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20)
320 화 망가진 것.
망가진 것.
왜애애애애애앵!!!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날이 떨어지는 와중, 사도는 고민했다.
‘손으로 한 번 막아볼까?’
사도로서의 증거인 광배(光背)를 발동시켰음에도 아까 전,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 걸 보면 상대는 달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난은 제법 긴 세월 동안 여러 달인을 상대해본바, 달인이라고 해서 마냥 다 비슷한 수준인 것 또한 아니었다.
같은 달인끼리도 크나큰 수준 차이가 있었고, 개중 갓 경지에 도달해 가장 낮은 수준의 달인들은 자신을 달인의 경지에 올려준 무기와 비슷한 형태의 무기가 아니면 제대로 달인의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자신의 눈앞에 떨어지는 종류의 기형 병기는 아까 저자가 사용했던 검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세난은 떨어지는 톱날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 맨손으로 저 기형 병기마저 막아낼 수 있다면 이번 전투에 있어서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으니.
왜애애애애애앵!!!
톱날과 손바닥이 맞부딪히자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날이 그대로 자그마한 손의 피부를 찢어발기며 거침없이 파고들어 왔다.
잘려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손가락들.
반사적으로 손을 빼냈지만, 손바닥이 마치 맹수에게 뜯어먹히기라도 한 듯 뜯겨나가는 결과까지 피할 수 없었다.
세난이 몸을 뒤로 빼내자, 새카만 갑옷을 입은 연이 암녹빛 안광을 빛내며 꼬마 사도에게로 따라붙으며 재차 도살자를 휘둘렀다.
왜애애애애애앵!!!
허공을 찢어발기는 검의 굶주린 비명이 울려 퍼지고 날카로운 톱니 이빨들이 사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난은 그 찰나의 틈 동안 뜯겨버린 오른손에 생명력을 집중했다.
달인에게 베인 상처는 재생이 더디긴 했지만, 재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즉, 다소의 비효율을 감수하고 비축해둔 생명력을 때려 붓기만 하면 얼마든지 고속으로 재생해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뜻.
과할 정도로 넘치는 생명이 재생을 넘어 마치 현상을 복구하듯 순식간에 세난의 오른손바닥을 다시 구성해냈다.
세난은 재생해낸 오른손으로 눈앞의 톱니투성이 검의 옆면을 후려쳤다.
사도의 타격과 동시에 도살자 검면이 살짝 휘며 충격을 흘려냈다.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타격을 흘려낸 도살자가 세난의 몸을 향해 떨어졌다.
아까부터 전신에서 악신의 신성을 풀풀 풍겨대기 시작하더니, 상대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층 더 빠르고 강해진 상태였다.
소년 사도의 푸른 동공이 고속으로 움직이며 상황에 대한 정보를 뇌에 쑤셔 박았다.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반격을 가할까, 그게 아니라면 일단은 피하는 데 집중할까.
두 선택지를 빠르게 저울질한 세난은 이윽고 자리를 크게 박차며 몸을 뒤로 크게 한 번 빼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조금 전과 같이 손바닥 같은 국소 부위의 재생은 몰라도, 달인한테 치명상을 허용한 다음 생명력을 억지로 쏟아부어서 재생해내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생명력의 사용방법이었으니.
세난이 뒤로 크게 훌쩍 물러나자 검은 갑옷을 입은 연이 재차 자리를 박차며 세난의 뒤를 쫓아 또 한 번 도살자를 휘둘렀다.
솔직히 그 움직임을 보며 세난은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현재 자신은 6옥(玉)을 흡수한 상태였다. 6옥을 흡수한 자신과 거의 근사한 속도로 움직이다니. 대체 무슨 악신의 사도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뛰어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왜애애애애앵!!!
한 번, 두 번, 세 번. 말 없는 추격과 도망 속에서 세난은 찰나의 여유를 조금씩 벌어나갔다. 6옥을 흡수한 자신과 거의 버금가는 신체 능력이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이 아주 근소하게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여유를 살려 전투에서 이득을 쌓아가면 될 뿐.
