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62
◈ 562화. 끌어들이면 되는 일 (2)
마탑.
몰려드는 인파.
누군가 말했다.
“다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첫마디부터 어이를 상실한 티가 역력했다.
“아니, 그래요. 십좌의 마왕 중에 머리가 어떻게 된 놈이 한 명쯤은 있을 수도 있다고 쳐요. 그래서 우리한테 우호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칩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행동이잖아요?”
마왕, 바르바토스.
그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 세계적인 아르카나 TV 프로그램.
VBC의 투데이 아르카나 출연 제의를!
누군가의 얼굴에 들이밀어 지는 큼지막한 태블릿.
액정 속엔 기자에 둘러싸인 바르바토스가 있었다.
-“기쁘게 화답하죠. 인간과 악마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 건가?
“신뢰는 개뿔이 신뢰. 저게 대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래서 다들 마탑으로 모이는 거잖아요~?”
늘어지는 말꼬리.
특유의 목소리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정체를 짐작하게 했다. 샤이닝의 카밀라다. 네임드 플레이어의 등장에 인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미친, 카밀라다. 나 실물은 처음이야.”
“어째, 엄청나게 오랜만인 것 같다?”
록스의 타락과 탈퇴 이후.
“다들 오랜만이네요~”
공성전을 계속해온 샤이닝이었다.
상실한 능력에 비해 기이의 땅 서울에 과한 아지트를.
수많은 영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카밀라 특유의 능청은 여전했다.
“알다시피 제가 워낙 바빠서 좀 뜸했죠?”
보다시피 샤이닝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록스가 돌아오지 않아도, 카밀라가 자리를 비워도 더는 누구도 샤이닝의 아지트를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이어나갔다는 뜻.
“사람에 이리저리 치이느라요.”
일련의 경험 덕분일까.
카밀라에겐 복잡한 수싸움이 얽힌 이 상황이 보였다.
갈라진 손톱을 매만지면서 말을 잇는다.
“바르바토스에게 노림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탑 내부에서 마음대로 설칠 수 있을까요? 악마 특유의 상태이상을 활용하고 싶어도 카메라가 모든 걸 찍고 있는 상황에서? 글쎄요, 미치지 않고서야.”
“확실히 변화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요. 수상한 낌새가 보이는 그 즉시.”
스윽.
“찍.”
카밀라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타인의 시선에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여유와 장난이 섞인 행동이었거늘.
이건 필사적인 연기였다.
이 순간, 카밀라는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기회가 아닐까.’
머릿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상상을.
바르바토스의 심장에.
이 화살을 꽂아넣는 자신의 모습을.
‘드미트리.’
악마, 그중에서도.
드미트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십좌였다.
그들의 출현으로 역류한 균열 속 몬스터들.
놈들에게 드미트리는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까.
인파가 저희끼리 재잘거린다.
“카밀라 씨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확실히 저희가 손해 볼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일단, 바르바토스가 모든 조건을 받아들였잖아요?”
“백문백답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뭣보다 어떤 질문이 쏟아질지 기대되지 않아요? 마탑의 마법사들도, 플레이어들도, 마지막으로 이호열 총대장님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
……그래,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드미트리, 널 기억하는 이들이 적어도 여기엔 없는 모양이야.
카밀라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정말 보통이 아닌 악마네, 바르바토스?’
바르바토스.
업데이트 내역이 떠오른 이후 지금까지.
녀석은 단 한 번도 인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밀라는 시험에 들고 있었다. 그 내면이 어떤 적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날 지켜봐 줘.’
그녀, 스스로도.
‘제발 내 곁에서 나를 말려줘, 제시.’
위태롭다 여길 정도로.
*
마탑 치유학파의 별실.
“아니이이! 제정신이세요, 벤쉬 선임님?”
“내가요? 뭐가요? 뱅그릿.”
“당신,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니까요?”
두 선임 마법사는 오늘로 티격태걱거리고 있었다.
치유 기간 도중에도.
