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gon's Territory RAW novel - Chapter (257)
무적지경-257화 (완결)(257/257)
무적지경 257화
“저는, 천마의 후예입니까?”
천식은 십연걸을 통해 아니라고 결론지었던 생각을,
다시금 당혹스럽게 꺼내 물어봤다.
천식의 사부는,
“그렇다.”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잠시 천식은 아무 말도 없이 멈춰 섰다.
이게 대체…
소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정보였다.
그리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이어 물었다.
“하지만 분명 천마의 후예는 십연걸인것이…”
“천마의 딸이 꼭 아이를 하나만 낳으란 법은 없지. 그 아이는 쌍둥이를 낳았다.”
“그…렇군요.”
허를 찔렸단 표정으로 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아이를 낳을 때 꼭 하나만 낳으라는 법은 없지.
십연걸과 천식의 용모는 꽤 다른 편인데 이것도 쌍둥이라 해도 반드시 판박이처럼 생기지 않는데다 생활상의 차이가 컸다는 점을 생각하면 있을만한 일이다. 한데 자신의 어머니가 두 아이를 낳았다면 왜 자신만 사부의 아래에 자랐던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왜 저는 데려오고, 십연걸은…?”
“네 어머니는 몸이 약했기 때문인지 아주…늦게서야 회임을 했다. 보통은 회임을 포기했을 시기에 말이다. 그런 만큼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고, 지극 정성으로 출산을 준비했다. 하지만 본래 아이가 들어서기 힘들 만큼 약한 몸에 나이까지 겹쳤다. 쉬운 출산일리 없었지. 그 나마 아이에 대한 의지 때문인지 너희를 낳는데 까지는 성공하고 죽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다. 건강할 리가 없었지. 특히 한쪽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게 저였습니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다.
하지만 자기를 낳기 위해 고통받다 돌아가셨다는 말에는 씁쓸함을 느낀다. 게다가 그렇게 태어나고도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니.
“그래. 제법 곁에 오래 두고 보살펴 줘야 하겠다 싶은 상황이었다.”
“이것 참…”
천식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움, 고마움, 죄잭감, 여러가지 감정이 갑작스럽게 뒤엉켜든다.
이제와서 과거가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역시 과거는 현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의 후예가 스스로는 모른다 하지만 은밀한 감시를 받으며 언제든 지탄받는 상황에 있을 수 있다는 것도…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래서 저를 제자로 삼으셨다는 말이군요.”
“그렇다. 체질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았다. 천마의 후예라고 무공의 천재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 한데 뭐, 제법 생각보다 괜찮았지.”
사부는 천식을 훑듯이 바라보고 슬쩍 웃었다.
천마의 후예라 해서 무에 대한 재능을 반드시 이을 거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르칠 때마다 놀라게 되어 결국 피는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래. 네게 죽이지 말라고 한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식이 한창 십연걸과 싸울 때,
그를 죽이기 진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전음이 들려왔다.
죽이지 말라고.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흠칫 놀라면서도 천식은 그 말을 따랐다. 꿈속에서 들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사부가 이미 전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 두 가지 계기 중 하나였다.
“죽였다면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않으셨겠군요.”
“그래. 네가 죽였다면 어쩔 수 없어서였겠지. 그 때문에 평생 마음의 짐을 굳이 거기 더할 필요야 없는 일이다.”
몰랐다고는 해도 형제를 죽인 셈이다.
작은 죄책감이 될 수는 없겠지.
천식은 사부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 쓰게 웃었다.
“어쩔거냐?”
“제가 형이겠죠?”
“이긴 놈이 형하면 되겠지. 그게 무림의 좋은 점 아니겠냐.”
“……”
그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식은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친형이라는 걸 십연걸에게 밝혀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말하지 않을 생각이냐?”
“언젠가는…말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평생을 천마의 후예란 질곡에 고통받던 녀석입니다. 이제 겨우 그걸 떨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참인데, 거기 찬물을 끼얹는 듯한 짓을 할 수는 없지요.”
십연걸은 이제야 자신이 천마의 후예라는 사실을 짊어지고 그것 떨쳐내기 위한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유화식이 그 길에 동참하고 있다. 갑자기 거기 친형이랍시고 끼어들면 역시 산통을 깨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최소한 녀석이 하는 일이 어느 정도 결과를 낸 다음이 좋겠다 싶었다.
“그게 좋겠지. 최소한 지금의 관계가 잘 정착되고 난 다음 이야기해도 늦진 않을 거다. 잘 안 된다면 잘 안 되는 대로도 그 때 이야기 하는 게 차라리 나을 테고.”
“틀림없이 잘 될 겁니다.”
“뭐 그렇겠지. 그 녀석, 아주 세니까 말이야.”
“…이걸로 알고 싶었던 건 전부 정리된 셈이군요.”
그리고 여기서 과거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끝났다.
사부는 이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라는 듯 물었다.
“이제부터 너는 어쩔 거냐?”
“밖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밖으로?”
“금왕이 같이 해외로 가보지 않겠느냐고 얼마전 제안했습니다. 좀 더 상행로를 멀리까지 확장하고 싶은데 거기 같이 가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제안하더군요.”
“그러면 천축너머 까지 갈 생각이냐?”
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상무역이 금지되어 있지만 육로를 통해, 또한 불법적인 방식으로도 천축까지는 무역로가 개척되어 있고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금왕이 무역로를 개척한다면 천축 넘어서일 수밖에 없다.
“듣기에 세상에는 피부가 검은 사람도 있고, 눈과 코가 아주 큰 이들이 모여사는 세상도 있다고 합니다. 남아로 태어나 그런 세상을 한 번쯤 눈으로 확인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 되겠지요.”
