이 될 확률이 컸다.
‘그러니 등을 보이면서 도망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코카투 기병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만굴의 최후미 부대가 정지했다.
다른 병사들과 속도를 맞추지 못해 뒤쳐졌던 병사들은 잠깐의 휴식에 기뻐한 것 같지만, 지휘관의 다음 명령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뒤로, 돌아!”
부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사는 죽거나, 탈영하거나 어떤 모습으로든 전투력으로 환원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들을 조금이라도 전투력을 보존할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올리며 달려드는 흑린의 기병대를 보자, 얄팍한 방진을 겨우 형성한 만굴의 병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개중에는 도망가는 병사도 있어서, 기사 하나가 칼을 들고 달려들어 베어 버리기도 했다.
기사가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창대를 높이 들어라! 기병의 가슴과 팔을 노려!”
하지만 겁에 잔뜩 질려 얼어붙은 병사의 창을 맞아 줄 흑린의 기병은 없었다.
역으로 달려드는 코카투의 부리와 발톱, 기병의 창날에 만굴의 병사들이 머리와 팔이 찢겨 나갔다.
순간 몸을 웅크리며 살아남은 병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코카투 기병이 자신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걸 보며 안도했다가, 뒤따르는 후위의 기병들의 말발굽에 채여 죽어 나갔다.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
그나마도 체력이 없어서 뒤쳐진 병사들이다.
당장은 숫자도 얼마 없으니 얄팍한 방진으로 창을 들어 봤자 기병에겐 역부족이다.
흑린의 기병대가 바짝 뒤를 쫓는다.
또 다시 만굴군의 최후미 병사들이 멈춰 섰다.
사오십여 명에 불과했던 방금과는 달리 일백은 넘는 숫자.
하지만 흑린의 기병대에겐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그렇게 느껴야지. 저건 미끼니까.’
장완이 노리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네뷸라는 크람푸스와 에이알과의 전투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거야. 당연히 룬다도 포함해서. 엘다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병사들에게 다른 플레이어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여기서 장완이 강한 힘을 쓴다면 성운의 주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장완이 계획한 것은 간단한 전술이었다.
‘그저 패배한 적의 뒤를 쫓는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후회하게 해 주겠어.’
두 번째 후위가 방진을 친 곳 앞에는 그늘진 숲이 있었다.
흑린의 기병대에선 사각인 공간.
이 자리에 장완은 만굴의 기병대를 숨겨 두었다.
‘창병을 모루로 삼고 기병대를 망치로 쓰겠어. 한 방 정도는 먹여 주지.’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만굴군의 보병대 손실을 감안하면 적 기병대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입힐 필요가 있었다.
‘왔다.’
흑린의 기병대가 보병대에 도달하기 직전, 만굴의 기병대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측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정면을 향해 달리는 흑린 기병대로서는 절대 피할 수 없었다.
“됐어!”
하지만 장완의 탄성은 조금 이른 것이었다.
장완은 흑린 기병대 지휘관의 이상한 명령을 들었다.
“조준!”
‘조준… 이라고?’
장완이 이제서야 기병대의 무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흑린 기병대의 손에는 하나같이 긴 막대에 달린 쇠뭉치가 들려 있었다.
흑린 기병대는 달려드는 만굴 기병대를 향해 그 쇠뭉치를 겨누었다.
장완은 이제서야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손대포!’
“발사!”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쇠뭉치 끝에서 불이 뿜어졌다.
손대포에서 발사된 돌 파편들이 흰 연기를 휘감아 헤치며 만굴 기병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대로 머리에 맞아 기절한 말, 낙마하는 기병들, 넘어지는 앞의 말에 함께 발이 걸리는 이, 급하게 말의 진행 방향을 돌리거나, 놀란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자리에 멈춰서는 이들까지 순식간에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흑린 기병대는 몸을 덮고 있던 흰 연기를 뚫으며 놀란 보병진을 붕괴시켰다.
‘젠장!’
─┼
이번에는 라크락의 황금 창날이 AR1026이라 불리는 플레이어, 또는 암본이라 불리는 신을 베어 냈다.
암본은 순간 무어라 외칠 기세였지만, 라크락의 동작이 더 빨랐다.
라크락은 무너져 내린 암본의 좌상반신에 달린 머리를 창으로 내려찍었다.
엄청난 전류가 쏟아지며 땅 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암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라크락은 암본의 공격에 찔렸던 몸 이곳저곳을 한 번씩 들여다보거나 어깨를 돌리거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몸의 이상을 확인했다. 정말로 필요해서 하는 동작이라기보다는 생전에서부터 이어진 습관에 가까웠다.
라크락은 허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바닥에 누워 있던 르나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괜찮습니까?”
“아, 고마워.”