넷, 다섯, 여섯.
마침내 여섯 번의 후퇴 끝에 세난은 자그마한 호흡의 간격을 벌어냈다. 아주 자그마한 간격. 그 간격의 틈만 있다면 충분했다.
왜애애애애앵!!!
도살자가 종이 한 장만도 못한 차이로 소년 사도가 있던 공간을 찢어발기고 틈을 파고든 사도는 그대로 검은 갑옷의 가슴 한복판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쾅!!!
굉음과 함께 검은 갑옷이 그대로 튕겨 나가 벽들을 깨부수며 처박혔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세난은 자신의 주먹 끝에서 느껴진 선명한 감각을 통해 새카만 갑옷 속에서 상대의 육체가 최소한 곤죽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세난의 예상대로 방금의 일격으로 연은 검은 이모탈리움 갑옷 속에서 완전 곤죽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무슨 힘이…’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맨몸으로 사도의 직접 타격을 허용한 게 아니라는 점. 선명한 헤일로를 머리 뒤에 띄운 사도의 신성 가득한 공격을 맨몸으로 처맞았다간 재생은 꿈도 못 꾸고 그대로 즉사해버렸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막으려고 살짝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모탈리움 갑옷으로 전신을 꽁꽁 싸맨 거지만.
이 실론의 유물 갑옷이 사도의 공격을 한 번 걸러주는 거름망 역할을 해준 덕에 재생력 자체에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충격에 살과 근육이 서로 뒤섞여 곤죽이 되었던 육체가 빠르게 재생되어갔다. 다만, 부패의 문을 끊임없이 발동시키고 있는 터라 내부 장기들은 끊임없이 썩어들어가고 있긴 했지만.
‘이거 쉽게 이기긴 힘들겠는데.’
연은 상대가 굳이 쫓아와서 추가 공격을 날리지 않는 것을 충분히 여유 있게 사용했다. 살과 근육의 재정립이 끝나고 나서야 연은 자욱한 먼지 속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절그럭절그럭.
금속 갑옷 특유의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연이 다시 일어서자 소년 사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셨어요? 저는 분명 제대로 쳤는데.”
퉤 하고 피 가래를 바닥에 뱉어낸 연이 짧게 답했다.
“잘.”
다시금 자세를 취하자 도살자의 톱날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날 선 비명을 토해냈다. 세난은 여전히 여유가 가득한 모습으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진짜 튼튼하시네요. 솔직히 감탄했어요. 조금 힘 조절을 못 한 탓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앗?!”
왜애애애애애애앵!!!
대화 따윈 사치라는 듯이 도살자가 떨어졌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는 양손으로 도살자를 잡고 휘두르지 않는다는 점. 연은 한 손으로 도살자를 잡고서 눈앞의 사도를 향해 내리그었다.
당황한 척하는 목소리와 달리, 이미 다 예상했다는 듯이 생글거리며 웃던 소년이 슬쩍 뒤로 물러나며 도살자의 간격 밖으로 몸을 빼냈다.
왜애애애애애앵!!!
연은 쉬지 않고 날 선 비명을 연신 내뱉어대는 도살자를 휘두르며 사도를 쫓았다.
베고, 베고, 또 벤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살자는 계속해서 정말 아주 근소한 차이로 사도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을 긁어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세난은 아까와 같이 근소한 육체 능력의 우위를 이용해 찰나의 틈을 착실하게 쌓아나갔다. 상대방의 맷집인지 재생능력인지 모를 능력이 놀랍기는 했지만, 그게 다일 뿐이니.
넷, 다섯, 여섯.
마침내 다시 한번 쌓아 올린 틈 속에서 연신 울어대는 톱니 검을 피해 그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하게 아까와 같은 그 자리. 연의 가슴 한복판에 소년 사도의 주먹이 꽂혔다.