그 입들을 얌전히 다물고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아,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가긴 어딜요?!”
한날한시 별실에 신세를 졌거늘.
두 사람과 다르게 커튼과 마이아는 그 상태가 크게 호전되어 있었다. 목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두 다리로 설 수 있었다는 뜻.
열을 내던 뱅그릿이 결국 미간을 찌푸렸다.
“아세요? 모든 게 벤쉬 선임이랑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상처가 벌어져서 아물지 않은 탓이라니까요? 세상에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단, 몇 분도 입을 다물지 않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요!”
“쯧쯧.”
“이런 상황에 혀를 차신다구요?”
“뱅그릿, 당신은 위대한 마법사답지 않군요.”
“……위대한 마법사요? 갑자기?”
위대한 마법사의 필수 자질은 바로 호기심이었다.
추상적인 목표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선 탐구를 향한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오직 무한한 호기심만이 가시밭길과도 같은 진리 탐구로 나아갈 수 하는 법!
“뱅그릿 선임은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하지만 벤쉬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절뚝거리면서도, 낑낑거리면서도.
자신의 의복을 걸치기 시작하는 벤쉬 윌리엄.
“바르바토스, 녀석이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을지요.”
벤쉬의 동공이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분명, 어떤 질문에도 답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녀석이 마탑이 발을 들이는 지금이야말로 나의 호기심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잖습니까?”
“대체 어떤 질문이 하고 싶으신 건데요?”
“일단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물을 겁니다.”
“……네?”
물론, 그 불꽃은 단순히 뜨겁지만은 않았다.
벤쉬의 동공에 깃든 건 뜨거우면서도 냉철한 분노였다.
“인간을 기만할 때 진정으로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지.”
“……벤쉬 선임님.”
“부모의 몸을 빼앗아서 부모의 손으로 그 자식을 죽일 때, 내면에서 울부짖고 있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들에겐 진정으로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리는지.”
“…….”
“살려달라 애원하는 인간을 무참히 찢어발길 때, 정말로 행복에 겨운 웃음이 흘러나오는지. 나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뱅그릿.”
황궁 마법사, 내쉬 윌리엄.
-“송구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자신의 아우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문의 소식을 전해 들은 벤쉬였다. 마탑에 입성하고, 선임 마법사 자리에 오른 지금. 윌리엄가와의 인연은 끊었지만, 혈육의 정이란 그런 것이었다.
벤쉬가 심각해진 뱅그릿을 향해 웃어 보였다.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뱅그릿. 하지만 말 그대로 궁금한 것뿐입니다. 바르바토스, 녀석이 인간과 악마의 신뢰를 언급했으니까요.”
벤쉬는 말하며 동시에 생각했다.
‘만약, 진심이라면.’
나는 악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무언가를 완전히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내 능력은.
어디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걸까.
‘더불어 마탑과 가문의 빚은…….’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러니 함께 갑시다, 뱅그릿. 크리스탈 홀로.”
“……진짜 말은 갈수록 그럴싸하게 잘하시네요.”
“칭찬이죠? 그나저나 당신, 그런 차림새면 떨어져서 모른 척할 겁니다? 바르바토스도 모자라서 사방팔방에서 인파가 몰려드는데, 선임답게 신경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옷매무새.”
.
.
.
슥.
거울 앞, 언제나처럼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거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육망성 브로치.
나는 브로치를 정렬하며 생각했다.
‘완전히 새로운 패턴인데.’
인간에게 적의를 품지 않는 악마라니.
그것도 십좌가 말이야.
파이몬 때부터 뭔가 다르다 했더니만.
바르바토스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파이몬이 내게 호의를 가졌던 것처럼.’
바르바토스는 나를 넘어서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 전체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마계의 지식이었다. 나는 간만에 전리품을 들췄다.
[마계의 성서, 진(眞) 네크로노미콘] [등급 : 에픽] [제한 : 오직 마계의 존재만이 열람할 수 있다.] [효과 : 이해 시, 마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다.] [설명 : 마계의 리치, 디스커스가 집필한 서적. 악마에게 침식된 마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서술되어 있다. 더불어 위험천만한 마계에서 디스커스의 안식처에 출입할 수 있는 증표가 된다.]디스커스.
