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엘다르가 말했다.
“그럼 저희 다음 상대가 데이곤이나 크툴루라는 겁니까?”
그 말에 룬다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데이곤? 크툴루? 그게 뭐죠?”
“아, 러브크래프트 모르시는구나. 제가 설명하자면…”
성운이 말을 끊었다.
“내 생각에 러브크래프트니 뭐니 하는 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야. 어차피 대륙의 지성체들이 사용하는 ‘공용어’는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야. 우리 시스템 창으로는 적당히 번역돼서 등장할 뿐이니까.”
신나서 설명하려던 엘다르는 입술을 살짝 내밀긴 했지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뱀파이어가 나왔다고 이 땅에 브램 스토커가 관계된 유물이 나온 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진 않사옵니다.”
“어째서?”
“여러분이 상대했던 뱀파이어는 구체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뱀파이어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제1 대륙에서 정확히 알려 주진 않았지만 늑대인간도 그랬을 것 같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성운도 동의할 수 있었다.
“이름이 그냥 아무렇게나 주어진다는 건 아니란 이야기지?”
“네.”
“그럼 이름 자체가 힌트가 되어서 놈들의 특징을 유추할 수도 있고?”
엘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이 말했다.
“타당한 이야기긴 한데, 이 세계, 즉 로스트 월드가 게임이듯 이것도 결국엔 지구의 영향을 받는 게임이라는 건가?”
그 말에 위즈덤이 말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네뷸라.”
“반대로라니?”
“지구가 이 게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성운이 답했다.
“흥미로운 가설이군.”
“로스트 월드를 하면서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나? 지구의 고대에는 여러 종족들이 있었지만, 인간을 주종족으로 한 플레이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거지. 그리고 ‘최고 효율’을 위해서 인간 외 종족을 모두 멸종시킨 거야.”
최고 효율은 로스트 월드에서 종종 나오는 플레이 방식이었다.
종족 다양성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만, 끊임없이 갈등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자원이 계속 소모된다.
그래서 게임의 후반부에 다다르기 전에 종족주의와 우생학을 내세워 다른 종족을 모두 멸종시켜 버리면 갈등이 엄청나게 줄어들어 후반부 게임 전개를 적은 갈등으로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물론 성운이 보기에 멀쩡한 플레이는 아니었다. 갈등을 무마시키는 데 비용이 꾸준히 들어도 최고 효율 달성을 위한 멸종에 드는 비용보다는 적다. 최고 효율은 재미로 하는 컨셉 플레이일 뿐이었다.
성운이 말했다.
“지구의 역사가와 지질학자, 고인류학자를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지구에서도 로스트 월드와 같은 게임이 벌어졌다면 틀림없이 그런 흔적이 남아 있었겠지.”
“…최고 효율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 행성도 지구나 다름없이 실재하는 세계라는 건 인정해야겠지. 그런 면에서 이곳은 지구와 동등하다.”
성운은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엘다르, 보아하니 여기서 딥원이란 단어를 제일 잘 아는 것 같은데 설명해 볼 수 있나?”
“물론이지요!”
엘다르는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엘다르가 설명했다.
“딥원이 최초로 등장한 건 P. H.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데이곤’에서였지만, 본격적으로 그 특징이 나온 건 같은 작가의 ‘인스머스의 그림자’로…”
“말 끊어서 미안한데, 본론부터 말해 줄래?”
엘다르가 다소 시무룩해져 말했다.
“물속에서 살아요.”
“특징이 그것만은 아니겠지.”
“딥원에 영향받은 다른 콘텐츠에서는 잘 나와 있지 않은 설정인데, 이 종족과 교류하거나 저주를 받으면 딥원으로 변하기도 해요.”
“교류? 단순히 교역만 해도 그렇게 된다는 거야?”
“…어, 아뇨. 그러니까, 피가 섞이면요?”
크람푸스가 끼어들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처럼 질병의 특성을 가진 건 똑같은 건가?”
“그건 확신하기 어렵긴 하네. 엘다르 또?”
“어, 광신도일까요? 데이곤이나 크툴루 같은 고대 신을 섬겨요.”