“뒤늦게 역마살이 끼였군.”
“역마살이라기 보다는 중원이라는 게 웃기지 않습니까. 저는 강호무림에 큰 반감은 없지만 이것들이 지들을 두고 중원이라고 하는 게 정말 가소롭더라고요.”
“뭐, 솔직히 우물 안 개구리긴 하지.”
코웃음 치며 제자가 하는 말에 사부는 궁금했다.
중원. 그 얼마나 주제모르는 표현인가.
천식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무림에서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중원이란 표현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애당초 천마의 무공이란 것도 세외의 것들이 중원까지 들어와 종합된 것이고요. 그러니까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까. 중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 밖에 있을 진짜 세상의 모습이.”
“맞다. 중원이랍시고 잘난 척 하지만 결국 고여서 썩어가는 물에 불과한 법이지. 때문에 나도 궁을 빠져 나오게 된 것이고 말이다.”
천마신공의 힘은 근본적으로 잡탕이라는 데서 온다.
그것은 최소한 세 세계의 무리가 종합되고 고도화되어 탄생했다. 막대한 지식이 서로 모여 경쟁하고,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살아남아 융합한다. 불가든 도가든 특정한 사상에 함몰되어 그것만을 진리랍시고 쫒는 우둔한 자들은 결코 천마신공과 같은 높이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넓다는 세상을 한번 쭉 구경해 볼 생각입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친다만…이제 홀몸이라기에도 애매한 상황 아니냐?”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은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자 한다.
이런 포부야 사부로서 천식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러기에는 이미 천식이 홀가분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최소한 두 사람, 천식은 함께해야 될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한 천식의 답은 명료했다.
“그야 물론, 둘 다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하나는 알겠다만, 다른 하나는 좀 어렵지 않을까?”
사부는 잠시 당황하다 되물었다.
이지청이야 홀가분하게 천식과 같이 움직여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질이 뛰어나고 아름답다 하나 그저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설아란의 경우는 아니다. 그녀는 친왕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는 최고 수준의 권력자다. 자기 세력을 가지고 관리해야 되는 사람이 남자 하나 보고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리가.
물론 천식도 그 점을 모르고 계획을 짠 건 아니다.
“진정한 천하를 주유하는데 짧은 시간이 걸리진 않겠으나 또한 그렇게 까지 긴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오 년 정도를 잡으면 전부는 무리더라도 세상을 한 바퀴 둘러보고 제 자리에 돌아오는 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그 정도 시간은 궁주도 중원에 묶여 있어야 하는 입장이니.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야 뭐 별일이 없으면 말이다. 별 일이.”
사부는 혀를 찼다.
일견 천식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오 년이면 천하 정세가 바뀔 수도 있는 시간이다.
권력자 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천하가, 그리고 자기 세력이 평탄히 흘러가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물론 천식에게는 이미 그런 선택을 지지하고 보충해줄 강호의 인맥들이 이미 많긴 하나…
이 점에 대해, 천식은 사부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혹여나 별 일이 생기면 그건 모쪼록 사부께서 잘 처리 좀 해 주십사.”
“못 본 사이에 아주 시건방져졌구나.”
“그렇지만, 제자가 성장한다는 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자기를 바라보는 사부를 향해,
천식은 으하하 웃으며 말대답을 했다.
사부는 고개를 젖다가, 어딘가 그리움이 느껴지는 태도로 웃었다.
“그래. 그렇지. 모든 아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고, 모든 제자는 스승을 넘어서길 노려야 할 때가 있으니…그런 것이겠지.”
시간은 흐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늙고 또한 죽는다.
어린 제자가 이렇게 커서, 다음을 향해 떠나려 한다는데 대해 새삼스런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사부는 잠시 회한을 느꼈고,
이 정도 부탁은 그야 못 들어줄 일도 아니라 여겼다.
사실 자신이 세상이 이룬 것이 중원이란 하찮은 세상에 고여 썩지 않기 위해 지금 이 녀석이 진짜 거대한 세상 밖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뜻을 이어받는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늙은 사부에게 제 뒤처리 시켜 놓고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는다면 사내라 할 수 없지. 게다가 너, 내게 크게 사과할 일이 있지 않더냐.”
“그건 음…”
천식은 머뭇하는 표정이 됐다.
수행에서 튄 걸 말하는 모양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부의 말은 역시 옳았다.
당시에는 형망 다음 다시 형인하라 했을때 너무 어이가 없고 기약이 없어서 튀었으나…결국에는 지나가야 할 길이었다.
사부는 낄낄 웃었다.
“이래서 부모와 사부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것이지.”
“그러나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일갑자는 걸렸을 겁니다.”
“대신 죽을 고비를 겪지 않아도 좋았겠지.”
“대신 사람을 알진 못했겠지요.”
투덜거리듯, 천식은 덧붙였다.
무武, 만을 근본으로 본다면 사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천식은 밖으로 나옴으로써 소중한 여러 인연을 얻었다. 어쩌면 그러한 인연이 수련 자체보다도 그를 형월로까지 더 쉽게 이끌어줬다.
사부도 그 점은 인정하는지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건 네 말이 맞다. 그렇다고 봐주진 않을 거다만.”
“으음, 알겠습니다.”
천식은 나름 각오를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사부는 이런 면에서는 정말 냉엄하다.
“좋아. 가봐라.”
그 말을 듣고서,
천식은 발걸음을 떼려다 멈췄고,
사부에게 절하며 고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사부님.”
“너는 좋은 제자였다.”
사부 또한 웃으며 그 절을 받았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