충격을 버텨내지 못해 이모탈리움 뼈를 제외한 연의 살과 근육, 내장이 함께 곤죽이 되어 섞이기 시작하던 그때.
덥석.
여태 놀고 있던 연의 왼손이 기다렸다는 듯이 세난의 자그마한 팔뚝을 붙잡았다. 연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살자를 치켜들며 웃었다. 선명한 암녹빛 귀화가 갑옷의 눈구멍에서 피어올랐다.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감히 날 앞에 두고 때린 데 또 때리면서 신선놀음을 하려고 해?!”
왜애애애애애애앵!!!
도살자의 날 선 비명이 울리고, 세난이 다급하게 연의 손아귀를 떨쳐내려 했지만, 연은 악착같이 소년의 팔뚝을 잡고 버티며 그대로 도살자를 내리그었다.
“아주 제대로 쓴맛 좀 봐라! 이 꼬맹아!!!”
단 한 방울도 튀지 않는 피. 그러나 도살자의 회전하는 톱날은 정확하게 세난의 쇄골 언저리를 찢어발기며 그 목을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생명력을 비효율적으로 때려 부어 상처를 재생한다. 당장 재생을 멈추면 그대로 목이 뜯겨버릴 게 분명했으니.
머리만 잘려도 육체 전체를 재생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눈앞의 달인이 그걸 두 눈 뜨고 빤히 구경만 할 리가 없었다.
아마도 머리가 몸에서 떨어지면 자신도 죽고 말겠지.
“큭?!”
세난은 이를 악물고 도살자를 쥔 연의 손아귀를 붙잡아 쉴새 없이 목덜미를 찢어발기는 도살자를 밀어내려 했다. 연 또한 부패의 문을 한계까지 활성화해 사도의 목을 찢어버리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딱 봐도 껍데기만 꼬맹이인 노인네야! 그만 죽어! 편해지라고!!!”
튀는 피 한 방울 없이 찢겨나간 소년의 살점만이 허공을 향해 연신 튀어 올랐다. 찢겨나가고 재생한다. 그 단순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세난이 대답했다.
“누군 이 모습으로 꼬맹이 모습으로 지내고 싶어서 지내는 줄 아세요? 나도 팔다리 쭉쭉 긴 어른의 모습이 더 좋단 말입니다!!!”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하고! 그냥 유언이나 남기고 죽으라고! 어서!”
도살자가 사도의 목을 완전히 몸에서 뜯어내 버리기 위해 한층 더 쇄골 깊은 곳으로 밀고 들어왔다. 세난은 연의 손을 밀어내기 위해 더욱 용을 썼다.
잠깐, 아주 잠깐의 틈만 벌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세난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대체 저 죽여서 뭐하려고요! 전 아직 살고 싶다고요!”
연은 한시도 손아귀에 힘을 빼지 않고 도살자를 밀며 대답했다.
“딱 한 번만 죽어주면 전부 대답해줄게! 그러니까 잠깐만 좀 죽어줄래? 응?”
“싫어요! 절대 싫어요! 제가 왜 죽어야 해요!”
“이 저택에서 일하던 사람들 다 죽여놓고 너만 살겠다고?”
“아니, 제가 죽였어요? 테스타가 죽였지!”
“네가 시켰겠지! 네가 사도잖아!”
“저는 최대한 말로 해결하라고 당부했다고요! 다 죽일 줄 몰랐다니까요!”
“그게 아니어도 어차피 네가 모시는 신을 강림시킨다고 도시 사람들 다 제물로 바칠 계획이면서!”
지지부진한 교착 속에서 상처를 회복하느라 막대한 생명력이 끊임없이 새어나갔다. 세난은 이를 악물고서 외쳤다.
“누군 그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세요? 저도 진짜 하기 싫거든요!!!”