“그건 쓸모 있는 정보라고 하긴 어렵군. 별로 그런 속성이 없었던 뱀파이어들도 그랬으니까. 또 없어?”
엘다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떠올렸다.
“아, 작품 속에선 들키지 않게 숨어 살아요.”
“어떤 방식으로?”
“주인공이 평범한 마을인 줄 알고 방문하지만 알고 보니 딥원에게 점령당하고 딥원과 협력하는 마을이었던 거죠.”
성운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돌아보았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저건 중요한 문제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침입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니까.”
“플레이어가 인식하지 못했다면 문명 충돌 이벤트도 없었을 거야.”
“해안가 전체를 전수 조사하는 식으로 해야겠군. 사제들에게 어떤 계시를 줘야 하지?”
“‘바다 속에서 새로운 마왕의 간자들이 나타났다’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장완이 말했다.
“우리 암굴 쪽까지 영향이 왔을까?”
“그건 알 수 없지. 하지만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건 나쁠 것 같지 않은데.”
잠깐 동안 남쪽 해안을 끼고 있는 플레이어들 사이에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다.
위즈덤이 말했다.
“괜찮다면 제4 대륙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겠나?”
“아직은 밝혀진 게 없잖아. 더 이야기할 게 있을까?”
성운이 답하며 등 뒤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흰 거미 힐로브가 딥원의 사체를 가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테면 네 번째 대륙은 심해에 있을지도.”
“그건 확신하긴 어렵겠는데. 일단 대륙이라는 말을 쓴 거 보면 수면 위에 있다는 거 아냐? 난 오히려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싶은데.”
“다른 부분?”
성운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건 가정일 뿐인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게임의 제한 인원은 32명이었지. 그중 27명이 지구에서 온 플레이어고. 그런데 이미 새로운 두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탈락했고 세 번째가 등장했지.”
“…그 말은 샤차 말고도 새로운 플레이어, 즉 악신이 두 명은 더 등장할 거라는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 새로운 대륙에 말이야. …그게 정말 대륙이라면 땅이 많이 남잖아?”
그 말에 플레이어 모두가 침음을 내거나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나쁜 가정이었다.
샤차는 어떨지 모르지만 절우비만 하더라도 독특한 종족을 가져오고 플레이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NPC라고 무시할 만한 요소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 내지는 세 명의 플레이어가 대륙을 안정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게다가 플레이어가 셋이라도 사실상의 동맹일 가능성이 높으니 대륙 전체의 자원을 별다른 갈등 없이 얻어갈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에이알이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모든 플레이어가 단합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요?”
성운이 말했다.
“일단, 난 반대야.”
“왜죠?”
“남쪽 대륙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진 몰라도 일단 우리와 거리가 가까운 것 같아. 현재 문명 발전 단계에선 다른 대륙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어. 생색내기 수준으로 도와주고 우리에게 더 큰 걸 요구할지도 몰라. 정작 피해는 우리가 볼 테고.”
에이알은 주저하다 또 말했다.
“저희라도 동맹을 하면요?”
“미안한데, 그것도 반대야.”
“왜요?”
“당장은 내가 제일 가깝잖아? 생색내기 식으로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아.”
그 말에 크람푸스가 웃었다.
“그게 아닐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니?”
“제4 대륙과 제일 가까운 위치잖아. 나는 방금 샤차와 딥원에게 승리하고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겠다는 야망을 엿본 것 같은데.”
성운이 답했다.
“완전 아니라고 답하긴 어렵군.”
제4 대륙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제일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성운이었지만, 달리 말해 제일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도 성운이었다.
느슨한 동맹을 한다고 치더라도 그 경우엔 피해를 나누듯 이득도 나눠야 한다.
크람푸스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장완이 말했다.
“고집을 부릴 거라면 그러라고 해. 나서서 파도를 막아 주겠다면 나는 사양하지 않겠어.”
에이알이 말했다.
“저도 장완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위급해진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즈덤이 말했다.
“그래. 네뷸라, 너라면 혼자서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룬다가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엘다르가 말했다.
“저, 저요? 저도 네뷸라 님을 안 돕겠단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사옵니까?”