열 번째 왕좌의 마왕이었던 부에르를 위협할 정도의 강함을 지녔던 언데드. 호시탐탐 십좌의 자리를 노렸던 만큼 디스커스는 십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았다.
‘다만.’
바르바토스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르바토스가 디스커스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 이 두꺼운 책 속에서 바르바토스를 향한 디스커스의 평가는 달랑 한 줄에 불과했다.
──────
십좌의 이름이 아까운 겁쟁이.
──────
확실히 겁쟁이다운 행보긴 하지?
‘악마가 돼서는 말이야.’
악마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러나 나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게 직업병 때문에 방심하고 싶어도 방심할 수 없었거든.
[클래스 : 악마 사냥꾼]코 끝에 맴도는 냄새.
그건 틀림없는 십좌의 향이었다.
차원이 다른 악의(惡意)였다.
‘절대로 잊어선 안 되지, 마왕 쟁탈전을.’
아무리 만만해 보인다고 한들.
바르바토스는 서열 8위의 십좌였다.
파이몬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부에르보다도 더한 강자였다는 뜻이다.
‘애초에 보면 알 수 있잖아?’
주관적인 평가는 제쳐놓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바라볼까? 바르바토스는 혼자서 마계에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아르카나 대륙에서 현실로 진입했다.
‘마땅한 제물도 없이.’
성전 연합군이 집결했던 코앞으로 말이야.
그것도 모자라서는 뭐? 투데이 아르카나에 출연하시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인터뷰까지 했지. 그랑펠, 어째서 네가 입맛이 뚝 떨어졌는지 알 것 같다.
‘그 어떤 악마보다도 불쾌해.’
이 순간, 세상은 말하고 있었다.
-새로운 화합의 장 열리나? 바르바토스의 결단
-바르바토스, “악마라고 모두 같지 않다.”
-바르바토스, “악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바르바토스, “나는 평화를 원한다.”
-AAU, “현재 상황 예의 주시 중……. 방심은 없어.”
바르바토스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을.
악마에게 또 속아 넘어가는 거냐고, 세상을 헐뜯을 순 없으리라.
여태까지 저런 태도를 보여온 악마는 바르바토스가 유일했으니까.
심지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시스템마저도.’
바르바토스의 무고함을 증명했잖아?
그게 바로 내가 그랑펠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고 있는 이유였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녀석은 싸움 없이 주도권을 가져간 거다.’
왜, 지금도 봐라.
바르바토스의 의도에 따라서.
수많은 인파가 마탑으로 집결하고 있었으니까.
‘과연, 십좌의 마왕이셔?’
겁쟁이라고 불리면서도 십좌의 자리를 지켜온 데에는 다른 방면으로 특화된 능력이 있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한 가지를 간과했구나, 바르바토스.
또각.
다른 건 몰라도 말이야. 마탑 크리스탈 홀에서 백문백답 제안을 받아들인 건 네 실수라는 의미다. 그래, 네가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응한 덕분에 나는…….
“격식을 갖췄다면 절차에 따라 응해주마.”
그놈의 격식에 어긋나지도 않으며.
네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두꺼운 마탑의 규율을 친절하게도 읊어주리라.
‘네가 아무리 마안으로 날 관음했어도.’
내가 규율서를 읽는 모습까지 엿보진 않았을 거 아냐?
그 말인즉슨.
너는 마탑의 절차에 관해 알지 못한다는 거지!
그렇다.
크리스탈 홀에서 질의응답을 하게 될 자격은 오직.
토파즈 홀의 시련을 통과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법.
이쪽에서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악마보다도.
어쩌면 방송국 놈들보다도 악랄한.
정기 학회를 앞둔 마법사들 사이에서의.
우리 그랑펠 님의 악명을……!!
“이 시간부로 사전검증을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