“그러니까 나한테 고마워하라고! 지금 그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거, 내가 직접 멈춰주려고 하잖아!”
“누가 멈춰줬으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멈춰주길 바란 건 아니에요!!!”
“이 꼬맹이가 어른이 말하는데 어디서 또박또박 말대꾸야!”
“아까는 껍데기만 꼬맹이인 노인네라면서! 이젠 또 왜 꼬맹이 취급이야! 끄으아아아아!!!”
“그냥 죽어어어어어!!!”
교차하는 악소리 속에서 자그마한 균열이 일어났다.
“쿨럭.”
썩어버린 내장 조각의 역류. 연이 그걸 토해내느라 생긴 자그마한 틈. 그 찰나의 틈 속에서 세난은 재빨리 한 손을 움직여 생명력을 응축한 일곱 번째 옥(玉)을 만들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꿀꺽.
일곱 번째 옥(玉)이 세난의 목을 타고 넘어간 순간,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상한 연이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길.”
콰앙!!!
도살자가 허공으로 치솟고, 연의 몸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뭉개져 섞인 살과 근육이 채 재생하기도 전에 따라붙은 소년 사도가 발로 연의 가슴팍을 짓누르며 웃었다. 사도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기괴한 문양의 헤일로가 그 미소를 따라 회색빛으로 밝게 일렁였다.
“아주 훌륭했어요. 하마터면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연은 재생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잽싸게 대답했다.
“무슨 대체 얼마나 사람을 죽여대면서 생명력을 비축해뒀으면 그렇게 목이 갈리고도 대체 죽질 않아. 우우. 쓰레기.”
세난은 그 힐난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소리예요. 저희가 생명력을 흡수해서 권능을 사용하긴 하지만 꼭 죽일 때까지 흡수해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아, 잠시.”
주먹을 치켜든 소년이 웃는 낯으로 연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쾅!!!
충격으로 기껏 재생해가던 연의 살과 근육이 다시 한번 곤죽이 되어 뒤섞였다. 연은 고통 속에서 살짝, 아주 살짝 우그러진 자신의 이모탈리움 갑옷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게 힘으로 약간 우그러지기도 하는 거였어?’
세난은 연을 제압했다 여기고 제 할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죽일 필요 없이 적당히 살 곳 잃은 사람들이나 피난민들을 저희 교단에서 지원해서 정착시켜드린 다음 정기적으로 일정량의 생명력을 받고, 보상해드리고 있어요. 사실 죽여서 생명력을 비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거머리 같네.”
“좀 더 괜찮은 비유는 없어요?”
“…모기? 기생충?”
“…그 중에선 거머리가 그나마 어감이 제일 괜찮네요.”
연은 완전 곤죽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근데 나 안 죽여?”
세난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대체 절 뭐로 보시는 거예요? 저는 살인마가 아니라니까요? 한 명의 사제예요. 저는.”
“신을 위해 인신 공양할 계획인 사제지.”
“…하아. 나름 인간을 대체할 방법도 나름 몰래 찾아보는 중이에요. 예를 들자면 도시 단위로 생명력을 조금씩 뽑아 모아서 그걸 연료 삼아 신을 강림시킨다든지 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 중이거든요.”
연은 피식 웃었다. 눈앞의 사도는 그 강함에 비해 신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생명력 따위로는 안 되지. 이제 보니 너, 왜 인간을 바치는지조차 모르는 초짜 녀석이었잖아.”
“그럼 당신은 알고요?”
“잘 알지. 너보단.”
“아는 척할 거면 설명도 좀 해주세요.”
연은 재생이 덜 끝나 바들바들 떨리는 한쪽 손을 들어 세난을 향해 뻗었다.
“그럼 좀 일으켜줘 봐. 드러누워서 설명하면 폼이 안 살잖아.”
“음… 그 정도야 뭐.”
세난은 잠깐 고민하다 연의 손을 맞잡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연은 의심 없이 손을 내뻗는 소년 사도를 보며 쓰게 웃었다.
