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644)
644 – 꼭 올 거라 믿었어. (1)
644화 꼭 올 거라 믿었어. (1)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장막은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일렁이는 검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수만 개의 영혼이 뒤엉킨 듯한 그 검은 기운 사이로 가끔 얼굴처럼 보이는 형체가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의 비명 같은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가아아아…….
장막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천천히 숨을 쉬었다. 보는 이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강력한 흡인력을 내뿜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제롬의 떨리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공포와 경이가 뒤섞여 있었다.
다른 이들도 입을 다문 채 넋이 나간 듯 장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막에서 풍기는 기운은 끔찍했다. 이 장막 앞에 서니, 앞서 마주쳤던 모르부스의 존재감도 마치 장난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검은 장막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보는 이들의 숨통을 막았다.
단순히 고대 유적 정도나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이들의 얼굴에서 혈색이 가셨다.
이런 불길하고 강대한 무언가와 마주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자신만만하던 지셀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성녀의 꿈에서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거대한 기운의 장막이 마수의 숲 중심부에 존재할 줄이야.
제롬이 다급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모르부스가 사라진 지금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었다.
위에서 보이는 광경은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에엥? 왜 이렇게 보이는 거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은 장막이 거대한 반구처럼 드리워 있었다. 한 왕국의 수도와 비견될 법한 크기였다.
더 높이 올라가자 장막은 마치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그 형태가 희미해졌다.
거대한 나무들과 어둠으로 가득 찬 마수의 숲 안에서, 검은 장막은 위장한 것처럼 주변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제롬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봉인을 했다더니…… 모습까지도 감추고 있는 건가?”
땅으로 내려온 제롬은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에레네스가 이야기할 때도 사실 반쯤은 가볍게 들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기에 다소의 과장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오히려 그녀가 전해 준 이야기는 내용이 한참 축소된 기분이었다.
제롬이 침을 꿀꺽 삼키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에레네스가 말한 신화가 사실이라면 여기에 정말 마신의 시체가 있다는 건데…….”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원교가 쓰는 힘의 원천도 이곳이라는 말이잖아요?”
“그, 그렇지. 그나마 성녀가 봉인을 해 둬서 예전만큼 힘을 쓸 수는 없다는 거고.”
사람들의 만면에 긴장감이 어렸다.
세상에 퍼진 마신의 사념 일부만으로도 가트로스와 같은 강자들이 만들어졌다는 말 아닌가.
도대체 천 년 전 대적자란 인물과 구원교의 세력은 얼마나 강했던 걸까?
그리고 그걸 막아 낸 용사와 성녀, 그 동료들은 또 얼마나 강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벨린다가 깊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물었다.
“구원교의 목적은 대적자를 찾는 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봉인을 푸는 것도 그들의 목적 아닐까요?”
모두가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장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이것이 완전히 풀린다면…….
마수의 숲은 그야말로 마경이라 해도 어울리는 지역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숲은 그저 평화로운 동산에 불과할 정도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봉인이 풀리면 구원교는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도 구원교를 몰락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런 놈들이 더 강해진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파르니엘이 이를 갈며 검은 장막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하지만 장막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분노한 파르니엘이 신성력을 연신 뿜어내며 계속해서 공격했다.
콰앙! 콰아! 콰아앙!
강대한 힘을 자랑하는 그녀의 공격에도 장막은 끄떡없이 형태를 유지했다. 고작 그 정도 힘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다고 비웃는 듯했다.
지셀도 심각한 표정으로 장막을 살펴보다가 공격을 해 보았다.
콰아아아앙!
잠시 검은 연기가 흔들렸을 뿐이다. 장막은 뚫리지도 베이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고심하던 지셀은 의지의 힘을 사용하고 다크의 증폭까지 동원했다.
콰아아아앙!
온 힘을 다해 장막을 공격하자 아주 잠깐 틈이 생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검은 기운으로 메워져 사라졌다.
‘텅 비어 있다.’
틈이 생긴 찰나 모두가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간에 가득 찬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도 차례로 공격을 시도했다. 율리엔도 전력을 다해 베어 보았고, 제롬과 바네사도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검은 장막은 여전히 도도하게 버티고 있었다.
제롬이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말했다.
“내가…… 금지된 마법을 써 볼까?”
사실 허세를 좀 부려 봤다. 실제로 쓸 생각은 없었다. 그거 지금 쓰면 죽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살짝만 써 봐 봐. 그건 좀 통하지 않을까? 구원교의 기운과 상극이라며.”
벨린다도 동조했다.
“살짝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죽기 직전에 멈추면.”
바네사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직접 본 마법사들 사이에서 대단한 마법이라고 말들이 많았다. 마법사로서 자신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파르니엘은 이를 갈듯 말했다.