“아니.”
“…그럴 줄 알았습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나도 딱히 반대하진 않아. 하지만 놈들과 다음으로 가까운 건 나고, 당장은 해적단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도 보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조금 받고 싶은데, 네뷸라 넌 어떻게 생각하지?”
“그렇게 해.”
성운의 대답 후에 잠깐 침묵이 있었다.
성운은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돌아본 다음 말했다.
“당장은 할 이야기가 없어 보이는군. 헤게모니아한테는 장완이 바로 옆이니 말해 주면 될 것 같은데.”
“알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위즈덤은 곧장 대화를 껐고, 에이알과 장완은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고, 크람푸스도 수고하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남은 것은 룬다와 엘다르였다.
룬다가 말했다.
“그럼 나도 간다. 안녕.”
“무슨 소리야? 넌 남아야지.”
엘다르가 말했다.
“전 가도 되겠사옵니까?”
“너도 남아.”
“…끙.”
룬다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왜? 이야기 끝난 거 아냐?”
“이제부터 시작이지.”
“내가 끼고 있는 해안은 북쪽 해안인데?”
성운이 한숨을 쉬었다.
“에이알이 아까 힘줘서 한 말 못 들었어?”
“뭐 중요한 말 했었어? 나 안 졸았는데? 엘다르 너는 뭐 기억나?”
“글쎄요. 잘 모르겠사옵니다.”
성운이 말했다.
“에이알은 ‘언제라도’ 돕겠다고 말했어.”
“아, 그 사람 착해 보이긴 하더라.”
“그게 아니라, 언제라도 돕겠다는 말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와 샤차의 싸움 사이에 끼어들겠다는 말이잖아. 결정적으로 나 말고 크람푸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겠다고 말했고.”
“어?”
성운은 충분히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랍거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모두 계획 안쪽에 있었다.
“이번에는 절우비 때랑 사건 경향이 많이 달라. 일단 등장과 함께 플레이어 모두가 긴장하고 있으니 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테고 놈들의 무력 수준도 당장은 해적단 수준으로 보여.”
“감당할 수 있는 적이라는 거지?”
“그래. 물론 미지수가 많이 남아 있지만 우리 모두가 100년 넘게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플레이어가 이 시점부터 다룰 수 있는 최고의 무기 두 개가 등장할 거야.”
성운이 말한 것은 마법사와 화약이었다.
룬다와 엘다르 또한 그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을 정도의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그러니 드러난 정보가 적은 적이라도 상대해 볼 만하다고 판단할 수 있어. 아니, 솔직히 상대가 화약이 없다면 딥원이거나 말거나 박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나도 나 혼자 상대하겠다고 한 것도 있지만.”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은 왜 주의해야 한다는 거야?”
성운이 설명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샤차를 앞두고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겠지만, 샤차와 야분 해적단, 남방 제도를 비롯한 남쪽의 섬들은 제4 대륙으로 가는 교두보가 되겠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든 내가 독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싸움을 걸어올 거야.”
룬다가 말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널 공격한다고?”
“그래. 예를 들어서, 지금 야분 해적단에게 점령당한 남방 제도를 되찾아 주겠다는 빌미로 공격해 올지도 모르지. 그럼 이곳의 아스타시디안들은 점령한 플레이어의 종교 영향을 받겠지. 그리고 그 플레이어는 어찌되었든 샤차에겐 땅을 넘겨준 게 아니지 않냐고 할 수 있고.”
엘다르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동맹을 한다고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겠군요.”
“맞아. 그러니까 나보고 동맹을 강요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라고 한 거지. 그게 서로에게 더 속 편하기도 하고.”
동맹을 하겠다고 했다면 좀 더 음습한 싸움이 되었을 터였다.
‘어차피 샤차가 아니었더라도 화약이 발명된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싸움은 일어났을 테지. 육지에서 해상으로 장소가 바뀌고 샤차라는 변수가 추가되었을 뿐.’
성운이 말했다.
“결국 이번 악신 공략은 우리, 그리고 크람푸스와 다른 플레이어, 그리고 샤차. 이렇게 세 개의 세력에 의한 삼파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