“멍청하긴.”
“네?”
푹.
그의 손끝에서부터 뻗어 나온 ‘부패의 검’이 정확하게 세난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큭?!”
가슴팍에서부터 번져나가는 부패가 세난의 육체를 산 채로 잠식해 들어갔다. 세난은 생명력을 때려 부어 육체를 수복하는 데 집중했다. 번져나가던 부패가 그 기세를 잃고 조금씩 사그라들어갔다.
연은 애초에 이걸로 죽일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미련 없이 부패의 검을 놓고 일어나 세난과의 거리를 벌렸다.
단순히 몸을 충분히 재생할 여유가 필요했을 뿐이었으니까.
연의 몸을 감싸던 검은 이모탈리움 갑옷이 다시금 실들로 변해 그의 오른손의 팔찌로 빨려 들어갔다. 맨몸이 된 연은 자신의 두 칸짜리 인벤토리에 넣어둔 한 의복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세난의 가슴팍에 꽂혔던 부패의 검이 바스러져 사라지고, 부패를 몸에서 몰아낸 소년은 고개를 들어 어느새 은은한 암녹빛과 흑색이 뒤섞인 부패의 사제복으로 갈아입은 연을 쳐다보았다.
그 어두운 사제복에선 쉼 없이 불길한 신성이 흘러나왔다.
부패의 사제복을 연이 그간 인벤토리에 처박아두고 절대 꺼내입지 않았던 이유. 그건 바로 부패의 사제복이 입고 있기만 해도 항상 부패의 신성을 줄줄 흘려대는 통에 입고 싶어도 입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패의 사제복을 입고 돌아다닌다는 건, 다른 사제들에게 사실상 나 잡아 죽여달라고 광고하면서 다니는 꼴이었으니.
대신, 당연히 부패의 사제복을 입음으로써 얻는 것도 있었다. 단순히 입고 있기만 해도 가진 모든 권능이 한 단계 더 진화한다는 이점이.
비록 예전엔 가진 권능이 없어서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었지만.
연은 새카만 눈으로 눈앞의 소년 사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한때 곰곰이 생각을 해봤었거든? 사도(使徒)란 거 말이야. 쉽게 말하자면 신한테 선택받은 단 한 사람을 뜻하는 거잖아?”
세난은 연과의 거리를 재며 대답했다.
“그렇죠?”
연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치? 그래서 내가 혼자서 좀 더 깊게 생각을 해봤단 말이야.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나는 어머니가 날 선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단 결론에만 다다르게 되더란 말이야. 즉, 이런 뜻이지.”
세난은 대체 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더 캐묻지 않았다. 아니, 굳이 캐묻기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너무나 명백했기에.
연의 등 뒤에서 피어오른 기괴한 문양의 암녹빛 헤일로가 불길한 빛을 연신 토해냈다.
그 악신의 신성으로 일렁이는 헤일로를 직시한 순간, 세난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지금, 저 사내의 등 뒤에서 피어난 헤일로. 그 헤일로가 어딘가 이상했다. 당연히 완전무결해야만 하고, 당연히 완전무결할 수밖에 없을 터인 헤일로가 망가져 있었으니.
반쯤 녹아 뭉개진 헤일로는 연신 암녹빛 신성 덩어리를 마치 눈물처럼 바닥으로 뚝뚝 떨어뜨렸다. 그 신성의 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대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썩어들어갔다.
연은 손을 뻗어 맨손으로 허공에서 뻗어 나온 부패의 검을 붙잡았다. 제 주인의 손마저 집어삼켜 대던 부패의 검이 잘 길든 짐승처럼 조용히 그 손길에 순응했다.
신을 잃어 망가진 사도가 암녹빛으로 물든 눈으로 눈앞의 소년 사도를 바라보며 나직이 웃었다.
“이 내가 사도(使徒)가 아닐 리 없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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