아직 자신의 사제 몸 안에 강신해 있던 룬다는 라크락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크락이 말했다.
“야천께서 말씀하시길, 암본이 죽었다는군요.”
“아, 그건 나도 확인했어.”
룬다가 그대로 누운 채 잠시 멍 때렸던 이유가 있었다.
룬다는 자신 앞에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플레이어 ‘AR1026’이 봉신되었습니다.」
「플레이어 ‘AR1026’을 쓰러트린 최고 기여자…」
「…플레이어 ‘네뷸라(64.3%)’」
룬다는 역시는 역시라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반란을 통해 주력 병력을 쳐부순 것은 자신이었지만, 현신체로 나타난 걸 죽인 건 라크락, 네뷸라의 사도였다.
‘그나마 70퍼센트까지 안 올라간 건 내가 어느 정도 쓸모 있긴 했었다는 말이겠지.’
룬다는 일단은 그 부분을 위안 삼기로 하였다.
잠시 배신과 그에 따른 승리에 대한 여운이 룬다를 스쳤는데, 그 감상을 어지럽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움직여.”
“어?”
“움직이라고. 신앙 날아가는데 계속 강신한 상태로 있을 거야? 에이알 죽은 거 확인했잖아. 전쟁 안 끝났어.”
적염 반란군과 금안군은 완파되었고, 만굴군은 후퇴 중이며, AR1026은 봉신, 즉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끝난 거 아냐?”
“끝? 계가를 깔끔하게 해야 끝이 나지.”
계가.
룬다의 기억에 따르면 바둑 용어였다.
게임이 끝나면 흑돌과 백돌이 서로 몇 집을 냈는지 계산을 하는 것을 말했다.
‘배신이 어쩌고는 물어보지도 않네.’
건조하고 깔끔했다.
룬다가 르나르의 입으로 말했다.
“가야겠어.”
라크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측은한 동업자를 보는 눈빛이었는데, 그게 또 위로가 된다는 점이 룬다에게 황당한 부분이었다.
룬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룬다의 배신과 AR1026의 죽음으로 전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음은 분명해졌다.
장완은 나름의 실수를 극복하려고 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후퇴 도중 흑린군에 대한 타격은 미비했으나 더 중요한 이득을 거두었다.
자신의 만굴의 병사들을 3분의 2 이상 생환시켰고, 더불어 금안의 병사들까지 원호하여 3천명의 병사들을 살려 보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신앙 자원이 소비되었으나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장완의 수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AR1026의 죽음 이후, 주요 전장은 단염의 데이머릿이 아닌, 적과로 옮겨졌다.
왜냐하면 위즈덤이 1차 원정군을 이끌고 복수전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위즈덤은 결코 무리해서 적과의 중앙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큰 농경 지대와 광맥 마을, 주요 상업로 등을 점령하거나 파괴했다.
덕분에 성운의 도움과 라크락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위즈덤의 1차 원정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은 어려웠다.
결국 위즈덤의 1차 원정군은 퇴각했지만 적과가 입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룬다는 병사의 피해가 적었다고 안도했지만 성운은 위즈덤이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고 판단했다.
룬다가 이유를 묻자 성운이 말했다.
“자원 생산을 방해했잖아.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싶다는 거지.”
“그냥 화풀이한 건 아니고? 그대로 주력 부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냐?”
“글쎄.”
성운은 이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만굴과 금안, 그리고 석면의 1차 원정군이 완전 퇴각한 이후, 장완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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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완은 성운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입을 열었다.
“항복 제안이야.”
“항복?”
장완은 성운이 비아냥대기 전에 일을 끝낼 심산으로 재빨리 말했다.
“단염을 그대로 넘겨주겠어. 여기서 말하는 넘겨준다는 말은, 그걸 수복하기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말이야. 크람푸스는 이미 동의했어. 여기에 더해 금안의 3분의 1도 넘겨줄 거야.”
룬다의 적과를 동맹으로 사실상 같은 나라로 취급한다면, 장완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흑린은 전쟁 이전보다 네 배 이상의 국토 크기를 가지는 셈이었다. 그 자체로 제3 대륙의 최고 강국이었다.
“그 외에도 적과에게서 빼앗은 점령지를 반환하겠어.”
성운이 손을 올려 장완의 말을 끊었다.
“주겠다는 게 많은데, 뭘 바라는 거야?”
“전쟁 중지.”
“또.”
“보복 금지.”
“또.”
“에이알의 봉신상. 아무튼, 네뷸라. 방금 말한 게 끝은 아니야. 전쟁 보상금에 대해서도 알려 줄 텐데…”
봉신상은 플레이어가 봉신될 경우, 아이템화된 작은 동상이었다.
해당 플레이어의 모습을 한 동상으로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었다.
성운이 간결하게 말했다.
“거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