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43)
643 – 진짜 끔찍하네. (3)
643화 진짜 끔찍하네. (3)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도 모르부스는 전의를 잃지 않았다. 오직 파괴밖에 모르는 몬스터에게 물러남이란 없었다.
콰아아아앙!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르부스의 거대한 주먹이 지셀을 향해 내리꽂혔다.
지셀의 몸은 벼락처럼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크윽!”
그의 피부와 근육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며 뼈가 드러났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독기가 뼈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셀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다.
스으으으윽…….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듯, 썩어 문드러진 그의 몸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독을 흡수하는 능력과 강대한 회복력이 합쳐지니, 독기 안에서도 지셀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이제는 누가 진짜 괴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흐읍!”
지셀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주변의 독 안개들이 그의 코와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치명적인 독 안개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아, 이거 완전 맛집인데?”
지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미식가 같았다.
다시 그의 발끝에서 돌풍이 일었다. 지셀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모르부스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연이은 초인들의 공격에 모르부스의 몸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이 숲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그것의 썩은 살점과 내장이 터져 나가고, 이제는 창백한 뼈만이 남아 버렸다.
그어어어어어!
모르부스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지옥의 문이 열리는 듯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였다.
뼈만 남은 상태에서도 모르부스는 부패의 기운을 이용해 자유로이 움직였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부패의 기운도 파르니엘과 피오테가 계속 뿜어내는 신성력 때문에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애초에 초인들의 공격은 모르부스의 육체를 무력화시키는 보조 역할일 뿐. 진짜는 신성력으로 부패의 기운을 없애는 것이었다.
“슬슬 끝을 내자고.”
콰아아아앙!
지셀의 검이 번개처럼 모르부스의 갈라진 머리뼈를 박살 내며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율리엔과 길리언의 검이 양쪽에서 모르부스의 갈비뼈를 부쉈다. 모르부스의 상반신이 허물어졌다.
콰앙! 콰아앙!
벨린다의 단검들이 춤추듯 허공을 갈랐다. 그녀의 무기가 지나갈 때마다 뼈가 두 동강 났다.
파르니엘의 메이스가 모르부스의 하반신을 강타했고, 뼈는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제롬과 바네사의 마력이 남은 뼈들을 강력한 중력 마법으로 짓눌렀다.
드득! 드드득! 드득!
완전히 박살 난 뼈들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이 다시 뭉치려 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뼛조각들이 꿈틀거렸다. 놀라울 정도로 질긴 생명력이었다.
“후우, 정화 작업을 시작하지.”
파르니엘이 성호를 그으며 모르부스의 뼈 무더기에 신성력을 내뿜었다. 피오테도 남은 신성력을 모두 모르부스의 뼈에 쏟아부었다.
두 사람의 신성력이 서로 얽히며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두 사람이 한참이나 그렇게 신성력을 쏟아 낸 후에야, 들썩이던 뼈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이제 없앴네. 그래도 할 만했지?”
지셀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하자 모두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부스는 분명 강력한 몬스터다.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상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자들은 강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위험한 전투를 경험해 왔다.
이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다른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힘겨운 전투였다. 모두 상당한 힘을 썼기에 그대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벨린다가 지셀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도련님 어릴 때부터 이상한 거 안 먹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독만 보면 환장하고 드시네요. 무슨 독 괴물도 아니고…….”
“어지간한 독은 간에 기별도 안 가더라고.”
실제로 지셀에게는 이제 웬만한 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마나 연공을 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모르부스의 독은 초인들에게도 타격을 줄 정도로 강력했다. 지셀에게는 귀한 영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롬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독을 먹고 강해진다니 말이 돼? 어떻게 그게 되는 거야?”
“내 마나 연공법이 의외로 독하고 잘 맞더라고. 독의 기운만 흡수한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글쎄?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거라서. 어쩌면 너도 할 수 있게 될걸.”
“어떻게?”
“내가 알려 준 마법서 있잖아. 그거 구하면 알게 될지도 몰라.”
“으음?”
제롬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제롬의 모습을 보며 지셀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 마법서는 기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지셀은 그 마법서를 보고 자신의 마나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개량했다. 그런데 그게 몸 안에 들어온 것의 기운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하트를 제외한다면, 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품은 약이었다.
체념한 듯 고개를 몇 번 저은 벨린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주변은 당장 개척하기 힘들 거 같네요.”
“응, 전부 정화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모르부스는 사라졌지만 이 주변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버린 상태였다. 독기가 곳곳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당히 넓은 지역이 부패한 상태니 오랜 시간을 들여 정화해야 했다.
지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저놈 독을 흡수하니까 마나 연공을 할 때보다 더 빨리 마나가 늘어났어. 여기 남은 독을 아예 내가 다 먹어 버리면 더 빨리 정화되지 않을까? 시간 날 때마다 여기 와서 수련하면 될 거 같은데.”
지금도 지셀은 몸 안에 흡수한 독을 계속 마나로 변환하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은 지셀을 살짝 징그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세상에 독을 저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다들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에 지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여기는 나중에 정리해도 돼. 이미 확보한 곳만 해도 엄청 넓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부스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 넓긴 해도 마수의 숲 전체에 비하면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중심부까지 거의 직선 경로로만 진군했는데도 엄청난 영역을 확보하고 수많은 자원을 얻었다.