“어서 써 봐라.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다.”
그녀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에레네스가 말한 신화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교단의 권위는 오랜 믿음에 기반했다. 그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 됐다.
이제는 지셀보다도 파르니엘이 과거의 흔적을 더욱 파헤치고 싶어 했다.
제롬이 해쓱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아, 왜 그래. 그냥 한번 해 본 말인데…….”
제롬이 율리엔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율리엔이라도 말려 줘야…….
율리엔은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했다. 그저 그림같이 멋있는 자세로 하늘만 보고 있었다.
모두에게 배신당한 제롬이 결국 발끈했다.
“아! 그거 쓰면 나 죽는다고! 너무하네, 정말!”
제롬이 길길이 날뛰자 다들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죽을 정도로 아주 살짝만 쓰다가 취소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또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아, 이거 참 답답하네.”
지셀이 아쉬워하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이런 장막에 막혀 있을 줄이야.
그나마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아냈다. 이 안에 정말로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정말 마신의 기운인 건가.’
그 엄청난 힘의 원천을 성녀가 봉인했다는 이야기도 허황된 말은 아닌 듯했다.
“뭐……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아니지.”
에레네스도 지셀 일행이 이 압도적인 기운을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다. 그래서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대단하긴 하네.”
기운의 잔재만으로 이런 거대한 장막이 만들어지다니.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기에 이걸 봉인할 수 있었을까?
모든 여신의 힘을 쓸 수 있는 성녀라서 가능했던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참 동안 장막을 구경하던 지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돌아가자.”
이대로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더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듯 보였다.
돌아가서 차근차근 숲을 개척하고, 천천히 이곳을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벨린다가 조금 찝찝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에 정말 안 좋은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다면…… 풀릴 일은 없겠죠?”
“글쎄, 당장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 대적자란 놈이 부활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으음, 정말 그 대적자라는 자를 찾긴 찾아야겠네요.”
구원교가 이곳의 봉인을 풀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왕을 찾고 있다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에레네스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그들의 성지였다. 그러니 왕을 찾은 뒤에는 분명 어떻게든 여기 와서 이 기운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단순한 신화와 음모론이라 생각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 대적자를 찾아내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불안 요소를 잠재울 유일한 방법이었다.
에레네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궁극적인 목적만큼은 모두와 같았다.
사람들은 율리엔을 힐끗 보고 생각했다.
‘뭐…… 대적자는 아닌 거 같은데.’
‘진짜였다면 이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에레네스도 확신을 못 하고 있잖아?’
율리엔이 정말 구원교가 찾는 대적자라면 검은 장막도 율리엔과 접촉했을 때 뭔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어쨌건 이곳이 구원교가 가진 기운의 원천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율리엔이 가까이 접근해 공격해도 검은 장막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마음을 조금 더 편하게 먹었다. 아무리 봐도 율리엔은 대적자가 아니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지셀의 말에 제롬이 제안했다.
“우리 그냥 날아가자. 나랑 바네사가 다 들고 갈게. 그게 더 빠르잖아?”
올 때야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몰라 걸어왔지만 돌아갈 때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모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롬이 막 마력을 끌어올리려는 찰나, 지셀이 말했다.
“잠깐.”
“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게.”
지셀은 장막을 돌아보았다.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찝찝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성녀의 신성력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떠미는 것 같았다.
지셀은 천천히 검은 장막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에 손이 닿자, 의외의 온기가 느껴졌다.
조금 더 힘을 내어 손을 밀어보았다. 손은 마치 단단한 벽에 막힌 것처럼 더 들어가지 않았다.
“흠.”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빼려던 그 순간.
―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음?”
무언가 낯선 목소리가 의식 속을 파고들었다.
‘이건…….’
신성력이었다. 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성녀의 신성력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꿈도 아닌데 이렇게 선명하게 들리다니.
지셀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 네가 꼭 올 거라 믿었어. 우리와 ‘약속’을 했으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지?’
틀림없었다. 꿈에서 들었던 성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 오기로 누구와 약속한 적이 없었다.
여기 온 건 그저 개인적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였다. 굳이 다른 이유를 들자면 마수의 숲을 개척하는 것뿐이었다.
지셀은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어쩌면 이 장막의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셀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무슨 일…….”
불안한 듯 다가가던 벨린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도련님!”
파아아아악!
검은 장막이 갑자기 요동쳤다. 수백 갈래의 검은 기운이 마치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가, 순식간에 지셀의 몸을 휘감았다.
장막 안에서 수백 개의 검은 손이 튀어나온 듯한 광경이었다.
누가 반응할 틈도 없었다.
검은 촉수와 같은 그 손들은 번개처럼 지셀을 덮쳤고.
그의 몸을 집어삼키듯 장막 속으로 순식간에 끌어들였다.