이제 중심부에 무엇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남은 영역은 그 이후에 느긋하게 개척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일이 끝난다. 마수의 숲을 차지한 루타니아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제롬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제 더 강한 놈은 없는 거지? 죄다 징그러운 놈들뿐이었지만.”
“아마 그럴 거야. 이놈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잖아.”
일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마수의 숲 대부분을 개척한 델파인 공작가의 일지에 쓰여 있었던 내용이니 정확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난관은 없었다.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된다.
지셀은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언젠가는 마수의 숲을 제대로 개척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어찌 보면 이 숲 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페르디움이 멸망한 것도, 지셀이 과거로 회귀한 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숲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초입을 공략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몇 번이나 목숨을 걸었는지 모른다. 자칫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이곳까지 도달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제 한 발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겠지.’
성물을 얻고 꿈을 꾼 뒤부터 지셀은 천 년 전의 전쟁이 궁금했다.
에레네스에게서 대략의 사정을 들은 뒤에는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 일이 우선이 아니었기에 미뤘을 뿐이었다.
숲의 중심부에 가면 분명 무언가를 더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과연 전생에 델파인 공작은 이 숲의 중심부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어서 빨리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조금만 쉬었다가 움직이자고.”
다른 병력은 이곳에 올 수 없다. 독기를 버틸 수 있는 현재 인원들만 데리고 중심부를 확인하고 올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너무 오래 있어도 좋을 건 없었다. 지셀에게나 독이 영약이지, 다른 이들은 마나를 써 가며 독기를 억누르고 있었으니까.
간간이 파르니엘과 피오테가 주변을 정화하지 않았다면 다들 진작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지셀이 율리엔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때? 재미있지 않아? 이 정도면 내가 말한 대로 놀고먹는 거 맞지?”
“…….”
다른 이들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셀이 ‘놀고먹는다’라고 평가하는 기준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율리엔은 달랐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진지하게 어떤 면에서 재미있고 놀고먹었는지 곱씹고 있던 것이다.
그의 의문을 알아차리고 지셀이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다 같이 놀러 온 기분이잖아? 같이 야영도 하고, 신기한 몬스터도 구경하고, 싸우면서 몸도 풀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지셀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에레네스가 말한 마경의 중심부를 드디어 구경할 수 있다는 거지. 다들 그거 궁금해했잖아?”
그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들은 천 년 전의 비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지셀과 달리 현실적이었다. 이곳에서 무슨 대단한 유물이나 충격적인 비밀을 발견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오히려 에레네스가 앞장서서 이곳에 왔을 테니까.
하지만 에레네스는 이번 마수의 숲 토벌에 참여하지 않았다. 딱히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숙소에서 머물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래서 다들 옛 신화와 전쟁의 흔적 정도나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는 중이었다. 고대 유적에 관광을 온 기분과 비슷했다.
성녀의 꿈을 꾸고 있는 지셀만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믿고 있었지만.
“음.”
율리엔은 지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홀로 지내왔다. 누구보다 강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셀과 친구들을 만난 뒤 그의 인생은 변화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륙을 구했다. 헬게니크와 아르테리온 같은 강자들과 싸울 때는 서로 등을 맡길 정도로 신뢰했다.
이 숲에 와서는 정말 신기한 몬스터들을 많이 구경했다. 그것들과 싸우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고대의 유적도 구경했고 여기 있는 친구들과 대화도 나름대로(?) 많이 나누었다.
그 모든 게 율리엔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탑에 있는 동안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리고 그건, 펜리스 영지로 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
만약 지금 느끼는 이 낯선 감정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렇군.’
율리엔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어? 어? 봤지? 웃었잖아? 내 말 맞지?”
지셀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율리엔을 바라보았다.
얼음 조각상 같던 그가 지은 미소는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율리엔이 처음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재미있는 거 같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숨을 멈췄다. 늘 서리 내린 듯 차갑던 그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단단한 얼음이 녹아내리듯, 그의 차가운 가면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었다.
다들 희귀한 동물을 발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율리엔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지워졌다.
하지만 모두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저 차가운 얼굴 뒤에 숨어 있던 율리엔의 진짜 모습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 그의 마음을.
* * *
철벅, 철벅, 철벅…….
휴식을 취한 이들은 바로 중심부를 향해 걸었다. 애초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라 더 이상 덤벼드는 몬스터도 없었다.
그래도 썩어 가는 냄새와 끈적한 불쾌감은 참으로 참기 힘들었다.
“으, 끈적끈적해. 이거 아직도 살아 있는 거 아냐?”
제롬이 검은 진액으로 가득 찬 바닥을 밟으며 울상을 지었다.
정말 이곳은 더러워도 너무 더러웠다. 혼자 날아갈까 하다가 조금 미안해서 같이 걸었는데 후회하는 중이었다.
제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의 눈앞에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졌다.
“오…….”
그나마 일행 중에서 감정 표현이 가장 풍부한 제롬이 감탄을 내뱉었다.
무척이나 넓은 공터였다. 마치 지옥의 한 부분처럼 까맣게 탄 땅은 곳곳이 거대한 상처처럼 깊게 갈라져 있었다.
그 틈새로는 시커먼 증기가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지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신음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히던 부패한 진액과 기운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그 땅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평원 위에…….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은 장막이 드리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